〈 13화 〉 13 펠론의 지하 上
* * *
“명백한 강간이잖아.”
버트는 레드윙 때랑 비슷한 것이 아니냐고 하자 세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가 유혹한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린 것들이 맹랑하게.”
은송은 그 점을 부정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근 일주일 동안…… 판타지아의 시간으로 치면 한 달 가까이 왕궁에 잡혀있었다.
지금은 간신히 탈출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망아지의 우람한 생식기에 꿰뚫리며 입으론 마반의 성기를 받았다.
이따금 와스를 포함한 어린 시종들이 찾아와 자기도 해달라고 조르며 바지를 까기도 했다. 붙잡혀서 당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지금같은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더 흥분하기도 했고…….
세영은 그 점을 지적했다.
후유증이 없는 쾌락.
인간의 몸엔 망아지 음경이 들어갈 만큼 넉넉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온전히 쾌락으로 바뀌지도 않았다.
내장이 상할 우려도, 성병에 시달릴 걱정도, 몸이 망가지지도 않고, 임신도, 사회적인 비난도,
그 어떤 것도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성욕을 풀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하긴 최적이었다. 다만 중독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다행히 접속을 하지 않는 이상 '실버트리'의 성욕이 터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게 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세영의 걱정에 은송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도 두려웠다. 언제 게임과 현실을 구분 못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울상이 된 은송을 보며 세영이 머리를 쓸어주었다.
“섹스는 나쁜 게 아니야. 밝히는 것도 그렇고. 다만 무분별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자상한 세영의 말에 은송은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세영아”
은송은 세영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자기보다 키도 큰 녀석이…… 세영은 대형견을 키우는 기분이었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아니…… 내 스스로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
은송과는 달리 이곳에서도 잊지 못하는 '그'를 떠올리며 세영이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이번 기록도 보여줄 거지?"
은송은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고 부끄러워 하다가 끄덕였다. 이제 거리낌이 없어졌다.
게임에 접속한 은송은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뭔가 당한 흔적은 없었다. 그리고 리버도 옆 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니 접혀있는 한쪽 귀를 팔락였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리버의 반응에 녀석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났다.
“으그극…….”
여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지개 한 번. 찌뿌둥한 몸이 개운하게 풀어지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흐린 기억 속에서 델폰 남작의 초대와 그곳으로 가는 길을 떠올렸다. 덩달아 왕궁의 상황까지 떠오른 바람에 머릴 좀 흔들었다.
뭐가 됐건 다음 목적지는 정해졌고 이제 갈 준비만 하면 된다.
델폰 남작의 영지 게헤로. 그곳에서 남작이 거주하는 성, 펠론으로.
*
리버가 있었지만 루하다가 없는 여행길은 적적했다. 야영도 이젠 능숙히 해내서 가는 길에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루하다가 있는 편이 좋았다.
이유? 알지 않은가.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 버트는 이따금 노숙을 하며 두세 번씩 자위를 했다. 리버가 코앞에서 자는 바람에 녀석이 깰까봐 우려하면서도 자위를 한 적도 있었다.
또 한 번은 가슴을 내놓고 길을 가다 확 끌려서 대낮에 흙길 위에서 애액 분수를 흩뿌린 적도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 싶다가도 어느 샌가 음란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세영의 걱정과 자신의 근심을 떠올렸다.
‘난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다행인 점은 그녀처럼 직접 도보로 걷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대부분 값비싼 순간이동 장치를 통해 가거나 말이나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걸려도 그가 플레이어일 확률은 극악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오히려 그녀가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을!
다행히 그 고민은 품속에서 꼬물거리는 리버로 해결 됐다. 이 순수한 녀석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걱정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애교를 부리고, 싫어하면 이를 드러내고…….
아무렴 어떤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나쁜 일도 아닌 데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비밀을 절친도 알고 있는데. 그저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리고 유혹하는 짓을 현실에서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란 걸 잊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 그러면 돼.’
버트는 리버를 꼭 안아주었다.
체온이 느껴진다. 가쁜 숨이 느껴진다. 작은 심장 박동도…… 푹신한 털가죽도, 말랑한 발바닥도 느껴졌다.
“미안해 누나가 야해서…… 그리고 고마워…… 이런 나와 있어줘서…….”
이젠 더 이상 허전하지 않았다. 루하다가 없어도, 리버가 곁에 있어주니까. 이제 이 아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도저히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이자, 친구이자, 반려였다.
*
그렇게 짧지 않은 여정 끝에 영지에 도달했다. 버트는 옆에서 졸졸 따라오는 리버를 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길 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도시의 모습을 찾기 위해 실눈을 떠봤지만 넓은 밀밭만 보였다.
혹시 밀에 파묻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걸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으니 저 멀리 성벽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콕콕 찍혀있는 자그마한 집들이 보였다.
크구나.
발르틴이나 수도 크람스 못지않게 크다 생각하며, 눈에 보이는 도시(윌카)까지 여유롭게 걸었다. 간혹 이 잠깐의 걸음도 참지 못해서 탈 것이나 순간이동을 이용하는 플레이어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버트는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걸 쓰지 않았다. 그녀야말로 판타지아를 제대로 즐기는 유저가 아닐까!
‘라고 라이가 말했었지……?’
가벼운 검문을 넘어서 곧바로 남작의 성, 펠론으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진 성은 왕궁보다 초라했다.
그렇다고 보잘 것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건물에 비하면 거대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힘을 주며 자신을 보고 있는 문지기를 보며 버트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남작 님의 초대를 받고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실버트리요.”
문지기의 반응이 애매했다. 그는 조심히 되물었다.
“혹시 성은……?”
“없…… 는데요?”
뭘 묻는 건지 고민하던 버트는 뒤늦게 답을 했다.
문지기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성도 없는 평민이 난데없이 찾아와 남작님의 초대를 받았다니!
그렇다고 섣불리 쫓아내기엔 그의 본능이 말렸다. 초청받은 이모탈인가? 만일의 경우도 있는 법이기에 성벽 위의 병사에게 이걸 알렸고, 즉각 상급자에게 보고되었다.
“말론은 무슨 생각으로…….”
문지기를 꾸짖으려던 백부장은 그와 비슷한 생각으로 병사 하나를 시켜 이걸 보고하게 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보고 체계를 걸쳐 델폰 남작의 귀에까지 이 사실이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들이라 외치며 발작에 가까운 명령을 내렸다. 보고되는 건 오래 걸렸고 결과는 빨랐다.
*
몇 분 만에 입성한 버트는 멍하니 접객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델폰 남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땅딸막한 중년인. 이게 첫 인상…… 아니, 두 번째지? 버트는 자신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는 남작을 보며 갸우뚱거렸다.
“그대가 그때 그 기사라고?”
“아.”
그제야 버트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왕궁에서 보여준 건 ‘실버트리’라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의 기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맨 얼굴!
“예, 맞아요. 그땐 사정이 있어서…….”
남작의 눈이 의심으로 차올랐다. 차라리 그의 몸종이라 했다면 믿었을 정도로 한낱 여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듬성듬성 회색 털이 난 저 검은 털뭉치는 뭐란 말인가. 마치 애완동물과 나들이를 나온 철없는 계집 아닌가.
혀를 차는 남작을 보며 버트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눈앞에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놀라운 변신을 목격한 남작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방금 봤던 처자는 어디가고 위엄을 흘리는 흑기사가 서있는 걸까. 심지어 그 몸에서 흐르는 압박감까지 똑같았다. 버트는 본래 여행자 차림으로 돌아오곤 맑게 웃어보였다.
“이제 제 말을 믿어주시는 건가요?”
이 정도면 사기 아닌가. 그것도 국왕에게……!
남작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녀가 이모탈인 이상 귀족이 될 수 없었다. 대신 무력이 있는 건 확실했다.
이용하자. 그러려면 우선 그녀에 대해 알아야했고 곧장 집사에게 신호를 주어 정보를 그러모으게 했다.
“내 잠시 의심해서 미안하오. 워낙 차이가 심해서 말이지.”
“아니에요.”
잡다한 얘기를 주고 받으며 차 한 잔을 비웠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델폰 남작은 버트에 대한 온갖 정보를 따냈다. 버트는 쓰디 쓴 차 맛을 원하는 맛으로 바꾸는 시스템을 알아냈다.
이러는 사이 집사가 누군가의 증언을 듣고 남작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럼 잠시 일이 있어서……”
남작은 급한 업무를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
“알아냈나?”
집사는 끄덕이며 그녀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얘기해주었다. 그가 버트를 통해 들은 것과 비교해본다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증언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남작이 아는 ‘그’는 헛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냥에 빠진 기사라지만 거짓을 얘기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믿기엔 말이 되지 않았다.
길거리에 음란한 짓을 하는 여인이라니……? 남작은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할 것을 명하고 다시 접객실로 돌아왔다.
“죄송하오. 다소 급한 일이어서 자리를 비워야 했소.”
“괜찮아요.”
버트는 웃으며 대답 했다. 이후 대화는 남작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형식으로 빚어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버트의 눈은 오로지 남작의 목걸이만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걸 얻을 수 있을까. 이야기 소재는 떨어져가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결국 버트는 무리수를 던졌다.
“남작님!”
“왜, 왜 그러시오?”
이어서 나온 말은 아주 맹랑한 부탁이었다.
이곳에 잠시 머물게 해달라는 것. 그녀를 이용할 생각이던 남작은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코까지 꿸 수 있었으니 환영이었다.
물론 표정으론 곤란해하며 마지못해 받아들인 척했다. 덕분에 버트는 미안해하며 그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냐 물었다. 남작은 추후에 부탁하겠노라 말하며 구두 계약을 성립할 수 있었다.
“흐아~”
남작이 배정해준 방은 널따란 침대와 여러 가구가 비치되었다. 버트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묻으며 리버를 반겼다.
편한 잠자리와 귀여운 애완동물. 이 두 가지만으로 최고의 행복을 선사했다. 잠깐 쉬고 있으니 시녀 몇이 들어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과 바삭하게 구운 과자를 내왔다.
버트는 짧은 꼬리를 흔들며 보채는 리버를 안고 고맙단 말을 하며 과자를 입에 넣었다.
맛있다! 리버가 먹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한 조각 입에 넣어주었다. 리버는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며 받아먹고 버트에게 엉겨댔다.
리버의 애교를 독차지 하는 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곧 거리를 두어야할 시간이 됐음을 느끼고 꽉 한 번 안아주더니 침대에 내려주었다.
최근 들어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닌지 오래 안고 있으면 리버가 축 늘어져버렸다. 그래서 일정 시간이 될 때마다 떨어져 지냈다. 리버도 이게 습관이 들었는지 낑낑대는 소리만 낼 뿐 버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미안해.’
가슴이 아프다. 잠깐일 뿐이지만 저 순박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다시 안아주고 싶었지만 입술을 씹으며 참아냈다.
“미안, 리버. 누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 얌전히 있어. 알았지?”
끙끙대며 꼬리를 살랑대는 리버의 모습은 버트에게 수 십 번의 갈등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안 된다! 버트는 리버를 두고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거닐었다. 아무래도 더 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안아버릴 거 같았다. 그래서 산책을 하고 몸도 풀 겸 밖으로 나섰다.
“으우웅……”
깍지 낀 손을 위로 뻗으며 기지개. 몸의 찌뿌둥한 게 풀리자 주변을 볼 여유가 생겼다. 왕궁에서는 흑기사의 형상을 유지하고 어떻게 말을 할 지 고민하느라 앞만 보고 걸었다.
이것 때문에 왕궁에서 버트를 안내한 사람은 한 가지 오해를 했다. 왕궁의 위엄에도 기죽지 않고 화려함에도 눈을 팔지 않는 심지가 굳은 자라고 말이다. 그냥 정신이 없었을 뿐인데!
그리고 안겨있던 리버도 한 몫 했다. 어찌나 보채던지. 하마터면 흑기사의 모습이 벗겨질 뻔했다. 다행히 지금은 예술품들을 감상하는데 방해하는 건 없었다.
……물론 잠깐의 얘기지만.
“오호…….”
델폰 남작의 오른 팔이라 할 수 있는 코르크. 그는 기사이지만 검보다 머리를 쓰는 간계에 능한 모략가였다.
세 치 혀를 잘 놀리는 덕분에 델폰 남작 수하의 여섯 기사 중에서 으뜸인 엘도트를 누르고 남작의 호위기사가 되었다. 물론 이 비열한 인간이 마냥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적절한 때에 아부와 이간질을 섞어 자기 마음대로 남작을 주물렀다.
엘도트를 포함한 충직한 다섯 기사들은 이 사실을 알아도 떼어놓지 못했다. 이미 남작은 그에게 묶여있었고 그를 어떤 방식으로 떼어놓든 나머지 목숨이 위태로워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사냥꾼 출신인 이디아는 첩보원 사냥이란 명분으로 성에 잘 돌아오지 않았다. 브론트는 폐관수련에 들었다. 그나마 머리를 쓰는 케르실은 코르크의 견제 때문에 경비대를 총괄하란 임무와 함께 성 밖으로 나다니게 되었다.
남은 건 단순한 렌드리오와 고지식한 엘도트 뿐. 이렇다보니 코르크는 무서울 게 없었다. 그래서 복도를 걷고 있는 여인을 어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붉은 머리와 검은색 일색의 모험가 차림새. 조금 독특했지만 워낙 색을 밝혀온 코르크의 눈에 차지 않는 외모였다. 저 정도 몸매에 얼굴은 돈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어째선지 그녀를 갖고 싶고 마음껏 휘두르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둘러보는 그녀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처음 뵙는 분이군요?”
코르크의 지적에 여인이 눈을 깜빡이다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남작 님 초대로 온 실버트리라고 합니다.”
“저는 프론스 기사단의 코르크 와이버라 합니다. 실례지만 성은……?”
“어…… 없는데요?”
버트의 말에 코르크의 미소가 짙어졌다. 먼저 머리를 숙이는 행위(버트의 세계에선 예절이지만)도 그렇고 말투를 보면 귀족은 아니다.
그런데 남작이 무엇 때문에 그녀를 초대했을까. 사연을 알아보고자 얘기를 꺼내려다, 멀리서 걸어오는 엘도트를 보며 혀를 찼다. 버트 역시 코르크의 눈빛을 보고 뒤에서 걸어오는 엘도트를 보았다.
‘어!?’
그리고 경악했다.
엘도트 때문에? 아니다. 그의 옆을 따르는 소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 역시 버트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음흉하게 웃었다.
둘이 스쳐지나가고 코르크가 애써 기분 좋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버트는 자기를 골탕 먹인 종기사 엘턴을 만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 태도가 코르크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년이 날 두고 뭐 하는 짓이지?’
남작도 어찌 못하는 자신을 성도 없는 평민이 무시하다니? 그래서 한 마디 하려하니…….
“아, 죄송해요! 저기 기사님께 볼일이 있어서…….”
그러면서 휑하니 가버렸다.
자신을 두고 엘도트에게? 그렇게 홀로 남겨진 코르크의 표정은 무섭게 가라앉아있었다.
*
다급하게 둘의 뒤를 따라가던 버트는 종적을 놓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연무장, 예술품들 외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지 짐작도 안 갔다.
버트가 포기하려던 순간 저 멀리 길 모퉁이에서 손짓하는 엘턴이 보였다. 버트는 그를 놓칠 새라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버트는 꺾이는 길가에 도착했다. 그녀의 눈에 복도를 벗어나 흙길로 뛰어가는 엘턴의 뒷모습이 보였다. 버트는 부지런히 그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펠론에서도 으슥한 곳. 바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건물 뒤편이었다. 성벽으로부터 사람 두 명이 드나들 정도의 틈만 있는 이곳에 엘턴이 서서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여긴 병사들이 가끔 땡땡이 치러 오는 곳이야. 그래서 감시나 순찰이 자주 오지만, 그들도 눈감아주고 있어. 그리고 여기서…….”
뒷걸음질 치던 엘턴은 멍하나 쳐다보는 버트에게 보란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이 사라졌다.
물론 진짜로 사라진 게 아니었다. 골목에서 다시 골목으로 통하는 입구로 손이 들어간 것일 뿐이었다.
워낙 어두운 데다 숨겨진 틈새가 골목 깊은 곳에 있다 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농땡이 부리는 병사들도 발견하지 못한 곳이기도 했다.
“봤지?”
“……나한테 그런 걸 말하는 이유가 뭔데?”
“어? 나랑 한 번 하려고 따라온 거 아니었어?”
“어엉?”
버트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몸은 치녀인데 하는 짓은 처녀라니! 엘턴이 속으로 크게 웃었다.
“아, 아냐! 난 그저 왕궁에서 나한테 왜 그랬는지 물어보려고…… 그건 좀 심했잖아!”
“음, 그야…… 그렇게 하면 누나의 모습이 한 층 더 예뻐 보일 거 같아서 그랬지. 해보니까 정말 예쁘더라.”
천연덕스러운 엘턴의 대답에 버트는 할 말을 잃었다.
“볼일은 그게 끝?”
“어……? 그, 그러니까……”
“그럼 나 간다?”
솔직히 기대했던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루하다도 없는 마당에 아무 남자나 잡고 늘어질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엘턴을 만난 것에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망설이는 버트를 보며 엘턴이 슬금 다가왔다. 그리고 코앞에 서서 올려다보더니 손을 뻗어 엉덩이를 쥐어 잡았다.
“아……!”
가죽의 감촉과 어린 손으로 전부 잡기 어려운 빵빵한 엉덩이의 손맛! 엘턴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한 번 졸라 봐요. 따먹어 달라고. 그 추잡한 몸을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해달라고 해보세요.”
“으…… 어?!”
버트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하지 않자, 엘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말해봐요, 창녀 누나. 네?”
“그…… 아…….”
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왕궁에선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으니 그랬을 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창녀에, 추잡하다니! 엄청난 모멸감에 버트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헤프게 보였던 건가! 여자로서 바닥까지 떨어진 느낌은 말로 표현이 힘들었다. 섹스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폭력적인 표현에 버트는 한 방울 눈물을 만들었다.
“차…… 창녀 아냐…….”
“예에? 그럼 누나가 조신한 숙녀라도 돼요? 그렇게 밝히고 아무한테나 몸 대주면서. 하긴 돈 받고 하는 게 아니니 그냥 치녀려나?”
“아니라니까……!”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엘턴의 말을 받아치고 싶었다. 하지만 말솜씨가 좋지도 않을 뿐더러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지 못 했다.
여러 남자에게 다리를 벌려준 것도 사실이다. 엘턴을 비롯한 녀석들을 건드린 것도 자신이다. 그야말로 섹스에 미쳐 사는 광녀마냥 아랫도리를 날려댄 것이다.
그 누구보다 버트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아니라고 말하기엔 양심이 있었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분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엘턴도 뭔가 이상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애! 나 변태야……! 왕궁에서 너 유혹하고……! 다른 애들도 건드린 변태! 그치만…… 그렇지만 그렇게 말할 것까진 없잖아……! 나도 얼마나 고민했는데…… 이대로 계속 섹스에 빠져 살까봐, 못 벗어날까봐 얼마나 생각했는데…… 근데…… 근데 계속 생각나는 걸……! 끄흑…….”
버트의 투정과 눈물에 엘턴이 식은땀을 흘렸다. 쩔쩔 매고 있는 그를 향해 버트의 호소는 계속 되었다.
“그래도 조금은 참았어……! 그때 널 본 거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찾은 건데…… 으흑…… 넌…… 넌 근데…… 창녀 누나아……!!”
버트는 이 말을 끝으로 서럽게 울어댔다. 엘턴은 그녀를 다독이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여자란 말인가. 농염했던 건 온데 간 데 없고 지금은 그저 애처럼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로 얼마나 답 없이 야한 여자인지 실감했다.
결국엔 섹스에 빠졌고 정말 좋아한단 소리가 아닌가. 훌쩍거리며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엘턴이 손을 잡아주며 손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제 그만 울어요 누나. 창녀라고 안 놀릴 테니까, 뚝!”
“우윽…… 흑…….”
눈물을 삼키며 끄덕거리는 게 어째 엘턴보다 어린애 같았다. 자기 키의 반만한 애한테 위로나 받다니.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말 하나.
“……그래서 결국, 하고 싶어서 저 따라온 거 맞죠?”
눈가를 축축히 적시던 버트가 그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기도 모르게 본심을 말해버렸다.
엘턴은 그녀의 딸꾹질 소리를 듣고 음흉하게 웃으며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러나 버트는 대답 하지 않았다. 오기가 생긴 엘턴은 입술을 삐죽이다가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대답 안 하면 그냥 만질 거예요?”
앙큼한 협박에 버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턴은 가죽 반바지 밑, 허벅지 살을 더듬었다. 엉덩이의 살집에 눌려 생긴 경계선을 건드렸다. 부드러운 살결과 말랑한 살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말 안 할 거예요? 저 그럼 다른 데도 만질 거예요?”
“그, 그으…….”
버트가 계속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엘턴의 손이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손은 하나 더 추가 되어 그녀의 골반을 잡았다. 꿈틀거리는 손가락이 바지를 슥 건드렸다.
엘턴은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버트가 시뻘개진 얼굴로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그래서 엘턴은 바지를 잡고 내려버렸다. 예의 매끈한 음부가 드러났다.
언제부터 젖었던 건지 바지에 애액이 길게 늘어져 떨어졌다. 촉촉히 젖은 둔덕. 생글거리던 엘턴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버트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연하의 남자 앞에서 바지를 까고 직접 만지게 하다니. 어마어마한 배덕감에 그 흥분은 말로 표현키 힘들었다. 그러니 엘턴의 손가락이 음부를 농락할 때마다 걸쭉하게 애액을 흘리는 게 아니겠는가.
버트가 끙끙대며 지지할 것을 찾는지 허공을 더듬었다. 그러다 건물 벽에 기대어서 숨을 탁 내뱉었다.
기분은 좋은데 당장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엘턴은 버트가 하는 것을 지켜보며 두 손가락으로 음부를 만져주었다.
그 탱글한 피부 안의 속살이 드러났다 숨었다 할 정도로 격렬히 만져댔다. 버트의 표정은 순식간에 색기 넘치는 치녀로 돌변했다.
헌데 이렇게 즐기고 있을 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발소리와 말소리에 둘은 다급하게 비밀 골목으로 숨었다. 간발의 차로 둘을 못 보고 병사 둘이 골목으로 들어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거 참…… 정말이야?”
“그 여자가 그럼 용병이라도 되겠어? 꼬락서니 보니 이모탈 아니면 철없는 아가씨던데.”
“그럼 남작 님의 노리개가 아닐 것 아냐? 어느 철부지가 몸을 팔러 성으로 직접 들어와? 이모탈이면 더더욱 아니지. 그들을 묶어놓을 방법은 없단 게 정설이잖아.”
둘의 영양가 없는 대화가 계속 되는 동안 엘턴의 애무는 계속 되었다. 아니 더 발전해 있었다.
버트는 거의 허공에 앉아 있다 싶은 자세로 벽에 기댔다. 그리곤 한쪽 가슴을 빼놓고 엘턴에게 음부를 만져지고 있었다.
“흣…… 흐…… 읏……”
엘턴은 찔걱대는 소리가 나도록 손을 움직이며, 이따금 먹음직한 젖가슴을 한 가득 입에 물고 원 없이 빨아댔다. 버트는 코로 숨을 쌕쌕 쉬며 신음을 참느라 죽을 맛이었다.
흥분된다……
이러고 있는 걸 들키면 어찌될 지 상상하면서,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직시하면서. 엘턴의 입과 손이 하는 걸 받아들이면서…… 한없이 느끼고 있었다.
“소리 잘 참아.”
그 말을 속삭이고 난 직후 엘턴이 이를 세워 버트의 유두를 깨물었다. 힘 조절을 했다지만 제법 아팠다.
하지만 엘턴이 잘근거리며 턱 힘을 조절하자 발기된 유두는 색다른 느낌으로 풀려갔다. 버트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냈고 당연히 병사들의 귀에도 들렸다.
“쉿, 뭔 소리 안 들려?”
“엉? 무슨 소리?”
그 말은 버트의 귀에도 들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엘턴을 내려다보며 도리질을 했다.
눈물이 그렁거리는 두 눈을 본 엘턴은 싱긋 웃었다.
‘여기서 더 하면……’
엘턴은 반대쪽 가슴도 들췄다. 그러면서 혀로 유륜을 빙글거리다 혀끝으로 유두를 튕겨줬다. 두 손가락은 질 구멍에 꽂아 넣고 체액을 뽑아낼 기세로 쑤셔댔다.
버트는 소리를 막으려고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완벽하게 막을 순 없었다. 심지어 엘턴의 손가락이 질을 들락날락거리며 내는 질척한 소리까지 났다.
병사들은 점점 이쪽으로 다가왔다.
버트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기척을 느꼈다.
이대론 들킨다. 당장 도망치거나 숨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점점 격앙되는 몸은 가지 말라며 붙잡았다.
지금의 쾌락을 맛보라고, 들키면 그냥 당하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아랫입 역시 싫지 않은지 엘턴의 손가락을 꽉 물고 놓지 않았다.
버트는 눈을 반쯤 까뒤집었다. 본능이 이성을 접수했다.
이제 들킨다……!
버트가 온몸을 떨며 생각했다.
될 대로 되라.
“이것들이 어디 갔어!”
숨을 꿀꺽 삼키며 신음을 내지르기 직전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병사들이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버트는 물론 엘턴도 숨을 죽였다. 버트가 덜덜 떨며 머리를 빼꼼 내밀어 확인하였다.
갔다.
“하아…… 하아…… 간 거 같아응!?”
그렇게 안도하고 있을 때 버트가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손을 멈췄던 엘턴이 손가락을 깊게 쑤셔 넣은 것이다.
버트가 눈을 흘기자 엘턴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너무해…… 들켰으면 어쩔 뻔했어……”
“그치만 좋았잖아?”
버트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후 버트는 엘턴이 지칠 때까지 놀아주었다. 엘턴은 기가 쏙 빨려 휘청거렸다. 버트가 미안해하며 사과를 하니 엘턴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이에 못지않은 성숙한 웃음에 버트의 가슴이 뛰었다.
*
둘의 밀회는 며칠 간 계속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버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엘턴은 의아해하며 특유의 넉살과 애교로 시녀들에게 수소문했다. 그리고 버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다.
펠론의 지하 감옥. 죄수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자들이 갇히는 곳에 감금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