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11화 (11/104)

〈 11화 〉 11 ­ 수도 크람스 中

* * *

“변태.”

은송에게서 근황을 들은 세영의 첫 마디였다.

은송은 바르르 떨면서 고개를 떨궜다. 세영은 경멸스럽게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단숨에 그녀에게 농락당했음을 간파한 은송은 살벌하게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던 세영은 사과하면서 영상을 볼 수 없겠냐고 물었다. 의외로 은송은 필사적으로 반대를 표했다.

“오호. 그렇게 나오시겠다?”

“응? 어?! 아!? 흐앙?!”

세영은 버트를 끌어안고 귀를 집요하게 씹어댔다. 버트의 반항은 1분도 안 되서 끝나버렸다. 그래도 이번엔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이번 일에 대한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여 강조했다. 세영은 그걸 흘려들으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최근, 수도 크람스로 향하는 그녀의 행보를 본 세영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녀가 처음 뱉은 말은 ‘야하다……’ 였다.

이런 순수한 감탄이란…… 그만큼 버트의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은 대단했다. 세영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한 마디를 끝으로 영상에 집중하느라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

영상의 끝을 본 세영은 아랫배가 화끈거리는 것 같아 시선을 옮겼다. 창피함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는 은송이 보였다.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르틴에서 했던 농담 같은 한 마디. 그건 진심이었다.

세영은 진한 미소를 그리더니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길고 긴 속삭임 후. 버트가 눈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세영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은…… 어쩌면 친구 관계마저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빛이 장난스럽지 않았다.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았다.

“물론 판타지아에서. 여기서는 좀 곤란하잖아?”

세영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속삭였던 내용에 덧붙여 말했다. 은송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세영의 은근한 배려에 미소지었다.

접속 후 버트는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창 밖은 어둑하니 밤이 확실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자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데 왜 불편하게 자기를 위에 얹어두고 안고 있는 걸까. 그 의문은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 일어나려는 순간 밝혀졌다.

찔걱거리며 아랫쪽에서 뭔가 뽑히는 느낌에 고갤 숙여 확인했다. 그러자 보이는 건 사내의 음경과 연결되어있는 음부.

섹스 직후 숙면.

“흐읏…… 읏……”

자세의 비밀을 알아낸 버트는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러다 전신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쾌락 때문에 다시 주저앉았다. 입을 막으며 터진 신음을 참았지만 남자가 잠에서 깨어 슬쩍 눈을 떴다. 그는 곧바로 그녀의 허벅지를 꽉 잡더니 허리를 튕겨 올렸다.

“흐앙­!”

버트의 하반신이 살짝 들리면서 남자의 성기가 반쯤 뽑혔다. 그리고 몸이 내려앉으면서 음경이 다시 파고 들었다. 버트가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남자는 하반신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금세 그녀의 입에선 귀여운 소리가 터졌다.

삐걱­

한참 섹스에 빠져있을 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얼굴은 모르겠다. 하지만 빵빵하게 부푼 다리 사이를 보니 목적은 확실했다.

그가 주섬주섬 허리끈을 풀다 밑에 깔려있는 남자를 보곤 투덜거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침대로 슬쩍 다가와선 버트를 마주 보다 입을 맞추었다.

“후우, 야, 그거 까봐.”

사내는 혀를 뒤섞으며 그녀의 가슴께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혀를 빨리던 버트는 지체 없이 가슴 부분을 활짝 열어주었다.

사내가 아랫입술을 물면서 그녀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한 손으로 다 잡기에 조금 힘든 정도. 그래도 과하지 않다.

게다가 이 탄력! 꾹 눌렀다 떼도 모양이 죽지 않고 손맛이 끝내줘서 하루 종일 주물러도 질리지 않을 거 같았다. 실제로 섹스를 하면서 왠종일 가슴만 주물러대는 녀석도 있었다.

키스를 하며 가슴을 매만지던 사내가 입을 떼고 버트의 머리를 잡아 꾹 눌렀다. 버트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면서 밑의 사내와 몸이 포개지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했다가 눈앞에 디밀어지는 딴딴하게 선 남성기에 입을 다물었다.

꼴깍……

버트는 수줍게 입술을 오므렸다가 저번처럼 입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서툰 혓놀림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기분 좋으면 그만인 것을!

사내는 버트의 머리를 잡고 그녀의 입이 음부라도 되는 듯 힘차게 허리를 흔들었다. 버트는 괴로운 소릴 냈지만 사내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생식기를 박아대기 바빴다.

“우웁…… 훕…… 쿠웁…… 웁……”

깔려있던 사내는 눈앞에서 출렁이는 유방의 움직임을 보며 흐뭇해하다가 한 입 크게 물고 힘차게 빨았다.

쭙­ 쭙­

버트는 앞뒤로 박히는 통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턱이 아파올 쯤에 두 사내가 정액을 뿜어댔다.

입 안이 질척해졌다. 버트는 사내가 떨어지자마자 밑의 사내에게 안기며 바닥에 정액을 뱉어냈다. 버트는 기침 섞인 헛구역질을 하며 앙탈을 부렸다. 둘은 그 모습에 킬킬거리면서 위치를 바꾸었다.

버트는 울먹거리며 동정심을 호소해보았지만 그 표정은 둘을 더 사납게 만들었다. 결국 아까보다 힘차게, 더 오래 섹스가 이어졌다.

*

밤새 시달린 그 날 이후론 둘씩 상대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위, 다른 한 명은 아래. 위아래가 바빠진 버트는 날이 갈수록 능숙해졌다.

특히 입으로 빨아주며 간간이 올려다보는 표정 서비스! 그래서 아래쪽보다 위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위아래로 한 번씩 해댔지만…….

헌데 어느 순간부터 버트가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입으로 해달라는 걸 거절하기까지 했다.

“시, 싫어요…… 안 할 거예요……”

머리채가 잡혀 재촉하는 사내들을 향해 버트는 눈물을 쏟으며 끝까지 거부를 표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전까진 좋다고 해대던 여자가 이제 와서 싫다고 하다니?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계속 입으로 하니까…… 키스…… 안 해주잖아요…….”

사실이었다. 하도 입에다 싸는 통에 그녀의 입에선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러니 자연스레 키스를 피하게 된 것이다.

이 맹랑한 아가씨의 지적에 사내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뒤론 사내들이 하나 같이 물 한 컵을 들고 들어갔다. 버트의 입을 헹궈주고 키스를 해주기 위해서!

*

버트는 달밤에 또 다른 사내와 입을 맞추고 나서 잠에 들었다. 만족스런 웃음과 함께 밖으로 나선 도적들은 희미한 그림자를 보았다.

3개의 머리통을 가진 나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실루엣에 도적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저게 뭐지? 그 생각은 검은 무언가가 머리를 관통하였다. 도적의 몸뚱이 역시 허물어졌다.

쓰러진 도적 위로 나무 그림자가 움직였다. 어느새 2개의 머리가 사라지고 그의 시체 위에 2개의 머리가 얹어졌다.

남은 한 녀석은 주저앉아 덜덜 떨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엔 자신의 동료였던 자들의 경악스런 표정이 담긴 머리 2개가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런 생각은 다가오는 그림자가 손을 놀려 목을 끊어버리면서 동시에 끊겨졌다.

*

버트가 일어난 건 이른 아침이었다. 눈을 비벼대던 버트는 무심코 밖으로 나왔다가 화들짝 놀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 때문에 오해를 사서 크게 데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웬일인지 너무 조용했다. 보통 때 같으면 줄을 서다 못해 자고 있는 도중에도 당했는데? 그러고 보니 아래쪽이 찝찝하지도 않았다.

버트는 뭔가 이상해서 머리를 빼꼼 내밀다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뭐지……?”

불길한 침묵. 아무도 없다.

그저 발견한 거라곤 일기장을 포함한 도적들의 개인 물품들과 그들이 노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템들뿐이었다.

버트는 하루 정도 꼬박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기다리다 지쳐 버려졌다고 여기고 심통을 부렸다.

‘쓰다 버리는 게 어딨어.’

그러다 문득 아무도 없는 이곳에 방치된 아이템들이 떠올랐다. 싹 쓸어갈까. ‘주머니’에 아이템을 밀어 넣던 버트는 손을 멈추었다.

‘하.’

그들이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여, 몇 개의 아이템과 빼앗겼던 돈만 챙기고 나왔다.

「기사단장의 맹세」 「레드윙의 두건x5」 「악몽의 성으로 가는 지도」 「잃어버린 보검」

이 중 기사단장의 맹세라는 낡은 서약서와 잃어버린 보검이라는 화려한 검에 주목했다. 왜 도적들이 이런 걸 갖고 있나 생각하다 기사 하나를 죽여 뺏은 것이라 결론지었다. 그래서 일단 주인을 찾아주어야겠단 생각에 가져왔다.

어차피 왕국의 보물도 가져다 줄 겸, 이것도 갖다 준다면 알아서 주인에게 돌아가리라.

버트는 다시 크람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뒤의 여정은 가뿐했다. 이따금 루하다와 밤을 즐기거나 얘기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간다고 얘기를 안 해줬네? 왜 가는지도…….”

그 말에 루하다가 그녀의 그림자 밑에서 솟아났다. 확실히 루하다는 자신의 목적지와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가 있습니다. 씨앗이 심어졌단 걸 모를 거 같아서 알려주려고 가는 겁니다.」

“그렇구나.”

루하다는 어디로 가는지 얘기는 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갔다. 버트는 조금 섭섭해 할뿐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그게 다 드러났다.

루하다는 버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다정한 손길에 버트의 심통은 조금 풀렸다.

「금방 오겠습니다.」

버트는 루하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하고 싶다는 한 마디를 하며 칭얼거렸다.

루하다는 선뜻 그러하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바로 정면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냄새 때문이었다. 루하다가 등 뒤로 버트를 숨기자 거센 바람이 불었다.

크릉!

거대한 흰 늑대와 다섯 마리의 회색 늑대. 그들이 숲을 헤치고 나타났다.

“뭐야, 왜 그래……?”

버트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누구인지 확인했다. 반가운 얼굴들! 버트는 그중 키퍼인 화이트슈트(이하 슈트)와 그의 머리 위에 숨어있는 리버화이트(이하 리버)를 보고 헤벌쭉 웃었다. 그러더니 쪼르르 달려 나가 폴짝 뛰어내리는 리버를 받았다.

“누나 많이 보고 싶었어? 아구아구­”

제법 컸다! 이전엔 두 손에 올려놔도 좋을 정도로 작았는데 지금은 두 팔로 안기 적당할 만큼 컸다. 버트는 행복한 얼굴로 리버를 온몸으로 쓰다듬으며 행복해했다. 그러다 혹여나 목의 끈이 조이진 않았을까 걱정돼 목을 더듬었다. 다행히 끈은 느슨하게 조여져 있어서 안심했다.

한참 리버의 등에 볼을 비비던 버트는 라이칸 다섯 마리와도 포옹을 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트를 향해 팔을 벌려보였다.

“으음! 빨리……!”

슈트는 헛기침을 하며 못 본 척 했다. 하지만 버트가 두 팔을 흔들며 보채는 통에 머리를 숙여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똥개 새끼들이…….」

루하다는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 오히려 난처해진 건 버트였다. 그래서 버트는 루하다에게 조금은 진정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루하다가 역정을 냈다.

「그릇을 욕보인 놈들인데다 달빛의 영광조차 잃은 것들입니다. 이런 나약하다 못해 경멸스럽기까지 한 녀석들을 데리고 있어봐야 괜히 그 칙칙한 짐승들이 귀찮게 굴어댈 것입니다.」

“우리를 그 쥐새끼들과 비교하지 마라!”

슈트가 으르렁거리자 루하다가 코웃음을 치며 갈쿠리같은 손을 펼쳤다. 둘 사이에 끼인 버트는 리버를 안고 끙끙대며 말리기 바빴다.

서로 노려보던 둘은 버트를 힐긋 보더니 동시에 기세를 거두었다. 버트는 하마터면 큰 싸움이 터질 뻔했다며 안도했다. 그러다 서로 눈을 떼지 않는 걸 보며 입을 우물거리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

이 언짢은 상황은 크람스까지 이틀에서 사흘 정도의 거리에서도 계속 되었다. 소리 없는 경쟁에 버트는 끙끙대다가도 리버의 칭얼거림에 헤벌레 웃었다.

이 아이는 버트의 유일한 치유제였다. 녀석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넣고 높이 들어 올리자 꼬리를 팔랑거리며 하품을 했다. 그 모습에 슈트와 루하다의 기싸움은 잊어버렸다.

그러다 그날 밤…… 축 늘어져서 기운이 없는 리버 때문에 버트가 울상이 되어 둘에게 도움을 청했다.

루하다는 단박에 마기 결핍이란 진단을 내렸다. 슈트는 리버가 성장기이기 때문에 마기를 자주 보충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최근 탈진되는 주기가 짧아진다고 하자 버트는 주저 없이 단검을 빼들었다.

「안 됩니다. 그릇의 마기를 함부로 주어선 안 됩니다.」

그의 만류에 버트가 뾰루퉁해졌다. 그러자 의외로 슈트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너의 피는 족장에겐 너무 과할 정도로 진하다. 털이 회색이 된 성체였으면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그걸 주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존칭으로 부르라는 루하다의 성화를 가볍게 넘긴 슈트는 리버가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마기가 필요하다 설명했다. 버트는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리고 슈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체액은 전부 위험하다. 그걸로 된다면 하루 종일 핥게 해드리겠지만…….”

버트는 안절부절 못하며 울기 직전까지 갔다. 그때 루하다가 한 가지 방책을 내렸다.

「사실 이 어린 것이 쓰러진 건 그릇이 품고 있는 씨앗이 마기를 조금씩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단순 접촉으로도 마기가 흘러들어가야 정상인데 어째선지 이 녀석에 한해선 역으로 빨아들이더군요. 그렇다고 마기를 다시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그릇께 돌아가게 됩니다. 기존에 받아서 흡수했던 것까지 말이죠. 물론 잠깐 건강해지겠지만 오히려 전보다 더 쇠약해질 겁니다.」

원인은 밝혀졌다. 그런데 왜 리버만 그런 것일까. 그의 마기를 받은 건 다른 라이칸도 있고, 루하다도, 슈트도 있고 심지어 마성자들도 받았는데…….

이 의문은 슈트가 풀어주었다.

“나나 저 그림자 같은 경우 받은 마기를 그대로 소화시킬 수 있다. 다른 마수들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너와 같이 있으면 받았던 마기를 뺏기지 않고 오히려 더 받아오게 된다. 한 마디로 정착했느냐 마느냐의 차이지. 족장께선 아직 힘이 작고 어리셔서 그렇게 압도적인 힘이 들어오면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끌어안게만 된다. 그래서 이빨이 자라나실 때까지 기다렸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족장껜 체액의 한 방울도 드리지 않았는데…….”

「먹은 적이 있다.」

슈트는 단호한 루하다의 말에 처음 버트와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루하다가 힘을 되찾은 계기를 얘기하면서 언급된 것을 듣고 확신했다.

“……고막이 터져서 흐른 피.”

「그래.」

루하다는 버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마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이 정도인듯 합니다. 앞으로는 거리를 좀 두셔야 할 겁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그 말에 버트가 굉장히 실망한 표정으로 슈트를 보았다. 그 역시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떨어지란 말은 아니다. 곁에 잠깐 있는 거라면 괜찮으니 그때만이라도 같이 있으면 되지 않나.”

시무룩해진 버트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곤히 잠든 리버를 쓰다듬던 손은 아쉬움 가득한 눈길과 함께 떨어졌다.

버트는 나무에 기대 루하다가 피워주는 모닥불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그러다 라이칸 하나가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자 상념에서 깨어났다. 녀석은 스스로 안겨선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힘없이 웃고 있던 버트는 그런 녀석을 힘껏 안아주었다.

“기운 내라 종족의 은인. 우리 족장님은 다시 건강해진다.”

버트는 베시시 웃으며 갈기털을 벅벅 긁어주었다. 이어서 그가 하는 말에 손을 멈췄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마기를 좀 나눠줘라.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버트의 양쪽 귀에서 김이 터져 나왔다.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은 버트는 괜히 야릇해진 기분에 라이칸의 얼굴을 밀어내며 심술을 부렸다.

그러면서 입을 삐쭉 내밀곤 투덜거리다 다리를 슬쩍 벌려주었다. 언제 드러낸 것인지 그 사이로 습기를 머금은 음부가 훤히 보였다.

라이칸은 헥헥거리며 웃다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주둥이를 처박고 게걸스레 핥아댔다. 버트는 숨을 헐떡이며 녀석의 머릴 쓸어주었다.

“고마워……."”

그녀의 감사 인사에 라이칸이 혀로 입가를 축이며 고갤 들었다. 버트는 녀석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루하다도…… 슈트도 고마워…… 신경써줘서…… 너도 애써줘서 고맙구…… 기운 차렸어. 괜찮아졌어.”

“어엉? 무슨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난 그냥 자원한 거야. 맛 좋다했잖아.”

버트가 녀석의 말에 괜히 민망해져서 머리를 툭 때렸다. 그렇게 툴툴 대는 것도 잠시 어느새 라이칸이 그녀의 다리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버트는 나무에 편히 기대어 가슴을 꺼내어선 두 손으로 열심히 주물러댔다.

모닥불 열기 때문에 괜히 더 뜨거워진단 핑계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루하다를 불렀다. 루하다는 그녀의 옆에서 스르르 솟아나더니 버트가 자기 가슴을 만져달란 부탁을 들었다.

「……이것도 이거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또 저 똥개들의 생식기를 넣으실 생각인 겁니까?」

그 생각을 하고 있던 버트는 간파 당했다고 여겼다. 그때 루하다가 유두를 꼬집자 작게 비명을 지르며 끄덕거렸다.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그릇의 다리 사이에선 놈들의 생식기가 들락날락하겠죠. 밤새도록 그릇의 신성한 체내에 똥개들이 생식기를 쑤시고 더러운 정액으로 가득 채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으읏…… 흐읏…… 으으으……!”

루하다는 추궁하는 식으로 말을 하며 가슴을 능수능란하게 주물렀다. 한계까지 당겨진 유두에 루하다의 음담은 버트의 신음을 질척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걸 알고 있는 루하다는 더욱 달아오르게끔 그녀의 자존심을 깎아먹는 말들을 쏟아냈다. 곧이어 버트는 애액을 뿌리며 가벼운 오르가즘에 도달했다. 라이칸이 신이 나서 핥아대는 통에 그 직후 한 번 더 가버렸지만…….

당연히 이후엔 라이칸 다섯과 질리도록 섹스를 했다. 마지막 라이칸이 사정을 마쳤을 땐 버트가 푹 익은 얼굴로 웃었다. 잠을 잘 땐 교합했던 그 차림으로 라이칸들에게 파묻히며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날 밤 이후 라이칸들과 헤어지고 리버만 남게 되었다. 크람스까지 하루도 안 남았을 때였다. 너무 눈에 띄는 슈트가 가장 먼저 떠나갔고 다른 라이칸들도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다.

리버는 채 흡수하지 못한 마기를 조금씩 걸러내기 위해 곁에 두었다. 거리만 잘 둔다면 성장할 수 있단 이유도 있었고 리버가 버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리버와 헤어질 줄 알았던 버트는 좋아라하며 리버와의 여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그렇게 크람스까지 하루 앞둔 은송은 강의실에서 세영과 수다를 떨었다. 시간표는 다르지만 곧잘 강의실에 찾아오고 했기에 오늘 역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은송의 옆에서 재잘댔다.

“일단 들어가면서 단순한 여행객처럼 꾸미고 왕성으로 갈 때만 보물을 언급해.”

세영의 말에 은송이 갸웃거리자 추가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거기가 게임이라지만 그 시대만의 현실을 담고 있어. 도시 입구에서부터 그게 나타나면 뒷공작이 일어날 거야. 욕심 많은 돼지새끼가 한둘이 아니거든. 그러니 왕성으로 가기 전까지 숨기고 있다가…… 왕성에 가서 탁! 허를 찔러야 해. 생각할 시간을 주고 대처할 상황을 만드는 순간 모든 게 날아갈 수도 있어.”

“기습을 해야 한단 소리네.”

“맞아. 그러니 조심해야 해. 눈 뜨면 코 베어간다니까.”

“으응……”

은송은 괜스레 자신감이 사라졌다. 세영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 주의를 해야 한단 건데…….

세영은 기운이 빠진 은송을 격려해주며 옆 강의실로 돌아갔다. 수업이 시작되고 은송의 다른 동기, 연지가 오더니 은송을 대뜸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송아. 너 남친 생겼어?”

“으응?”

뜬금없는 물음. 연지는 객쩍은 반응에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최근 들어 예뻐진 거 같아서. 화장품을 바꾼 거 같지도 않고……”

“어, 엉? 진짜……?”

“응, 진짜. 그래서 비결이 뭐야? 다이어트?”

“아니 아직 아무 것도 안했는데……”

그 말에 자기 얼굴을 더듬던 은송은 교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후다닥 교재를 꺼냈다.

*

버트는 접속하자마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여기서 좀 더.’

그냥 이러고 있으니 그림자 같은 느낌이라 조금씩 조정해갔다. 그리고 융합이 되지 않으면서 탈착이 가능한 「밤 도깨비의 투구」를 꺼내들었다. 자세히 살핀 적은 없었는데 이건 저주가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옵션이 붙어있었다.

‘세트 아이템 영향인가.’

한 번 시착해본 투구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세영이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입장할 땐 최대한 펑범하게. 검은색뿐이라 이질적이긴 해도 버트의 차림은 모험가들이 즐겨 입는 여행용 가죽옷이었다. 여기에 피를 낼 때 쓰던 단검을 비스듬히 차고 망토도 회수했다.

“괜찮아?”

버트는 루하다와 리버 앞에서 빙글 돌아보였다. 둘은 괜찮은 반응을 보였고 만족스레 웃었다.

“그럼 가자. 리버 이리와­”

루하다는 그림자에 숨었고 리버는 버트의 품에 안겼다. 둘은 저 멀리 보이는 긴 행렬에 끼어들었다.

“밀지 맙시다!”

“아이씨! 내 발 밟은 놈 누구야!”

“아, 서쪽으로 가는 표는 어디서 사는 거야?”

“어? 혹시 저번 레이드 때 딜러 하신 분 아니에요?”

“어? 그때 탱커님?”

수도여서 그런지 유동 인구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발르틴보다 더 큰 통로가 붐벼있었다. 통로가 커서 그런 걸까 문지기도 배는 많았다. 이들과 함께 플레이트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가 검문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버트는 처음에 미심쩍단 눈치를 받다가 세영에게 들었던 대로 은화 다섯 닢을 슬쩍 건넸다.

거의 관례라고 보이는 통행용 뇌물! 기사는 헛기침을 하며 버트를 수도로 입성시켜주었다.

*

과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크람스의 위용은 대단했다.

실금 하나 없는 새하얀 벽돌집들과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 쓰레기 하나 없는 도보! 거기에 이곳을 다니는 수많은 사람 중 가난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다.

자세히 보질 못해서 비교할 수가 없었지만 발르틴보다 더 굉장한 곳 같았다. 버트는 리버를 안아들고 거리를 구경하며 길을 걸었다.

‘랜드 스트리트’란 곳에 들어서자 플레이어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아이디를 알아볼 수 있는 스킬이 따로 있다했지?’

버트는 지금까지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거나 같이 사냥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를 알아보는 스킬은 필요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녀도 모르게 만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버트는 괜히 리버의 배를 간질이며 자신의 소심함을 애써 지웠다.

“이제 가는 거지?”

골목으로 들어선 버트는 아쉬운 소리를 냈다. 루하다는 그림자 속에서 끄덕이다 형태를 만들었다.

「제가 없어도 무사히, 안전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 것과는 붙어있는 시간과 떨어져있는 시간을 준수하셔야합니다.」

라이칸들은 싫었다. 그렇다고 버트의 우울한 감정을 묵과할 수 없어서 충고 해주었다. 버트는 리버를 내려놓고 루하다를 꽉 끌어 안아주며 작별했다.

루하다는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정말 떠난 건지, 아니면 곁에 있는 건지 헷갈렸다.

어쨌든 그가 떠나고 난 뒤 버트는 「밤 도깨비의 투구」를 꺼내어 착용했다. 지금껏 모아온 밤 장비들도 최대한 구현했다.

‘어떻게 만들까.’

버트는 서서히 갑옷을 빚어갔다.

위협적이게, 무섭게, 강하게, 두렵게, 소름끼치게.

몸보다 과하게 두터운 갑옷. 곳곳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돌기. 괴물이 그려진 흉악한 문양들!

투구는 변형이 되지 않아 스카프를 좀 더 올려 마스크처럼 투구를 덧댔다.

이렇게 완성된 버트의 모습은 괴랄한 거구의 흑기사였다.

펄럭이는 망토조차 검었고, 유일하게 보이는 까만 두 눈 조차 그저 어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자신의 모습을 본 버트는 감탄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을 줄이야.

몇 번 움직여본 버트는 생각보다 움직이기 좋아서 그대로 왕성 입구로 향하였다.

*

문지기 중 하나가 마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 글쎄 안 된다니­”

그는 점점 다가오는 위압감 넘치는 거대한 기사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실랑이는 잊고 동료 문지기에게 상관에게 보고하라 말하곤 그를 맞이했다.

“이 곳은 판테스 왕국의 왕성이다. 무슨 용무로 왔느냐!"”

최대한 위엄 있게 창을 겨누며 소리쳤지만 기사의 압박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검은 연기가 줄줄 피어오르는 건 착각인가? 왠지 모르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갈가리 찢기는 착각이 느껴졌다.

그 시각 보고를 받은 준남작 보네스 경은 왕성 입구로 나섰다가 거한의 흑기사를 보고 침을 삼켰다.

갑옷이 두꺼워서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족히 2m는 넘는 덩치였다. 보네스는 흑기사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혹여나 약조가 되어 있으신지? 왕성은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귀족이어도 곧바로 입궁할 수 없습니다.”

그는 만일을 대비하여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동시에 마차 쪽을 힐긋 노려보았다.

오늘따라 약속 되지 않은 손님이 왜 이리 몰리는지!

“왕국이 잃어버렸던 것을 갖고 왔다.”

다른 생각을 하던 보네스는 검은 기사의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보네스는 그가 목걸이를 꺼내는 걸 게슴츠레 보았다.

“어?”

그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 판테스 왕가의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었다. 그 주변에 새겨진 건 왕국 주변 국가에서 사용하는 문양! 그리고 이런 형태의 문양을 한 목걸이는 딱 한 가지!

보네스는 눈이 부풀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황급히 들어간 보네스와 멀뚱히 서있는 문지기들을 보며 흑기사가 마차를 돌아봤다. 거기서 커튼을 슬쩍 치우고 쳐다보는 중년인이 보였다.

둘의 시선이 뒤섞였다. 그리고 흑기사 버트는 놀랐다. 그가 걸고 있는 목걸이. 그녀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 이슬의 목걸이」. 그녀가 찾는 세트 장비 중 하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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