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4화 (4/104)

〈 4화 〉 4 ­ 라피에 초원 上

* * *

이젠 하루 일과가 속옷을 갈아입고 씻는 게 되었다.

판타지아에 한 번 접속할 때마다 꼭 속옷을 하나씩 버리게 됐다. 그러니 이 게임을 끊던지 속옷을 충분히 사놓든지 그것도 아니면 기저귀를 차든지 해서 조치를 해야 했다.

이러다간 애 마냥 침대에다 볼일까지 보게 될 것 같았다. 배뇨가 아니라 애액으로 이미 한 번 저질렀긴 했지만…… 그래도 두 번은 없어야 했다.

*

은송은 여느 때처럼 등교 길에 올랐다. 이번엔 은송이 둘의 뒷모습을 보며 쪼르르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빡!

은송의 격한 반가움을 뒤통수로 받은 동혁은 불을 토할 기세로 반격했다. 이 때 세영이 뚱한 표정으로 은송을 보고 있었다. 동혁과 장난치던 은송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노련한 세영은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웃음으로 바꾸고 손을 흔들었다. 은송은 찜찜한 표정으로 세영을 보다가 마주 웃어주었다.

“아, 오늘은 너희 둘이서만 사냥 가야겠다. 나 마법 술식 연구해야 돼.”

동혁의 말에 세영은 고민하다 알았단 말을 하곤 은송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그러다 뭔가가 생각났는지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은 과제할 게 있어서 사냥은 못 하겠는데…….”

“그럼 나 혼자 싸워야 하는 거야?”

“에이, 걱정 마. 하루 이틀이면 다 끝나니까. 혁이도 그 정도면 다 될 거야.”

그 말에 은송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세영은 엉겨 붙으며 나중에 놀러 갈 테니 봐달라고 했다. 그녀의 애교에 은송은 못내 알았다며 세영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

은송은 수업을 끝내고 돌아와 한두 시간 정도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재방하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판타지아 광고가 나왔다. 그걸 보니 은송은 손뼉을 짝 쳤다.

들어갈까?

버트가 된 은송은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몸을 떨었다. 전신을 파헤치는 야릇한 느낌을 잊기 위해 허벅지를 맞비볐다.

이상하게 버트가 아닌 은송일 땐 조금도 음란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접속 장치를 보기 전까지도 판타지아에 대한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가끔 생각나긴 해도 버트와 같은 상태는 되지 않았다.

헌데 어째서 접속만 하면…… 그 전에 게임에서 이런 행위가 가능한 게 의아했다. 이런 일을 당한 뒤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고 문의해보았다.

결과만 말한다면 불가능이었다. 그런 음란 행위는 물론 신체적인 간섭은 암살이나 도둑질 말곤 불가능했다. 시스템적으로 막혀있거니와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호기심으로 시도해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플라스틱 같은 느낌에 실망하곤 했다. 당연히 쾌감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이건 특정 행동을 넘어서면 벌어지는 금제였다. 그래서 가벼운 악수나 포옹은 괜찮았지만 그 이상을 하면 느낌이 달라졌다.

그럼 대체 자신은……?

“하아.”

버트는 일어나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니스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라이가 접속했다.

“흐읏차­”

라이는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니스를 부탁한다 말하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

버트는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보다가 야영지에서 벗어났다. 어차피 큰 문제만 없다면 몬스터가 야영지에 침투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당장 니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단독으로 초원에 진입하여 늑대들과 조우했다.

퍽­

버트가 사냥을 하면서 깨달은 건 자신이 매우 강해졌단 것이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초심자치고 힘은 물론 모든 신체능력이 뛰어난 축에 속하였다. 단 한 방에 늑대를 잡고 공격을 받아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나 생각보다 강하구나.’

심지어 가끔 일어나는 치명적인 피해를 제외하면 공격조차 받지 않았단 게 맞으리라. 게다가 피해라 해봐야 버트에겐 그저 간지러운 정도의 느낌이었기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니스와 라이는 원인 모를 강함에 질투를 했지만 추가로 나눠준 아이템들로 무마되었다.

결국엔 그녀 혼자 나서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판타지아엔 수많은 변수가 있었다. 심지어 버트가 노리는 몬스터는 특유의 강함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시작한 「밤」 세트의 수집은 그녀의 판타지아를 왜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게임의 목적이 되었다.

‘여기서 그만 두면 재미 없잖아.’

전부 모으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시작부터 겪은 난관! 때때로 이런 장애물이 유저를 좌절시키기도 하지만 버트 같은 사람들에겐 모험심을 고취시키고 도전 정신을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도발이랄까. 버트는 「묵철검」을 들고 늑대 네 마리와 일전을 벌인 뒤 이어서 세 마리의 늑대와도 전투를 벌였다. 피를 뿌리며 쓰러져가는 늑대를 보며 버트는 순간 씁쓸함을 느꼈다. 동굴에서도 몬스터를 잡았지만 늑대와는 달리 변형이 심했다. 그래서 죄책감은 크게 들지 않았지만 늑대들은 아니었다.

녀석들은 실제로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불쌍하지 않아.’

그저 게임일 뿐이다. 버트는 애써 애매한 감정을 지웠다. 실제 동물이 아닌 몬스터라고 자위하며 넘겼다.

“후우…….”

이제 슬슬 초원 중앙부에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쯤 오니 곳곳에서 초식동물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녀석들은 무성한 풀과 나무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순간 여기가 숲지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만큼 식물이 많았다.

문득 늑대들에겐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 여기며 생각한 걸 중얼거렸다. 새끼나 암컷처럼 연약한 것들이 숨을 수 있는 지형에 풍부한 먹잇감과 수원. 천적은 피하고 먹을 건 많고 그야말로 육식동물에겐 천국이 아닌가.

그런데 왜 늑대 말고 없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갑자기 발목 근처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에 싹 날아갔다.

“어?”

시선을 내리니 웬 검은 털뭉치 하나가 꾸물럭거리는 게 아닌가. 버트는 뺨을 붉게 물들이며 풀린 표정으로 웃었다.

그녀가 판타지아를 하게 된 계기! 잊고 있었던 궁극적인 목적!

바로 애완동물이었다. 버트의 발치에 있는 녀석은 그녀가 꿈꿔왔던 최고의 반려동물이었다.

앙증맞게 접혀있는 귀에 복슬복슬한 털. 자그마한 몸뚱이에 쉼 없이 살랑대는 꼬리까지! 혀를 빼물며 경계심 없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강아지의 모습에 버트는 홀딱 넘어갔다.

맙소사.

이렇게나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이라니! 버트는 녀석을 꽉 끌어안고 부드러운 털가죽에 뺨을 비볐다.

세상에 향기도 좋다……! 야생에서 살았다곤 생각되지 않는 푹신한 아기 냄새였다.

강아지가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앙증맞은 앞발로 버트의 볼을 꾹꾹 눌러댔다. 녀석의 반응이 재밌어서 한 팔로 안아들고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놀렸다. 그러자 이제 막 새하얀 이가 돋아나는 입으로 손가락을 물려고 발버둥 쳤다.

큭큭 웃으며 손가락을 가만히 두니 곧장 응징을 하려는 듯 물렁한 잇몸으로 물어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젖을 빠는 아기 같았다.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녀석을 보며 버트는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버트는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잘 따르기만 한다면 판타지아에서 애완동물을 만드는 데 제한이 없었다. 지금처럼 야생 동물만이 아니라 몬스터도 길들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극강의 자유도를 가진 게임이었다. 이건 다른 게임에 비해선 나은 부분이었다.

이러니 듀크 사가 수 십 년 동안 게임 사업에서 1위를 차지했지! 버트는 헤실거리면서 ‘주머니’에서 끈 하나를 꺼냈다.

이 회색 끈은 니스에게 아이템을 주면서 선물로 받았다. 착용자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매듭끈」. 이 칙칙하게 생긴 끈은 생긴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이건 니스가 「그림자」 세트를 모으는데 큰 공헌을 했다. 가끔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우연찮게 공격을 피하기도 하고 임무 수행 중에 운 좋게 도망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물론 우연찮게 세트 아이템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버트는 이 좋은 아이템을 자기가 쓰기는커녕 강아지의 목에 매주었다. 거기다 라이가 주었던 「정령소리의 방울」까지 달아주었다.

강아지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목에 묶인 끈과 거기에 매달린 방울을 내려 보았다. 물론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털과 살에 묻혀버렸으니까!

버트는 자기 입을 막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귀…… 귀여워!’

그래도 느껴지는 게 있는지 앞발로 그걸 건드리려고 꿈틀거렸다. 당연히 신체 구조상 닿지 않았지만 꿈틀대는 통에 방울이 딸랑거렸다.

버트는 현기증이 일 정도로 사랑스러운 그 몸짓에 한 번 더 안아주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똘이야!”

기절할 정도의 네이밍 센스.

졸지에 똘이가 되버린 강아지는 뚱한 얼굴로 버트를 쳐다봤다. 옆의 사람이 봐도 마음에 안 들어한단 걸 알 수 있을 정도……!

버트는 녀석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터페이스 창을 띄우고 사진 기능을 찾기 바빴다.

“여깄다.”

사진 기능을 찾고 지금 이 순간을 간직하려는 순간.

쿵!

등 뒤에서 느껴지는 폭음과 중압감에 버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등 뒤엔 땅거죽을 뒤엎고 흙먼지를 터뜨린 무지막지한 크기의 하얀 늑대가 노려보고 있었다.

버스……? 아니 그 이상의 크기다.

산발해있는 갈기에 흉악한 송곳니와 발톱, 살벌하게 빛나는 샛노란 두 눈.

버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막연한 공포. 버트의 머릿속에선 그 어떠한 대처도, 계획도 세워지지 않았다.

이게 설마 엘리트 몬스터?

그녀의 떨리는 두 눈이 녀석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그러다 품속의 한 생명을 의식했다. 버트는 이를 악물고 힘껏 녀석을 뒤로 내던지고 검을 뽑아들었다. 버트는 녀석이 무사히 바닥에 내려앉는 걸 보고 소리쳤다.

“도망쳐!!”

동시에 버트는 거대 늑대를 돌아보며 맞서 싸우려했다.

그때 녀석이 버트를 향해 포효하였다. 대기가 울리는 어마어마한 소리에 버트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버트는 검까지 놓친 상태로 눈만 간신히 움직이며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공포> <마비> <혼란/>

버트로서는 다시 한 번 맛보는 무력감에 허탈해졌다. 어쩜 이리도 약할까. 늑대를 쓰러뜨리면서 제법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허망할 정도로 쉽게 무너졌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귀에선 고막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고, 하반신은 힘이 풀려 오줌을 싸질렀다. 온몸의 근육은 풀려버렸고 눈에는 충혈이 일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건 당연한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본격적인 싸움도 하기 전에 그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망토와 질내의 그림자들도 마비가 되어 쭈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그림자들은 버트의 소변과 피에 엉켜 바닥에 고였다.

“아…… 아아……”

버트는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늑대를 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올려다보고 싶어도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니 눈동자만 슥 움직였다.

상상 이상이다.

게임에서의 죽음일 뿐인데 막상 이 상황에 처해지니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늑대는 크르렁거리며 팔뚝만한 송곳니들을 내보였고 버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대로 콱­

*

버트는 눈앞을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째서 이 거대 늑대는 자신을 죽이지 않고 망토 쪽을 물어들고 달리는 걸까. 이따금 늑대 몇 마리가 보였는데 녀석들은 이 거대 늑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역시 여기 보스가 맞았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버트는 순식간에 의문의 숲지에 들어섰고 넓은 공터 중앙에 내팽개쳐졌다.

버트는 조금씩 마비가 풀리는 걸 느끼고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다리 사이의 축축함은 잊었다. 수십, 아니 족히 백 마리는 넘을 법한 회색 늑대 무리가 버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같이 으르렁거리면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귀에 목소리가 꽂혔다.

“보아라. 이것이 우리의 부하를 학살하고 다닌 인간이다.”

놀랍게도 말을 하고 있는 건 거대 늑대였다. 거대 늑대는 뭔가 먹는 것처럼 주둥이를 달싹이며 말을 이어갔다.

“더불어 녀석은 위대한 라이칸슬로프의 핏줄을 건드리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오만한가! 이 얼마나 광포한가! 고작 특이한 힘을 얻은 인간 주제에 말이다!”

버트는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 늑대들을 다수 죽인 건 사실었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거대 늑대는 버트를 내려다보다 말했다.

“동포들이여. 이 인간의 체내에 마신의 씨앗이 있다! 마음 같아선 갈가리 찢어서 우리의 만찬으로 삼고 싶으나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신의 씨앗…… 하여 어떤 죄를 내릴지 동포들의 뜻을 받겠다.”

“씨앗을 받아들였단 건 '이모탈'이란 뜻인데 죽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키퍼시여.”

거대 늑대의 말을 다른 늑대가 말을 받았다.

이 시점에 버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늑대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이 주변에 있는 다른 늑대들도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자기가 잡았던 녀석들도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버트가 후회하고 있을 때 키퍼라 불린 늑대는 한 늑대의 의견에 답해주었다.

“분명 그릇 내부의 힘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섭취는 필수다. 다만 저 몸이 죽으면 씨앗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

버트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냥 몬스터인줄 알았는데 대화하는 수준을 들어보면 NPC급이었다.

버트는 침을 꼴깍거리면서 라이칸(라이칸슬로프의 줄임)들의 토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 느낌은 어떤 요리가 될지 기다리는 재료의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깐 녀석들의 주의가 흐트러졌을 때 버트는 지금이 기회라고 여기며 웅크리던 몸을 펴서 내달렸다. 그 모습에 한 라이칸이 그걸 보더니 앞발로 버트의 등을 내리찍어 제압하였다.

“쯧…… 마신의 씨앗을 품은 것치곤 약해빠졌군.”

녀석은 그런 말을 하며 코를 벌름거렸다. 그리곤 입맛을 다시면서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살이 드러난 팔뚝에 이빨을 갖다댔다.

“힉?! 히익­!?”

버트는 날카로운 이빨이 닿자 덜컥 겁을 집어먹고 발버둥 쳤다. 그러자 다른 늑대들이 그녀의 팔다리를 하나씩 앞발로 눌러 제압했다.

“시, 싫어…… 살려줘……”

반항을 할 수 없어진 버트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눈엔 당장이라도 팔이 뜯겨져나갈 것 같았다. 팔에 이를 갖다 대고 있는 라이칸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 건 왜일까.

무서워.

싫어.

그만해…….

무서워……!

하지 마!

“자…… 잘못 했어…….”

의외의 말에 라이칸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껄껄 웃어댔다.

“잘못? 잘못 했다니! 제 잘난 듯 부하들을 도륙해놓고! 이제 와서 죽을 거 같으니 그런 말을 하나? 그리고 어차피 죽지 않는 몸인데 뭐가 그리 무섭다고…….”

라이칸은 그렇게 말하고서 크르렁거리며 버트에게 이를 세웠다.

“지금 잘못했다고 하면 죽은 그놈들이 살아서 돌아오나! 그 중엔 내가 극진히 아끼는 놈도 있었다! 고작 사과로 용서받을 생각을 하다니, 오만하구나! 건방지구나 인간이여! 네놈 족속들은 원래 그런 것인가? 아니면 네년이 씨앗을 품고 있기에 그런 것인가!”

갑작스럽게 몰아붙여진 버트는 가슴 속에서 뭔가 뭉클한 것이 터져올랐다.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몰려서서 그런지 굵직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제압당한 그 상태에서 고개를 숙여 땅에 이마를 붙였다.

“미안……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정말로……! 내가 잘못 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용서해줘……!”

울음기 가득한 사과에 라이칸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다른 녀석을 불러들였다.

라이칸들은 제압된 버트의 몸 구석구석 코를 갖다 대며 냄새를 맡아댔다. 깜짝 놀란 버트가 얼굴을 붉히며 움찔거리자 한 녀석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경고했다. 버트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함께 느끼며 꾹 참고 얌전히 있었다.

녀석들은 한참 킁킁대다 한 녀석이 말하였다.

“아무래도 뜯어먹지 않는 한 씨앗의 힘을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씨앗을 어떻게 건드려만 봐도 될 듯 한데, 몸 안에 있으니…….”

살벌한 소리에 섬찟한 버트가 겁을 집어먹었다.

“그 영광은 '리버화이트'의 것이다. 그러니 피와 살을 먹는 것은 그분이 먼저 한 뒤에 허락을 맡아야 한다.”

그 말에 늑대들은 실망했다. 버트는 잠시나마 생살이 뜯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갈까. 하지만 그 리버화이트란 놈이 온다면…… 아마 자신을…….

닭살이 돋은 버트는 심하게 몸을 떨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허리를 튕겼다.

“으앗?!”

다리 사이, 정확히는 허벅지 사이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라이칸 때문이었다.

또……?! 뭔가 심히 불길한 예감에 버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여기에서 마기의 냄새가 짙게 나는군. 키퍼시여, 방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흐르는 진액에서 마기가 충만하게 느껴집니다.”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건 키퍼라 불린 거대 늑대가 아닌 버트였다.

방도라니, 대체 어떤 방도!?

그 전에 진액이라니. 그 곳에서 나오는 게 땀, 소변 아니면…… 그거인데.

그렇다는 건……?

버트는 속으로 부정하였다. 분명 그건 흥분했을 때 나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런 상황에서 흥분했단 것인가?

버트는 뱃속에 있던 그림자들이 남기고 간 자극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녀석들이 한 마리도 느껴지지 않는 걸 깨달았다.

‘어디 간 거지?’

도망치기라도 한 건가.

그때 음부 위를 꾹 늘러대는 라이칸 때문에 상념이 깨지고 지금의 상황을 인식하였다.

녀석은 음부 주변부의 냄새를 몇 번 맡더니 이빨을 세워 그 부분의 옷을 물어뜯었다. 하필 치부를 감싸는 부분과 그 근처는 움직임 때문에 무장이 비교적 약했다. 게다가 가죽 재질이었기에 힘없이 뜯겨져나갔다.

버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방어구라는데 이로 물어뜯는다고 손상이 가버리다니!

‘방어구라면서……! 세트 아이템이라면서……!’

뜯어진 구멍은 촉촉히 젖어있는 음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라이칸은 그 부분을 핥아보았다.

물렁거리는 부드러운 혓바닥이 버트의 음부를 핥았다. 버트는 그림자들이 해준 것과는 다른 느낌에 손발을 꼬물거렸다. 라이칸은 쩝쩝거리며 소변이 뒤섞인 체액을 맛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는 게 확실합니다. 아마 이 부분이 씨앗과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키퍼는 엎어져있는 버트를 바로 눕게 했다. 그리고 방금처럼 늑대들이 앞발로 버트를 꼼짝 못하게 눌러놓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방금과는 달리 이번엔 다리를 최대한 벌려놓았다는 것 정도. 덕분에 치부를 고스란히 내놓은 바지 구멍을 통해 외음부가 완벽하게 보이게 됐다.

키퍼가 고갤 숙여 그 곳을 내려다보자 버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바들거렸다. 막대한 수치심에 몸이 떨렸다. 거기에 키퍼의 뜨뜻한 콧바람이 음부를 간질이니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키퍼는 몇 번 코를 벌름거리더니 라이칸들을 향해 말하였다.

“씨앗의 힘을 취할 방법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군. 동포들이여! 씨앗의 마기를 취할 방법을 찾아냈다! 이 암컷을 통해 우리의 힘을 증대시키자!”

버트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의 치부를……!

“그럼 제가 먼저.”

“아, 안……!”

라이칸 하나가 활짝 벌려진 버트의 다리 사이로 오더니 게걸스럽게 음부를 핥아댔다.

이렇게 구강성교와 비슷한 걸 그림자들의 마사지를 통해 경험은 해봤지만……

뭔가…… 색달랐다.

“히익……! 힛……! 히이……! 힉!”

따뜻한 혀와 침이 음부를 쉴 새 없이 적시고 문질렀다. 그 현란한 혓놀림이란……!

덕분에 버트는 3번째 라이칸 앞에서 애액을 흩뿌리며 절정하는 추태를 보였다. 라이칸들은 하반신을 들썩이며 애액을 싸지르는 버트를 보며 조소했다.

4마리, 5마리, 10마리, 20마리…… 그 수가 늘어날 때마다 버트가 눈물과 함께 애원을 했다.

그만해달라고. 멈춰달라고. 정말 힘들다고.

하지만 이 황홀한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녀석들의 핥는 방법이 미묘하게 달랐다.

어떤 놈은 코로 파고들 듯이 격한 움직임을 보였고 어떤 놈은 감질나게 느릿한 혓놀림으로 버트를 괴롭혔다. 또 어떤 놈은 아래에서 위로 길게, 그리고 혀가 음부를 갈라버리도록 힘 있게 핥았다.

감각이 질릴 새가 없었다. 차라리 일관적이었다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텐데.

버트는 끈적끈적해진 침을 흘리며 34번째 라이칸을 향해 한 번만 쉬게 해달라고, 도망치지 않고 평생 여기에 있을 테니 잠깐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본인이 어떤 말을 했었는지 기억은 할까. 자존심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삶까지 버리겠단 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알까.

그녀의 부탁에도 키퍼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흐아앙……! 흐앙……! 아앙……!”

40마리 째. 버트의 애원은 갈수록 농염해져갔다.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목소리로 늑대들을 향해 높임말까지 써댔다.

그녀의 존댓말에도 꿈쩍 않던 키퍼가 딱 49번째 라이칸이 시식(?)을 끝마쳤을 때.

“멈춰라.”

키퍼는 흐릿한 눈으로 늘어져있는 버트에게 말하였다.

“네 입으로 분명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 평생 남겠다고 했다. 맞나?”

“예에…… 헤…… 흑…… 도망 안 치고…… 얌전히…… 있을 테니까아…… 쉬게 해주세요…… 제에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대는 그녀를 보며 키퍼가 으름장을 놓았다.

“좋다. 얌전히 있겠다면 하루에 스물. 동포에게 마기를 주어라. 매일 그 정도 수에서 멈춰주지. 단, 말을 안 들으면 열 씩 추가하고, 도망친다면…… 단 1분도 쉴 수 없다. 계속 동포들에게 마기를 제공하는 먹이가 되어야 할 거야.”

키퍼의 말에 버트는 옅게 웃으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들썩이던 버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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