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아-3화 (3/104)

〈 3화 〉 3 ­ 검은 동굴 下

* * *

은송은 눈을 뜨자마자 욕실로 달려갔다. 아랫도리가 축축한 걸 느끼고 부모님이 깨기 전에 뒤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처음처럼 심하진 않았다. 그래도 속옷이 못쓸 정도로 젖어버려서 뒤처리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발그레한 얼굴로 부모님과의 식사. 이게 끝나고 나서야 학교에 갈 준비를 하였다.

은송은 그 날 밤의 일을 최대한 잊고 등굣길에 들어서자마자 메시지를 확인하였다.

‘얘는 지치지도 않나.’

그러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알싸함에 뒤를 노려보았다. 동혁이 웃으며 손을 들어보였고 은송은 한 가득 짜증을 부렸다. 뒤이어 세영이 왔고 인사를 나눈 뒤에 셋이서 나란히 걸어갔다.

“내가 보니까 마법 공식이 정해진 게 아니더라고. 조만간 내가 엄청난 걸 보여줄게!”

“그래?”

동혁은 전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다 자연스럽게 판타지아 쪽으로 말을 시작했다. 세영은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고 은송은 메신저를 보는 척하며 둘의 대화를 들었다.

“이번에 다른 지역으로 가보려고. 너도 알지? 라이칸의 초원.”

“라피에 초원 말이야? 늑대들 잡아서 뭐하려고. 잡긴 힘들고 얻는 건 없잖아. 특히 마법사한테 도움 되는 건 없을 텐데…….”

“에이, 게임을 뭐 강해지려고만 하나.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봐야지. 판타지아에 절대적인 건 없단 게 공식이잖아.”

세영은 동혁을 게슴츠레 보다 은송에게 말했다.

“은송아, 넌 언제 다시 할 거야?”

“응? 엉?! 아, 아냐. 오늘은 안 하려고.”

“오늘은?”

엉뚱한 대답에 세영이 멀뚱히 바라보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찍었다.

“했구나?”

은송은 버트의 음란한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 그, 그……!”

“엥, 하면 한 거지 뭘 얼굴까지 붉히고 당황해. 근데 캐릭터는 무사했어?”

“뭐야, 진짜 했어?!”

“아냐! 몰라! 저리가!”

“그래­?”

은송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대답을 얼버무렸다. 동혁은 눈썹을 까딱이면서 세영을 쳐다보았다. 세영은 콧방귀 한 번 뀌어주곤 은송을 보며 말했다.

“그럼 같이 사냥이나 갈래? 전투도 좀 익숙해졌을 거고…… 라피에 초원이면 로디아 마을에서도 멀지 않아. 그리고 네가 가진 장비면 충분히 같이 싸울 수 있을 거야.”

“어…… 응, 근데 길 좀 찾고 하느라 시간 좀 걸릴 거 같은데 내일 모레에 만나자.”

세영은 은송의 말에 의아해하였다.

“판타지아에서 하루면 갈 텐데……? 알았어, 그럼 나랑 동혁이 둘이서 좋은 자리 알아보고 있을게. 또 전처럼 안 한다 하면 죽어~”

“죽는댄다~”

세영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위협했다. 자기보다 체구가 작은 그녀가 이러니 은송은 웃음을 참으며 고갤 끄덕였다.

*

은송은 돌아오자마자 판타지아에 접속하였다. 접속하자마자 전신이 근질거리면서 몸이 들뜬 것이 그림자들이 정성을 다해 관리해준 듯 했다.

은송은 버트로서의 적응을 끝내고 몸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전신이 찌릿거렸다. 그래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은송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그림자들에게 말했다.

“저기, 내 갑옷은 어디 있어?”

그녀의 말에 그림자 중 하나가 달려왔다.

“그거라면 저기에다 던져놨다. 왜 그러냐?”

버트는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얘기할지 거짓말을 할지 고민했다.

과연 순순히 놓아줄까?

이 던전에서는 접속만 하면 전투 중으로 인식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로그아웃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유일한 탈출 방법은 직접 걸어서 나가는 건데 그러자니 그림자들이 신경 쓰였다.

그 묵직한 갑옷도 번쩍 들어 올리는 녀석들이 수십 마리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맨몸으로 격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백 중 백은 당하리라.

그래서 대화로 풀어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들어줄지가 미지수였다. 이미 몸은 나았다. 여기서 더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버트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밖으로 나가려고. 몸도 다 나았고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없으니까…….”

“그러냐? 알았다.”

그림자들은 의외로 갑옷을 순순히 돌려주었다. 버트는 미심쩍어 하며 받아들고 착용했다. 슬쩍슬쩍 눈치를 보니 녀석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버트는 검까지 받고서 떠날 채비를 했다.

“우리도 가고 싶다.”

“하지만 햇빛 뜨겁다. 아프다. 따갑다. 그렇지만 가고 싶다.”

“그릇과 함께 하고 싶다.”

생각지 못한 변수에 버트는 당황하였다. 설마 데려가 달라고 할 줄이야. 그녀는 난감해하며 거절하려 했다.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몬스터들을 대동할 수 없지 않은가.

“읏.”

하지만 워낙 귀엽게 올려다보는 녀석들을 보니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마음 한 편으론 녀석들이 준 엄청난 자극을 잊지 못했다.

“빛만 가려주면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렇다!”

“근데 너흰…… 너무 많잖아. 어떻게 주머니 같은 데에 넣는다 해도 전부 데려가는 건…….”

“우리 뭉쳐진다. 작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일단 난 가고 싶다.”

“그래도 너만 데려가는 건 좀…….”

그 말을 시작으로 그림자가 너나 할 것 없이 나섰다.

“전부 못 가면 나만 데려가라!”

“아니다! 내가 갈 거다!”

“그릇은 날 좋아한다. 그러니 날 데려가라!”

버트는 너무 소란스러워지자 녀석들을 진정시켰다. 애초에 누가 누구인지 구분도 못하는데 누굴 더 좋아한단 말인가.

“후우…… 그럼 일단 너희는 몇이나 있어? 그리고 얼마나 작아질 수 있고?”

“120개 있다.”

“다른 굴에서 사는 놈까지 오면 200개 넘는다.”

“그리고 이만해진다.”

그녀의 물음에 답한 그림자들은 한 녀석을 내세우고 손톱보다 작아지는 걸 보여주었다. 버트는 고민 끝에 녀석들을 전부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란스러울 게 분명했으니까. 이 정도면 데려가도 될 크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버트는 그들을 한 곳에 불러오라 부탁했고 넓은 천 같은 것이 있으면 가져와달라 했다. 그리고 그림자들을 기다리며 마사지를 받았다.

가장 먼저 온 건 물건을 부탁했던 쪽이었다.

“우와……”

녀석들은 척 보기에도 보물 상자처럼 보이는 커다란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그리곤 이 동굴에 있던 물건들을 모아온 것이라 얘기하곤 상자를 열었다. 버트는 상자에 가득 담겨있는 갖가지 물건들을 보며 싱숭생숭한 기분에 이것저것 집어보았다.

「말린 투귀의 풀」 「그림자가 깃든 장갑」 「단단한 묵철검」 「정령의 흔적」

뭔가 희귀해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세트 아이템이라고 써있는 장갑도 보이고 들고 있는 검보다 나은 것도 보였다. 검을 비롯해 그중 몇 개는 당장 버트가 쓸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게 있어도 ‘주머니’에 넣어놓았다.

그 다음 녀석들을 ‘주머니’에 넣어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커다란 물건을 넣는 기능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템이 아닌 몬스터는 들어갈 수 없다고 나왔다. 버트는 다른 수를 갈구하였고 「밤 바람의 망토」라는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 망토를 쓰기로 결정했다.

“꽤 괜찮은 거 같은데…… 아!”

망토를 몸에 둘러본 버트는 그림자에게 망토 안에 있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시험해본 결과 녀석들은 아무 이상 없이 매달릴 수 있었다. 이제 방법을 찾았다고 좋아할 때 어느 샌가 눈앞을 가득 채운 검은색에 버트는 입을 못 다물었다.

“뭐야…… 대체 이게 몇 마리야……?”

이 정도면 족히 수백…… 아니 어쩌면 천 단위까지 갈 것 같았다. 몸에 둘렀다고 표현했지만 망토는 기껏해야 엉덩이 근처까지만 내려왔다. 크기를 아무리 줄여도 망토에 매달릴 수 있는 녀석들은 몇 백 정도. 그랬기에 고르고 골라야 했다.

일단 확인해보니 집결한 그림자는 천 삼백이었고 그중 망토에 숨을 수 있는 건 오백 정도가 한계였다. 나머지는 감옷 틈새로 들어가서 일백 정도 수용했으나 나머지가 문제였다.

그들은 눈에 띄게 실망했고 버트는 미안해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그때 그림자 중 하나가 의견을 냈다.

“씨앗이 있는 그 안에 들어가면 안 되나?”

그 말에 반응은 둘이었다. 버트의 경악과 그림자들의 지탄이었다.

“리아주크 님의 씨앗이 있는 곳이다! 감히 거길 가려 하다니!”

“하지만 거기도 괜찮을 거 같다. 씨앗에 가까이 있고 싶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버트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씨앗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뿐이었다. 녀석들이 씨앗을 심는다면서 속에다 손을 넣는 걸 겪었으니 모를 수 없었다.

어쨌든…… 어떻게든 욱여넣으면 될 것 같은데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대뜸 받아들이기엔 자신의 모양새가 이상했다.

허나 버트의 생각과는 달리 의견이 점점 그녀의 질로 들어가는 것으로 쏠렸다. 대부분의 그림자가 수긍하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녀가 허락만하면 된다.

버트는 수많은 시선의 부담 때문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버리고 가면 안 되나? 어차피 두고 가도 데이터일 뿐인데……

“아…… 알았어. 대신 더 안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다……?”

“알았다!”

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버트는 하의를 완전히 벗어내고 미끈한 하반신을 드러냈다. 벗는 중에도 그림자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버트의 벌개진 얼굴색은 돌아올 줄 몰랐다.

버트는 그 상태로 머뭇거리다 털썩 주저앉아 소심하게 다리를 벌려주었다. 그러자 그림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저마다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오오. 넘쳐흐른다. 기분 좋다.”

“그릇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곳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반짝거린다! 빛이 난다!”

“햇빛 같은 데 아프지 않다.”

“그, 그만 말하고 들어올 거면 빨리 들어와……!”

계속 듣고 있자니 민망해진 버트는 그림자들을 재촉했다. 그림자들은 버트의 외음부에 들러붙으며 하나둘씩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자그마한 녀석들이 비집고 들어갈 때마다 아래쪽이 근질거렸다. 말캉한 몸 때문인지 스치는 촉감은 나쁘지 않았다.

안쪽에 무사히 안착할 때까지도 근질대는 기분은 계속 됐다. 들어간 그림자의 수가 삼십을 넘었을 땐 버트의 몸은 감질 나는 움직임에 손을 내리고 있었다.

“아?!”

순간 정신을 차린 버트는 화들짝 놀라 손을 올렸다. 의식해서일까. 손은 어정쩡하게 멈추었다. 그리고 가려운 곳을 못 긁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손을 쥐락펴락 하기 바빴다.

답답하다. 버트의 머릿속에선 시원스럽게 손장난을 하고 있었지만 이성이 행동을 막았다. 이런 짓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서였다.

그저 갑갑함에 몸서리를 칠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그림자들은 꾸역꾸역 안으로 밀고 들어갔고, 그 안의 동족들과 합쳐졌다.

그렇게 이동하길 삼십 여 분…… 놀랍게도 버트의 몸 속으로 남은 그림자가 전부 안착했다. 그리고 버트는…….

“헤엑…… 힉…… 흐윽…… 으윽…….”

본격적인 것을 하지 않아 갈듯 말듯 한 상태. 장기간의 애태우기(?)에 버트는 정신이 반쯤 날아가 있었다.

눈은 헤까닥 가버린 것처럼 흐릿해졌고 애액이 줄줄 흐르는 음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앉았던 자세에서 숨을 몰아쉬기만 할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궁과 질내를 가득 채운 그림자들 때문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녀석들이 꿈틀대는 통에 잔뜩 민감해진 질벽이 저려왔다.

다리가 풀려버릴 정도로 당한 게 벌써 두 번. 하지만 감당 못할 자극에 대해선 아직 면역이 없었다. 만일 비슷한 짓을 또 당하게 된다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할 것이다.

그렇긴 해도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고 싶었다.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이 찔린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그렇게 황홀한 로그아웃(?)을 겪는 건 사양이었다.

버트는 심호흡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벅지에서부터 찌릿거리는 게 멈추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심호흡 다섯 번. 그림자들이 잠잠해졌다 싶을 때 한 걸음 내디뎠다. 그때 꿈틀거림이 느껴져서 한 발 걸은 상태로 멈추었다. 이런 식으로 두세 걸음, 열 걸음, 스무 걸음…… 조금씩 그림자들의 몸부림에 적응하며 걸음 수를 늘려갔다.

“후하……”

그러기를 몇 시간. 많이 적응 되었는지 이제 걸어도 주저앉거나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느끼지 않았다. 다만 들뜬 느낌은 계속 되었기에 홍조와 흘러내리는 음액을 제어할 수 없었다.

홍조야 그렇다 쳐도 다리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건 막을 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버트는 한숨을 내쉬며 그냥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 나섰다.

버트가 걸음을 내딛는 동안 그림자 하나가 망토에서 나와 길을 안내해주었다. 버트는 그를 따라가며 발그레한 얼굴로 상자에서 무작정 욱여넣었던 아이템들을 살펴보았다.

「밤바람의 망토」 「단단한 묵철검」 「밤 도둑의 신발」 「투명한 화살」 「꺼지지 않는 횃불」

버트가 눈여겨 본 건 '밤'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름의 아이템들이었다.

위의 다섯 개 말고도 「밤 귀신의 장갑」, 「밤 기사의 갑옷(하)」이란 게 더 있었다. 설명에는 '세트'라고 나와 있었고 나머지를 모아서 착용하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내용도 있었다. 거기에 융합되기 전엔 해제가 불가능하단 옵션도 있었지만……. 버트는 그런 걸 무시하고 다른 '밤' 아이템을 착용하였다.

투구와 상갑을 제외한 나머지 장비가 새까만 것으로 교체되었다. 나머지 장비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검도 바꾸고 투구도 벗었다. 대신 「그림자가 씐 모자」라는 검은 가죽 두건을 두르니 제법 색감이 맞았다.

결과적으로 버트의 모습은 갈색 가죽갑옷 하의를 제외하면 팔꿈치까지 덮는 장갑과 정강이의 절반까지 오는 신발, 배꼽 아래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보호해주는 하갑, 마지막으로 양날의 검을 든 검은빛 일색의 검사였다.

머리에 푹 눌러쓴 가죽모자 탓에 기사다운 모습은 사라졌다. 그래도 색상이 전체적으로 검은 덕분에 하얀 살결과 붉은 머리칼이 도드라져 썩 나쁘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헤헤…….”

새롭게 바뀐 자신의 모습을 본 버트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제 모습에 만족한 버트는 나머지 아이템들을 분류하였다. 저 멀리서 빛을 발견할 쯤에는 정리가 끝났다.

버트는 들뜬 발걸음으로 동굴 밖으로 나왔다. 몇 달 만에(게임 상으로) 보는 태양빛을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 숨을 맘껏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상쾌한 숲의 공기를 만끽했다.

시간이 좀 걸리고 방법이 좀 왜곡되긴 했지만…… 던전을 공략했다. 버트는 당당하게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던 곳으로 나아갔다.

*

라피에 초원은 세영의 말대로 로디아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검은 동굴까지 7시간 정도 소요됐다면 라피에 초원까진 5시간도 안 걸렸다.

그녀는 지도와 함께 뒤집어져있는 녹색 사각뿔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딨는 지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주변 지형과 비교해보며 어느 정도 목적지에 다 왔다고 판단한 버트는 주머니에서 작은 깃털 하나를 꺼내들었다.

「바다하피의 깃털」

주변에 목표로 하는 대상이 있다면 소리를 전달해주는 반영구적인 음성 송신 장치였다. 다만 소리를 보낼 수만 있지 따로 답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상대가 이것이 없다면 무용지물인 물건이었다.

다행히 이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물건이어서 웬만하면 이걸 갖고 다녔다.

~근처까지 왔어 세영아. 어디 있어?

소리를 보낸 버트는 귀를 기울이며 답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버트는 다시 깃털을 들어 올렸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검은 인영이 불쑥 튀어나와 버트의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와악!”

버트는 숨이 멎는 사람처럼 헛바람을 들이키며 주저앉았다. 죽을 만큼 놀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몸속에 있는 그림자들이 난동을 부린 이유가 컸다. 그림자들이 뱃속에서 꿈틀거리니 조금 진정시킨 흥분이 차올랐다. 녀석들이 진정할 때까지 견딘 버트는 아찔해질 정도로 밀려오는 쾌감을 억눌렀다.

한 편 그녀를 놀라게 한 세영은 한바탕 웃어대다가 버트의 어깨를 톡톡 쳤다.

“괜찮아? 설마 심장마비로 긴급 로그아웃 될 뻔한 건 아니지?”

“후…… 후우…… 괜찮지 물론…… 그보다 놀랐잖아. 죽을래?!”

버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세영을 노려보았다. 세영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를 일으켜주었다.

“애가 센스 없게. 여기선 세영이 아니라 에니스트야. 니스. 니스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사람 심장이 멈출 뻔했는데 이년아!”

다른 이유로 멈출 뻔한 건 마음 속 깊은 비밀이었다. 그저 니스의 얼굴을 잡고 주물러대는 것으로 화를 풀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되면 니스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득 든 생각에 불안해져 과장된 행동으로 불안감을 떨쳐 버렸다.

니스는 버트가 어지간히 놀랐구나 싶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끙끙거리면서 애교스런 반항을 했다. 워낙 예쁘게 생긴 니스가 캐릭터를 이국적으로 만드니 더 귀엽게 변했다. 그런 얼굴로 평소와 같은 앙탈을 부리니 버트는 입술을 삐죽이며 놔줄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걸 좋아한단 사실을 아는 니스는 자신의 외모와 애교를 곧 잘 써먹었다. 은송이 잔뜩 토라져있을 때도 지금처럼만 하면 금세 화를 풀었다. 버트는 자신의 약점을 간파당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니스를 향해 투정을 부렸다.

“나왔어! 어? 이야…… 잠깐 못 본 건데 그새 그렇게 갖춰 입은 거야?”

라이벨(동혁)은 특유의 주근깨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다가왔다. 그는 암살자인 니스처럼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마법사답게 로브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

그는 처음 봤을 때랑은 다른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이번엔 어떤 짐승인지 모를 머리뼈가 달린 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 모습에 버트는 솔직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늙은이 같아.”

“뭐?! 이게 마법사의 로망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하여간 벌레 중에 제일 악랄한 공부벌레가 무얼 알겠냐!”

“로망은 무슨…… 하여간 게임 오타쿠 생각은 알 수가 없어…….”

“게임 오타쿠? 네가 건달프와 닥터 슈트레인지의 멋을 알아?”

“네다씹~”

둘의 투닥거림에 니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것들은 틈만 나면 싸우네. 근데 라이 말대로 한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바꿨네. 어디서 보물 상자라도 연 거야? 그게 아니면…….”

“응?”

“프러포즈 받았다거나!”

“푸하학! 얘가? 이 얼굴로 원교를 한다고?”

니스의 말에 라이는 배가 터지도록 웃어댔다. 버트는 검으로 라이의 머리를 후려쳐줌으로서 그의 웃음을 막았다. 단 한 방으로 생명력이 절반이 날아간 라이는 어벙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버트는 어떻게 사실을 밝힐까 고민하다가 부분적으로 거짓을 보탰다. 던전을 헤매다가 우연찮게 보물 상자를 얻었다. 이것이 그녀의 변명이었다. 라이는 불공평한 게임이라며 불만을 토해냈고 니스는 묘한 눈초리로 버트를 바라보았다.

니스는 평소에도 거짓말을 잘 알아챘다. 다른 건 몰라도 니스의 눈치 하나는 으뜸이었다. 버트는 그녀의 시선에 등가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아, 맞아 너희 주려고 선물도 가져왔어!”

버트는 주머니에 가득 담겨있는 아이템들을 보여주며 신경을 돌리려했다.

다행히 니스의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는지, 시선을 거두고 아이템들을 살펴보았다. 동혁은 그 중 「정령의 흔적」이라는 밝은 가루가 담긴 주머니와 고급 보석을 탐냈다. 니스도 갖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버트를 향해 배시시 웃어보였다.

버트는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들은 흔쾌히 내주었다. 물론 라이에겐 치킨을 사게 하는 것으로 값을 치렀다.

‘세트 아이템…….’

버트는 니스가 가져간 아이템이 눈에 들었다.

「그림자가 깃든 장갑」.

뭔가 촉이 온 버트는 자신이 쓰고 있던 「그림자가 씐 모자」를 벗어주었다. 니스는 해맑게 웃으면서 세트 장비 모으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서 이제 하나 남았다고 좋아라했다. 그러면서 바다하피의 깃털을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이걸로 넘어가주지만 다음엔 아냐. 무슨 비밀인진 모르겠지만 다음엔 꼭 말해줘. 알았지?

니스가 보내온 말에 버트가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말한 '비밀'이 무엇인지 떠올린 것이다.

그걸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그건 평생 간직해야할 비밀이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여도 말이다!

~으, 응 꼭 말해줄게. 약속!

버트는 훗날 이 거짓말을 후회하게 되었고 이 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몰랐다.

어찌됐든 버트의 장비에 대한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대신 세트 장비에 대해서 니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렇게 버트는 자기가 입고 있는 장비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밤」 세트는 판타지아의 오픈베타 테스터인 니스도 모르는 아이템이란 것이다. 그녀도 게임에 대한 조예가 깊었기에 이건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게다가 장비 설명에 어떤 장비가 남았는지 표기되지 않았다. 니스는 이런 경우 전부 모았을 때 여타 세트 장비보다 배의 성능을 가질 거라 추측했다.

하긴 얼마나 모았고 몇 개가 남았는지 알 수 없다. 해제 불가의 조건이 걸린 아이템을 착용하는 짓을 누가 할까. 그야말로 끝을 모르는 여행의 시작점이며 다 모으기 전엔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를 복불복이었다.

“하나는 금방 구하겠는 걸.”

라이를 통해 의외의 정보를 얻었다. 바로 라피에 초원에서 「밤」 세트를 얻을 수 있단 것이었다.

‘응?’

순간 버트는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미지의 세트 장비를, 그것도 정확하게 위치도 아는 걸까. 그 질문을 하려던 버트는 적극적으로 나선 니스에게 말문이 막혔다.

“그럼 이제부터 이걸 모으는 거지? 좋겠다~ 판타지아가 자유도도 높고 할 것도 많다지만 너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잡는 건 어렵거든!”

그녀는 라이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라이보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였다. 그래서 이 미지의 세트에 대해서 굉장한 호기심을 품었다. 오죽하면 버트가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장비를 양도하고 싶단 생각을 했을까.

다만 우려하는 게 있었으니 그 장비를 주는 몬스터가 라피에 초원을 다스리고 있는 늑대의 우두머리란 사실이었다. 증명된 건 아니지만 그만한 아이템을 줄 녀석은 더 없었으니 기정사실화나 다름없었다.

“조금 힘들겠는데.”

이 늑대는 소수의 인원으로 격파하기 힘든 엘리트 몬스터였다.

라이는 이 점을 꼽으며 버트의 수련을 강조했다. 동시에 엘리트 몬스터에 대해 어지러울 정도로 설명을 들은 버트는 묵묵히 그의 말을 따랐다.

수련은 바로 늑대 사냥이었다. 항상 몰려다니는 늑대 무리를 상대로 니스와 라이가 대부분의 늑대를 데려가 싸우고 버트에겐 딱 한 마리만 가게끔 해주었다.

덕분에 버트는 한 녀석에게만 집중하며 전투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다 점점 능숙해져서 두세 마리와 싸워도 버텨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림자들의 존재가 문제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조용히 있어달란 부탁을 했다. 덕분에 녀석들은 최대한 잠잠하게 있어주었기에 비밀을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늑대 한 마리를 해치울 때마다 환호와 함께 난리를 쳤다. 질내의 그림자들 역시 호응을 해주는 통에 버트의 이성이 흔들렸다. 결국 연이은 전투에 치명적인 실수를 보였고 땀범벅이 된 버트는 검으로 땅을 짚으며 숨을 헐떡였다.

니스가 괜찮냐며 어깨를 두드려주자 버트가 신음을 꿀꺽 삼키며 괜찮다는 말을 해주곤 고개를 들어 웃어보였다. 한 순간 니스는 버트에게서…… 달달한 향을 느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그녀의 표정을 보며 뺨을 붉혔다.

“좀 쉬는 게 좋겠다. 이 근처에 야영지 만들어놨으니까 거기 가서 쉬자.”

라이의 말에 둘은 알았다며 자리를 옮겼다.

야영지는 큰 바위가 놓인 곳에 만들어져있었다. 라이는 불을 피워두고 냄새를 쫓는 가루를 뿌리며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동안 나머지 둘은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라이는 둘의 행태에 불만을 터뜨리고 자기는 일찍 나가봐야 되겠다며 접속을 끊었다. 니스는 잠깐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허공을 몇 번 더듬고 버트에게 인사를 건넸다.

버트는 조용히 잠든 두 캐릭터를 보았다. 그러다 아랫배의 찌릿함에 한쪽 눈을 감으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곤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니스와 라이를 보았다.

다시 접속하기 전엔 무슨 짓을 해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한 버트는 달달 떨면서 일어나 바지를 훌러덩 벗었다. 꾸준히, 미약한 자극을 받는 바람에 이성이 마비되었고 그녀치곤 정말 과감한 행동이 벌어졌다.

버트는 아랫도리를 벗은 상태로 흠뻑 젖어든 음부를 내려다보더니 주저앉으며 말하였다.

“못 참겠어어…… 으…… 얘들아아…… 그거 해줘…… 전처럼…….”

그녀의 애원에 망토에 있던 그림자들이 몰려나와 고갤 갸웃거렸다.

“뭘 말이냐?”

“전에 한 어떤 거 말하는 거냐?”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그림자들을 보며 버트의 눈이 헤까닥 돌아갔다. 그리곤 숨을 잠깐 멈췄다가 있는 힘껏…….

“전처럼 내 몸…… 여기저기 만져줘­! 팔이든 다리든…… 가슴이든…… 아무데나……!!”

그녀의 말에 한 그림자가 고민하더니 답을 도출해냈다.

“알았다! 그릇은 기쁘게 해달라는 거다!”

“그런가?!”

“그런 거 같다!”

그 말에 버트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 마냥 헤실거리면서 말하였다.

“맞아……! 기쁘게…… 기쁘게 해줘! 즐거워지고 싶어……!”

버트의 말에 그녀의 질 속에 있던 그림자들이 한바탕 요동쳤다.

“그릇을 기쁘게 해주자!”

“와아아아~!”

그 말과 동시에 그림자들이 음부에서 빼꼼 나온 그림자들과 합쳐졌다. 그리곤 폭발하는 것처럼 수십 갈래의 팔로 나뉘었다. 수십 개의 손이 능수능란하게 그녀의 전신을 더듬었다. 흉악하게 생긴 것에 비해 부드러운 손길!

버트는 간만에 맛보는 손맛에 기꺼워하는 한편 친구 앞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보여질 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벌써 실신하고도 남을 상황. 버트는 그래도 꿋꿋이 버티면서 최고로 사치스러운 자위에 빠져들었다.

이젠 신음도 참지 않고 마음껏 내질렀다. 표정도 숨기지 않고 한껏 음탕한 웃음을 보였다. 그녀의 반응은 그림자들의 애무에 불을 지폈고 다량의 애액을 뿜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제 녀석들도 능숙해졌는지 후희도 철저히 해주었다.

애액을 줄줄 흘리며 누워있는 버트가 여운을 느끼고 있을 때 유두를 굴려주거나 음부를 느릿하게 쓸어주었다. 성감대가 아니라 다른 부분 역시 꼼꼼하게 주물러주었다. 버트가 오르가즘을 오래, 그리고 깊게 즐기게끔 말이다. 그리고 이때 버트는 속으로 인정하였다.

자신은 이 짓에 중독되었단 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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