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 (16/22)

실종신고 아직 안했어요. 사망신고는 더더욱.

그나저나 지성준이라는 녀석은 현실의 저와 매우 빼닮은 캐릭터입니다.

하하하!

"쿨럭!"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어제 아파서 결석했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갈수 잇는 어줍잖은 우연이 있었지만 뭐 다행히 운동장을 아침부터 뺑뺑이 도는 거지같은 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젠장, 하루 빠진것 가지고 이놈저놈들 죄다 나한테 관심이 많다. 그런 겉보기 걱정같은거 하나도 위로 안된다. 게다가 아픈건 내가 아니었다고.

이곳은 학생 하나가 은근슬쩍 사라진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듯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아, 뭐 그녀석 딱히 나말고 다른 녀석이랑은 친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급식시간이었다. 4교시가 끝나고 나서 얼마간의 여유가 주어지는 그런 시간대. 밥은 이미 먹었다. 하지만 왠지모를 이 허전함. 난 무언가 해결해야할 일이 있었다. 마치 이건 볼일보고 난 뒤에 뒷처리를 않나것같은 기분이다.

교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간다. 매일 그녀석은 거기 있으니까. 내가 알기로 거기에 가보면 언제나 있었다. 

-덜컥

서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그곳에는 늘 같이있는 패거리 녀석들은 없고 혼자만 있는 녀석이 있었다. 확실하게 말해두자. 아무래 오랜 친구라고 해도 난 사실 수현이가 더 소중하다고.

"어이"

"얼레? 왠일이냐, 니가 날 다 찾아오고"

"그냥 들른거야, 바람이나 쐬려고"

들통날게 뻔한 거짓말이었다. 이곳에 늘 김선우 이녀석이 짱박혀 있는건 아는 녀석이 모르는 녀석보다 많았다. 언제나처럼 약간 미소짓는 표정에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쳐다보는듯한 눈빛, 그 모습은 중학교 3학년짜리가 할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

그렇게 말한 녀석은 다시 옥상의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바람을 쐬기에 적당한 날씨는 아니다. 숨결마저 얼어붙을만큼 차가운 대기에 몸을 한차례 떤다. 그런것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확실히 쐐기를 박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수현이 알지?"

"어? 어 알지"

녀석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간다.

"어디서 만났어?"

"그야 학교지, 우리학교 학생인데"

그 말은 곧 김수현이 남자라는걸 알고있다는게 된다. 하지만 이까짓건 중요하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말따위 빙빙 돌려 말해봐야 답같은게 나오지 않으리라는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현이한테 손 댔냐"

"응? 뭔 손?"

녀석은 모르겠다는듯이 오른손을 펴보인다. 젠장, 난 장난할 기분이 아니란 말이다.

"장난치지마, 확실히 말해"

"큭큭큭, 흥분하지 마, 왜 흥분하고 그래? 너답지 않게시리"

녀석의 입꼬리가 묘하게 일그러진다. 이렇게 물어보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고 있었다. 분명히 수현이를 가만히 놔둘 녀석이 아니다. 무슨짓을 해서라도 가졌을게 분명했다. 다만 녀석이 저녀석과 만났을때 별로 싫은기색이 없어서 아무일도 없었다고 믿고싶기는 했다.

"같이 잔거 물어본거라면"

녀석은 씨익 웃었다. 웃음의 의미, 알고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는것같은 기분이다. 하, 이거 완전 걸레나 마찬가지잖아? 형한테,저놈한테, 이제 하나만 더하면 임신했을때 누구 애새낀지도 모를게 분명하다.

"몇번?"

"으음? 얼마일까나?"

녀석은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낙태하면 그만일까? 그때의 고통은? 그건 누가 다 보상하지? 내가? 아니면 눈앞의 저놈이? 아니면 어디있는지도 모를 성현이 형이?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어갈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앞에서 웃고있는 이자식의 얼굴을 갈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임신하면 어쩌려고?"

"임신?"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린다.당연히 생각해놓을리가 없었다. 원래 남에 대한 배려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이었다. 

"강간했냐?"

"에에? 날 뭘로보는겨? 상호 합의하에서였다고"

만약 거부했다면 강제로라도 했겠지. 집에 이상한건 죄다 있는 녀석이다. 수현이한테 최음제를 먹여서라도 강제로 했을게 분명하다. 난 직접 봤다. 녀석이 여자에게 최음제까지 먹여가면서 강간하던 모습을…

어쨋든 수현이는 이런놈과 같이있게 할수 없다. 절대, 절대로 할수없다.

"강간이고 뭐고, 임신했으면 어쩌려고 그랬냐고"

"임신? 책임지면 되지"

-퍽!

정신을 차려보니 난 녀석의 면상에 주먹을 휘두른 상태였다.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책임? 책임을 져? 어떻게? 설마 낳아서 키우라는 그런 대답을 하는건 아니겠지? 미혼모라도 만들 작정이었나?

-툭툭

"아아, 손이 맵네, 이봐 대화로 해결해야지? 나도 솔직히 주먹으로는 지지 않을 자신 있는데 우선은 민주적으로 해결하는게 순서잖아?"

맞은 볼을 어루만지며 일어선다. 순간 다시 한번 손이 나갈뻔했지만 참았다.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애초에 주먹같은걸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낳으면 되잖아, 뭐 그거 안될것도 없고, 내가 책임지지"

"닥쳐, 중3짜리 미혼모라도 만들려고? 그리고 니가 책임을 진다고? 지랄하지마 넌 대충 맛만 보고 버리는 놈이잖아!"

"니가 날 어떻게 알아? 내가 맛만 보고 버릴지 아니면 내가 김수현이랑 결혼이라도 할지?"

저놈이랑 같이있는게 6년째다. 그런것따위 모를리가 없다. 대부분의 저놈 생각같은건 쉽게 예측할수 있다. 어쨋든, 다 좋아, 누구를 따먹든, 누구를 강간하던간에 상관 안하는데 김수현은 안된다.

"만나지마"

"뭐?"

"만나지 말라고, 김수현이랑, 이제, 이 순간부터 다시는 만나지마"

내 말에 녀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니가 무슨 상관인데? 내가 그년이랑 떡을 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어? 니가 무슨 보호자라도 되냐?"

"그래 보호자다"

김수현의 법적 보호자는 죽었다. 이제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성현이 형도 믿을수 없다. 이제 녀석을 지켜줄건 나밖에 없고 녀석이 의지할 곳도 나밖에는 없다.

내 말에 녀석은 코웃음을 치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지랄하네 씨팔"

"뭐 이새끼야?"

순간, 마이 속주머니에 있는 나이프에 손이 갈뻔했다. 이런 개자식은 흉기로 위협을 해서라도 떼어놓아야 한다고, 돌이킬수 없는 일이 생길수도 잇다고 내 마음이 외치고 있었다.

"꺼져, 내가 만나든 말든 상관하지마, 니가 아무리 그래봐야 김수현이 날 만나겠다고 하면 상관없는 거잖아?"

"만나지 말라면 만나지 마, 다시 한번 수현이한테 손댔다간 죽여버리겠어"

녀석은 웃는표정을 죽이지 않는다. 젠장, 김수현에게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이녀석과 만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자식이 녀석을 지하실같은곳에 가둬놓을수도 있다. 충분히 그런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다.

"6년우정이 이거 여자가 되다만 놈 하나때문에 깨지는 거냐?, 하하하…"

녀석은 잠시 웃더니 웃음을 갑자기 뚝 그치고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얼어붙어버릴것같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리고는 이내 입을 열어 차갑게 중얼거렸다.

"경쟁이야, 누가 더 그녀석하고 더 가까워지나 말이지, 뭐 선택은 김수현이 하는거니까 불만같은건 없겠지?"

제가 모르는 여자 손잡고 뛰어갈 만큼의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희학교는 남학교라는거

-사각 사각

흰색 종이에 글씨가 쓰여지는 작지만 고요한 적막을 깨는 소음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수업시간. 들리는 소리라고는 칠판에 있는 선생님의 손이 칠판을 미끄러져나가며 계속해서 해나가는 필기음 뿐이었다.

원체 글을 쓰는게 빠르기에 어느새 마친 필기내용을 전부 다 받아적은 뒤라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고있었다.

아침의 그 생각만해도 낯뜨거운 그 마스터베이션이란 단어를 썻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다.

그 용의자는 지금 필기를 다 끝마쳤는지 엄청나게 지루하다는듯한 표정을 하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민정훈이라고 했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험한 냄새를 풍김과 동시에 싸이코틱한 분위기를 풍기던 녀석,

저녀석이 썻다! 라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으로는 확실히 범인일것같은 녀석이었다. 뭐 사실 그런 단어를 썻다는 것에 대한 짜증보다는 그저 할일 엄청 없었던 모양이다라고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것 뿐이다.

나말고도 그런 생각을 가진 이는 있었는지 지성준이라고 했던 그 녀석이 변태놈에게 니가 썻지라며 물어봤지만 절대 아니라며 잡아뗏었다. 그러고 보니 지성준이라는 녀석도 알게모르게 민정훈과 쌍벽을 이루는 발랄한 캐릭터였다. 뭐 성준이라는 녀석이 조금 더 밝은쪽에서 밝다면 정훈이란 녀석은 조금 음흉한 구석이 많은 놈이었다.

그나저나… 춥다. 봄이니까 날씨가 조금은 풀렸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지만 아직 겨울은 봄이라는 녀석을 놓아주기 싫은지 완연한 겨울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온풍기의 힘으로 조금은 따뜻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다리가 시리다. 게다가 치마라서 그런지 더 심하다.

-툭툭

"……?"

내 왼팔을 건드리는 누군가는 내 옆자리의 승현이었나 하는 녀석밖에는 다른 사람일리가 없었다. 녓거은 뭔가 상당히 고뇌하는듯한 표정으로 우물쭈물거리더니 훤칠한 키에 안맞게 소심스럽게도 종이에 써서 용건을 내게 보여주었다.

[너 이틀 전 밤에 시내에 있었지?]

이틀 전이라면… 부모님이 자살했다는걸 알고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이리저리 비맞으면서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정현이 녀석의 손에 이끌려 그녀석 집으로 가게된 날이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떻게 이 녀석이 알고있는거지?

-끄덕

우선은 긍정했다.

"봤…어?"

앞자리 옆자리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하게 말했다. 건물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서 비맞는 여자애의 모습이 흔한건 아닐테지만 그걸 봤다니…

녀석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무래도 비오는 날에 건물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있어야 할만큼의 일이 무었인지 알고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알려주기 싫다. 소문나야할 성질의 사건이 아니니까.

-딩동 댕동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사실 수업 끝나기 직전 시간에 걸쳐서 하던 필기였기에 나머지 내용은 다음 수업시간에 마치겠다고 하며 수업은 끝났다.

"말하기 힘든거야?"

-끄덕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지만 결론은 역시 no였다. 말해서좋을것도 없고 그런거 말해봐야 내 기분만 또 우울해진다.

"미안…"

"아니, 뭐 니가 미안해할건 없잖아, 학원가던길에 봐서 우산이 없어서 그런가 해서 씌워주려고 가까이 갔는데 누가 데려가더라고"

"어…응"

"누구야? 남자친구?"

에… 그렇게 말하면 변명할 꺼리를 생각해야 하잖아, 역시나 그게 좋을까.

"사촌오빠야, 이곳에 이사온것도 부모님 사정때문에 사촌오빠가 사는데로 이사온거구…"

"아아… 그렇구나"

뭐 대충 녀석 눈에는 새로 이사온곳에서 길을 잃어서 비맞으면서 멍하니 있다가 구조된걸로 보일까? 말하지 못한것도 길잃어서라고 하면 쪽팔리니까라는 아주 인간적인 이유가 될테고…

그나저나 이제 정현이가 완전히 내 사촌오빠가 되는 순간이다. 괜히 사촌동생이라고 말했다가 영은이랑 같이 만나면 귀찮아질 테니까…

"작업걸지마!"

-퍽!

"큭!"

"내가 관리를 안해줬더니 이게 또 아무한테나 들러붙네, 내가 그렇게 길들였냐?!"

승현이라는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소리친건 성준이라는 방금전에 안면을 텃던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아프지는 않을까? 세게 맞은것 같은데…

하지만 녀석은 뒤통수를 감싸쥐더니 벌떡 일어서며 성준이라는 녀석의 뒤통수를 똑같이 휘갈겼다. 너네 너무 험하게 노는거 아닐까?

"잠깐!"

투닥거리다가 갑자기 성준이라는 녀석쪽이 먼저 휴전선언을 외쳣다. 그럴줄 알았다는듯 승현이라는 녀석도 움켜쥐었던 멱살을 풀며 몸을 툭툭 털었다.

"왜?"

"넌 저리 꺼지고, 전학생님, 일어나봐"

"응? 왜?"

그러면서도 일어나게 되는건 녀석의 표정에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서자 성준이라는 녀석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게 하고 몸을 돌렸다. 몇몇 녀석들은 벌써 우리가 하는 이 이상한 짓을 쳐다보고 있었다.

"얌마! 우중충하게 배경에 트러블 넣지 말고 찌그러져"

"……망할"

투덜거리면서도 승현이라는 녀석은 성준이 쪽으로 빠진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배경이 필요한 건가보다. 그렇게 셋팅아닌 셋팅을 끝낸 녀석은 교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핸드폰, 저기, 그런데 핸드폰 아침에 걷어가는거 아니었어?……안냈구나…

"자자, 부동자세 취하고 스마일"

"사, 사진은 왜?"

핸드폰을 내게 대고 흔들어대는걸 보니 사진을 찍는중인것 같았다. 내 사진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찍기 싫다고 이리저리 피해다니면 그것도 못할짓이다 싶어서 그냥 찍혀주는게 나을것 같았다.

"웃어야지!"

"어, 어? 으…"

억지웃음이라는게 이렇게나 힘든건지 처음알았다. 어느새 주목받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녀석은 조금 뒤로 물러서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찍기 시작했다. 한장만 찍어, 초상권 있다고. 설마 장래희망이 포토그래퍼인건 아니겠지?

"완벽해!"

꽤나 잘 나왓는지 녀석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는다.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 녀석은 내게 찍힌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액정 속 낯선 얼굴, 낯선 몸… 하지만 그것은 이제 '나'였다. 씨익 웃는 녀석은 잘 찍혔지라고 그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쩔수 없이 맞장구 쳐주자 녀석은 사진을 저장했다.

"……"

그걸 묵묵히 바라보던 승현이가 녀석의 뒤로 가 뭘 하는지 지켜보더니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뻔뻔하긴"

"왜?"

"쟤가 왜 니 여자친구야?"

"에?"

"뭐야?!"

그 말에 녀석은 모든 남자녀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수 있었다. 뭐야, 설마 그런 어이없는 구라를 치려고 내 사진을 찍은거란 말이야?

"여자친구 맞잖아? 이성친구"

"다만 그게 니 핸드폰 배경화면이라는게 문제지"

어느새 다른녀석이 끼어들었다. 녀석은 표정이 점점 더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의 표정에는 전혀 긴장감이라는게 없었다.나는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저거 정말 뻔뻔하다.

"야! 수민아, 내가 니 사진 배경화면 하면 안돼냐?"

"어?"

"이것봐! 본인이 허락했는데 왜 니들이 지랄이야! 낄낄"

난 그저 의문형 동사로 말한것 뿐인데 그걸 허락형으로 받아들인거냐?

"아아, 장난이야 장난, 왜이렇게 다들 흥분하고들 그러시나. 난 그저 조금 예쁜 여학우의 사진을 내 핸드폰에 고이 저장하고 싶어서 그런거야, 이보게 친우들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마시게나. 이 사진들은 댁들의 핸드폰 속에 전송될테니 말일세"

그 말에 당장이라도 녀석에게 달려들려던 수많은 남학생들의 표정이 분노에서 환희로 바뀐것은 딱히 말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너희들 너무 속물같아, 게다가 그것도 본인이 앞에 있을때 그러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승현이라는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는지 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앉더니 아침시간에 보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야, 저 달관한듯한 태도는…

마치 반란군 수괴가 반군들을 선동하듯이 이리저리 소리치던 녀석은 마치 굶주린 강아지 떼같던 녀석들을 돌려보낸 뒤 나에게 슬쩍 다가와서 한마디 속삭였다.

"내가 니 사진 네 핸드폰에 전송해줄테니까 번호좀 줘봐"

너 은근히 수준급이야.

"응?… 별로 필요 없…"

"이봐, 너 저기 굶주린 어린 양들을 죽일 셈이야? 이 너저분하고 피폐한 학급에 오랜만에 찾아온 활력소라고,저녀석들 지금 네 폰번호 얻고싶어서 안달나있잖아, 대표로 나한테 알려주면 내 알아서 모두 처리해줄테니 걱정 마시게"

그러면서 내 어깨에 양손을 올려놓고 말하는 녀석은 무슨 정치가같아 보였다. 그것도 조금 음흉한 구석이 많은… 이녀석에게의 평가를 바꿔야겠다. 이녀석은 민정훈인지 뭔지하는 녀석하고 비슷할 정도로 위험한 녀석이다.

게다가 폰번호 알려주면 너만 알고있을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릴리가 없어

"당번은 청소하고 그럼 종례는 이걸로 끝, 반장 인사해"

"차렷, 경례"

-우르르르

의자를 책상에 올려놓은 뒤 뒤쪽 끝으로 밀어넣고 가방을 들고 교실문을 나선다. 약간 유쾌했던, 하지만 별다를것 없이 평범했던 하루가 끝나가는 순간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춥다…"

귀끝이 얼어붙는것만같은 한기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손이야 장갑이 있다지만 귀마개가 없으니 이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추위는 그대로 전해져온다. 중앙현관을 나서자 더더욱 추워진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수민아~ 집에가?"

"어? 응…"

영은이였다.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꽤나 호감이 있는 여자애였다.발그스름한 볼이 왠지 귀엽게 느껴진다. 뭐 그런건 지금 내가 더 심하려나.

"그런데 왜?"

"응? 교문 앞까지 같이가자고"

"아아…"

뭐 그런거야 들어주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고 괜히 피해서 다른곳으로 갈 이유도 없다. 교문까지인데 뭐 어떨까.

같이 나란히 서서 걷는데 교문 앞에 언젠가 보았던 익숙한 뭔가가 있었다. 삐까번쩍했던 검은색 차였다. 누가 타는지 몰라도 엄청난 부잣집이라고 생각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김선우가 날 찾아왔었지.

"저거 누구네 차야?"

"저 검은색 차?"

내 말을 들은 아현이는 되물었다. 

"아아, 수민이는 모르겠구나, 저거 아현이네 차야"

"아현이네?"

"사실 여기선 유명해, 꽤나 큰 기업 사장이라던데? 정확히 말하면 성진현네 부모님이지"

뭐 그럼 대저택에 몇 가구가 들어가 있는건가? 아무리 저택이라고 해도 사람이 많으면 번거로울텐데… 그나저나 아현이가 그렇게나 부자였다니 놀랍다. 

"사실 아현이 부모님이 안계셔, 원래는 부모님이랑 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났는데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아현이는 다리가 불편해진거야, 그래서 친척집인 성진현네 집에서 사는거야"

"그렇구나…"

사고로 부모님이 둘다 돌아가시고 친척집에서 산다… 어찌보면 나와 비슷한 생활이다. 단지 다른게 있다면 나는 친구집이라는 거고 부유한 정도의 차이일까? 검은색 차에는 아현이가 진현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타고있는게 보였다.

"그나저나 아현이 관리해주려면 진현이도 힘들겠네"

"뭐 그렇지, 그래도 별로 싫지는 않은가봐"

예쁘잖아, 뭐 나같이 그런 싸이코틱한 일이 생길 일은 없겠지만 이왕에 도와주는거 예쁘면 금상첨화니까.

"뭐 그런 면에서 둘다 청소나 주번은 안하니까 나름대로 이득은 있다고 해야할까. 그나저나 아현이 보면 불쌍해, 저렇게 예쁜데…"

다리를 못쓰다니… 라는 뒷말은 삼키는듯 보였다. 추위에 입김이 하얀색 수증기를 내보이며 이내 사라진다. 춥다, 늦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은 정말 시릴정도로 추웠다.

"앗…"

-멈칫

순간, 걸음을 되돌린다. 바보, 방향은 그쪽이 아니야, 무심코 엊그제까지만해도 걸어가는데에 주저함이 없던 곳으로 걸어가려 했다. 습관이란 무섭구나. 새삼 깨달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 들었다.

그래, 이제 내 '집'은 저쪽이 아니잖아, 괜히 미련갖지 말고 얼른 돌아가자. 봐서 좋을것따위 없어

담장 너머에 위치한 아파트를 바라본다. 커다란 집에 살기를 바랬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난 이런걸 바란게 아니었다.

황야와 공원은 다른거야, 절대 같을수 없다. 사람 없이 적막하고 쓸쓸한 커다랗고 넓은 방이 아니라 넓지만 그 넓음을 다른 사람과 즐길수 있는 집이 필요했었다. 그랬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하하…"

억지웃음으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가리려 한다. 그래, 아무도 없는건 아니잖아. 내 가장 친한 친구가 거기 있잖아. 누구보다도 더 의지할수 있는…

문득 하늘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사실 가을하늘보단 겨울하늘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겨울하늘은 내 마음 한가득 공허감을 안겨준다. 아무것도 없다. 겨울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담장길을 돌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다. 추위로 가득한 겨울길을 걸어 내가 이제 있어야 할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난 반가움에 소리를 지를뻔했다.

익숙한 얼굴이 아파트 라인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날 발견했는지 이내 손을 흔든다. 같이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다. 나는 얼굴 위에 가면을 하나 씌웠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반가운 사람이 불청객으로 바뀌는건.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여긴?"

"여동생 얼굴이나 좀 보려고"

그렇게 말한 얼굴은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그동안 힘든일이 많았는지 머리도 푸석푸석해 보이고 눈도 약간 풀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형 머리는 곱슬이라 관리 안해주면 엉망으로 망가진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 오빠같은거 없어"

"형은?"

"마찬가지"

싫었다. 괜히, 이 사람하고 같이 있는게 괜히 싫어진다. 그렇게 안쓰러운 모습만 보여주면 그게 다 나때문인것 같잖아.

"후우… 화나있나보네"

"화 안났어"

"알았어, 까탈스럽기는…"

많이 성격이 풀려있다고 생각했다. 평소같았으면 욕부터 나왔을텐데, 그 이틀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잠깐동안이지만 그 눈빛에서 미안함을 읽을수 있었다. 미안함… 미안함… 하하, 그럴거면 차라리 미안한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괜히 화가 더 난다.

"최대한 빨리, 자리 잡으면 데리러 올께, 그녀석한테 신세질수는 없잖아, 안그래?"

"……안가"

"응?"

내 말에 오빠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간다고, 이정현이 나가라고 해도 안나갈꺼야, 최소한 당신같은 사람하고는 붙어있고 싶지 않아"

순간, 또다시 오빠의 주먹이 쥐어지는걸 볼수 있었다.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런 표정 지으면 또 마음 약해져버려서 용서해버린다. 난 최소한 다시는 이 사람을 만나기 싫었다. 이런 사람한테 반가움따위 느끼고 싶지 않아.

뭐가 억울한데? 나보다 억울할까?

"후우… 그래, 나같은건 꼴도보기싫다 이거지"

-끄덕

"미안해, 정말로, 사과할께 다시는 너한테 그런짓 안할께"

"용서해주길 바라는거야?"

"아니, 그럴정도의 염치는 없지,네가 이러는걸 이해는 하고 있으니까"

이해를 하고 있으면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줘

역시나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오빠는 더이상 미련갖지 않는다는듯이 내 양 어깨를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정말 미안한짓 하나 더 해도 돼? 끝나면 바로 사라질테니까"

"뭔…데?"

"우선 허락부터 해"

어린애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난을 치는것 같이, 전혀 장난칠 기분이 아닌데도, 왠지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거절하는건 정말 나쁜짓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빨리끝내"

"빨리 끝나"

"어……읏!"

정말로 빨리 끝났다. 오빠는 키를 살짝 낮춰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정말 잠깐, 스쳤다고 말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그걸 끝낸 오빠는 내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더니 내가 왔던 길을 걸어갔다.

차라리 쾌락을 원했던 거라면 납치라도 할것이지 이런 스킨쉽은 뭐하러 한걸까. 순간, 엄청나게 싫은 상상을 해버려서 소름이 끼쳤다.

남자한테 사랑같은거 받고싶지 않아.

미안한데, 넌 받게 되어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딩동

집에 도착한다. 열쇠는 신문꽃이 안에 있다고 문자로 보내놨었는데, 잘 들어가 있으려나 시간은 7시, 약간 볼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설마 이상한 곳에 가있는건 아니겠지?

-철컥

문은 쉽게 열렸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듯하다.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김선우… 이번에는 전처럼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보다. 밖의 추위때문에 그런지 안에 더더욱 빨리 들어가고 싶어진다.

"윽…"

-덜컥

안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건 엄청나게 심한 술냄새였다. 문을 닫고 들어서자 소파 앞에 쭈그려 앉아 소주를 병째로 마시고 있는 수현이가 있었다. 바닥에는 빈 소주병이 세개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혼자 저렇게 마시다니, 미친건가?

"왔네…끅…"

"너… 왜 이렇게나 마신거야"

"응? 아아니… 그냥… 난 좀 마시면 안돼?"

녀석의 볼은 취기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교복도 갈이입지 않은 상태로 저렇게나 마시다니, 집에 오고나서부터 계속 마신듯하다.사실 마시게 하는걸 막을 권리같은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녀석이 들고있는 병부터 빼앗고 일으켜서 소파에 앉혔다.

"왜그래?"

"으응… 돌려줘어"

"후우…"

왜 우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것도 아니다. 며칠안에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녀석으로서도 괴로울만 하다. 괴롭지 않다면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더 마시는건 위험하다. 내일 학교에는 어떻게 가려고…

눈이 풀려있다. 내 팔을 잡아당기는 손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고 동공은 확대되어 있어서 이곳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걸 알수 있었다. 녀석은 잠시 그렇게 내게서 병을 뺏어가려고 움직이다 이내 포기했는지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왜… 왜…"

녀석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왜 다들 나한테서 뺏어가지 못해 안달이야?"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마치 세상에게 하소연하듯, 녀석은 자조하듯 중얼거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하아… 응… 부모님도, 집도, 가진건 이 몸 하나밖에 없는데… 왜 그것마저 뺏어가려 안달이냐고… 응?"

녀석은 취한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억지로 취한 행세를 하려고 한건지, 아니면 지금만 제정신인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풀려있는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다 뺏어갔어, 나한테… 흐흐… 뺏어갔다고…"

녀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날 쳐다본다. 녀석은 날 잠시 응시하더니 미소, 아니, 마치 비웃듯이 미소지으며 날 쳐다보았다.

"너도 뺏어가고 싶지? 응? 헤헤… 너도 똑같을 거야… 너도 다른놈들처럼, 내 친오빠처럼 날 강제로라도 가지고 싶지? 응? 내 이 몸, 뺏어가고 싶지?"

"무슨 소릴 하는거야?"

취한게 아닌줄 알았더니, 역시나 취해있다. 어서 재우는게 좋을지도…

녀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가슴에 밀착시켰다. 부드러우면서도 말라말랑한 가슴의 감촉, 녀석의 가슴이 이렇게나 좋은 느낌이었나…

"너도 뺏어갈거야… 다른놈들이랑 다를거 없어… 헤헤… 왜? 기분좋아? 남자는 다 성욕에 미친 변태새끼들이야… 헤헤…"

"너도 남자였잖아?"

녀석의 가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못할짓을 한 기분이다. 녀석은 내 말에 헤헤거리며 웃다가 내 손에서 소주병을 낚아채며 한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소주병은 반쯤 비어있었다.

"내가 남자니까아… 그걸 더 잘 아는거야아… 안그래?"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또다시 술을 마신다. 이번엔 낚아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녀석은 그러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뭐 저렇게나 마셧으니 잠들지 않은게 이상한건가. 조용히 잠들어줬으면 좋겠다.

"읏차"

잠들어있는(것으로 추측되는) 녀석을 안아올려서 내 방으로 들어간다. 하여튼 깃털처럼 가볍다더니 그말은 진짜였는지 녀석은 가벼웠다. 술냄새가 심각하게 나는걸 빼고는 좋은데…

"후우…"

녀석을 침대에 눕혀놓고 방의 불을 켠다. 교복차림인데 저렇게 자면 다 구겨질거고 불편할거다. 우선은 녀석이 신고있는 검은색의 긴 양말부터 벗겼다.

"으응…"

녀석이 움찔거리며 무릎을 올린다. 치마가 흘러내리면서 팬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무리 신경 안쓰려 노력하고 있다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보이는건 왠지 긴장된다.

양말을 벗기고 나서 교복 마이를 벗기는데 아까 손이 닿았던 가슴이 보였다. 다시한번 만지고 싶다는 느낌이 뇌리를 자극했다. 하아… 난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이상한 생각이 들기전에 나가야겠다. 이대로는 진짜로 무슨짓을 할지 모르겠다. 술냄새 때문에 취한건가?

그럴리가 없잖아

녀석의 마이를 벗기고 옷걸이에 걸쳐놓은 뒤 거실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내 손을 붙잡은 작은 손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수현이가 그 작은 팔로 날 붙잡고 있었다. 녀석은 울듯한 얼굴을 하고 날 잡아끌었다.

"가지 마… 너마저 가면… 난 어떻게 하라고…"

아까는 빼앗아 간다고 울더니 이제는 가지 말라고 그러는건가, 한가지만 하지, 왠만하면…

안쓰러웠다. 혼자서 겪기에는 너무 힘든 일들이 많았으니까. 녀석에게는 이제 나밖에 없다. 지켜줄 사람도, 난 단순히 녀석의 룸메이트가 아닌 보호자니까.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녀석은 일어나더니 날 붙잡듯이 끌어안는다. 작은 키의 녀석이 내 몸 가득히 안겨온다.

"아무데도 못가… 나 두고가지마… 울어버릴꺼야"

이미 울고 있으면서

"흐윽…으… 다들 떠나갔어, 다들… 너만 남았는데… 흐윽…"

"울지 마… 아무데도 안가"

"아무데도 안갈꺼지? 흑… 으…"

녀석은 내 품에 안겨서 눈물을 훌쩍거렸다. 이 녀석은 아마 이렇게 변한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것 같았다. 하지만 대가가 너무 가혹하잖아, 등가교환… 녀석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이렇게나 힘든 일을 격어야만 한다는 건가.

하지만 이제 다 끝났을 거다. 끝났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돼, 내가 옆에 있어줄 테니까.

녀석은 한참을 울다 울음을 그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졸…려…"

어린아이같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 아무데도 안갈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방의 불을 껏다. 아차, 그러고 보니 녀석에게 꼭 해봐야 하는게 있었다.

"어, 어디가?"

거실로 나가 가져왔던 봉투에서 상자 하나를 꺼낸다. 따라나온 녀석은 내가 꺼낸 그 물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소주 세병 마시고 너무 제정신인거 아니냐. 최소한 화장실 변기에 달라붙어서 위액을 게워내는것정도는 해보라고…

"뭐야?"

"잠옷이지"

사실 녀석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핑크빛의 잠옷이었다. 이걸 사느라 이렇게나 늦게 들어온 거였지만… 뭐 생각나지도 않는 녀석의 체형을 생각해내느라 시간이 많이 흐른게 그 이유였다.

원피스형의 잠옷은 부드러운 소재로 되어 있어서 왠지 나도 입고싶다! 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입어봐"

-툭

녀석은 그걸 들더니 잠시동안 날 쳐다보다가 옷을 슥슥 갈아입기 시작했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아 녀석은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옷 치워"

"피곤해…으"

그런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마, 젠장! 난 네 식모가 아니라고, 취하고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심각한건 아닐거 아냐.

"이빨닦고자, 술냄새 나니까"

술냄새에 절어버린 방따위는 상상도 하기 싫다.

"으으… 머리아파아…"

"얼른!"

재촉하자 녀석은 기어가듯이 걸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이빨닦는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빨닦다가 잠들어버리는건 아니겠지?

"아? 그러고보니 저녀석 칫솔 있던가?"

칫솔따위의 자잘한것들은 없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이 칫솔소리는 뭐지?

설마.

"너… 왜 내 칫솔 쓰는거야!"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자 역시나 하나뿐인 내 칫솔을 입 안에 넣고 휘젓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내 말에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닦으라고 해서…"

"그래도 그건 내꺼잖아!"

"아…… 그러면 안돼?"

입안에 칫솔 넣고 말하지 마, 거품튄다고. 게다가 갑자기 그런 울것같은 표정 지을 이유는 없잖아… 마음 약해지게 말이야

"……내일 칫솔 사올테니까 오늘은 그걸로 닦아"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칫솔질에 열심이었다. 사실 이 닦는다고 해서 술냄새가 사라지는 일같은건 없다. 잠옷이 조금 컷던지 한쪽 어깨가 흘러내리고 반쯤 눈을 감은채 칫솔질을 하는 녀석은 정말 무방비해 보였다.

칫솔질은 끝났는지 입안에 든걸 퉷퉷하며 뱉어내더니 입안을 물로 헹구어 내고는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저 잠옷, 꽤나 야하다. 어깨선이 다 보이잖아. 하얀색 브래지어 끈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녀석은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가더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들이키더니 목말라라고 중얼거린다.

녀석은 졸린눈으로 비틀비틀거리며 나에게 걸어오더니 내 몸에 푹 기대었다. 그상태로 잠들었는지 아닌지 녀석은 움직임이 없었다.

"하아…"

잠든 척인지 잠든건지 눈을 감고 고른 숨을 쉬는 녀석은 필시 분명 자는척을 하는 것이라고 내 뇌가 말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잠옷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맨살의 감촉은 소름끼칠정도로 야릇했다. 더이상 이상한 생각 들기전에 얼른 침대에 눕혀놓자.

아까와 같이 침대에 살짝 내려놓자 녀석은 고른 숨을 쉬며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빠르면 자다가. 늦으면 내일 아침쯤에 머리를 붙자고 뒹굴며 살려달라고 외칠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숙취란 무서운 거거든

지금 나도 자는게 좋을까. 거실로 나가 녀석이 벗어놓은 옷들을 정리해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한바탕 하고 난 효과인지 뭔지는 몰라도 목이 타는것 같았다. 물, 물좀 마시자

녀석이 꺼내놓은 물병이 있었다, 뭐야, 넣어놓지도 않은거냐. 제발 정리좀 하며 살라고.

-쪼르륵

투명한 유리컵에 투명한 액체가 차오른다. 일정한 선율을 그리듯이 찰랑이는 물은 왠지모를 율동감이 있다. 

-푸우웃!

"켁! 이, 이거 뭐야…"

물이라 하기엔 뭔가 위화감이 있는 맛이 있었다. 뭐지? 상했나? 아니, 물이 상한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다. 설마 저녀석의 침같은게 섞여서 알코올 맛이 나서 그런건가? 얼마나 퍼마셔댔으면 침따위가 들어간건데 이런맛이 나다니, 

입맛을 버린건지 어떤지는 몰겠지만 물마실 생각은 없어져 버렸다. 나도 잠들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할것도 없던 차니까. 공부는 하기 싫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현이가 자고 있으니 불은 켜지 않았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하는데 고요해야만 할 밤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하아…하아…"

가쁜 숨소리, 마치 앓는듯한 신음소리에 일어나보니 수현이가 달빛에 비친 수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그리고 괴로운듯이 입술을 깨물고 몸을 떨고있는게 보였다.

드디어..... 정현이와 XX하고 XX한 일이 생기는 겁니까?

"으으…"

"왜, 왜그래?"

녀석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당장이라도 죽어버릴것 같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볼에 손을 갖다대니 마치 불덩어리같이 뜨거워져 있었다. 열이 있었다. 아니 이건 열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아으…아…"

"정신차려… 왜그래, 어디 아퍼?"

녀석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가 아픈건지 아니면 다른게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속이 끓는다. 병원에 데려갈수도 없고… 어쩌지? 집에 있는 약이라고 해봐야 감기약 정도였다.

"머리… 머리…"

"머리? 머리가 아프다고?"

두통인것 같았다. 하지만 겨우 두통때문에 몸이 이렇게 뜨거워지다니, 보통 두통이 아니다. 그리고 집에 두통약이라고 해봐야 그런게 있을리가 없는데…

아니, 일단은 찾아봐야 한다.

-덜컥

방 어딘가 처박아둬서 그런지 먼지가 쌓여있는 약상자의 먼지를 털어낸 뒤 뚜겅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띈건 곡 영양제용 케이스같이 원통형 모양의 플라스틱의 불투명한 흰색 케이스였다. 두통 치통 생리통 어쩌구라고 쓰여져 있는건 보지도 못한채 이거다 싶은 마음에 그걸 통째로 들고 물을 한컵 떠갔다.

"아윽…으…"

어느새 바닥에 내려와 기듯이 몸을 움직이며 움찔움찔 떠는 모습은 엄청나게 아파보였다. 녀석의 몸은 이미 땀이 흥건했다.

"이거 먹어봐"

전문의의 상담조차 거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무 약이나 먹이는건 굉장히 위험한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걸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급했다. 녀석이 아파서 당장에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데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흐으…으…"

약을 삼킨 녀석은 잠시동안은 계속 숨을 헐떡거렸지만 조금은 진정된듯 보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극심한 두통이라니, 숙취일리는 없다. 그럼 뭐지?

조금 진정된것같아보이는 녀석은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쓰러질것 같아서 내가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손에 든 원통형의 약통을 보았다. 자일리톨 담는 통같이 생겼다. 난 이런걸 산적이 없다. 뭐지? 원래 두통이 있으면 그냥 참는 편이라서 약같은건 별로 쓰지 않는다. 약에 대해 내성이 생기는걸 방지하는게 아니라 그저 귀찮아서 그런 거였는데…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집에 왔던 그 여자가 두고 간 건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니까… 가져왔을수도 있었다. 왠지 처음으로 고맙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녀석은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움직임이 없었다. 잠든건가 하고 고개를 숙여서 녀석의 모습을 살핀다.

"어?"

눈을 뜨고 있었다. 어둠 속의 희미한 빛으로 보이는 녀석의 눈에는 왠지 힘이 없었다. 초점이 없다고 해야할까. 방금 전의 그 눈빛이 자포자기한 상태의 눈빛이라면 지금은 왠지 넋이 나가있는것 같았다.

녀석의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살피자 녀석은 무너지듯이 내 가슴에 안겨왔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와닿는다.

"뭐해?"

내 목을 끌어안은 녀석은 연신 거칠게 숨을 쉬었다. 방금 전의 앓는듯한 모습은 없었지만 왠지 이번에는 조금 고조되어있는 숨결이었다. 달뜬듯한 소리, 내 몸에 올라타듯 안긴 녀석은 점점 숨소리에 비음을 섞어가기 시작했다. 내 가 안아올리듯이 하고있는 자세이지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아…응…"

"왜…그래?"

점점 더 기분이 묘하게 변해간다. 마치 구름 속을 헤메는것같은 기분이었다. 녀석은 점점 더 나에게 밀착해온다. 뭐지, 이런 기분은, 왠지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듯한 이 죄책감과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은

"정신차려… 뭐해"

제지하고는 있지만 손을 쓰지는 않고있다. 분명 떨어뜨려야 한다. 하지만 나느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밀쳐버리면 그만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하기 싫었다.

"아…으…응…"

녀석이 갑자기 내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치 유혹하는 몸짓처럼, 땀으로 가득한 녀석의 몸은 더더욱 끔찍하면서도 야릇하게 내 몸을 자극한다.

"이, 이상해… 으윽…하아… 끈적거려…"

녀석은 불편한듯 몸을 뒤척인다. 그러면서도 내 목을 세게 끌어안고 놔주지 않는다. 내 숨결도 덩달아 거칠어져 간다. 몸을 잠시 뒤척이던 녀석은 이내 견디지 못하겠는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침대에 기대듯 앉아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하으…하아…으…끈적…거려"

그러던 녀석은 갑자기 다리를 옆으로 벌렸다. 원피스 잠옷 사이로 적나라하게 속옷이 노출된다. 그 모습은 상당히 야릇해서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침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나… 여기… 끈적거려… 응…아…"

녀석의 풀린 눈은 반쯤은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제정신인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의 팬티는 무언가 투명한 액체로 젖어 있었다.

미칠것 같다. 녀석은 손을 자신의 그곳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턱

"하지마"

순간 이성을 되찾았다. 녀석은 양팔을 붙잡힌 채로 날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왜에…?"

"하지 말라면 하지마"

"하아…으"

녀석은 괴로운듯이 온몸을 비튼다. 뭔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해서 불만스럽다는듯한 몸짓으로, 힘이 하나도 없는 팔을 흐느적거리며 빠져나가려한다. 그러길 몇분이 지나자 녀석의 호흡은 마치 전력으로 100m를 뛴 어린아이같이 거칠어져 있었다.

"하아…하아…하아…하아…"

뭐지? 순간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이렇게 흥분한 거지? 이건 마치 흥분제라도 먹은것 같잖아…

설마 아까 먹은 그 약이?

아니다. 그럴리 없다. 분명 두통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흥분제일리가 없잖아.

순간, 생각을 하느라 손에 힘이 풀린 사이 녀석이 자신의 손을 빼낸 뒤 거칠게 숨을 내쉬며 아까처럼 내 목을 끌어안았다. 바로, 생각할 틈도 없이 녀석은 날 끌어안고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Dashing through the snow

In a one horse open sleigh

Over the fields we go

Laughing all the way

Bells on bobtail ring

Making spirits bright

What fun it is to ride and song

A sleighing song tonight

Single bells Single bells

S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In a one horse open sleigh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되고 계신가요? 즐거운 캐롤송 들으며 멋지게 장식해 보는건 어떨까요?

저 노래엔 하나 숨겨진게 있습니다. 뭐 찾아도 그만 안찾아도 그만입니다

오늘은 잠들지 않을겁니다. 제 달력에는 25일이 없어서 전 24일에 자서 26일에 일어나야 하거든요(2일동안 잠들지 않았습니다).

다크서클이 점점 더 저그 크립 퍼지듯 온몸을 점령해갑니다.

"으윽!"

녀석을 밀쳐내고는 뒤로 물러선다. 순간의 그 감촉은 짜릿하게 내 신경에 와닿는다. 유혹하는듯 붉은 그 입술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알고올의 냄새도 같이 풍겨내고 있었다. 섹시하다. 이렇게 가져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가져도 되잖아. 참을만큼 참았으니까.

녀석은 내 손을 움직여 아까처럼 자신의 가슴에 내 손을 올려놓는다. 그것만으로도 녀석은 흥분했는지 숨결을 내뱉으로 몸을 이상하게 비틀었다.

"어…어서…으…"

축축하다. 하지만 소름끼칠정도로 짜릿한 기분이었다. 땀에 젖어 녀석은 몸의 실루엣이 모두 비쳐보이고 있었다. 안고싶다.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안아주고 싶다. 그만큼 녀석은 사랑스러웠다.

"뜨거…뜨거워…"

더운지 몸을 비틀던 녀석은 갑자기 잠옷을 벗어던졌다. 속옷차림의 녀석은 그 남은 속옷들마저 벗어던지려 하고 있었다. 그 손을 간신히 잡아내며 나는 힘겹게 말했다.

"더워?"

-끄덕

아직 미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의사표현을 할줄 아는걸 보니…

"그럼 목욕해 목욕"

"하아…하아…"

나는 녀석의 의사는 묻지 않고 거실로 끌고간 다음 욕조에 던지듯이 앉혔다. 엉덩이가 아픈지 눈물을 찔끔 흘린 녀석은 날 멍하니 바라본다. 욕조에서 빠져나오려는지 허우적대는 모습이 왠지 멍청해 보였다. 아직 물도 없는데…

화장실 불을 켜자 녀석의 모습이 더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래, 부정하지 않겠다. 사실 원하고 있다. 자제하지 말고 안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친구인데. 친구를 어떻게 그런 대상으로 볼수 있을까.

"목욕하고 나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가능하다는건 반쯤 눈치채고 있었다. 저런 정신으로 목욕을 여유있게 즐길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아아아…아…"

녀석은 이내 욕조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걸어오려는듯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녀석은 욕조에서 채 나오지도 못하고 자기 말에 자기가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턱

"위험하잖아!"

녀석은 몽롱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러니까 꼭 좀비같다. 느려터져서는 사람한테 달려들기만하는 좀비, 하지만 왠지 좀비에 비교하기엔 너무 예쁘다는게 탈이었다. 녀석은 날 떼어놓더니 바로 속옷을 벗었다.

"하아…하…"

작게 중얼거린다. 목욕하려면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건가? 이상하다. 저녀석 뭔가 흥분제 비슷한걸 먹은것 같기는 한데 왠지 느낌이 다르다. 그저 몸이 뜨거운것 뿐인가? 아니면 욕망이 제어할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가?

다시 욕조에 녀석을 눕혀놓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선처리가 힘들었다. 게다가 내 호흡도 점점 가빠지고 있다. 흥분하고 있는건가. 분홍색의 그곳에 시선이 자꾸만 간다. 미끌미끌한 액체로 젖어 있었다. 조금만 더 본다면 덮쳐버릴것 같다

-쏴아아아

따뜻한 물이 나온다. 결국 목욕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난 성인군자가 아니다. 공자나 석가모니같은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이렇게 적나라한 여체를 보고 욕망을 참을수 있을만큼 수양이 깊지 못하다. 게다가 지금은 더더욱 심했다. 어째서 이녀석이 겉만 여자인걸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흥분하는거지?

설마 나도 먹은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난 그런것따위 먹은적 없다.

"하으으…아…안아줘…이상해… 아…"

녀석은 점점 애타는듯한 목소리로 날 부른다. 그건 나에게도 커다란 충동이었다. 어차피 내일이 되어서 뭐라고 해도 어쩔수 없었다고 하면 되잖아? 그걸로 충분할텐데, 게다가 저녀석은 처음도 아니고…

순간, 나에대한 혐오감이 머리끝까지 솟아오르는것 같았다. 처음이 아니라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건가 나는? 

"아윽…으…하…"

녀석은 견딜수 없는지 오른손을 그 부분에 가져가더니 이내 애타는 신음성을 내기 시작했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온몸에 받으면서 녀석은 자위하고 있었다. 욕조에는 점점 더 물이 차오른다. 내 욕망도 내가 견딜수 없을만큼 차오른다. 견딜수 없다.

"하, 하악! 응!…으…"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지 녀석은 애타는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저렇게나 원하는데, 저렇게나 안아달라고 하는데 왜 참아야 하지? 욕조에 물이 거의 다 차올랐을때, 나는 인내의 끈을 끊어버렸다.

-촤아악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간다. 물이 넘치며 밖으로 흘러나온다.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하고있는건지 인식할수 없었다. 지금 내 눈에는 내 몸을 끌어안으로 밀착해 오는 녀석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이상하다.이상하다.이건 이상하다. 분명히 이상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녀석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입술이 나에게 겹쳐져온다. 난 무슨짓을 하는거지? 나는 무슨짓을 하는거지?

이건 미쳤다. 미쳐버렸다. 아니, 나도 미쳐버렸다.

키스는 서툴렀다. 나는 그저 녀석을 탐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작게 몸부림치는 녀석의 양팔을 붙잡고 다리를 벌렸다. 내 밑에 깔리듯이 눕혀진 녀석은 물속에 몸을 맡기고서는 애타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하아…하아…응…"

참지 못한다. 이미 인내의 끈은 예전에 사라져버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으으윽!"

-툭

삽입과 함께,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나는 당황함에 그상태로 몸을 멈췄다. 아니나다를까. 녀석은 교성을 지르며 몸을 떨고 있었고 녀석의 그곳에서 나온 피가 물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으…이…응…"

녀석은 삽입 자체만으로도 미칠듯이 몸을 떨며 괴로워했다. 절정에 달했는지 몸을 떤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황함과는 달리 내 몸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몸은 뇌의 통제를 듣지 않고 있었다.

"아윽…아…으…"

처녀? 처녀? 처녀였나? 그렇다면 김선우가 했던 말은? 뭐였지? 거짓말인가? 아니, 그보다 성현이 형은? 뭐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야. 뭐야…

마치 더럽고 기분나쁜 함정에라도 걸린듯 칙칙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하아악! 응! 히…아…아…응…"

따뜻한 물과 녀석의 피부는 소름끼칠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녀석의 몸에 사정해 버렸다.

"흐으으으읏!!……아…"

녀석은 날 끌어안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녀석은 아까처럼 애타는듯한 눈빛은 보내지 않고 있었다. 만족스러운듯, 몸을 축 늘어뜨리고 숨을 고를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괜찮지 않았다. 녀석의 흥분이 나에게 옮겨오기라도 했는지 나는 사정을 하고서도 계속해서 녀석을 원했다. 한번으로는 만족할수 없었는지 나는 녀석의 몸에 다시 삽입했다. 이미 욕조의 물은 피로 붉어져 있었다.

고민따위는 뇌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그만…으윽! 아! 아윽! 아, 아파!"

내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녀석을 괴롭히자 한 말이었다.단편적인 기억들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만해…아으!으… 그만… 흐으… 윽!"

녀석은 울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짜내며 몸을 비틀었다. 녀석이 제정신을 차렸든 그렇지 않든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흥분을 주체할수 없었다. 미친듯이 녀석을 원하고 있었다. 또다시 정신을 차리자 나는 녀석을 침대에서 안고 있었다. 

어째서 먼저 안아달라고 했으면서 이제는 거부하는거지? 몸부림치며 날 거부하는 녀석을 강제로 찍어눌러놓고 행위를 계속했다. 계속해서 비명을 질려대는 녀석의 입을 막아버리자 녀석은 다시 울었다. 마치 보고싶지 않을걸 봤다는 듯이

"악! 으… 으윽! 흑! 이이…익!"

녀석은 개처럼 엎드려서 날 받아내고 있었다. 괴롭다는듯이, 눈물도 말라버렸는지 괴로운 신음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뭐지, 이렇게나 사정해놓고서도 아직 부족한 건가. 녀석의 그곳은 하얀 액체로 더러워져 있었다. 강한 조임에 몇번이나 사정했는지 모른다. 내가 왜, 내가 왜 이녀석을 가만히 놔두었을까 하는 후회가 갑자기 밀려왔다.

"그, 그만… 찢…어져…악!… 하으윽!"

녀석은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선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선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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