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2/22)

"야, 야! 일어나"

"으, 응?"

익숙한 목소리, 김선우가 날 깨운다. 뭐지? 설마 잠들었던 건가? 나도 모르게 잠들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내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자면 어떡하냐"

"으으… 나 졸려"

눈꺼풀이 엄청나게 무겁다. 이러다간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것 같은데…

"우리집 가서 잘래?"

"어? 멀잖아…"

"여기서 우리집까지 별로 안걸려"

"으으…"

졸려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겟다. 녀석의 손길에 이끌려 노래방 밖으로 나선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을텐데… 아깝지도 않은가?

추위에 살짝 정신이 든다.

"으읏… 추워 얼마나 걸려?"

"요 앞이야"

으음…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이유는 뭐지… 선우는 내 손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잠들려는 날 부축하며 집으로 향한다. 얼마 안 남았다라… 으으, 하여튼 춥다.

길가로 나오자 졸린 눈을 하고 눈을 깜빡거리는 나를 사람들이 신기한듯 쳐다본다. 술취한 것처럼 보일까? 

"나 잔다"

"자지마, 여기가 어딘데"

"몰라… 이상하게 자꾸 졸려"

이럴리가 없다. 잠이 아무리 깊게 들었어도 이렇게 추우면 정신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잠이 깨기는 커녕 점점 더 졸려온다. 누구 아는사람 만나기라도 할까봐 걱정스럽긴 하지만 너무 졸려서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삑삑삑삑

녀석이 집의 문을 연다. 두번째 보는 거지만 왠지 익숙하다. 자는둥 마는둥 하며 끌려오듯이 오는것도 지쳐버렸다. 바로 잠들어 버리고 싶은데 녀석이 내 신발을 벗긴다.

"정신좀 차려봐, 어디 아픈 사람처럼 왜그래?"

"으응… 몰라"

결국 난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흐음…"

태영중학교 앞, 밀려나오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옷을 입고있는 한 학생이 교문쪽으로 향한다. 누군가를 찾고있는듯 그 눈빛은 지나가는 학생들 얼굴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살핀다. 하지만 그 학생이 찾는 사람은 없는듯 계속 앞으로만 걸어갈 뿐이다. 

지나가는 태영중학교 학생들이 그 학생을 보고 수군거리지만 학생은 개의치 않는듯 그저 걸어가기만 한다.

이윽고 그 학생이 교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 학생은 찾고자 하는 사람을 발견한듯 그자리에 멈춰섯다.숨이 멎을 정도로 예쁜 여학생…학생이 그 여학생을 부르려는듯 손을 들려는 찰나였다.

-퍽!

"아! 왜때려…요"

"새끼야 씨부렁 거릴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는거야… 알어?"

"응?"

학생은 반대편에 뜻하지 않은 사람을 보았는지 놀란듯 눈을 빛낸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학생이 찾던 사람이 그 학생을 보더니 놀란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는 것이었다.

"김선우?"

학생이 나즈막하게 중얼거린다. 그 김선우라 칭해진 그 학생은 여학생에게 고개짓을 했고 그 여학생은 사라져 가는 김선우라는 학생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피식

"둘이 만나기로 했던 건가?"

김샛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학생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모처럼 학교까지 빠졋는데…'

-털썩

잠든건지 기절한건지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든 수현을 자신의 방 침대에 눕힌 선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무거운 편은 아니다. 가볍다. 하지만 완전히 업다시피해서 여기까지 데려오니 엄청나게 무거운것 같았다. 도대체가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데 잠드는건 어디 매너인지… 시간은 별로 아깝지 않지만 왠지 무시당한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아…"

무턱대고 데려오긴 했지만… 자신이 왜 땡땡이까지 치면서 이녀석을 보러 온 건지… 선우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매력인지 마력인지 모를 분위기는 보는 사람을 홀리게 만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손이 수현의 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잠든 녀석에게 이상한 짓 할 정도로 하고싶은건 아니다. 

-덜컥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물을 틀자 따뜻한 물이 세차게 쏟아진다.

-쏴아…

내일일은 생각하기 싫다. 그저 오늘, 오늘만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짜증나게 하고 미치게 만드니까. 자신은 쾌락주의자다. 다른건 다 필요 없다. 그저 쾌락, 그걸 느끼고 싶다. 이미 자신의 인생에 의미따윈 없으니까. 허무해도 좋다. 아니, 허무해야한 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어찌 흘러가든 알바 아니니까.

세수를 하고 나온 선우는 곤히 잠들어 있는 수현을 살짝 바라보았다. 방 안은 더운데 옷정도는 벗겨 줘야겟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약간의 장난성도 가미되었다.

선우는 수현의 양말부터 시작해서 마이와 치마, 셔츠까지 속옷만 빼고 모두 벗겨버렸다. 새하얀 나신을 봣을 때는 절로 침이 넘어갔지만 살짝 눌러 참았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헛걸음했다는것 때문에 왠지 더 지친다. 게다가 엄청 추워서 얼른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

"……"

누군가 집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익숙한 얼굴… 하지만 전혀 반갑지는 않은 얼굴… 그러고 보니 시간이 된듯도 싶었다.

아는척도 하지 않았다. 아는척할 이유도 없는 데다가 나와는 털끝만큼의 관계도 없는사람 아닌가. 

"……"

새빨갛게 부르튼 얼굴, 얼마나 기다린 거지… 반대쪽인 태영중까지 갔다온 데다가 도중에 잠깐 지체한 시간까지 모두 약 2시간 정도… 먼저 와서 기다렸다는걸 생각하면 대략 3시간 정도를 이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린 셈이다.

나에게 말은 걸지 않는다. 그저 날 쳐다보고만 있을뿐… 나도 무시했다.

-달칵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관하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다 지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후우…"

-툭

마이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집어던진다. 셔츠와 바지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기분이 좋을리 없다. 기다리겟지, 바보같이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내가 못이긴척 문 열어주면 들어와서 뭐라고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가겠지.

이번엔 절대 열어주지 않을 셈이다.

보일러를 틀고 차가운 방이 달아오르길 기다린다. 냉장고에서 핫바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 핸드폰 안갖고 다니지…"

정작 최신형 핸드폰을 들고다니지는 않고 집에서 썩혀두고만 있는 수현이 녀석이 생각났다. 아까는 김선우를 따라갔지… 지금 뭘하고 있을까.

[뭐하냐]

선우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컴퓨터는 정작 전원을 켜놓고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릴뿐… 지금 수현이하고 있겠지. 뭐 별 느낌은 없었다. 이성같은 감정 느끼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녀석을 믿을수 없었다.

수현이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이 된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이미 그런 사이일 수도 있다.

답장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잡념만 더 많아진다. 어째서 답장을 하지 않는지… 왜 그런 건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든다.

게다가 문 밖의 인기척에 대한 걱정도… 

세시간 정도가 지났다. 갔겠지, 지금 추위가 어느 정도인데 그렇게까지 버티고 있다가는 얼어죽고 말 거다.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는데 자꾸만 그 생각이 떠나지가 않는다. 갔을 테지만 자꾸 확인을 하고 싶어진다.

결국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옷을 대충 입고 문을 열었다.

"……"

"……"

나와 눈이 맞는다. 뼈속까지 얼어버릴듯한 찬바람이 들어온다. 잔뜩 쭈그리고 앉아서 귀는 이미 얼어버린듯 새빨갛게 변해있는 모습이었다. 

"들어와"

-스륵

일어난다. 상당히 추웠는지 어깨와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망할… 왜 대체 버티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왜, 도대체 왜. 그냥 가면 될걸 왜 추운 문앞에서 다섯시간을 버티고 앉아있느냔 말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좋아지기는 커녕 짜증날 정도로 미워지기만 하는데.

"왜 왔어? 새.엄.마"

거긴 당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야.

내 말에 새엄마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더니 소파에 앉는다. 앉으라고 한적 없는데… 엄청나게 추워 보인다. 아직도 추이가 가시지 않았는지 부들부들 떨면서 새엄마는 봉투를 하나 꺼내놓는다.

-휙

봉투를 열자 언제나와 같은 2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새엄마는 별로 두껍지도 않아 보이는 외투 몇벌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수현이와 비슷한 정도의 체구, 예쁜걸 좋아하는 아빠답게 어리고 예쁜 여자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나는 앉지 않았다. 저 여자와 같이있다는 자체가 불쾌하다. 내 엄마의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다는게 참을수 없이 짜증난다. 열살때… 열살때 봣던 그 광경이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한데 저 여자가 내 엄마라고 하는건 우스운 광대놀음보다도 못 되었다.

어제의 수현이와 같이 꽁꽁 얼어있는듯 추워하는 기색이지만 나는 그때처럼 감싸주지 않았다. 수현이는 수현이일 뿐이고 이 여자는 나와 상관없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보다도 못한 악연일 뿐이니까.

"이젠… 엄마대접 해주면 안되겠니?"

하긴, 6년이다 6년. 6년이든 60년이든 새엄마는 새엄마일 뿐, 진짜 엄마가 될수는 없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어딜봐서 당신이 내 엄만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줘, 내가 고칠테니까. 응?"

짧은 스커트 차림의 새엄마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나가, 당장 나가. 그거면 충분해. 여기서가 아니라 우리 집안에서 나가서 다른데 가서 살아, 그거면 충분해"

"그, 그런…"

부족한가?

"돈이 문제야? 아빠한테 말해서 줄께, 1억이든 10억이든 줄테니까 당장 나,가 돈때문에 아빠한테 붙어있는거 아니었어?"

"그, 그런… 절대 아니야"

아니기는, 아니면 뭣때문에 40이 넘은 아빠 곁에 아직 20대 중반밖에 안된 여자가 붙어있어? 망할,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엄마? 엄마라고? 나랑 8살 차이밖에 더 나? 니가 8살에 날 낳은거냐 그럼? 장난해? 엄마소리 듣고싶은거면 애 하나 빨리 싸질러서 그새끼한테나 들어, 엄한 놈한테 엄마소리 듣고 싶어하지 말고, 새엄마란 소리도 아까우니까"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충격받은듯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 맺힌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까짓 거에 마음 약해질 정도였으면 난 이정도까지 하지도 않는다.

"꺼져, 꺼져 얼른.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다신 나타나지 마, 하! 아빠도 좋긴 좋겟네 이런 영계랑 떡치면서 좋대? 좋더냐고, 어?"

"그만해…그만"

아예 귀를 틀어막아 버린다. 나에게 저 여자는 그저 몸파는 창녀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돈주면 누구한테도 벌려주는 그런 걸레, 그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새엄마의 턱을 치켜올렸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좋아? 40넘은 아저씨랑 하니까 좋아? 아버지뻘 사람이랑 하니까 좋냐고, 낯짝도 두껍다? 사람들이 뭐래? 돈에 팔려갔다고 하지? 그놈 아들한테 이렇게 모욕당하는것도 좋아? 씨발년, 돈이면 다 된다 이거지? 80먹은 노인네도 괜찮다 이거지? 걸레같은 년, 당장 꺼져 우리 엄마는 최소한 너처럼 그…"

"그만해!"

듣기 싫었는지 새엄마가 소리친다. 듣기 싫으면 어쩌라고? 내가 한 말이 틀린가? 돈에 팔려온게 아니야? 아버지뻘인 사람이랑 사랑에 빠지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 난 좋은줄 알아? 빛 대신 팔려와서, 한참 고등학교 다니고 있는데 끌려와서 강제로 결혼하는게 기분 좋은줄 알아? 니가 내 마음 알아? 엄마는 울고, 아빠는 내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는 결혼식을 네가 알아? 고등학교 다니면서 애들이 나한테 걸레같은 년이라고 놀릴때 그 기분을 네가 알아? 임신해서 강제로 끌려가서 낙태수술 할때! 네 말대로 진짜 아들 낳겠구나 싶었는데! 내 동생이랑 똑같은 나이대 녀석한테 걸레라는 소리 듣는 기분 네가 아냐고!!"

순간 쏟아진 말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하니까 적응하려고 했어! 매일 밤마다 날 괴롭히는 네 아빠도 이해했어! 날 여자로 대해주니까, 최소한 너처럼 날 그렇게 욕하지는 않으니까, 잘해주려고 노력하니까, 미안하다면 매일 사과하는것도 아니까! 그런데 넌… 날 걸레라고 욕하고, 상대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래도 아들이니까. 네가 내 아들이 됐으니까 잘 해주려고 했어,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했어, 그런데 넌 날 이해 못해? 네 엄마가 너 열살때 죽었다는건 알아, 그런…"

"닥쳐!"

더이상 듣고있을수 없었다. 내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면서 지껄이는건 싫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내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어떻게 알아!"

"꺅!"

나도 모르게 멱살을 잡아버렸다. 셔츠의 단추가 힘없이 뜯어진다. 여자를 때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투두둑

"꺄악!… 으…"

"흐으…흐으…"

새엄마를 바닥에 내팽개치자 찢어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셔츠의 단추가 모두 뜯어진다. 적나라하게 흰색 브래지어가 보인다. 여자를 때린건 실수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여자를 때리는건 나 자신으로도 잘못한 일이었다.

서럽게 우는 새엄마의 눈물이 자꾸만 짜증날 정도로 내 가슴에 박힌다.

"씨발……"

"흐윽…으…윽…"

연재주기는 이틀에 한번.. 이것도 그나마 약속은 힘들듯 합니다.

그나저나 새엄마?

"……"

-덜컥

내가 잘못했다는건 안다. 새엄마가 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인지는 알지도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한참 울때 달래지도 않은 내가 진짜로 매정한 놈이라는것도 안다.

그런데…

"여기서 당분간 지낼거야"

누구 맘대로 그런걸 결정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반박할 말도 없다.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이 있기에… 지금 새엄마는 목욕을 하고 나서 어디서 났는지 내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락호락하게 있게 놔둘 내가 아니다.

"어째서? 여기 왜 있으려고 하지? 새엄마 좋아해 주는 아빠한테나 가면 될것이지"

"……"

그런 편이 확실히 나을 것이다. 서로 껄끄러운데 못할 소리 하면서 같이 있고 싶지도 않은 데다가 뭐가 좋다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랑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잔다는 말인가?

하지만 새엄마는 그렇지 않은지 또다시 침울한 표정이 되어가고 있다.

"싫어"

"뭐가?"

"네 아빠… 싫다고"

하긴, 좋아할 리가 없지 나같아도 당장 죽여버리고 싶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뭐? 그 아들인 나는 좋은가?

"밤마다 미치겠어, 놓아주질 안잖아…"

"……"

정상적인 모자간의 대화는 아니다.

아빠는 맨날 새엄마를 붙잡고 늘어진 건가? 그 나이에 정력도 좋지, 망할, 그럼 어쩌라고 그래도 내 마음이 바뀌지는 않는다.

"네 보호 차원에서 가있는다고 하니까 허락해 주셧어… 쪽팔려서 다시 가지도 못하잖아…… 잠깐만 있다가 갈게, 응?"

"……"

할말이 없었다. 남편이 자꾸 밤마다 들이대서 아들 집에 도망오는 엄마라니… 상상하기도 싫다. 게다가 왜 이런 여자랑 한 집에서 같이 있어야 한다는 그 자체가 불쾌하다.사정을 알았기에 방금 전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난 새엄마가 부르는 것조차도 짜증난다.

"누구 맘대로 있으래? 내가 이집 주인인데, 누구 맘대로 여기 있는걸 결정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잖아… 정현아, 딱 한달만…"

한달이라… 한달? 한달은 커녕 나는 한시간도 더이상 있기 싫은데?

"내가 밥도 다 하고 빨래도 다 할께, 그러니까 딱 한달만 있을께. 응?"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아무리 싫다 해도 거절하기 힘들어진다. 매일 빨래하고 밥하는게 어려운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점점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으응…"

머리가 띵하다. 별로 오래 잔것도 아닌것 같은데 이렇게 머리가 아픈건… 왠지 몸에 이상이 있는 걸까.

일어나니 왠지 익숙한 분위기의 방안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 봤더라… 잠시 기억을 헤집는 동안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린다.

-덜컥

"아…맞다"

김선우… 그녀석의 집이었지, 들어온건 김선우였다. 여느때와 같은 왠지 불량해 보이는 얼굴과 왠지 세상과 타협을 불허하는듯한 삐딱한 자세는 내가 가장 증오하는 부류에 속하는 일진, 하지만 왠지 밉지 않은 녀석…

"잠 다 잤냐?"

"어… 좀 졸려 아직"

녀석은 어딘가로 걸어가더니 뭔가 열어서 나에게 던졌다.

"커피?"

"마셔"

캔커피였다. 차가운건 싫은데… 뭐 목도 말랐고 하니 마셔주는것도 나쁘진 않을듯 하다.

-팍

녀석도 하나 마신다. 그러고 보니 선우의 손에 뭔가 이상한게 들려있다. 길쭉하면서도 왠지 울퉁불퉁한…

"그거…뭐야?"

"아, 이거?"

그것은 상당히 선정적인 모양새의 물건이었다. 갈색빛의 왠지 익숙하지 않은 그것은 흔히 바이브레이터(vibrator)라고 하는… 다른말로 하자면 여성용 자위기구인 셈? 끝에 달린 전기선의 스위치가 조금 마음에 걸리는 구조다.

"그건 왜 갖고온거야?"

"실험해보려고"

"에에??"

그런… 일반 남성 성기모양의 그게 내 안에 들어와서 지이잉~ 하면서 떠는건 별로 원하지 않는 모양새다. 그런건 동영상에서 본걸로 충분하다고.

"장난이야, 설마 흥분한거야?"

"시끄러"

녀석은 그러더니 멀리 휙 집어던진다. 장난인건 알겠는데 저게 왜 있는거지? 저녀석이 저걸 쓸리는 없고…

"아빠방에 있던데?"

"에에?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는 놈들의 부모는 죄다 저런 모양새인 거지?

자위기구를 소장하고 있는 부모라니… 아빠가 저런걸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난 상당히 절망스러울 거다.

그나저나 전에 선우 저녀석 자기가 엄마 돌아가셧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어떻게 아냐?"

"그럼 내가알겠냐?"

그렇게 말한 녀석은 옆으로 가더니 컴퓨터 전원을 켠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몰랐는데… 나 속옷차림이었다.

"너, 너 나 옷 벗기고 무슨짓 했어?"

"어"

설마… 자는 나를 XX하고 XX하게 한건 아니겟지? 가끔은 그런거 사진으로 찍어놓고 협박하면서 강제로 관계를 가지게 되고 결국에는 노예화 되어서 충실하게 주인님의 명령을 듣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는 변태자식도 있다고 하던데…

아니, 그보다 나한테 무슨짓을 했다고?

"뭐, 뭐한거야? 설마 벗겨놓고 사진찍거나 그러는건… 그런다음에 성인사이트에 올리는건 아니겠지?"

"장난이야, 그냥 벗겨놓기만 했어"

그럴리가… 벗겨놓고 구경만 할리 없는데… 몸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뭐 볼건 그때 다 봤으니까.

게다가 본인이 안했다는데 믿지 않는건 좋지 않다.

"일로와, 같이 성인의 세계를 탐구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져보자고"

"유익할리 없잖아"

그러면서도 나는 녀석이 틀어놓은 동영상을 보려 가까이 다가간다. 서양류였다. 금발 여자가 흑인 남성의 그것을 입으로 빨고 핥는… 왠지 내가 이 몸이 되다 보니 거부감이 생기는 장면이었다.

"펠라치오 나 아직 한번도 못받아봤는데"

"어쩌라고"

"해줘"

-퍽

나는 대답보다는 녀석의 머리를 한대 치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 큰게 다 들어가는게 신기할 정도로 여자는 잘 했다. 저렇게 큰게 내 몸에 들어온다고 생각을 한다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모니터를 돌려놓은 녀석은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아앙~ 아앙! 아!"

"오오"

여자가 흑인의 그것을 견디지 힘든지 교성을 흘리며 같이 허리를 흔든다. 의외로 흑인의 그것은 끝까지 잘만 들어간다. 나도 이녀석과 했을때 저런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니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흥분되냐?"

"아니야"

"아니긴 뭘…"

-훌렁

"앗! 무, 뭐하는 거야!"

"흥분했네~"

녀석이 브래지어를 슥 내리더니 살짝 발기되어 솟아있는 내 그것을 보더니 말한다. 추워서 그런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여기는 더울정도로 따뜻하다.

브래지어를 추켜올려 가슴을 가리면서도 내 눈은 화면을 떠날줄 모른다.

"항! 응! 아앙! 아아앙!"

절로 녀석의 부풀어 있는 바지에 시선이 간다. 순간, 고개를 돌린 녀석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왠지 모를 당황감에 나는 뒤로 슬슬 물러나 이불을 덮고 누웠다.

"나, 난 그만볼래. 혼자 열심히 봐"

하지만 어깨 너머로 들리던 신음소리는 곧 멈춰버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귀쪽에서 야릇한 아픔이 전해져 온다. 녀석이 내 귀를 깨문 것이었다.

"흥분했어?"

"아, 아니라니까!"

난 이상하게도 당황하면 목소리가 커진다. 이번에도 역시 그건 여지없이 발동했다. 내 뒤에 누워서 무슨 짓이 하고 싶은건지 녀석은 내 허리를 끌어안는다.

"귀엽다니까"

"으읏! 하, 하지마!"

녀석이 내 목을 한번 핥더니 입술을 맞춘다. 목에 피가 몰리는지 뜨겁다. 입술이 닿은 부분은 더더욱 뜨겁다. 

"그, 그만해…"

선우의 손이 팬티 속으로 파고든다. 순간의 아찔한 느낌이 뇌를 하얗게 비우기 시작한다.

주기는 슬슬 늦어지죠? 폴리모프는 야설입니다. 야설에 개연성을 바라지는 말아주세요.

ps.마마물로 갈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들어온다 들어온다 들어온…

"아윽!"

아프다. 하지만 좋다. 머리를 하얗게 비우는듯한 쾌감이 점점 더 날 달아오르게 한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녀석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뿐…

"흐윽…흐…앙…아"

"좋아?"

"시끄러어…응!"

날 뒤에서 끌어안고 허리를 움직이는 선우는 내 귀를 깨문다. 나는 옆으로 누워있고 녀석은 내 뒤에서 내 허리를 붙잡고 날 계속 자극한다.

"아악…으…하응…응…"

왠지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뒤에서 자꾸 그런 감각이 느껴지자 불안하다. 앞으로 떠밀려가는듯한 느낌, 쾌감과 함꼐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몸이 흔들리지만 왠지 불안하다.

"아으윽!"

녀석이 그걸 끝까지 밀어넣는다. 끝부분이 닿는게 느껴진다. 미쳐버릴것 같은데 녀석은 날 놓아줄 생각을 하지는 않고 오히려 내 가슴을 움켜쥐고 내 몸에 점점 더 밀착해온다.

"하앙! 아! 으윽… 앙! 아앙…"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다. 아프다. 찢어질것 같은 아픔이 정신을 잃으려는 내 마음을 붙잡는다.

"아, 아파! 하, 조, 조금 살살…"

"나도 아퍼 임마"

"흐윽! 흥! 앙!"

쾌락을 동반한 고통이 느껴진다. 내 목을 녀석이 또다시 핥는다. 지금 느낌도 그렇지만 애무도 날 미치게 할 정도로 쾌감이 강렬하다. 녀석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진다.

"아악! 아! 아파~앙! 응! 하앙!"

"귀엽다니까…"

녀석은 중얼거리더니 날 엎드리게 하고 자신은 날 뒤에서부터 끌어안는다.

"남자여서 조금은 아깝네"

"뭐, 뭔소리야…응! 하앙!"

내가 말을 꺼낼때마다 녀석은 허리를 끝까지 깊숙히 집어넣는다. 아직은 성관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낼 정도로 내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다. 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춘 녀석은 날 또다시 괴롭히기에 여념이 없다.

"조금 더 귀엽게 소리질러봐"

"으응…으…저질…아앙"

지금 팔로 내 몸을 받치고 엎드려 있는것도 상당히 힘들다. 조금만 계속하면 무너져 버릴것만 같은데… 이 상태로 힘을 뺀다는건 무리다. 게다가 그곳이 끝부분에 닿을 때마다 자꾸 힘이 들어가게 된다.

"무리하게 넣으니까 좀 아프네"

"하, 하앙…그마안…"

말도 잘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내 양쪽 유두 끝을 만지던 녀석이 갑자기 손에 힘을 준다.

"아, 아악! 그만… 살살하랬잖아… 아앙…응"

뇌리를 스치는 하얀 쾌감, 나는 점점 절정에 치닫고 있다. 미칠것만 같은 쾌감에 나는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으, 으… 나 갈…것 같아…아앙! 흐…응…아앙…하앙…"

애써 억눌러 참는 날 생각하지도 않는지 녀석은 날 괴롭힌다. 그럴수록 점점 더 쾌감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자기도 그러면서 점점 더 달아오르는지 허리의 움직임을 강렬하게 한다.

"아아…아앙…아아아악!! 그, 그만해! 아아아악!! 꺄아아악!!"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쾌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녀석도 갑자기 허리의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것을 급하게 빼낸다. 녀석은 빼낸 그걸 잡고 한두번 흔들더니 갑자기 하얀 액체를 나에게 뿜어냈다.

천장을 보고 돌아누운 내 온몸에 하얀 정액이 튄다.

"아아…으…"

그곳을 타고 흐르는 액체가 느껴진다. 배와 입술에 묻은 정액의 끈적끈적한 느낌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쾌락은 긴 여운을 남긴다. 녀석은 내 위에 겹쳐지듯 눕는다. 

"비켜 무거워…"

"후우…"

-털썩

내가 밀어내자 녀석은 옆에 눕는다. 입 안으로 정액이 조금 흘러들어온다. 쓴맛, 그것을 손으로 훑어내리자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손에 묻어있는게 느낌이 좋지 않다.

"읏…"

"많이도 나오네"

"손 치워… 기분 이상해"

녀석이 내 그곳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꺼내더니 말한다. 투명한 액체가 흥건하게 묻어있다. 성행위에 대한 부산물에 불과하다. 침대시트는 흥건하게 젖어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건 손가락에 묻은 액체를 핥는 녀석의 행동이었다.

"으…그걸 먹냐"

"신기하냐?"

"당연하지"

녀석은 갑자기 씨익 웃더니 위치를 바꿔 내 아래쪽으로 몸을 옮긴다. 왠지 점점 더 불안해지는 나의 예감은 확실히 맞아떨어졌다.

"가, 간지러워 그만해! 읏!"

녀석은 아직도 애액이 흘러나오는 나의 그곳에 입을 대고 핥기 시작한다. 뜨거운 혀가 그곳을 핥을 때의 느낌은 아까의 관계때 느꼇던 쾌감보다 뒤지지 않을 정도다. 혀를 내 안에 넣고 이곳저곳 핥는 모습은 아까 보던 그렇고 그런 동영상에나 나오는 포즈였다.

잘못된 성지식과 잘못된 행동… 그것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우리들이기에 잠깐 행복할수는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찾아뵙게 되어 대단히 송구스럽... 돌은 치워주세요

등가교환이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얻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짧지만 무서운 말이다.

난 지루한 일상에 변화를 얻은 대신 때로는 견딜수 없을만큼 고통스럽고 때로는 즐거운 일상을 얻게 되었다.

이 변화가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나도 알수가 없다. 아마 저주에 더 가깝지 않을까. 얼굴이 이렇게나 예쁘게 변해버린 대신 근친상간이라는 뉴스나 TV에서 간간히 보던 걸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어이없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또 하나 잃은게 있다면 순결이라 말하겠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난 여자가 아니고 순결에 대한 중요성 등등에 생각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원치 않는 관계라면 조금 싫을 뿐.

아직 뭔가 치러야 할 대가가 더 남아 있다면… 그게 지금까지 겪은 것보다 훨씬 커다란 대가라면… 

난 그걸 견뎌낼수 있을까.

"후움…"

"이제 좀 놔"

목욕을 하고 나온 뒤에도 계속 이 모양이다. 날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옷이야 뭐 아까 벗어놓은 교복을 입어서 좀 구겨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쪼금은 된다.

"잠깐만"

그러면서 녀석은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미친놈… 성도착증도 아니고 왜 가슴에 이리 집착하는 건지…

"그만좀 비벼 변태야"

누가 보면 상당히 야한 모습이겠지만 난 전혀 기분따위 좋지 않다. 그래도 이놈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아… 너 여자친구 없냐?"

"없어"

왠일이실까? 잘나가는 놈이 여자친구 하나 없고. 하긴, 그 성격 보아하니 아주 뭣빠지게 괴롭히다가 차버렸거나 혹은 차였거나 했겠지.

"몆번 해봣어 지금까지?"

"많이"

개새… 난 한번도 못해보고 이모양 이꼴이 됐는데, 확 갈겨버리고 싶어진다.

"입김불지마 뜨거워"

기분나쁘다. 내 말에 녀석이 드디어 내 가슴에서 얼굴을 떼더니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했는지 내 목에 손을 올린다.

"왜"

"키스마크…생겼다"

"에에??"

서둘러 일어나 거울로 향하자 너무도 선명한 입술자국이 목 언저리에 나 있었다. 쇄골 부분인지라 옷을 껴입는다면 그렇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일 학교가야 하는데… 누가 보면 어떻게 하냐…

"어쩔꺼야!"

"뭘 어째"

"이거 몰라? 내일 누가 보면 어쩌라고"

녀석은 능청스럽게도 '그게 뭐?' 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자기일 아니라 이거지… 개새끼…

"누가 물어보면 남친이 그랬어라고 그러면 되잖아"

"…미쳤냐"

"남자친구 누구냐고 그러면 김선우라고 그러면 되고… 으응~안그래?"

"닥쳤!"

-퍽!

나는 베개를 녀석의 안면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뒤로 나자빠진 녀석은 다시 일어서더니 재수없는 썩소를 지으며 날 바라본다. 내가 미쳤다고 저런 도둑놈이랑 그짓을 했지…

"그건 됐고, 너 집에 안가냐?"

"몆신데?"

"시계 뒤에 있잖아"

뒤를 돌아보자 동그란 원형 벽걸이 시계가 째깍거리며 움직이는게 보였다. 8시30분… 겨울이라 그런지 창밖은 어둑어둑하다. 늦게 간다고 해서 문제될건 없지만 그래도 추운데 혼자 가는건 좀…

"바래다 줄까?"

"……"

혼자가는건 싫고 게다가 춥기까지 하다. 난 입은건 별거 있지도 않고 가다가 얼어죽기 싫은데다가 집으로 가는동안 지루한 추위를 어떻게 달랠까… 게다가 집에 가면 엄청 추울텐데…

"요 앞까지만"

"그럼 가자"

녀석은 점퍼를 걸친다. 그리고서는 어디서 꺼내왔는지 새까만 철목도리를 내 목에 둘러준다.

"이거면 그 키스마크 가려질 거야, 주는거 아니다. 내일 가지러 갈꺼야"

"그 말은 내일 또 학교 앞에서 뻐기겠다는 얘기?"

"당연하지"

왠지 학교에 올 구실을 만든것 같다는듯한 이 느낌은 뭘까… 하지만 관심없는척 하면서도 키스마크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다는 것에 대해 왠지 뿌듯하다.

게다가 걱정할 필요 없어졌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그렇고…

"가자"

-슥슥

"손 치워"

목도리를 두르고 나서 저택인지 집인지 모를 거대한 건물을 나서는데 녀석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더니 내 머리에 대고 코를 킁킁거린다. 개같이… 개같은놈…

-삐익

버튼 비스무리한걸 누르자 문이 열린다. 왠지 신기하다. 밖으로 나가자 추위가 벌써부터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기 시작한다. 작은 정원을 지나 대문을 열자 어둑어둑한 밤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어…춥다"

"얼어 뒤지겠네"

나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추위에 약한것 같은가 보다. 정현이는 추위도 안타던데… 약해빠져가지고는… 에? 내가 언제부터 둘을 비교하는 거지?

"이쪽이지?"

"응"

그러면서 우리 집쪽을 가리킨다. 찬바람이 불자 자연적으로 입이 목도리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침묻히지마"

"안묻혀…"

빌려줘놓고 생색내기는… 더러븐놈. 괜히 침까지 뱉고 싶어진다. 가로등 불빛만이 어두분 밤길을 밝혀주고 있다. 사람도 없고 있는 거라고는 주차되어있는 차들뿐, 왠지 뭐라도 튀어나올것만 같다.

"너… 부모님 언제 들어오셔?"

"안들어와"

녀석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는다.차갑게 부는 겨울바람 때문인지 녀석의 얼굴이 전에 없이 더더욱 차가워 보인다. 괜히 미안해지려고 한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빠는 2~3일에 한번씩 들어오고 엄마는 죽었어"

"미, 미안해…"

괜한걸 물어봤다. 이녀석도 마찬가지로 정현이같이 엄마가 안계신 건가…

"뭐 괜찮아. 내가 아홉살때 돌아가셧으니까 이젠 얼굴도 생각 안나… 사진도 없고"

어째서 사진도 없는거지? 결혼사진조차 찍지 않았다는 얘긴가 그럼? 

녀석은 씁슬하게 미소짓는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왜 내 주위에는 이런 애들만 있는 걸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괜히 뻘줌해진다. 인적없는 거리를 아무말도 없이 걸어간다는건 혼자 걷는것보다 뻘줌했다.

"그런데 딱 하나 기억나는거 있어"

"뭔…데?"

"엄마 몸에서는 맨날 무슨 향기가 났어… 뭐라고는 딱히 얘기 못하겠는데…"

아아… 생각난다. 그때 나한테 엄마 냄새가 난다고 그랬었다.

"좋은 향기였는데…"

그러면서 녀석은 내 어깨에 팔을 올린다. 그러더니 내 머리에 얼굴을 대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너한테서 나…엄마 냄새가"

"그…래?"

"지금껏 어떤 향수에서도 못 맡아봤는데… 일부러 향수같은거 다 사서 맡아보고 그랬는데… 못찾겠더라고"

그러면서 녀석은 또다시 숨을 깊게 들이쉰다. 왠지 누가 본다면 상당히 민망한 장면이었을 거다. 그리고 기분도 좀 이상하다. 차가운 공기는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는지 녀석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

"그래서… 좀 더 같이있고 싶다고"

"으응…그러냐?"

안타까운 사연은 알겠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이런짓 당하는건 별로 내키질 않아서…

하얀 입김이 공기중에 퍼진다. 대로변에 들어서면서 녀석은 어깨에 올린 팔을 내린다.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어딘가 낯익은 사람들이 얼핏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이젠 잊어야 할 기억의 조각들…

당분간은 폴리모프만 쓸 계획입니다. 이유는 필받았기 때문이죠.

감동의 50회 돌파로 축하빵 리플은?

"잘가"

"그래, 낼보자"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계단, 뭐 흔히 판자촌이라고 불리는 곳. 갈곳없어 세상 끝에 선 사람들이 내몰리는 곳이다. 녀석이 사는 으리으리한 저택하고는 많이 다른 곳.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행복한 곳은 아니다.

녀석은 돌아간다. 집으로…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내 발목을 붙잡는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불빛?'

집에… 누군가 있었다. 부모님일 확률은 없었다. 오빠겟지. 어째서 지금 저기 있는지는 내가 알리 없지만 어쨋든 방 안에는 오빠가 날 기다리고 있는게 분명했다.

마주치기 싫다. 지금 집에 들어가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를것 같은 불안한 감정이 들었다.

들어가지 말까.

어차피 지금 시간이라고 해 봐야 9시, 11시까지만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너무 춥다. 갈곳도 없고… 

"아!"

갈곳이 없긴 왜 없어…

"하아… 추워"

목도리 해도 추운건 어쩔수 없다. 마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지만 그래봐야 주머니 속이 더 차갑다. 지금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 있다. 정현이네… 거기라면 11시까지는 버티다가 갈수 있겠지. 

체력이 약해진 탓인지 가방이 무겁다. 든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자꾸만 뒤로 처지는것 같다.

-딩동 11층입니다

도착했다. 나는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뛰쳐나와서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맑은 벨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그런데…

[문 안열어?]

[아씨! 내가 열든말든 뭔상관이야!]

정현이 목소리하고 낯선 여자 목소리… 누구지? 이 집에 들어올 여자는 거의 없을텐데… 설마 여자친구 집에 데려와서 XX하고 XX한 짓을 하는건 아니겠지?

[택배일수도 있잖아]

[그런거 안시켰어]

[그럼 내가 연다?]

[안돼!]

-덜컥

"들어오…세…요"

"에?"

문을 열고 나타난건 언젠가 한번 본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현이 새엄마… 아, 아줌마는 날 모르겠구나.

그런데 왠지 아줌마라고 부르면서도 꺼림칙한건 너무 예쁘고 어려보여서일까…

갑작스런 여자의 등장에 놀랐는지 아줌마는 문을 열어주면서도 왠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이다.

"허억!"

정현이는 날 보고 엄청나게 놀라며 안색을 굳히기 시작했다. 물론, 나에게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고 갑자기 찾아온 여자애에게 놀랐을 새엄마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고…

"누구…야?"

그래도 지금은 밖에서 있기엔 추워서 못견디겠다. 나는 그냥 신발 벗고 방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 버렸다.

"아, 아는 여자애…"

"그냥 아는?"

하긴 나같아도 그냥 아는 여자애가 한밤중에 찾아오면 상당히 황당할듯하다. 게다가 집에 부모님도 계실때 오면…

"저기… 나는 정현이…"

-힐끔

그러면서 아줌마는 정현이 눈치를 살핀다. 정현이의 딱딱하게 굳어있는데다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자니 쪽팔려서 뒈질것 같다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모야"

……속일걸 속여야지. 난 다 알고있는데… 저녀석이 새엄마를 무진장 싫어한다는건 잘 알고 있기에 얼마나 겁을 줬을지… 아직 스무살 초중반인데 저렇게 겁을 주니까 나이 먹고도 아들한테 겁을 먹고 저러는거 아냐…

"네에…"

"그런데… 정현이 여자친구?"

"아냐!"

순간,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 보는것도 은근히 즐겁고…

"여자친구에요"

"에에? 너 미쳤냐!"

"아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납득했다는 표정인거야! 이 나이에 이런 야심한 시각에 만약 자기 없엇으면 둘만 있는 상황인데 그때 일반적으로 일어날 상황이 상상되지 않는건 아닐테고… 설마 그걸 알면서도 저렇게 납득하는거면 상당히 위험한 사람이다.

그때야 만남이 짧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사람이리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그래서 정현이랑 같이 있으려고 온거야?"

"그, 그건 아닌…"

"여자친구 아니라니깐! 너 미쳤냐 임마!"

"정현이 너 여자한테 임마가 뭐야"

"끼어들지좀 마!"

"흑!"

저 흑! 은 뭐하자는 거야 도대체… 새엄마라면서 저렇게 나약해 빠져도 되는거야?

이거 장난이 심했나. 정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우리 애인 맞잖아, 왜 숨기는 거야?"

"컥!"

우는 척하던 아줌마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이었다. 재미있다 이거… 진짜로

"미, 미, 미, 미쳤냐!"

녀석은 진짜로 당황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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