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10/22)

-벌떡

"꺄아악!"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자 주변은 그저 평상시와 다른없이 온화했는데 나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덜컥

"왜, 왜그래 뭔일 있냐?"

정현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내가 걱정스러운듯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저, 저기 바퀴벌레가…"

나는 순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던듯 녀석은 영~ 믿는 표정이 아니다.

"…넌 바퀴벌레도 씹어먹을 놈이잖아"

"시끄러! 나도 연약…하다고!"

스스로 양심에 찔려서인지 말을 버벅댔다. 역시 나는 거짓말하고는 안맞아도 뭐가 안맞는 놈이다. 정현은 땀에 젖은 내 몸을 보더니 이상하다는듯 한번 눈길을 주더니 나가버렸다.

-덜컥

아…꿈이었나. 하필 꿈을 꿔도 그런 꿈을 꾸다니… 꿈은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비춰준다고 하는 말도안돼는 얘기가 어디선가 생각났다. 절대 그럴리 없다. 난 그런 생각 한적 없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도 그런 꿈을 꾸었다는 그 자체가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팬티도 조금 젖어있다.

나 진짜 음란하게 되어버린 걸까… 망할

꿈속에서 내게 걸레라고 하던 정현… 왠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얼른 잊자, 꿈은 꿈일 뿐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꿈인 것이다… 아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으아! 몰라"

-푹

다시 침대를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왠지 지금은 일어나고 싶지 않다.

연재주기가 상당히 늦어집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광참했는데 오베 못가니까 좌절중...이라는

"야 일어나"

-덜컥

눕기가 무섭게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어른거린다.

"왜에"

"언제까지 자빠져 있을건데"

"내맘이지"

-휙

녀석은 이불을 들추며 나에게 일어나라는듯한 눈짓을 해보였다. 내가 도대체 왜 일어나야 하는건데… 

"추워!"

"씻고 자, 자려면"

"으씨"

성화에 못이겨 얼른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고 비누를 칠해서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온몸에 생기는 끈적끈적함이 마음에 안 들었다.

목욕하는것도 나쁘진 않겠지.

옷을 벗고 브래지어를 풀고 팬티를 벗은 다음 샤워기를 틀자 바로 따뜻한 물이 나왔다. 보일러의 효과인가.

-쏴아아아아

아… 따뜻하다. 가끔은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고싶을때도 있다. 이번엔 타월에 비누를 칠해서 몸 구석구석에 비누를 칠했다. 거울을 보니 절묘하게 중요한 부분만 가린 모습이 왠지 야릇하다.

"야! 머리는 감지 ㅁ…"

"……"

순간, 녀석이 뭐라 말릴 새도 없이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고 보니 문을 안 잠근 상태였다. 녀석은 순간 당황했는지 내 몸을 슥 훑어보았다.

"꺼져어어어!!!"

-퍽!

옆에있던 비누가 정확히 녀석의 안면을 강타했다.

"컥!"

-덜컥

녀석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버렸다. 왜 자꾸 이런일만 생기지… 누군가 자꾸 우리 둘을 엮어놓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미안하다고! 몆번을 말해야 되겠냐!"

옆에서 녀석이 소리치건 말건 난 딴청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용서해줄 껀데! 내가 벗을까? 그래 내가 니꺼 봣으니까 너도 내꺼 보면 되겠네"

-슥

내가 계속 딴청을 피우자 녀석은 진짜로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는 사각팬티에 손을 대서 자기의 그것을 드러내려 하는 순간에 나는 녀석의 손을 탁! 붙잡았다.

"뭐, 뭐하는 거야!"

"내꺼 보여주려고"

"누가 니 냄새나는거 보고싶대!"

"그럼 어떻게 해줘야 분이 풀리는데?"

뭘 해달라고 할까… 지금 내가 가장 하고싶은게… 뭐지?

"영화보러가자"

그냥 얼버무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그것도 괜찮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왠 영화?"

"괴물 개봉한거 알지?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돈은 니가 내고"

"거울보면 될걸 가지고 뭐하러 비싼돈 들여서 그걸 또 보러 가냐…"

-퍽!

작게 궁시렁거리던 녀석의 배에 내 주먹이 꽃혔다. 왜 저놈은 뭘 하든간에 날 갈구는 거지??

"닥치고 옷이나 입고와"

나는 그 잠옷을 벗고 원래 입고왔던 옷들을 주섬주섬 주워입었다. 녀석도 옷을 갈아입으러 갔는지 방 안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흐읏…춥다"

날카로운 칼바람이 바람에 노출된 내 얼굴과 허벅지를 휩쓸고 지나간다. 영화관까지는 약 20분 거리, 버스를 타고가도 되지만 기다리는 시간에 걸어가는게 낫다고 판단해서 걸어가기로 결정한 터였다.

"그러네…"

녀석은 추위도 안타는지 그저 멀뚱멀뚱 서있으면서 그냥 춥구나~하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가자"

"응"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걸어갔다. 아파트 단지내의 사람들이 우리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주로 쳐다보는건 나겠지만… 설마 우리 둘은 애인사이라거나… 그런걸로 착각하는건 아니겠지?

"뭐가 이렇게 춥냐"

"장갑 끼고 나올걸 그랬나 보네…"

"넌 안추운것 같은데?"

"너 말이야 너"

그 와중에 나까지 걱정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겟습니다요. 하여튼 어제 들렀던 수퍼를 지나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잠깐 버스를 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안오면 그것도 손해다 싶기에 그냥 걸어가기를 택했다.

아파트는 시 외곽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시내, 즉 북적거리는 곳이다. 영화관으로 가는 거리가 단축되기는 하지만 추운건 어쩔수 없다.걸음을 재촉하며 영화관으로 향하는데 슬슬 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야, 영화에서 이럴때는 옷도 벗어주고 그러는데… 무드도 없는 개매너 새끼"

"너 국어샘 말 못들었냐? 여자가 피하지방층이 두꺼워서 더 안춥다잖아"

"남자새끼가 성전환 했냐 그걸 어케 알아! 아는척하고 있어…흐으…"

몸이 부르르 떨린다. 공기에 노출된 허벅지와 귓볼이 시리다. 지나치는 곳곳에 커피숍,분식집 등등 여러 건물이 보인다.

"흐음…"

-툭툭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뜨겁다. 나는 조금 더 주목받을까 싶어서 정현이 녀석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변태새끼 어딜만져"

"……"

녀석의 눈총에 나는 시선을다른곳으로 돌려 딴청을 피웠다. 분명 엉덩이를 만졌을때 그 딱딱한 느낌… 바보같이 여기서도 그런걸 가지고 다닐 줄은… 칼침맞을일도 없으면서 괜히 등뒤불안에 떨 필요는 없잖아.

"추워추워추워"

춥다고 지껄이는 날 보고 사람들이 자기 옷이라도 벗어주겟다~!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만좀 쳐다봐라… 닳는다. 내가 주변을 슥 둘러보자 불필요한 시선들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사람들이 꽤 많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그래도 추운건 어쩔수 없다. 모두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도 각자의 갈길을 가기에 바쁘다.

"추워…"

"그만좀 추위타령해 춥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더 추운거야"

"그래도 추워"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그래도 추운건 추운거다. 추운걸 춥다고 생각해야지 덥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이상해진다.

-슥

"뭐, 뭐하는겨"

"춥다니깐"

나는 녀석의 팔에 내 팔을 감았다. 흔히 팔짱낀다고 하는 식이다. 주변 사람들(남자)이 전부 정현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떤놈은 나한테 한눈팔다가 같이가던 여자에게 머릿통을 한대 얻어맞았다.

"안 빼냐"

"싫어"

나는 감은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녀석은 포기했다는듯 앞으로만 걸었다. 뭐 난 시들해졌기에 낀 팔을 풀었다. 조금 더 격렬한 반응을 원했는데… 꺼져! 싫어! 등등의… 녀석의 팔이 가슴에 닿을때의 느낌은 정말 좋…… 아무것도 아니다.

"후~하~후~"

-슥

"아?"

손이 너무 시려서 입김을 불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내 손을 낚아채듯이 붙잡았다.

"춥다며"

"응…"

딱히 반항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추웠던 데다가 녀석의 손이 기분좋은 따뜻함을 내 손에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날 위해 그동안 손을 뜨겁게 해 놓고 있기라도 하는 양 녀석의 손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날 위해서 마련된 손… 이런걸 원했던 걸까. 나는 그 손을 더더욱 세게 잡았다. 세게 잡은 만큼 주위의 시선들이 더더욱 강렬했다. 허벅지가 달아오르는것 같다. 불쾌하다.

"아아아! 손 부러져"

그런말을 하면서도 녀석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영화관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어떻든 간에.

분량을 슬슬 늘려가는것도 좋겟죠?

요번화는 스포일러성 내용은 없으나 영화 '괴물' 을 보실 분들이라면 안 보시려면 안 보셔도 좋습니다.

"배고파"

"응? 뭐부터 좀 먹을래?"

영화관 내부의 음식점… 롯데리아로 날 끌고 들어간 녀석은 날 테이블에 앉혔다. 역시나 점심때인 만큼 줄선 사람들도 많았다. 온풍기가 틀어져 있다지만 아직도 오른손은 차가웠다. 귀도 깨질듯이 아려온다.

"흐으…춥다"

어딜가나 사람들 시선은 느껴진다. 앞 테이블에 앉은 한 남자가 자꾸 테이블 아래쪽으로 시선을 준다. 끈적끈적한 시선이 내 몸을 훑고 올라온다. 저 남자가 내 팬티를 보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자꾸만 든다.

여자라는건 이렇게 불편한 거구나… 내가 그동안 이런 시선으로 여자들을 바라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새삼 들었다.

-툭

녀석이 돌아오다가 그 테이블에 앉은 남자를 의도적이었는지 실수였는지 어깨를 툭 쳤다. 인상을 쓰며 정현을 바라본 남자에게 정현이 시선을 한번 주었다. 그 시선에 겁먹었는지 그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겨우 중3짜리 포스에 눌리다니… 세상살기 힘들겠다.

"뭐 시켰어?"

"불고기"

"맨날 그거냐"

별로 나쁘진 않다. 새로 나오는 메뉴는 거의 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맛이 없었다. 차라리 많이 먹던 불고기버거가 났다.

"돈은 니가 내는거지?"

"……식충이"

"…시끄러"

그거엔 상관없이 아직도 엄청나게 춥다. 입김을 후후 불며 양손을 비비자 녀석이 마주잡은 두 손을 꼭 움켜잡았다.

"왜그래 너… 관심있어?"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을 무시하고는 이번엔 깨질듯이 아픈 내 귀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왜 쓸데없이 다정한 척 하는걸까… 별 사심은 없어 보인다. 그냥 추워하니까 감싸준다는 느낌… 뭐 나쁘진 않다.

이번엔 빨갛게 부르튼 내 볼을 양손으로 감싸준다. 깨질듯 아프던 귀는 괜찮아졌다. 추워서 느낌도 없던 볼도 괜찮아졌고… 하지만 문제는 내가 원치않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겟다.

녀석의 엄지손가락이 내 입술에 닿는다. 왠지모를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침의 꿈 때문일까… 이상한 생각이 자꾸 난다. 녀석은 전혀 사신 없는 평소모습인데… 나만 이상해진것 같다.

주변의 질투반 부러움 반 섞인 시선이 우리 둘에게 꽃힌다. 잘생긴 편인 녀석의 애인으로 보이는 나에 대한 질투겟고 내 애인으로 보이는 녀석에 대한 남자들의 질투겟고 말이다.

[불고기셋트 콜라두잔 나왔습니다]

"갔다와"

녀석이 일어나고 나는 내 볼을 감쌋다. 아직도 약간은 춥다. 또다시 그 남자의 시선이다. 기분 더럽다. 내가 날카롭게 한번 쏘아보자 그 남자는 딴청피우는듯 시선을 피했다. 저런놈들 때문에 여자를 쳐다만 봐도 성희롱이라는 어이없는 범죄가 성립되는 거다.

"시작해?"

"응"

개봉관… 엄청나게 넓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만원이었다.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처음 시작할때 나오는 광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TV가 5.1채널이니 뭐니 해도 영화관만큼의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주연이 송강호지?"

"응"

사실 이 영화는 주연이랄게 없다고 들었다. 여기 나오는 일가족이 주연인 셈이다. 나는 영화 시작하기 전 광고를 제일 싫어한다. 괜히 긴장감 조성에 태클을 걸뿐 아니라 기분나쁘게 정신까지 흐트러 놓는…아니 더 싫어하는게 있다.

-부스럭 부스럭

뭐하러 왔는지 과자봉진지 팝콘봉진지 부스럭거리면서 먹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보내고 옆사람이랑 결말얘기하고 그런 놈들이 제일 싫다. 지금은 과자 부스럭거리는 초딩놈들이 있는듯 싶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은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떠들고 과자먹고 짜증나게 한다. 

"좀 시끄럽네…"

물론 이건 영화가 시작하고 커다란 사움드에 묻히기 마련이지만 왠지 기분 더러운건 어쩔수 없다.

-티틱

노란색 조명등이 꺼지고 어둠이 극장 내를 지배했다.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필름이 돌아가면서 showbox라고 씌어져 있는 네모난 상자가 툭 떨어졌다. 뭐 이런건 딱히 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웃기게도 옆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려던 나는 왠지모를 허전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에?"

"시끄러 여기 영화관이야"

내 새된 소리에 정현이 내게 주의를 주었다. 여긴… 커플석이었다.

말로만 듣던 커플석에 앉게될 줄은…

"시작했다"

[XXXX년XX월XX일 용산 미군기지]

[내가 먼지를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잊었나?]

처음부터 한강에서 괴물이 나올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왠 미군기지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청소하도록 하죠]

[다 버려]

[예?]

[버리라고 했네]

왠지 재수없어 보이는 인상의 백인이었다. 왠 약병을 들고있는 그 늙은 백인은 그 병을 한번 쓸어보더니 먼지를 툭툭 털고 그 병을 내려놓았다.

[그건 포르말린입니다만…]

포르말린이라… 처음 듣는건데… 뭐지?

[정확히는 포름알데히드지]

[그런데 버리라는…]

[버리게]

"포르말린이 뭐야?"

"독극물"

내 물음에 정현은 한마디로 대답했다. 주변에도 몰랐던 사람이 있는지 정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독제나 방부제로 쓰이는 건데 먹으면 죽는다고 봐야지"

[그런데 버리면 한강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는데요]

[이봐, 한강은 아주 넓어……버리게]

왠지 웃기는 놈이었다. 저런 독극물을 버리면 한강 물을 마시는 사람은 죄다 죽는 거잖아? 영화니까 다행이지 저런 일이 진짜로 있었다면 저 미군기지는 서울사람들한테 작살나도 진작에 작살났을 거다.

다음 장면은 방독면을 쓴 명령을 받은 사람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그 포름알데히드라는 액체를 씽크대 비슷한 곳에 버리는 장면이었다. 치이익~하고 올라오는 기체가 메스꺼움을 자아냈다.

-쿵 쿵 쿵 쿵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괴물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밟고 뭉개고 한강은 아수라장이 되어서 이리저리 흩어지는 사람들은 서로 살려고 발버둥친다.

-♪~♬…쿵!

어떤 여자가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다가 괴물에게 밟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으으…무섭다"

"난 별로"

무섭다는 말을 하자마자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사실 하나도 안 무서운데 괜히 뻘줌해졌다…

사람들 한 무리가 트레일러 속으로 대피하는데 미처 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고 닫힌 문을 두드렸다. 안의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왠지 위기상황에서는 극도로 이기적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의 특성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여자는 결국 계단 옆으로 뛰어내리고 뒤따라오던 괴물은 의외로 트레일러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쿵! 쿵!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뭐 다음 장면은 한 미국사람과 박강두(송강호)가 트레일러로 접근해서 문을 열러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도와 트레일러의 문을 열었다. 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의 손을 보니 왠지 이상한 상상까지 들었다.

"괴물 저거 물고긴가?"

"그렇겟지? 돌연변이"

"망둥이같이 생겼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망둥이같이 생겼다. 꼬리는 질질 끌고 다니면서 앞발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모습하며 왠지 미련해 보이는 입은 괴기스럽긴 했지만 앞지느러미로 귀엽게 튀어다니는 망둥이와 왠지 비슷했다.

녀석은 피식 웃으며 스크린을 주시했다. 어이… 무시하는 거야? 난 진지하다고, 미친듯이 뛰어오는 괴물과 그에 맞서 대응하는 외국 청년하고 표지판을 뽑아서 이리저리 휘두르는 박강두… 왠지 바보들같다.

포르말린을 버린 사건은 2000년 실제로 있던 사건이라는군요.

"하아…재미있었다"

돈 아깝다(내가 낸건 아니지만)…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엄청 재미있었다. 특히 박해일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박해일은 살인의 추언에서도 나온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제 뭐 할까?"

"음…"

뭐 딱히 생각해 놓은건 없다. 그보다는 내일 있을 여성으로서의 첫 등교에 더 신경이 쓰인다. 저번에 가긴 했다만 그때는 다른 녀석들이 없었으니 뭐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우선 지금 가장 하고싶은건… 음… 뭐 딱히 없다.

"그냥 돌아다닐까?"

"미쳣냐? 추워"

추워서 얼어죽을것 같은데 밖에 돌아다니는건 더더욱 싫다. 뭐 어딘가 갈데가 있으면 좋겠는데…

영화관 밖으로 나서자 히터의 바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차디찬 냉기만이 내 볼을 스치듯 지나간다. 졸라춥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제각기 옷깃을 여미고 자기 갈길을 간다. 뭐 연인도 있고 솔로도 있다. 언제봐도 솔로는 안습이다. 나도 그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으…손시려"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부터 손이 차다. 그렇다고 또 손잡아주는 그런 낯뜨거운 광경을 바라는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해도 난 남자다. 아깐 추워서 어쩔수 없었던 거고… 혹시나 지나다니다 아는사람이라도 만날까 이리저리 살피는 내가 왠지 우습다.

"어? 영화보고왔냐?"

"어, 너는?"

"엣…"

순간 안녕~ 이라고 할뻔한 내 혀를 억지로 붙잡았다. 서태훈, 3학년 같은 반으로 거의 폐인 수준으로 컴퓨터광인 녀석이다. 뭐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정현이 녀석과는 꽤 친하다고 들었다. 물론 같은 반이라 낯이 익었지만 태훈이는 지금 내 얼굴을 모르는게 당연하다.

"그런데…여자친구?"

"아, 아 아니에요!"

"응, 아니야, 그냥 아는 친구야"

"그게 여자친구지"

"아니라니깐요!"

아니라니까 저게 왜 자꾸 들이대는거야… 내 말에 태훈과 정현은 당황했는지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덩달아 주변 사람들까지 날 쳐다본다. 그 시선이 내 드러난 허벅지에 가 있다는 것만 빼면 시내 한복판에서 소리지르는 이상한 여자를 쳐다보는 것 외에 사심은 없겟지만…

"그, 그래 아니구나…"

"그, 그럼 내일보자?"

"어…그래"

녀석이 내 팔을 붙잡고 서둘러 걸어간다. 왠지 당황한듯한 모습…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죽어도 남자와 애인따위가 되는 상황은 바라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된다면 칵 죽어버릴 테다.

"그렇게 크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임마"

"그만큼 아니라는걸 강조하고 싶어서였지, 오해할 뻔했잖아?"

"내가 그렇게 싫냐?"

그걸 꼭 대답해야 알아먹나…

"대답 안해도 알잖아?"

"……씁"

녀석은 똥 씹은 표정으로 혼자 휙 가버리려는지 팔짱낀걸 뿌리치고는 혼자 걸음을 빨리했다.

"삐쳣냐? 남자새끼가"

"누가 삐졋대?"

소심한놈, 겨우 그말 한마디에 삐지기는… 이래서 친구들 돌봐주기는 피곤하다. 하나같이 다 손이 많이 가는 것들 뿐이니 정말…

그렇게까지 삐진건 아니었는지 내가 다시 팔에 손을 넣자 그렇게 거부하는듯한 기색은 없었다. 그나저나 손이 시려서 정말 죽을것 같다. 계속 비비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어느정도 하다보면 오히려 더 차가워지는 법이다.

"춥냐?"

"많이"

보면 모르나… 어? 어디 가는겨?

녀석은 날 이끌고 어디론가로 들어갔다. 흠… 잡화점이었다. 의류,모자에서부터 사탕에 귀걸이, 학교생활에 꼭 필요한 필기구까지… 없는거 빼고 다 있다는 그 잡화점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온거지?

"장갑 하나 사라"

"사주게?"

"값아야지"

뭐 말만 저러지 진짜로 값으라고 하는놈은 아니다. 돈많아서 좋겟다 자식아. 그래도 친구사인데 받을때마다 느끼는 미안함과 부담감은 조금 견디기 힘들다.

"나 돈없는거 몰라? 이 내가 몸팔아서라도 값을까?"

"그렇게 하던지…"

순간 주위의 시선이 전부 나와 녀석에게로 몰렸다. 애인사이인듯한(인정하기는 싫지만)사람들중 여자가 몸을 판다고 하고 남자는 팔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건 꽤나 충격이었을 거다.

하지만 뭐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그렇듯이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다시 다 되돌아갔다. 살짝 식은땀이 났지만 뭐 사람들의 시선같은거 신경쓰고 살면 골치아프다.

"이거 어때?"

벙어리 장갑이었다. 원래 귀여운 것들이 그렇듯이 남자가 하면 눈꼴시리지만 여자가 하면 귀여운 진리가 성립되듯이 기둥에 있는 거울에 장갑을 낀 내 모습을 보니 겨울에 찾아온 봄의 천사…는 아니고 하여튼 예쁘긴 했다.

벙어리 장갑도 검은색이라 검은색 일색인 것도 있고…

"넌 안사?"

"괜찮아"

쯧, 왜 자기 몸 걱정은 안하는지… 저것도 그때 일 이후부터 생긴 자기학대 비슷할 걸까… 안됬긴 안 되었다만 너무 자괴하며 사는것도 좋지는 않다. 내가 위로해줘봐야 상처만 더 늘 뿐이니까 나는 그냥 평소대로 평범하게 대해주는게 낫다.

"이건 뭐야?"

장갑같이 생기긴 했는데 그 뭐냐… 손 들어가는게 두군데나 있었다. 어찌보면 양말같기도 했다.

녀석이 그걸 받더니 이리저리 돌려보고 자기가 손에 끼워 보기도 하더니 중얼거렸다.

"커플장갑 같은데?"

"별게 다나오네"

사고싶은마음따위 눈곱만치도 없다. 안그래도 배아픈 솔로들을 저런것까지 끼고 다니면서 배아프게 할 못된 심보같은건 안 키우니까. 그러고 보니 이 비슷한걸 끼고있느 사람들이 좀 보인다. 그냥 애정과시용이지, 실용성은 없을것 같다.

"난 이거나 살래"

지금 끼고있는 검은색 벙어리 장갑, 외부는 광택이 없는 검은색 가죽으로 되어 있지만 내부는 부드러운 그 뭐냐… 개털…은 아니고 하여튼 털 비슷한 걸로 되어 있어서 상당히 느낌이 좋았다.

녀석은 또 날 질질 끌고가서 장갑을 억지로 벗긴 뒤에 얼마냐고 물었다.

"이만구천팔백원입니다"

29800… 흔히 쇼핑몰에서 3만원 싼것처럼 내보일려고 이백원 깎아서 내보이는 그런 가격이었다. 사실 이만구천팔백원이 더 비싸보인다는건 왜 모르는 걸까. 게다가 거스름돈 200원같은거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녀석이 삼만원을 지불하자 이백원이 돌려준다.녀석은 지갑에 동전을 집어넣더니 내 손을 붙잡고 장갑을 끼워준다. 왜 자꾸 애인인척 하는거야 넌! 설마 관심있는 거냐? 

상대해 달라면 못할것도 없지만 왠지 그러면 더이상 친구로 대하지 못할것 같다.

"애인이신가봐요?"

"예?…"

"아닌데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정현이 아니라고 했다. 점원은 좀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살짝 미소지었다(영업용 미소로). 

설마 아직도 삐져있는 거야? 애도 아니고 그런걸로 삐지기는… 초딩이냐!

머뭇거리는 날 끌고 잡화점인지 팬시점인지를 빠져나온 녀석은 이번엔 어디로 가는지 슬슬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가?"

"그냥"

"목적지 없어?"

이런 개념없는 도보는 심신을 지치게 할뿐 아니라 정신적 피로까지 함께 준다. 그러므로 난 이런 무뇌아적 플레이는 사양이야… 라고 말하자 녀석은 갈데 있냐고 물어왔다.

없다… 딱히 할말이 없던 나는 그냥 녀석이 가는대로 따라다녔다. PC방을 가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1시간이 1초같은데 그런 귀한 시간을 PC방 같은 데에서 소모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엇?"

"이정현, 어디가냐?"

"그냥"

김선우… 어제 약간 인연이 있던… 결코 평범한 인연은 아니었던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녀석은 날 알아보았는지 의외라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선우는 혼자가 아니고 늘 같이 다니는 무리 몆명이랑 같이 있었다. 전부 다 아는 얼굴들이지만 그것들은 나를 알리 없다.

나를 보고 왠지 구역질나는 시선을 보내는 놈들을 보니 눈알을 확 후벼버리고 싶었다. 저것들은 가면서 내 거기가 어떻고 빨X이 어떻다던지 하는 짜증나는 음담패설을 늘어놓을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소름까지 끼친다.

"둘이…알아?"

"너 수현이 알아?"

정현의 물음에 김선우는 왠지 뻘줌하다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했다. 나쁜 녀석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심하게 훑는듯한 눈빛은 아니다. 그저 내 바뀐 옷차림을 주목할 뿐이지…

"어디가?"

"그냥…"

선우의 짧은 질문에 정현이 짧게 대답한다. 선우는 왠지 김샛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일 보작 한 뒤에 스쳐지나갔다. 뒤에있는 것들의 눈빛… 아무래도 떨쳐버리기 힘들다. 변태놈들. 하긴, 내가 그럴 처지는 아니다 뭐 며칠 전… 정확히 3일 전 밤까지만 해도 나는 어엿한 그거달린 남자였으니까.

"눈…온다"

"진짜네"

하얀빛 눈송이들이 내 발치에 떨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우린 지금 공원을 걷고 있다. 공원 산책로를 둘이 함께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는 나도 모르고 녀석도 몰랐다. 그냥 걷고 있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하냐고 말하면 할말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TV나 들여다 보고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까만색 벙어리 장갑에 눈송이 하나가 소리없이 떨어진다. 묘한 색채대비가 왠지 예쁘게 보인다.

새까만 내 옷과는 너무 다른 흰색의 눈… 깨끗한 눈… 까맣게 변해버린 내 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내 몸하고는 어울리지 않아… 왠지 우울해진다.

"쌓이지는 않겟네, 이렇게 조금씩 오는거 보면"

"그러겟네…"

사실 난 쌓이는 눈보다는 그냥 이렇게 내리기만 하는 눈을 좋아한다. 신발이 젖어서 짜증을 일으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반쯤 녹아서 질척한 눈때문에 길이 더러워지는게 싫기 때문이다.

물론 눈이 소복하게 쌓여서 왠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건 역시나 좋아한다. 볼에 떨어진 눈송이가 차갑다. 왠지 운치있달까. 하지만 뭐 그다지 좋은 모양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춥냐?"

"조금…"

나도모르게 목소리가 소심해졌다. 이상할 정도로 친근하게…아니, 원래 이랬지만 내가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수도 있다. 내가 바뀐걸까… 아니면 이 녀석이 날 다르게 대하는 걸까… 아니, 둘 다일수도…

녀석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내 볼에 손을 가져간다. 따뜻하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공원에는 그나마 사람드링 있었지만 산책로에는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눈처럼 새하얀 하늘에서 작은 눈송이가 솜털처럼 흩날린다. 이 장면은 좀처럼 잊을수 없을것 같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겨울을…

어떤 의미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겟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남자로서 마지막으로 보낼수 있는 겨울… 그런 생각이었을까.

새빨갛게 부르튼 볼은 이제 감각도 없다. 녀석의 손길에 조금씩 녹고 있는지 잃어버린 감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차가운 귀에 온기가 전해진다. 따뜻함… 이대로 조금 더 있고 싶기도… 아니, 하지만 내 이성은 거부한다. 이대로 조금 더 있다간 진짜로 여자가 되어버릴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추웠는지 거부하지 못하는 내 자신도 조금 웃기다.

하지만 더 웃기는건 내 볼을 감싸주는 녀석도 자기 귀와 볼이 새빨갛게 부르터 있다는 것이었다.장갑을 벗어줄까 하다가 그만뒀다. 남의 보호같은걸 받기 싫어하는 녀석이다. 괜히 그랬다가 귀찮게 잔소리 듣기는 싫다.

"조금 앉아있다가 갈까??"

-끄덕

말을 하는데도 입술이 시리다. 추울때 자꾸 입술에 침을 바르다 보니 침까지 얼어붙는것 같다. 이래서 자꾸 겨울엔 입술이 갈라진다. 

"뭐가 이렇게 차냐"

"그러게"

눈이 조금 쌓인 벤치에 앉자 냉기가 확 올라왔다. 너무 추웠는지 나도 모르게 팔짱끼고있는 손에 힘을 주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이렇게 하니까 추위가 조금은 가셧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풀지는 않았다.

"하아…"

녀석이 내 양쪽 귀에 양손을 가져간다. 감각없는 귀에 혈색이 도는듯 깨질듯 아리던 아픔도 이제는 없다. 

"집에 갈래?"

"조금 더 있자"

집에 들어가기 싫다. 집에 있을 형……아니, 오빠도 그랬지만 지금은 왠지 지금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오빠가 싫은건 아니다. 아니, 나는 싫어하려고 해도 싫어할수 없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마주치기 싫다. 또다시 만나면 무슨 짓을 당할거라는 생각보다 오빠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리는건 그만큼 짜증나고 기분 더러웠다.

우린 또다시 일어나서 걸었다. 목적지라면 딱히 없었다. 공원을 빠져나와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 위해 오뎅과 떡볶이를 먹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먹기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별짓을 다 했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눈은 이미 그쳣다.

"재미있었냐?"

"간만에"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겟지, 여기는 나와 선우가 만났던 그 공원이었다. 눈앞의 편의점… 앙상한 가지만 내놓은 나무… 뭐 그때와 다르다면 내 눈앞에 서있는게 김선우가 아닌 이정현이라는 것이고 지금 내 손에는 따뜻한 캔커피 캔 하나가 들려있다는것 정도?

"기분은…좀 풀렸어?"

"……어?"

기분이 풀렸냐니… 그게 무슨? 나한테 뭐 잘못한거 있었나?

"기분 안좋아 보여서 하루종일 데리고 다닌거지, 아니면 내가 귀찮게 너같은 짐 데리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냐?"

"……"

그…런 거였구나… 내가 그렇게 기분이 안좋아 보였나? 하긴, 그러고 보니 같이 다니면서 복잡한 일은 어느정도 잊을수 있었다. 그래… 잘해준 이유가 내 기분을 다 풀어주려고…

"고마워"

"고맙긴, 당연한 거지"

왠지 감동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왠지모를 허탈함이 들었다. 단순히 그것뿐? 내가 기분이 안좋아 보여서 달래주려고 한 거… 그것뿐이야 단지? 

내가 왜 아쉬워하는 건지… 왜 실망하고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나중에 힘들면 전화해, 만나기는 힘들어도 전화하면 볼수 있을테니까. 잠자리 친구같은건 못해줘도 다른건 다 해주지"

-피식

"그래, 오늘 고마웠다 임마"

나는… 뭘 생각한거지.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는데… 난 지금까지 무엇을…

내 어깨를 두드리며 녀석은 집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밤거리가 무섭지는 않지만 왠지 혼자가 된 기분이다. 쓸쓸한… 왠지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귀신에 쫒기는 사람이 누군가 붙잡아두려는 것처럼… 하지만 부를수 없었다. 언제나 같이있는 '사랑' 이 아닌 우린 '친구' 니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 혼자가 무섭다는걸 인정할수 없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안심하게 되는 한심한 녀석이 되어버렸다는게 싫다.

"아아… 왜이래… 젠장"

발걸음이 무겁다… 따뜻한 캔커피의 온기가 어둠처럼 까만 벙어리장갑을 타고 전해져온다.따뜻한데… 이렇게 따뜻한데 왜 비어버린듯한 가슴속에는 그쳐도 한참전에 그친 눈이 아직도 계속 내리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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