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표본 그녀 1화 (1/8)

표본 그녀 1화 

웅---... 

낮고 부드러운 저음이 온몸을 감싸온다. 

대략 지금부터 3개월 전부터, 매주 토요일 심야에 나는 항상 이곳에 있어왔다, 이 환경은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골아 떨어지는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 이 중 저음도 환경 조성을 위한 히터 등 여러 기구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것을 나에게 알려오는 일종의 신호 같은 것이었다. 

시계에 비치는 광경은 포토샵 프로그램의 필터를 전체에 사용한 것처럼 뿌옇고, 눈앞에 간신히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정도만 가늠해볼 수 있었다. 

주말이 됐을 때에 열리는 이곳에서 심야의 자원봉사 ─ ─ ─ 시작은 사이가 가까운 지인에게 부탁했었던가? 아니면 내가 하겠다고 했었던가.., 이해의 일치 ─ ─ ─ 이른바" 가는 날이 장날" 인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뭐 그것도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처음엔 긴장과 수치심에 단시간도 버티기가 힘들었지만 여기에서 하루 이틀 밤 시간을 거듭해가며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부터는 습관이 됐다고 해야 할까..적응이 됐다고 해야 할까? 오령 같은 것을 깨달은 것으로 다음날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하거나, 마음에 드는 작가의 신간의 발매일 등 비교적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면서도 이곳에서의 봉사를 해낼 수 있게 되어, 몸과 생각을 따로 떼어 낼 만큼 안정 시키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다음 달에 다가온 조카의 생일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던 ─ ─ ─찰나 문득 눈앞의 형상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일단 선물 생각은 잠시 접어둔 채 눈앞의 풍경에 집중한다.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습은 여전히 흐렸지만 바로 앞의 카운터에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풍채 좋은 남자로 보이는 실루엣과 검은 양복에 싸인 여성처럼 보이는 작은 실루엣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희미한 실루엣이 이따금 건들 거리며 잔을 입에 옮기는 모습이 보인다. 

그 희미한 움직임에 희미한 모습에 숨은 색채가 가끔 엿보인다, 남성의 머리카락에는 조금 하얀 것이 섞여있고 여자는 꽤 가슴 이 푹 패인 노출이 높은 옷을 입고 있다. 

40대...?아니 50대 쯤 될까,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듯한 남자와 20대부터 30대의 아리따운 몸을 가진 여성 커플. 

여기에 오는 손님들로 판단해보자면 결코 드물지 않은 조합인데, 이런 과격한 페티쉬 바에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온다니 정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내가 두 사람이 파악 됐을 때부터 남자는 가만히 이쪽을 바라본 채 얼굴의 방향을 돌리지 않고 가끔 견과류를 입에 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는 잔을 양손에 쥔 채 이따금 이쪽을 보면서 나의 기분 나쁜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인지 금방 얼굴을 돌려 보였다. 

『 어때? 잘 만들어졌지?』 

『 네, 네 이거, 좀 뭐랄까..좀 과격하네요...하하하...』 

카운터에 놓여져 있는 마이크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쪽으로 전해져 온다. 

남성의 다소 흥분하고 들뜬 목소리에 여자는 역시..랄까 이른바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한 감정에 목이 멘 듯한 음색을 감추지 않았다. 

『 음.. 만든 건가요. 이거..?』 

무리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 여러가지로 성가시고 복잡한, 그런 사정이 있는 것일까, 여자는 혐오의 감정을 희미하게 내비치면서도 소심하게 대화를 계속한다. 

『 그렇지, 그래도 너무 진짜 같은가?  폐에서 심장 위에 대장 소장까지도 훤히 보이잖아? 소장은 그렇게 살짝 풀려 나와서 허공에 떠있군!』 

『...음… 헤에... 대단하네요..』 

여자는 얼굴을 홱 돌리고는 단숨에 한잔을 들이킨다. 

『 저기 오너! 그거 Y자 절개를 하는 것이죠?』 

『 네 저도 거기까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렇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 

내 일은 물론 이 바의 사정에 밝은 오너가 적당히 둘러댄다. 

『 저기 저기, 역시 그렇네요. 양쪽 쇄골을 따라 칼을 대고 가슴 한가운데에서 하반신 까지 쭉... 말그대로 Y자 글씨 모양이지?! 셔츠에도 노출되도록 깨끗이 절개해서 피부를 벌려놓고 있네. 아, 대단하다…. 이런 것 하나 집에 있었으면 좋겠군…. 』 

『...아, 하하하…』 

남성은 이제는 듣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이 소년 같은 말투로 중얼중얼 지껄인다. 

『 근데 오너, 내가 맨날 보면서 마음에 걸린게 있는데, 늘 팔과 다리들은 보이지가 않는데 옵션으로 따로 만들어 뒀다던가 하는 건가? 그 카운터에 전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러는데, 어떨까?』 

『 팔과 다리 말씀입니까, 장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오너라서 말이죠,. 』 

『 그래?...그러나 정말 이 조형품은 대단하네, 내장의 질감이라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이 이쁘장한 것이 아주 좋아. 좀 너무 피부가 번들번들해서 모조품이라는 느낌이 지나치다 생각하지만 말이야. 이런 예쁜 피부에 귀여운 얼굴인데 얼굴의 절반 정도 껍질 벗겨 버려서 근육이라던지 여러가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는군. 오너도 취미가 꽤나..우후후.... 』 

『...저..잠깐 화장실좀...!』 

예상대로 ─ ─ ─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는지 여자는 남자가 신나게 떠드는 사이에 잽싸게 자취를 감췄다. 

『 손님, 일행분에게는 조금 자극이 강한 것 같군요,. 』 

『 음, 그녀도 조금 그럴까...이런 거 괜찮다고 말하던데. 그런데 마스터, 역시 나한테 이 해체인형 팔았으면 좋겠는데…, 이거 정말 팔 생각은 없나?』 

아 드디어 나왔다. 

이곳 같은 나사 가 한 두개나 세개쯤 빠진듯한 페티쉬 바에 오는 손님 중에는 기쁘게도(기쁜 일이....려나?)한눈에 나를 마음에 들어하곤 사갈 수 있는지 없는지 협상한 사람이 많이 있다. 

하도 많이 보아서 익숙한 광경에 오너의 다음 말이 내 머릿속에는 이미 떠올라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이건 정말 특별한 하나밖에 없는 물건으로 아무리 값을 부르셔도 절대 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 

『 그런가~? 나라면 이 정도 값은 쳐줄 수 있을 텐데... 』 

남자가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마스터에게 귓속말을 한다. 

어차피 소용없는 일, 10만인지 20만인지 모르지만 얼마 를 제시하던지 안되니까. 

그의 눈에는 끔찍하게 해체되고 장기들이 포르말린 용액에 둥둥 떠있는 여성 시체의 표본 인형으로 보일 것이다, 저는 이렇게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니까. 

저기, 오너. 제대로 거절하는..? 

『. 그러면, 50만원은 어떠신지. 』 

겨우 오너가 들뜬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5, 50만!?내가 50만!? 

이대로 팔려버리는거야? 

오너! 뭐해! 오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이렇게 해체된 포르말린 절임 상태로 팔려 버리는 거야!? 

응?응... 

머리가 지끈 거리고 눈앞이 흰색으로 가득 채워지며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