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마지막 밤 여포는 장원에 도착해 그대로 그곳에 주둔했던 사병 전원을 쓰러뜨렸다.
확실히 군 소속으로는 보이지 않는 병력이 무장한 게 보였고, 그들 전원을 쓰러뜨리고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포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반대로 가장 목표로 두었던 순심이 보이지 않았다.
“쯧, 그 아가씨라는 사람도 여기는 없고.”
이러면 전호가 간 곳이 그곳인가.
여포는 살짝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한 오십만 여기 남고 나머지는 방향 돌리자.”
“그러면 저놈들은 어쩌죠?”
“병사들? 걔넨 일단 다 죽여야지.”
내란도 이런 내란죄가 없었다.
여포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깔끔하게 정하고는 병력을 모아 남부 창고부지로 출병했다.
진소연도 순심도 이곳에 없다면 아마 그곳일 터. 이미 전호가 그곳으로 향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포는 속도를 올려 행군을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창고 부지.
그곳으로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
“진짜 여기였나 보네.”
허도 상공에는 아직 연기가 자욱해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가까이에 도착하니 그곳 주위로는 시뻘건 불길이 마구 치솟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전호의 모습을 찾았다.
분명 그가 이끌던 병력은 보이는데, 정작 그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다.
“야!”
“예, 옛!!”
여포는 소화 작업에 한창이던 병사 하나를 붙잡았다.
“주이, 중랑장은 어디에 있어?”
“중랑장께서는 상서령을 찾고자 안으로 향하셨습니다.”
“저 안을?”
지금도 불길이 시뻘겋게 치솟고 있었다.
자신이 도착하기까지 시간도 꽤 걸렸겠지만, 아직 나온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몇 번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병사를 바라봤다.
“어디로 나온 건 확인 안 됐고?”
“지금 불을 수습하며 안쪽으로 수색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이런 씹.”
여포는 이를 꽉 깨물고는 방천화극을 들었다.
자신도 저기로 들어가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 저 옆에 포박당한 채로 무릎 꿇려진 여인을 발견했다.
“그러면 저건?”
“순심입니다. 이번 방화도 저 여자의 소행이라….”
병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여포는 바로 발걸음을 돌려 순심에게 향했다.
그녀는 여포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저 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야.”
“……이게 누구야. 천하무쌍 어르신이 아니야?”
“이 미친년이.”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입가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순심은 그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저 여포를 비웃듯 바라본다.
어쩌면 그건 여포를 비웃기보다는 그저 이 상황 자체를 비웃는 것도 같았다.
여포는 그 표정이 아니꼬워 순심을 발로 걷어찼다.
바로 뒤로 나동그라지는 순심.
“이 개 같은 년이 뭐 좋다고 웃어?”
“여, 여포님! 중랑장께서 죽이지 말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래?”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바닥에 쓰러져 여전히 실실 웃고 있는 순심에게 다가가 멱살을 쥐고 강제로 일으켰다.
가느다란 몸.
확실히 문관이라는 게 느껴졌다.
“진소연은 어디에 있어.”
“그 여자가 인기가 좋은가 봐? 신기하네. 그런 악녀가 뭐가 좋다고 다들 진소연, 진소연. 어이가 없지 않아?”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게 신변에 좋을 텐데.”
여포는 눈을 내리깔고 방천화극의 끝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찔렀다.
푹 쑤셔진 것을 그대로 한 번 비튼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비명이 울렸지만, 그것도 잠시.
“끄흐, 흐흐. 이… 래서는 입 못 열 텐데……?”
“나 성격 급해. 빨리 말 안 하면 주인이 명령이고 뭐고 너부터 죽는 거야.”
“성격 급하면 오래 못 살아.”
순심은 제 목을 겨누고 있는데도 씩 웃었다.
이에 여포가 진심으로 이를 뿌득 갈았을 무렵.
“사, 상서령!!”
그 목소리에 여포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목소리의 중심.
한창 소화 작업이 진행되는 곳 안쪽으로 진소연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몰골은 확실히 좋지 않은 게, 몸 곳곳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는 데다가 검은 숯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피부도 빨갛게 달아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확실히 몸 성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와, 진짜 살아 나오네.”
순심의 말을 뒤로하고 여포는 바로 소연에게 달려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팔은 시퍼런 멍이 잔뜩 있어, 왼쪽 팔은 뼈가 몇 군데인가 부러진 것 같았는데, 그보다도 왼쪽 발목이 아예 퉁퉁 부어 보랏빛에 가까울 정도로 심한 부상이 있었다.
“이봐, 괜찮은가?”
“……여포.”
“나 알아봐? 이거 몇 개인지 알겠어?”
그런 여포에게 소연이 겨우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런데 우리 주인이가 안 보이는데. 당신 찾으러 간 거 아니…, 으앗! 뭐야, 갑자기.”
“전호를 살려줘.”
“……뭐?”
소연은 필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왼팔은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지, 오른팔만을 겨우 들어 필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숯 잔뜩 묻힌 얼굴 아래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아직 그가 안에 남았어.”
“……아니 씹, 그게 무슨.”
“내부 호족들의 사병이 배신했어. 그쪽에서 수색하는 과정에서, 전호가 남았어. 지금 그를 구할 건 정말 분하지만, 너밖에 없으니까.”
여포는 뭐라고 하려다가 그 몰골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런 환자가 남아봐야 짐 덩어리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반대로 전호 본인이 아직 불구덩이 안에 남은 건 어떻게 볼 문제인가.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는 소연의 손을 살짝 뗐다.
“그쪽이 부탁 안 해도 당연한 일이거든?”
“……그래도 부탁할게.”
여포는 눈을 내리깔았다.
“솔직히 나 당신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알아.”
전호는 언제나 마음 한편으로 그녀를 품고 있었다.
소연과 맺어졌다는 얘기에 이대로 자신과의 관계를 끊지 않을까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그저 나보다 빨리 만났을 뿐인데.
그런 생각에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소중한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도 마음에 안 들기는 하는데, 일단 안주인께서 말씀하시는 거니까.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난 주인이의 호위야.”
“부탁해.”
“돌아오면 진득하게 얘기 좀 해보자고.”
여포는 마지막에 애써 웃고는 방천화극을 치켜들었다.
진입로라면 진소연이 빠져나왔던 곳을 그대로 쓰는 게 좋을까. 그녀가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면 분명 그에게 닿을 수 있을 터.
“정확한 위치는?”
“아마 내부 중심. 내가 나온 곳에서 쭉 들어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고, 그 부근에 잔뜩 무너진 잔해가. 아마 밀을 모아둔 창고일 텐데, 그걸 우회해서…….”
“그런 건 다 기억 못 하니까 그냥 방향만 말해!”
소연은 그 말에 살짝 고민했다.
아마 위치라면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살짝 치우친 곳. 그녀가 차출했던 사병을 그쪽 포위에 배치했으니 그 부근으로 해서 수색 작업이 이뤄질 거로 예상했다.
“아마 중앙부에서 서쪽 부근.”
“그래.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게 나아. 어차피 가로막는 건 전부 쳐 날려버리면서 갈 거니까, 복잡하게 말할 필요도 없어.”
천하무쌍의 이름은 헛것이 아니다.
여포는 그대로 주변에 명해 물 잔뜩 적신 천 갑옷으로 몸을 두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숨이 차오른다.
점점 주변에 타오르는 불길이 강해지는 걸 느꼈다. 전신이 땀에 전 듯 끈적였고, 그 이상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너무 고온을 오래 쬐고 있었던 탓인가.
하지만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다음.”
벌써 몇 명인가. 헤아리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애당초 머리가 돌아갈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미 내 주변으로는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했기에 정확한 파악이 곤란한 것도 있었다.
이미 아귀에서는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중랑장.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
똑같은 일이다.
신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녀는 한이라는 제국을 위해 움직였듯, 나도 진소연이라는 사람을 위해 움직인다. 방향성을 다를지언정 그 뜻은 비슷한 것이다.
살짝 고개를 드니 그 주변으로 병력도 많이 줄어든 게 보였다.
하기야 그만큼 베었는데 줄지 않았더라면 그게 더 충격이다. 게다가 병사들이 내 주변에서 쭈뼛거리며 멈춰서는 걸 보면 확실하다.
이 전투의 기세는 내게 넘어왔다.
호흡을 골라라.
열기로 인해 뇌까지 푹 익은 듯 어지러웠지만, 아직 쓰러질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저들을 전부 베어내고 순욱의 목을 치기 전까지는 몸 뉘일 수 없다.
“중랑장도 꽤 지쳤습니다. 이제….”
“누가 지쳐어어어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라.
가로막는 모든 것은 적으로 간주, 그대로 검을 휘두른다.
한 명, 두 명. 이어서 세 명.
그와 동시에 옆구리를 베였지만, 아직 몸은 움직였다. 이대로 조금 더,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이제 지키는 것은 포기한다.
한 자리에 버티면서 저들의 포위를 견디기에는 내 몸이 한계에 도달했다. 그러니 웅크리기보다는 기세로, 이 판도 그대로 찍어눌러라.
“흐윽, 흐으…….”
숨이 거칠었다.
고작 두 번. 땅을 박차고 두 발짝 나가며 병사를 베어냈음에도 벌써 숨이 차올랐다. 계속 시야가 흔들려 상대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게 불편하다.
이 빌어먹을 열기만 아니어도, 조금 더.
“당신은 한을, 이 나라를 바로잡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나요?”
“그건… 내부에서, 천천히. 한이라는 이름이 지워지지만 않는다면…… 그 뒤는 다음 세대에게 맡길 수 있다.”
이름만으로 남아도 좋다.
그 울타리가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그 구실만이라도 토대로 남는다면 분명 다음 세대로 이어질 다리가 될 터.
그러니 나는 그저 이 난세에 종지부를 찍는 것에 집중한다.
소연 아가씨와 함께.
내 주변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함께 다음으로 이어질 길을 만들고, 되도록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빽빽 짖는 건 좋은데 말이야.”
가까이 다가오는 놈의 목을 틀어잡고 그대로 칼로 쑤신다.
푹 들어가며 핏물이 몸을 적신다.
핏물이라 조금 뜨뜻미지근했지만, 주변 열기가 열기인지라 그것을 차단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적어도 불길 열기에 계속 쬐는 것보다는 핏물을 뒤집어쓰는 게 낫다.
“진짜 잘 짖는 개는 따로 있거든?”
“……이제 다 끝났네요.”
순욱은 자조하듯 웃었다.
“대단해요. 이 많은 숫자를 상대로 이만큼 버티는 건 하후돈 장군께서도 벅차실 일일 텐데.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와 지금의 당신은 정말 다른 사람 같네요.”
“칭찬한다고 그 목 안 날릴 것 같아?”
“그게 아니에요.”
그녀는 픽 웃으며 한 발짝 다가왔다.
여기서 갑자기 다가온다고?
주변 병력도 웅성거리는 와중,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이윽고 내 정면에 섰다.
“이 정도 시간이면 진소연도 충분히 빠져나갔겠죠. 완벽한 실패에요. 제가 졌다고밖에 말할 방법이 없네요.”
“그래서, 이제 죽을 생각이냐.”
“예. 죽을 생각이에요.”
그녀가 이끌던 병력의 반 이상이 내 손에 죽었다.
시간이 흘렀다고 순욱은 말했지만, 솔직한 말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나 자신은 알 방법도 없었다.
손끝의 감각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아나.
“대신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
순욱은 빙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저는 당신들을 찾다 죽은 거로 해주시지 않겠어요?”
“명예를 위해서냐, 아니면 너희 영천 순씨를 위해서?”
“틀려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무슨 헛수작을 부리면 목을 칠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그대로 내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에 끌어안고서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저 정도 되는 사람이 내통했다는 게 주변에 알려지면 내부에서도 혼선이 빚어질 거에요. 안 그래도 이 이후 황족들이 대거 솎아질 텐데, 거기에 저까지 연루되었다는 게 알려지면 황가를 지지하는 이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져요.”
“미친년.”
“뭐라고 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황족을 지지하는 이들 중에서도 능력 있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분명 조공의 도움이 될 테니까.”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소연 아씨의 목을 노렸으면서, 마지막까지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겠다고? 황가와 한을 위해서 그 유지를 남기겠다는데 내가 그걸 듣고 있을 이유가 있던가.
“제가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걸 알면 조공은 필요 이상으로 청류파, 황족에게 충성하는 이들을 배척할 거에요. 그러다가 언젠가 깨닫겠죠.”
그녀의 심장은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아, 한이라는 이름이 내 목을 조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에요. 한이라는 이름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겠죠.”
“……염병.”
“그렇게 해주실 거죠?”
신념을 가진 인물을 이래서 무섭다던가.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긴 판국에도 머리로 계산하고,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자마자 바로 내게 목을 내민다.
그러면서도 피할 수 없는 올가미를 던졌다.
“난 사실 당신을 싫어하지 않았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싫어할 리가 있나.
평소 순욱은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우대할 줄 알았고, 타인의 목숨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여기에 엮였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
“먼저 가쇼.”
“……가서 기다릴게요.”
염병.
이를 꽉 깨물고 그녀의 목을 찔렀다.
그나마 이렇게 하는 게 고통 없이 바로 죽을 수 있겠지.
순욱은 마지막까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렇게 천천히 스러져가는 그녀의 몸을 붙잡고는 살며시 내려놓았다. 우습게도 그녀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웃고 있었다.
살아있는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정작 죽은 사람이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 무슨 부조리냐.
그 과정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는데, 주변 병사들을 저마다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한두 발짝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단 한 번.
무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마다 무기를 내던지고 몸을 돌려 이 자리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거참. 보람도 없게 되셨소.”
쓰러진 순욱 선생의 눈을 감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저들 또한 명령을 받은 이들. 게다가 동료 절반 이상이 내 손에 죽은 상황에서 지휘관도 없이 내게 덤벼들고 싶지는 않았겠지.
그건 알지만, 알아도 덧없는 것이 있다.
“으욱, 아니지.”
일단 이럴 시간이 없었다.
이러는 사이에도 이 근방으로 불길이 번지는 게 보였다.
더 있다가는 정말 산채로 찜통에 지져지는 게 빤히 보였기에 고개를 돌려 최대한 불이 번지지 않은 곳을 살폈다.
저들이 도망치기 시작한 곳은 안 된다.
아무리 순욱이 죽었더라도 저들은 내란에 찬동한 병력. 지금 몸 상태로는 그들이 덤볐을 경우 제대로 받아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움직인 건 좋으나 그 반동이 찾아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시야가 흔들렸는데, 긴장이 풀려 그런지 몸이 자꾸 휘청였다. 아무래도 열기에 너무 오래 노출됐던 탓일까.
몸 전체에서 흐르는 땀 탓인지 되려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한 발짝.
고작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다시 한 발짝.
소연 아씨는 무사히 빠져나갔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이으며 다시 한 발짝.
그렇게 시야는 어둠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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