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338화 (338/343)

33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마지막 밤 숨을 고르고는 순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당신이 직접 나서? 이렇게 멍청한 여자였나. 만약에라도 실패한다면 당신 모가지도 같이 날아가는 거야. 그뿐일 것 같아?”

“……원래라면 나설 생각도 없었지만, 황족들이 먼저 움직였어요. 여기서 진소연이 살아나가 이 상황을 전부 까발린다면 앞으로 황족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겠죠.”

“미친년.”

그래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안 될 것 같으니 제 손으로 아가씨를 죽이려고 나섰다는 말인가.

이 이상 황족이 탄압받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조조의 밑에서 숙청이라는 피를 뿌리고 다닌 소연 아씨를 제거함으로써

황실과 한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분명 황실에 충성하는 인물로는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그래도 조조를 위해 움직인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 또한 순욱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여기서 진소연이 살아나가면 황실의 힘은 더욱 깎이고, 조공께서 집권하시겠죠. 제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에요.”

그녀는 손을 뻗어 내게 내밀었다.

“황실을 떠받드는 조조. 딱 그 정도가 좋은 거예요. 조공께서도 후대 역적이라 비난당할 일 없고, 한 황실도 조공께서 받치신다면 분명 다시 바로잡히겠죠.”

“……순심이랑은 서로 내통하고 있었냐.”

“설마요. ……그저 진소연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흘렸을 뿐이죠.”

목표는 한 황실과 조조의 손해가 아니라 오로지 소연 아씨의 목.

그렇다면 소연 아씨를 살해하려던 순심과 이해가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

상서령의 이름을 달고 황실을 탄압하기 시작한 소연 아씨를 배제하고 황실과 조조 사이에서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소리인데.

이 무슨 가당찮은 말인가.

“똑똑한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극단적인가?”

“……잡설은 이제 됐습니다. 진소연, 그 여자를 어디로 숨겼는지 말해요. 당신이 진소연과 함께한 것은 알지만, 이 한나라가, 황실이 무너지면 그 여파가 어떨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요?”

알고 있다.

내게 있어 한이라는 이름은 울타리.

현 혼란한 정세 속에서도 다들 한나라라는 이름만은 저버리지 않았다. 원술 그 미친놈이 황제라고 봉기했을 때도 전국에서 규탄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한이란 단지 국가의 이름이 아니었다.

수백 년 이어져 온 국가는 그것만으로 소속감이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전쟁을 벌이더라도 언젠가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라는 의의로 남는다.

그것마저 사라지면 이 난세는 어떻게 될까.

“……한이 무너지면 천하에 강하다는 이들은 모두 제 이름을 내걸고 국가를 세우겠지. 어중간한 놈들도, 전부.”

“그렇게 분열되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이 세계는 다시금 전화의 소용돌이에 접어들 것이고, 그 혼란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 과거, 진이 통일하기 전 전국시대가 그러했던가.

순욱은 진소연이라는 인물이 장차 한을 짓밟고 제국이라는 울타리를 부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만약 여기서 황족의 사병들이 소연 아씨를 노리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녀는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유유자적 소연 아씨의 죽음만을 확인했겠지.

이 얼마나.

“……독한 년일세.”

“비킬 생각도, 말할 생각도 없다면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뒤로 포진한 병사들이 무기를 치켜세웠다.

분명 조조군 정규군의 복식이었지만, 순욱 정도의 인사라면 분명 내부에도 자기 사람을 키우고 심을 수 있었겠지.

그런 그녀의 유일한 오산이라면 아마 황족.

그들이 먼저 소연 아씨의 죽음을 확인하거나 목을 치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순욱이 배신한 사실은 아마 아무도 몰랐으리라.

배신? 그것도 웃기네.

이건 배신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순욱은 아마 여기서 나와 소연 아씨를 처리한다고 해도 계속 조조를 위해 일할 터. 그러니 이건 배신이라기보다는….

“권력다툼인가.”

“예?”

“웃기지 않나. 자신과 의견 달리하는 이를 쳐내는 것. 그것을 숙청이라 부르고 권력다툼이라 부르지. 당신 행동이 그것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내 말에 순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소리를 질렀다.

“이건 진소연이 너무 앞서나갔어요! 그 여자가 지금껏 벌인 피는 무엇이며, 황족의 권위를 앞장서서 짓밟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그걸 조조가 바란 적은?”

“……모든 건 한과 조공을 위한 일이에요.”

그런가.

이것 참,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었다.

이 허도에 소연 아씨와 엮인 것만 총 셋.

순심과 황족, 그리고 순욱 선생.

그 모두가 진소연이라는 사람의 목을 노리고 움직이니, 이것이 어찌 우습지 않은가.

대체 얼마나 많은 업을 쌓았기에 이러오.

정말, 어이가 없어 웃고 싶은데 웃기지도 않는다.

“댁은 그러니까, 그거지? 조조가 소연 아씨로 인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진소연이라는 사람이 황족을 탄압, 황실의 권위와 영향력을 계속 낮추고 있다 그거잖아.”

“그 모든 게 진소연의 의향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소연 아씨가 죽은 이후로도 조조가 그러면? 그때는 조조도 죽일 건가?”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그걸로 됐다.

이렇게 말을 걸면서 시간을 끈다. 이번 일과 순욱의 말로 소연 아씨에게 할 말도 많았고, 따질 것도 많았지만 우선 그녀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아직 소연 아씨가 죽길 바라지 않았다.

“……그때는.”

잠시 이어지던 침묵이 끊기고, 이어 순욱은 고개를 든다.

“그때는 사람을 잘못 본 죄와 주군을 잘못 섬긴 죄. 그렇다고 하여 주군을 노린다는 불경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죗값을 달게 받아 자진하여 이 목숨을 내놓아야지요.”

“그러면 조조의 의향 없이 독단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건? 대놓고 말해 이거 이적 행위로 보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주군의 흠결은 신하가 닦는다. 그뿐입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여자의 행동원리에 어렴풋이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이 여인은 한 황실과 조조, 둘 모두를 버릴 수 없었던 거다.

그러니까 진소연이라는 인물에게 모든 걸 전가했다.

“미련하긴.”

진소연이 없다면 분명 조공께서도.

한 황실을 짓밟는 것은 진소연이니, 진소연만 사라진다면 분명 사태도 점점 호전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미련한가.

조조와 오래 알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제법 가까이서 본 내가 말하자면 조조는 분명 소연 아씨의 진언이 아니더라도 황족을 탄압했을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제약 거는 것을 싫어하니까.

조조란 그런 사람이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짓밟고서라도 나아간다.

자신이 믿는 것을 마지막까지 믿으며, 그 외의 것을 전부 버려서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는 여자. 그렇기에 제 혈육인 조숭마저도 쳐냈겠지.

순욱은 조숭의 사건을 아직 모른다.

알았더라면 소연 아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진 않았겠지.

“난 잘 모르겠는데.”

“……대화는 여기까지예요. 제가 본 당신이라면 분명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두터운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제발, 진소연을 어디에 숨겼는지 말해요.”

한 황실에 대한 충성심?

그야 물론 이 제국이 망하는 것은 원치 않았고, 그렇기에 조조와 소연 아씨와도 종종 다투었던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충성심이라고 묻는다면 어떤가.

“틀렸어.”

“……예?”

그딴 게 충성심일 리가 있나.

미안한 말이지만 난 한 황실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그 황제 폐하가 안쓰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여, 그 소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원치 않으나 그게 충성일 리가 있나.

“난 한이라는 나라가 망하지만 않으면 돼.”

“그게 무슨….”

똑똑한 사람이 말귀는 왜 이렇게 못 알아들으시나.

다시 말해줘야 하나?

“한이 망하면 자연스레 천하에는 혼란이 따르겠지. 그러니까 한이 버텨줬으면 하는 것뿐이지, 한 자체에는 별 미련도 없다.”

순욱 선생은 모르겠으나 나는 밑바닥 인생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한 황실이 무엇이고, 제국이 다 뭐냐. 그저 그 울타리라도 있으니까 이 정도고, 그것마저 없으면 앞으로의 혼란을 짐작할 수도 없으니까 그런 거지.

인생사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내가 보기엔 순욱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형태와 모습이 있는 개인을 향한 애정과 충성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제국? 황실? 그것이 다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개념일 뿐, 형태로 보이는 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실어 충성하노라고 말한다.

무형인 것에 존재감을 주어 그것을 신봉한다.

“내가 보기엔 당신도 그저 정신병자야.”

형태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도 정신병이지.

“……당신이라면 이해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미안하네. 기대받은 줄도 몰랐고, 솔직히 아무래도 좋다지만 일단 배신해서 미안합니다? 그치만 그쪽도 우리의 신뢰를 배신한 거고, 이걸로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그러면 당신도 살려 보낼 순 없습니다.”

그것참, 그냥 무승부로 하자니까는.

물론 그와 별개로 나 또한 그녀의 말에 공감하는 게 있었다.

나를 살려보낼 수 없다고?

그 말 똑같이 돌려주지.

“이거 우연이네. 나도 댁을 살려둘 생각은 없거든.”

소연 아씨가 잘못한 게 있다면 바로잡겠다.

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한의 멸망을 꾀한다면, 미안하지만 그녀의 볼기짝을 두들겨서라도 막을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내 목에 칼을 겨누고서라도 협박한다.

그녀가 누군가를 죽인다면 심사숙고하라고 재차 간언할 거고, 그녀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면 어디 가둬서라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지, 진소연이 죽는 걸 용납한 적이 없다.

“개 앞에서 주인을 죽이려고 하는데 말이야.”

허리춤에 묶은 청강의 끈을 풀었다.

한 손에는 청강을, 다른 한 손에는 검집을.

불타는 창고를 배경으로 하여 우리는 마주했다.

“그 개가 물지 않기를 바라는 건, 조금 사치지?”

“다른 조에는 진소연의 추적을. 중랑장은 강적입니다. 공격할 때는 셋이서 한 조를 이루고, 움직일 틈도 없이 압박하세요.”

우와. 이거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구만.

안 그래도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 속을 계속 걸어서 그런지 속이 메스껍고 힘도 없었다. 그런 약자에게 떼로 덤벼드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순욱 선생. 그래도 같은 군에서 있던 정이다. 거기서 가만히 있어. 숨을 고르면서 몸에 힘을 빼. 천천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아.”

청강의 날은 잘 드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의 목을 칠 때 힘없이 치면 한 번에 베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는 편이 좋다.

“그래야 베일 때 조금이라도 덜 아파.”

히죽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우리 소연 아씨가 기르는 개는 조금 거칠다.

내가 그걸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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