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336화 (336/343)

33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마지막 밤 매캐한 연기가 눈을 가렸다.

하도 탄 냄새를 많이 맡아서 그런지 속도 메스꺼웠고, 그 이상으로 열기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그런지 살 전체가 타들어 갈 것처럼 따갑고 쓰라렸다.

아니면 이미 탔으려나?

그건 잘 모르겠네.

“소연 아씨이이이이!!”

속에서 끌어나오는 모든 것을 내뱉는 느낌으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어디 사는 무슨 놈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알 생각도 없었고, 저런 제식 하나 본다고 금방 어디 소속인지 알 정도로 주의 깊게 무언가를 살폈던 적은 없다.

게다가 사실 어디 소속이어도 상관없었다.

그 누구라도 소연 아씨를 건드린다면 용서치 않는다.

그건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가장 간단한 논리였다.

발을 내디뎠다.

이 근방으로는 화재가 심하지는 않았는지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게 느껴졌다.

“이, 어디서…!!”

누군가의 말.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늦을 뻔했지만 늦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고, 소연 아씨는 아직 비틀거리고는 있었지만, 시선을 마주칠 수 있었다.

검을 휘둘렀다.

무아지경으로, 잔뜩 연기와 열을 머금어 축 늘어진 몸에 억지로 활력을 돌게 해 가로막는 적을 하나 베어냈다.

그와 동시에 허벅지가 살짝 베였다.

적의 숫자는?

아니, 시야가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당장 거기서 비켜.”

“중랑자아아아앙!!”

철과 철이 마주하는 소리는 귀 찢어지라 높은 음색으로 울렸다.

불 타들어 가는 소리와 어디선가 건물 무너지는 소리. 바람을 타고 연기는 그 탄내와 함께 이곳을 주변 시야에서 철저하게 감추고 있었다.

맞댄 검을 살짝 비틀어 가로막은 이의 어깻죽지를 가른다.

이어 다가오는 적을 발로 걷어찼는데, 그와 함께 내 몸도 함께 쓰러져버렸다. 반동 하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소모했던가.

그 자세 그대로 다가오는 이의 발목을 베었는데, 뼈에 걸려 도중에 막혔기에 몸을 틀며 뒹굴어 겨우 칼을 빼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소연 아씨 근처에는?

살짝 시선을 흘겼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내게 시선이 쏠린 탓에 소연 아씨에게 다가가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중랑장! 혼자 뭘 하시려고 그러시오.”

“닥쳐.”

“이 여자가 허도에서 부린 행패를 알면, 황제 폐하가 당신을 신임하여 중랑장이라는 직책을 맡겼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시면 안 되는 거요!!”

우습다.

누가 누구를 회유해?

중랑장? 그런 관직 하나로 내가 소연 아씨를 벨 이유가 된다던가. 주변에서 우리 관계가 어떻게 보일지 모를 일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닥쳐라, 머저리.”

“상서령이라는 자리에 올라 이 허도에서 부린 횡포! 무고한 이를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통 없이 칼을 겨누는 게 정상이라고 보시는 게요?”

“횡포?”

내 질문에 놈은 좋다고 바로 입을 열었다.

“기존 연주의 기득권이 개처럼 죽어 나갔소. 변양 어르신을 시작으로 이 여자의 손에 몇 명이 죽었는지. 게다가 이제는 황족 어르신들까지 그 손으로 해했으니 이 어찌 악녀가 아니겠소.”

나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물론 정치 분야에서는 조조와 소연 아씨가 전담하는 바였고, 내 역할은 군정과 함께 그녀들이 필요 이상으로 피를 흘리려 할 땐 제지하는 역할.

이 부분은 어떨까.

“그들은 죄가 없었나.”

“조조에게 거역한 것이 죄라면!! 황제 폐하가 멀쩡히 살아계시는데 그 위에서 노는 조조 일당에게 반발한 것이 죄라면 그것뿐이지 않겠소.”

시선을 살짝 돌려 소연 아씨를 바라보았다.

“상서령? 어째 원한을 좀 많이 쌓으신 것 같은데.”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사실 답을 바라고 말을 건 것도 아니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한 발짝 다가갔다.

검은 아래로 축 늘어뜨려 적의가 없음을 단적으로나마 증명하며 살짝 웃었는데, 이런 행동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대들은 어디 소속이지?”

“지금은 황족 공용 사병이요. 그전에는 연주 서씨 집안으로 있으며 변양 어르신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고, 그 외에도 황족 어르신들을 모시던 이들도 있소.”

여기 모인 이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소리인가.

쓸데없이 복잡하게 됐네.

이런 정치적인 문제가 엮이면 제대로 된 꼴을 못 봤다. 특히 이런 문제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은원관계가 성립되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그런가. 좋다.”

“우선 이 여자를 치우면….”

놈이 더 말을 잇기 전에 칼을 들었다.

숨을 고를 시간은 충분했다.

지친 몸이지만, 이 정도로 휴식을 취했다면 다시 검을 들 수 있었다. 게다가 참 고맙게도 누가 적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줬으니, 더 살려둘 이유는 없겠지.

하여 그의 배를 칼로 쑤셔버렸다.

칼이 그 뱃가죽을 뚫고 들어가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이봐.”

“…무, 스…….”

“소연 아씨에게 실수가 있더라도 그건 내가 잡아. 틀린 게 있으면 틀렸다고 말할 거고, 아닌 게 있으면 아니라고 말한다.”

너희가 내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길을 걷는다. 소연 아씨에게 과가 있다면, 그건 얘기를 듣고 같이 생각하면서 정한다.

만약 그녀가 선을 넘는다면 말린다.

그건 내 역할이었고, 이들에게 양도한 적은 없었다.

“참견 말고 꺼져.”

그대로 놈의 몸에 발을 올려 디딤대로 삼아 칼을 뽑았다.

동시에 피가 뿜어지듯 튀어 얼굴과 옷을 적셨지만, 이 정도라면 전장에서 하도 경험한 것이라 대수롭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다음.”

“……여기서 놈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그래, 응당 그러해야지.

적을 앞에 두고는 뒤를 생각하면 안 됐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는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 번, 한 번의 공격에 필살의 각오를 담아 휘두른다.

전력을 다해 이 한 번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병사로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래, 호흡을 가다듬어라.”

그렇게 감각을 날카롭게.

적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포착하며 싸움에 임하는 것이 전장을 살아남는 방법. 자신보다 강적을 상대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죽여라아아아아!!”

멍청하긴.

차라리 소연 아씨를 노렸더라면 내 움직임을 강요할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이 호흡이 돌아오기 전에 재차 억지로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을 터.

잘못된 선택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장에 선 이상, 그 대가는 제법 참혹한 편이었다.

* * *

소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유독 발목이 시큰거렸다.

고개를 숙였더니 시퍼렇게 부은 발목이 보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을 파헤치며 나아가는 순간에도 오른쪽 발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니 부러진 것도 같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좀 늦었나?”

“……어떻게 알고 왔어?”

“그야 이곳저곳 뒤졌지. 그러다가 순심이라는 년이 움직였다는 걸 들었고, 그때부터는 아가씨 행방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닌 느낌?”

그는 씩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물론 목소리와 달리 그의 상태도 썩 좋지 못했다.

팔다리를 포함해 베인 흔적이 남았고, 무엇보다 화재현장을 헤치고 온 탓인지 곳곳에는 시꺼멓게 그을린 곳도 있었고 무엇보다 표정 자체가 너무 창백했다.

“실수했어.”

“그런 것 같네. 이런 곳에서 당하고 있고, 대체 뭐 하는 거요.”

그는 손을 뻗어 소연의 팔을 붙잡았다.

“다리도 그렇고, 이거 봐. 그 새하얗던 피부가 달아올랐네. 누가 이렇게 엉망이 될 때까지 당하고 있으라고 했나.”

전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팔을 제 목에 두르고는 그녀를 부축했다.

축축하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인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전호의 얼굴을 살폈다.

“너….”

“고생 좀 했지.”

안 그랬으면 저런 놈들에게 이런 상처라도 남았겠냐고 말하며 태연한 듯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머리에서도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흘린 땀도 정상적이지 않다.

“땀내 난다고 뭐라고 하진 말고.”

“얼마나 오래 있던 거야.”

그녀는 불행 중 다행으로 불이 번지지 않은 건물에 깔려 몸이 아플지언정 화마의 영향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가.

“됐으니까. 그것보다 변양? 황족? 난 처음 듣는 얘기거든. 돌아가면 이 문제에 관해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잠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창고 건물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길은 점차 창고부지 전체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가 왔던 길도 교전이 길어지면서 화마가 덮쳐 사람이 지나가기엔 힘든 길이 되었다.

전호는 그것을 보고 혀를 차며 발걸음을 돌렸다.

“염병. 이건 길 찾는 것도 일이겠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는 고개를 돌려 소연과 시야를 맞췄다.

그리고는 웃는다.

“이러라고 있는 게 나 아닌가?”

“……장난하는 거 아냐.”

“나도 장난 아닌데.”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살짝 잡아당겼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눈 내리던 날이었지.”

“…그랬지.”

“그 추운 것도 경험하고, 이렇게 더운 것도 경험하고. 참 다사다난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쇼? 늙어서 아마 뼈 좀 쑤실 것 같네.”

전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솔직히 나 그때 아가씨가 미친년인 줄 알았어. 솔직히 이건 인정해야 해. 기껏 도와주겠다고 달려갔더니 이쪽까지 같이 패버렸잖아.”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는데, 그는 그것도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시꺼멓게 그을린 건물 하나를 지나쳐 걷는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탄내가 진동하는 상황. 그런데도 그는 소연을 지탱하며 계속 걸었고, 그러면서도 계속 무언가 말을 건넸다.

“우리 만나고 얼마 안 됐을 때, 아가씨가 나보고 창고지기로 만들겠다고 했던 거 기억나쇼?”

“그만 말해. 연기 들이마시면 좋을 거 없어.”

이 부지는 넓었고, 특히 소연이 있던 곳은 그 중앙에 가장 큰 건물이었기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안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소연은 그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자꾸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난 당신 거야.”

“알았으니까.”

“당신은 내 거고.”

전호는 그 시점에서 부드럽게 웃고는 목에 둘렀던 소연의 팔을 풀었다.

아직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조금 더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녀를 살짝 밀어내고는 턱을 까닥였다.

“그러니까 먼저 가.”

“……뭐?”

그는 소연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놈들이 끝이 아닌 것 같아. 아까 오면서 봤는데, 이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골목길이 있어. 그쪽까지는 아무래도 불길이 번지지 않았을 테니까, 다리 아픈 건 알겠지만 조금만 참고 가봐.”

“너는 어쩌게.”

“나는 따라오는 놈들 조금 걷어내고 가야지?”

저들이 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호는 살짝 고개를 들어 저편을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몇 인기척이 있던 걸 느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을 수색하는 다른 병사들에게 덜미를 붙잡힐 게 뻔한 상황.

“금방 처리하고 따라갈 테니까. 아가씨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장소도 장소고, 상황도 썩 좋지 않잖아?”

“차라리 나도….”

“그 몸으로?”

그는 평소답지 않게 부드럽게 웃으며 소연의 어깨를 밀었다.

“난 누구 거라고?”

“……내 거.”

“그거면 된 거 아냐? 내가 언제 아씨 물건을 망가뜨린 적 있던가?”

마지막까지 웃으며 그녀를 골목길 안쪽으로 밀어 넣은 전호는 소연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주변 물건을 쓰러뜨려 둘 사이를 가로막아버렸다.

“끝나면 곧장 갈 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쇼!”

그리고는 안쪽으로 다시 달려간다.

소연은 손을 뻗으려 했지만, 이미 부러져 시큰거리는 발목 탓에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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