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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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식으로? 지금 소연 아씨가 어디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 이상으로 현 상황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적가의 당주와 하북과의 유착을 파헤친 것까지는 좋지만, 정작 소연 아씨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본말전도.
“순심은 어디로 갔나.”
“크흣, 조가의 천치나 따르는 멍청한 것들.”
“말하라고 이 시발 새끼야!!”
놈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찍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핏줄기. 그것을 돌볼 틈도 없이 다시 머리채를 잡고 그의 고개를 들었다.
콧대는 완전히 주저앉고 이도 서넛 빠진 상황.
그런 볼품없는 얼굴로도 나를 비웃고 있었다.
“푸헉, 크흐. 원공, 당신에게 받은 빚을 드디어 갚습니다….”
“그 빚이 목숨보다 귀하냐? 어? 그대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 널 쉽게 죽여줄 것 같으냐. 네 가족부터 시작이야. 살아있는 한 살점 하나하나 회를 쳐버릴 거야. 알겠냐?”
“이 피륙 또한 원가의 은혜로 태어난 것. ……아버지의 세대부터 받은 은혜로 내가 이리 살고 있으니, 그 또한 운명이겠지.”
이런 빌어먹을 새끼.
유교니 명가니 하는 새끼들의 머릿속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혜? 먼 다리 걸쳐서 받은 은혜가 목숨보다 귀한가. 그것이 제 목숨을 바쳐 행할 만큼, 우리가 베푼 은혜는 전부 뭉개버릴 정도로 귀한 것이더냐.
조조도 예주에 들어서서 이 지방 토박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후의를 베풀었는데. 이놈을 포함하여 각 상회가 황가 아래로 귀속되지 않은 것은 누구의 호의였는데.
“이 새끼 가족. 전부 끌고 와.”
“주인아.”
“여포, 명령이다.”
나는 그녀의 방패이자 검이었다.
진소연이라는 사람에게 드리운 그림자 전부를 걷어버리겠노라고 재차 맹세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
물론 그녀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말의 불안감이.
그리고 저놈의 비웃는 얼굴에 자꾸 싫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 외침에 병사들이 장원 안쪽에서 그의 일가 전부를 끌고 왔다. 아내와 딸, 아들까지. 딸에 이르러서는 아직 열 살도 된 것 같지 않았다만, 지금 상황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나는 한 명씩 천천히 고문한다.
“가주. 누가 좋겠나.”
“……죽어서도 곱게 묻히진 못할 것이다.”
“그건 지금 네가 하는 여부에 따라 달랐지.”
손짓하여 그의 부인을 먼저 끌고 왔다.
내 앞에 무릎 꿇은 미부인은 나와 가주를 번갈아 보며 눈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목에 칼이 겨눠지니 몸까지 벌벌 떠는 게 참 볼만했다.
“여보, 제발…!!”
“내 금방 따라가리다.”
“누가 쉽게 죽인다고 했나?”
그대로 칼을 역수로 잡고 그녀의 허벅지에 칼을 쑤셔 박았다. 부드럽게 파고 들어감과 동시에 찢어질 듯한 여인의 비명이 주변에 울렸다.
저 멀리서는 그의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순간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몰려왔지만, 그것을 애써 억누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는 그 광경에서 눈을 돌리는 상황.
병사 하나를 시켜 놈의 시선을 고정하고 억지로 눈꺼풀을 열었다.
“봐라. 이것이 네가 초래한 결말이다.”
“……인간 같지도 않은 놈.”
“배신자가 할 말은 아니지. 이게 네가 바라던 미래냐. 이게 원소 그 허여멀건 도련님에게 충성한 결말이더냐. 이게 은혜를 갚는 과정이라면, 그 참 핏물 잔뜩 흐를 보은법이구나.”
구역질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 올라왔다.
참아라. 아직은 아니다.
“다음은 손이다.”
그대로 미부인의 손을 붙잡고는 픽 웃었다.
웃기지는 않지만 억지로 웃어 보였다.
“제법 고생을 아는 손이군. 이제 이 손을 하나씩 자를 것이다. 죽이지는 않아. 바로 불로 지져 피를 흘릴 여지도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한 손, 한 손을 자른 이후에는 발이다.”
“여보…, 제발 그냥…… 살려줘요.”
이를 꽉 깨물었다.
턱이 아렸다. 이런데도 말을 안 하겠다고. 가족보다 소중한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몰려왔다.
그보다 더 역겨운 것은 지금 상황일까.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칼을 든 병사가 아니었다.
적가의 가주는 몰라도 이 아낙네와 아이는 날 죽이려고 한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적의를 표출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남자 하나 잘못 만나서. 아비 하나 잘못 둔 것이 죄라면 죄일까.
저 멀리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서는 무언가가 자꾸 아른거렸다.
토할 것 같다.
“이 여자가 죽으면 다음은 사내아이. 그다음은 계집애다.”
그러니까 그냥 털어놔라.
세상에 가족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다고.
만약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성을 잃은 무언가였다. 제 가족, 자기가 지켜야 할 사람. 그것들을 저버리고까지 얻어야 할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금은보화가 대수인가.
권력과 관직? 그것으로 무엇을 충족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제발.
“나는 내 가족을, 내 사람을 지켜야 한다.”
소연 아씨.
그녀는 내게 인생을 준 사람이었다.
길거리 들개를 거두어 사람으로 만들었다. 방삼이는 내가 소연 아씨를 거두어 저 위치까지 올린 게 아니냐고 착각하고는 했지만, 그녀가 아니었으면 난 애당초 그 병주의 산골에서 나올 생각도 않았을 거다.
그녀뿐이었다.
의욕 잃고 단지 하루하루 허비할 뿐인 내 인생에 의미를 준 것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아무도 거두려 하지 않고, 돌아보려 하지 않았을 도적들에게 목표를 주었다.
“아저씨.”
“놔라, 지금 바쁘다.”
“어차피 말할 상대가 아니에요. 시간도 부족하고요.”
그러면.
이대로 손을 놓으라는 말인가.
“우선 상서부로 가시죠. 그쪽으로 돌아오셨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행선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 거예요. 상서령이나 되는 분이 단독으로 움직이셨을 리가 없잖아요. 병력이 분명 움직였다는 정보가 있을 거라고요.”
머리가 차게 식었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아마 이 부인의 목을 쳐버렸을 즘이었다. 문득 손아귀가 아려서 봤더니, 주먹 안쪽으로는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냉정해야 한다.
아마 사마의가 아니었더라면 여기서 이놈의 고문을 계속했겠지. 아마 저 죄없을 아이들까지 내 손으로 해쳤을 수도 있었다.
“상서부란 말이지.”
“이 자리는 제가 수습할게요.”
사마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의 병력은 이쪽에 주둔시키기로 했다. 여포는 나와 함께 남은 병력을 데리고 우선 상서부로 향한다.
아직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순심의 위치를. 적어도 소연 아씨의 행방까지는 알아내야 아군의 목표도 정해질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는 적가 가주가 널브러져 있었다.
“기억해라. 이 세상에 가족보다 중한 것은 없다.”
“…케흑, 커헉, ……은혜라는 것도 모르는, 들개 새끼가.”
“마음대로 말해라. 대신 그 말을 네 가족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면 말이야. 저 멀리서 떨고 있는 것은 네 자식이 아니냐?”
놈은 고개를 떨궜다.
“끝까지 무언인가.”
저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내 모습을 겹쳐보았다.
이 부인의 모습에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는 한때 전가의 가주에게 버려졌던 기억이 있었다. 전풍은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며 사죄했지만, 그런다고 어릴 적의 추억이 전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응어리는 내 가슴 안쪽에 남아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사마의. 이자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예, 아저씨.”
고개를 돌려 병력을 인솔했다.
목표는 상서부.
여전히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어 억지로 감추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여포는 그런 내 옆에서 살며시 내 팔뚝을 붙잡았다.
그 손의 온기는 따듯했다.
“주인아.”
“이젠 혼란스럽지 않다. 우선 상서부로….”
“그게 아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인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그리고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인간적이구나 싶어서. 지금도 표정 잔뜩 일그러져서는. 진소연이 걱정스러워 참을 수 없는데, 저 가족까지 마음에 담아 복잡한 거지?”
“……그런 거 아냐.”
“너무 많은 감정을 안에 쌓으면 독이 된다더라. 그 사람을 좀먹고 갉아먹는 해충이 된다고 누가 그랬어. 나는 그렇게까지 똑똑하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이 너무 다정해서, 그래서 잠시 발걸음이 멈췄다.
여포는 마치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와 같은 시선으로, 하여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주인이는 가끔 보면 너무 착하다니까.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까, 주인이도 신경 쓰지 말고 저런 것들은 그냥 쉬이 죽여버리면 되는데.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그게 거슬린다면 치워버리면 되는 건데.”
그래도 그걸 버리지 못하니까 당신답다며 그녀는 평소 내게 하던 주인이라는 말도 거르고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내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당신이 짊어지지 못하는 건 우리가 짊어질게.”
“여포.”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당신답게 살아. 우리는 당신의 그런 모습에 매료된 거니까. 사마의 그 계집애도, 조운 그 싸가지 없는 년도. 아마 조조 그 재수 없는 년도 그럴 거야.”
그 시선을 살짝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내게는 너무 눈부셨다.
하지만 그 시선 어딘가에는 분명 슬픔이 깃든 것처럼도 보였다.
“가자.”
“얼른 가야지. 우리 주인마님 도우려면 말이야.”
그녀는 마지막까지 웃어주었다.
* * *
“정말, 쓸데없이 사람 귀찮게 하네요.”
사마의는 짜증을.
더할 나위 없는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조금 더 짖어봐요. 그렇게 개처럼. 나쁘지 않네요. 조금 전까지 아저씨한테 잘만 나불거리던 입은 왜? 지금 더 지껄여보자고요.”
이 남자는 본의 아니게 그의 가장 큰 약점을 건드렸다.
그는 평소 아닌 척했지만, 아이와 어머니를 볼 때마다 살짝 표정이 일그러지고는 했다. 그런 이들을 제 손으로 베야 한다고 하면 그 얼마나 가슴에 큰 무게가 되었을까.
사실 지금 상서부로 가는 건 상책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이들에게 정확한 위치를 받아내는 것과 큰 시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사마의는 그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의 강점은 인간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광경은 그 인간성을 가장 상처입히는 상황.
그는 태생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그것에 고집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독 아이들에게 약했다. 어머니로 보이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쓰게 웃으며 져주고는 했다.
그래서 진궁에게 항상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수도 있겠지.
“난 말이에요. 내 태양에 그늘이 지는 게 제일 싫어요.”
단검 하나를 그의 허벅지에 쑤셔 박았다.
들려오는 비명에도 그녀는 미간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손을 내밀어 병사에게 재차 단검을 받아 그의 반대편 허벅지를 꿰뚫었다.
저 멀리서는 그의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안타깝게도 아저씨랑 나는 종이 달라요.”
그만큼 상냥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며 빙긋 웃는다.
“일단은 이 부인. 제법 아름답네요. 손을 보니 그동안 궂은일도 마다치 않았겠죠? 적가에 대해서는 얼추 알고 있어요. 십수 년 전까지는 밑바닥을 전전했다고 들었고요.”
그러니 부인은 필사적으로 남편을 받쳐주었겠지.
소녀는 빙긋 웃으며 병사들을 모았다.
“그러니 이 부인부터 시작할게요.”
“무슨, 속셈이냐.”
사마의는 그 말에 해맑게 웃었다.
“우선 병사들에게 돌릴 건데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고작 그걸로 끝이 아니니까. 아들은 살을 포 떠 당신의 입에 천천히 밀어 넣을 거니까. 소금간도 해드릴 테니, 그걸 맛보며 천천히 가정이 무너지는 걸 구경하기만 하면 돼요.”
참 쉽지 않냐며 사마의는 낄낄 웃었다.
가주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질 즘.
“농담인 줄 알아요? 자자, 여러분. 시작하세요. 이 천지 분간 못 하는 머저리한테는 현실을 보여줘야죠. 그리고 저 아들분? 거기서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이쪽으로 모셔와요.”
포를 떠야 하지 않겠냐고.
사마의는 그 나이 또래에 어울리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주의 아들은 사마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그 소년은 병사들에게 끌려오면서도 눈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또래였지만 사마의가 이 상황을 주도하며 공포를 밀어 넣는 입장이었고, 그는 그저 벌벌 떨 따름인 상황.
저 멀리 비명 지르기 시작한 부인을 뒤로하고 단검 하나를 꺼내 든 사마의와 마주했다.
공포에 질린 소년과 빙긋 웃는 소녀.
“처음이라 아프면 미안해요?”
“제, 제발… 그, 전부 아버지가 했고 저희는 아무것도….”
사마의는 손가락을 뻗어 그 입을 살짝 가로막았다.
“제발 죽지 말아줘요. 알겠어요?”
죽으면 더 고문할 수 없지 않겠냐고.
소녀는 밝게 웃었다.
소년은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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