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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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게 피어오른 불씨. 제아무리 잘난 명사라도 신이 아닌 이상에야 이 드넓은 도시 전체를 관장할 수 없었다. 물론 시작은 그저 잠깐의 소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조그마한 사건에 불과한 일이었다.
“날이 더워지니까 이런 일도 있구먼.”
그 작은 불길은 주변 사람들이 나서 금방 꺼뜨렸다.
장마가 지나고서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건조해진 날씨.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탓으로 허도는 부쩍 건조해져 이런 불씨 하나에도 주의해야만 했다.
“곧 축제니 분주하기는 하지.”
“그래도 그렇지. 가게 관리를 어떻게 하면, 에잉 쯔쯧. 저놈은 조만간 관청 한 번 불려가겠네.”
그들은 허망하게 주저앉아 벽면을 비롯하여 가게 일부분이 불탄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상인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목재 건축물도 다수 있는 상황에서 불길만큼 위험한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관청에서도 화재와 관련된 사안은 언제나 점검했고, 부주의로 인한 화재라면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상황이었다.
하마터면 주변까지 전부 전소될 수도 있었던 상황.
그렇기에 그곳을 둘러싼 사람들은 저마다 입방아에 올리며 이번 조그마한 화재, 그 이후의 진압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있었다.
일단 화재가 소화되었으니 한숨 돌렸을까.
하여 주변 인파도 조금씩 물러날 즘이었다.
“……이봐. 저기 댁 건물 아니여?”
“뭔데 자꾸 그래.”
상인 하나가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돌렸을 때.
조금 전까지 불타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불길이 먼저 보였다. 전조도 없이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불타오르는 건물. 그것은 건물 하나로 일축된 것이 아닌 그 주변까지 전부 집어삼킬 듯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
그런 광경이 허도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인 화재.
순심은 그것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조금씩 더 거세게. 타올라라, 타올라.”
허유는 몰랐겠지만, 이번 계획은 그녀가 허도 건설과 동시에 줄곧 준비하고 있던 일이었다. 내부로 사람들을 조금씩, 조금씩. 눈치채이지 않을 정도로 소규모로 하여 투입하고 그 지역에 자리잡게 하며 사람을 배치한다.
단순한 유언비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언젠가 원소가 하북에서 승기를 잡는다면 이럴 날도 올 것이라 믿고 움직였다. 마침 승전식을 준비하며 외부에서 다량의 물자가 공급되는 상황을 틈타 기름과 같은 인화성 물질을 들여온 것도 이것을 위한 것.
허유는 단지 뇌물 형식의 예물이라고 생각했을까.
“인간은 신이 아니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야 그 모든 것이 보였겠지만, 어찌 인간의 시야로 그 모든 것을 관장하여 살필 수 있을까. 수년에 들여 조금씩 준비했던 것마저 눈치챈다면 그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신의 영역으로 관할을 이관해야 할 일이었다.
기존 원소 첩자들이 구축해둔 거점과 그 인근을 중심으로 불을 질렀다. 안 그래도 허유의 움직임으로 시선이 쏠린 것을 노렸으니 아마 진압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움직인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축제는 좋지만 화려함이 부족했어.”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무언가 하나 부족함이 있었다. 진정한 화려함은, 모든 걸 불살라버릴 기세로 불타오를 불길은 아직 채 시작하지도 않았다.
“가자.”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
수와 수를 놓고 겨루는 싸움. 본인들이 먼저 암부로, 혹은 민간으로 숨어 움직이며 한 수를 두었다. 그러면 상대는 어떻게 대응할까.
그리고 진짜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모든 것이 순심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 * *
“요즘 분위기가 영 흉흉하구나.”
폐하는 옥좌에 앉아 다리를 까닥거리고 있었다.
“원소의 공작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중랑장의 신분을 다하여 황궁 일대의 수비를 맡고 있었다. 상대가 노릴 것 중 가장 큰 피해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황제 폐하의 신변.
만약 황제 폐하가 죽는다면 아군의 명분도 전부 날아간다. 게다가 모시던 주군을 죽게 하였다는 오명까지 조조가 덮어쓰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기세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는 소연 아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얌전히 기다리는 것은 또 어떠한가.
폐하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원소인가. 한때는 그가 영웅인 줄 알았는데. 귀하는 원소를 본 적이 있느냐?”
“반동탁 연합군과 그 이후 몇 번 보았습니다.”
“그는 어떻던가?”
폐하의 질문에는 잠시 고민할 부분이 있었다.
확실히 범상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금발과 금안. 무기질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웃고 떠드는 것도 오로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만이 들었을 따름.
그게 정치적인 행동이었을까.
하지만 영웅이라고 불러야 하느냐면 또 어떨까.
“저는…….”
원소는 확실히 걸물이었다.
반동탁 연합군에서는 동탁의 손길이 닿은 기주목 한복을 끌어들여 제 아군으로 포섭, 그리하여 연합군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얻은 지지와 신뢰는 지금 원소를 이룬 기반이 되었지.
사람의 반응을 이끌어 자신의 지지로 삼는다.
그는 확실히 정치적인 행보로는 천재적인 재능을 선보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매력과 지배력, 그리하여 민중을 확실히 장악하는 면모는 절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 그가 영웅인가?
“솔직히 말해도 좋다. 지금 이곳에는 소녀와 귀하 단둘이니까. 황제와 독대하는 영광을 누렸는데, 명령에는 거역할 생각이더냐?”
“저는 원소를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녀에게 신경 쓰는 거라면….”
폐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현 황제인 이 어린 소녀를 원소는 부정했고, 그렇기에 유협이라는 황제와 원소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내 대답의 이유는 아니었다.
“저는 진심입니다. 원소는 영웅이 아닙니다.”
과거 반동탁 연합군에서의 원소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그 남자의 말에 제후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진심으로 천하의 향방을. 더 나아가 앞으로의 개변까지도 이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어떻지?
“과거 원소는 대륙과 제국의 앞날을 밝히는 자였습니다. 모든 이가 원소의 의향에 귀를 기울였고, 그의 행보를 주시하며 그것에 휘둘렸지요.”
“그랬었지.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자신도 그 당시에는 원소를 믿고 있었다며 자조적으로 웃는다. 낙양에 피랍되었던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갈 정도다. 그만큼 그 당시 원소는 대륙 전체를 주도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그때와 비교해 원소 본인이 가진 것은 많아졌다. 세력은 그 시절과 비교하기 민망할 수준으로 커졌고, 이제는 당당하게 기주 전역을 관장하는 강대 세력으로 부흥한 것.
바로 그게 문제였다.
“현 원소는 기주 전역을 관장하며 공손찬과도 일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의 세력은 분명 강하지요.”
“그러면 영웅인 게 아닌가?”
“아니요.”
그는 오히려 추락했다.
과거 대륙의 앞날을 주도하던 인간이 일개 제후로 몰락한 것이다. 이제 그의 말 한마디에 대륙이 반응하는가? 그에게 기대를 품는 인간들이. 하여 이 대륙의 앞날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이 원소에게 있던가?
없다.
단언할 수 있는데, 원소는 그 시절에 비해 확실히 몰락해버렸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개혁이 아닌 지배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버렸다.
그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현 황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황제를 모셔야 한다고 했을 때부터라고 생각됐다.
그 순간부터 원소는 동탁을 몰아내고 이 대륙을 구하겠다는 명분마저 집어던지고 천하를 지배하겠다는 지배자의 시선을 가졌지 않을까.
하여 그는 구도자에서 지배자로 추락했다.
“그는 이제 대륙 전체를 관장할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물론 그 대가로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군벌이 되었습니다마는, 잃은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요.”
“흥미로운 관점이구나.”
폐하의 말에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세력만을 고려하는 게 아닌 시야 전체를 넓히고 생각한다고. 귀하를 천생 무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녀에게 또 놀라움을 보여주느냐.”
“단순한 일개 필부의 의견이옵니다.”
게다가 나는 적잖은 부분에서 소연 아씨에게 영향받은 부분이 있었다. 원소의 평가도 그녀가 생각하던 것과 내가 생각한 것을 짜 맞춘 것이었고.
“필부라니. 소녀가, 아니. 짐이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귀하는 소녀에게 있어 영웅으로 보였노라고. 지금 귀하는 황제의 눈을 부정하는지?”
“죄송합니다.”
“아니, 고개까지 숙이지 말라.”
그런 식으로 황제 폐하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슬슬 바깥의 소란은 끝났을까. 물론 황제 폐하와의 독대라면 누구나가 원할 기회겠지만, 개인적으로 내게는 다소 불편한 시간이었다. 계속 편하게 있으라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어찌 제국 수장을 상대로 편하게 있겠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그러던 때였다.
“폐하. 중랑장의 부관이 들었사옵니다.”
“들여보내거라.”
부관? 방삼이? 아니면 장료?
갑자기 여기는 왜. 벌써 일이 끝난 걸까?
우선 폐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고 방삼이가 들어오며 고개를 숙였다. 내부 경비로는 장료를 대장으로 임명했고, 외부 문제는 방삼이에게 맡겼으니 둘 중 장료가 올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저 미친놈이?
폐하를 만나면 우선 존안을 뵙고 영광이라느니, 그런 인사가 우선이지. 살짝 당황하여 옆을 봤는데 폐하는 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도 처음에는 저러지 않았느냐.”
할 말이 없네.
우리 같은 천것들이 뭘 알겠나. 방삼이 저놈도 고개를 들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폐하가 말하기 전까지 고개 들면 안 됐으니 그 부분도 무례에 해당했다.
이건 내 죄지.
장료는 그나마 황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어 예의 부분에서는 빠삭한 면이 있었기에 그를 황실 전담으로 돌리고 방삼이는 바깥으로 빼두었다.
같은 중랑장 휘하 근위대에 속해도 황제 폐하와 대면할 일이 없을 거로 생각해서 가르치지 않은 게 잘못이지. 귀찮아도 조금은 가르칠 걸 그랬네.
이걸로 벌써 수명 3년은 날아간 기분이야.
“일단 일을 보거라. 무언가 중요한 용무겠지?”
“이 무례를 어찌…….”
“되었다.”
소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하여 일단 방삼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놈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분명 황제 폐하에게 무례를 저지른 것도 있는데 그걸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대장, 큰일이요.”
“큰일은 시발 방금 네가 저지를 게 큰일이고.”
“진짜 큰일이란 말이요!”
아니 미친놈이.
바깥으로 나왔다지만 목소리를 높이면 황제 폐하에게도 들릴 수 있는 위치였다. 보통 이렇게까지 눈치 없는 놈이 아니었는데. 이러면 진짜 일이 틀어지기라도 했다는 걸까?
상상할 수가 없었다.
동승이 움직였다는 정보는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연 아씨와 운이가. 그리고 순욱 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관료가 움직이고 있는데 고작 동승 하나에 일을 그르치려고?
“무슨 일인데.”
“허도 곳곳에서 불이 나고 있소.”
불?
화재는 아니겠고. 지금 상황에서 곳곳이라는 단어를 쓴 걸 보면. 그리고 이리 당황한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불을 질렀다는 게 신빙성이 있을까.
“위치는.”
“북부에 한 곳. 동부에 두 곳. 서부에는 한 곳. 남부에도 두 곳. 그것도 거의 동시에 터진 거라 내부적으로도 난리가 났수. 일단은 내가 데리고 있는 놈들도 전부 소화 작업에 돌리기는 했는데…….”
“그렇게나 많이?”
그건 사전에 준비한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데.
게다가 놈의 반응을 보아 작은 불일 것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지금 방삼이의 몸에서는 살짝이나마 탄내가 났는데, 이놈이 직접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을 리도 없으니 몸에 묻은 냄새로만 이 정도일까.
“병력을 돌려. 우선 나도 폐하께 말씀드리고 나간다.”
“괜찮겠수?”
“일단 상황을 볼 거야. 비상시니 황궁 친위대를 천 이상 빼낼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진화 작업에 돌린다.”
지금 상황을 전시라고 보고 움직인다.
이렇게 되면 나도 황궁에만 붙어있을 수는 없었는데, 하다못해 황궁 인근에 주둔하더라도 아군 병력을 통솔하며 진두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상대는 왜 구태여 불을 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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