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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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기에 전부 투자한 거겠죠.”
정작 사마의는 심드렁하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래?”
“이번 선전으로 조조는 기세를 굳힐 생각이겠죠. 그 뒤에는 수년 정도는 잠자코 있어야 할 테니까, 이번 원술 토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거예요.”
“헹, 귀찮기만 하지.”
여포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확실히 이런 일은 호위와 경호를 담당할 우리에게 있어서는 변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선전함으로 아군의 강함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겠지만, 위험을 수반한 작업이 아닐까 싶었다.
“아마 이번 일 이후로는 당분간 못 움직일 거니까. 아마 이 행사를 위해 내어준 어음만 해도 상당할 걸요? 파산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 그거야 뭐 황제 폐하를 등에 업고 있으니까.”
“뭐, 그 부분이야 문관 나으리들이 해줄 일이지.”
“그 문관 나으리에 상서령도 포함됐거든요?”
아, 그건 안 된다.
아가씨가 머리 아파하는 꼴을 어떻게 보나. 하여 고개를 홱 돌렸더니 사마의가 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여포 또한 이 부분에서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 내미는 것이.
“아, 알았다고. 그만할게.”
최근 소연 아씨에게 너무 신경을 쏟았나.
그녀는 분명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었다. 내게는 사마의와 여포, 운이를 포함하여 짊어져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조금 신경이 쓰였을 뿐이라지만, 이렇게 한 명에게만 시선을 향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 그런 걸 포함하여 전부 알고서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주인아. 내가 나만 보라는 말은 안 하겠는데, 그래도 잘해. 무슨 소리인지 알지? 요즘 사마의 꼬맹이도 입 튀어나온 거 안 보여?”
“왜 나한테 돌려요? 당신은 아예 울… 으읍! 읍!!”
“아하하. 아무튼, 우리한테도 잘하라고. 꼬맹이는 물론이거니와 나도 주인이한테 많이 도움 준 거 같은데, 이런 자기주장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물론이었다.
사마의는 내 부족한 지적 재능을 채워주었다. 여포는 내게 부족했던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고, 운이도 말할 필요가 있나. 그건 진궁 선생도 마찬가지였고, 솔직히 조금 아니꼬우나 조조 또한 내게 결여된 무언가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소홀히 대한다고? 지금 우리의 상황은 잘 짜여진 조각과도 같아, 하나만 빠지더라도 전체가 흔들거릴 수 있는 관계였다.
그녀들은 내게 부족한 능력을 주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부족한 마음의 빈틈을 채웠다.
내가 말하기는 뭣하지만, 운이도 그랬고 여포도 그러했으며 사마의나 조조, 진궁 선생 또한 마음 어딘가에 공허한 빈틈이 있었다. 이들은 전부 완성된 듯, 하나로 완성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어쩌면 그렇기에 받기 과분할 정도로 애정을 표하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잘할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응. 그거면 됐어.”
“아니 뭐가 돼으읍!!”
여포는 사마의의 입을 막으며 픽 웃었다.
“이제 순찰이지? 어디 도둑 새끼는 없나 한 번 돌아볼까? 내가 이래 봬도 병주에 있을 적에 화살 한 발로 백 리 바깥을 나는 새도 떨어뜨렸거든? 눈 진짜 좋다구.”
“그래, 그래.”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조조가 복귀하여 연설할 허도 대광장을 포함하여 그 인근 대로변은 황실 친위대가 경비를 전담하기로 했다.
빌어먹게도 귀찮은 일이지만, 또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전쟁에서 막 복귀한 군인을 이렇게 부려 먹어도 되냐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소연 아씨를 포함하여 허도에 남았던 문관들 표정이 영 심상찮았다.
정확히는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아씨야 그나마 나와 이래저래 회포를 푼 이후로는 항상 밝은 얼굴이었지만, 대표적으로 곽가 같은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칭얼칭얼 얼마나 자기가 힘들었는지 알아달라며 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아! 오빠야!! 여기 있었나!”
“……와오.”
조금 생각하기 무섭게.
“쯧.”
사마의는 그 모습에 대번 혀부터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곽가는 한달음에 이쪽으로 다가왔는데, 오자마자 확 느껴지는 술의 향기로 미루어 짐작하길 그녀가 얼마나 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야! 이제 좀 축제 느낌이 나지 않나, 오빠야.”
“그만큼 술 잔뜩 들이켜면 매일이 축제겠지.”
이 술주정뱅이가.
“아하, 아하하. 뭐, 그런 것도 있지. 그래도 나 근래 진짜 힘들었다고. 소연 상서령은 진짜 미친 거 같다니까? 사람을 어떻게 그리 부려 먹어? 이 아리따운 처녀 얼굴에 기미 낀 거 보여? 나 진짜 죽고 싶어.”
“허이구. 꼴값을 한다.”
“내가 좀 이쁘기는 하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닌데.
여포는 그런 곽가를 고깝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여포도 술을 좋아하고, 또 고리타분한 일에는 질색하는 면에서는 서로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포는 곽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너무 친근하게 들러붙는다며 막 떨구려는 모습을 보아 곽가의 그런 터울 없는 부분이 영 껄끄러운 걸까.
“헛소리 말고. 작업은 어떻게 됐냐.”
“이 천재 군사 곽가를 얕보시는 건가? 므흐, 그건 조금 슬픈데. 이 완전무결한 미인 군사 곽가에게 걸리면 이런 잡무는 순식간이지!”
그리 당당하게 말하더니 또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난 조금 더, 응? 그. 난 이런 일보다는 대국적인 시야로 판별하는 거에 특기가 있는 사람인데. 큰일을 할 때 빛을 발하는 성격이라구. 오빠야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몰라. 그런 사소한 일도 못 하면 큰일은 어떻게 하겠냐.”
“했거든? 완벽하거든?”
완벽하면 됐지, 뭘 자꾸 궁시렁거려.
물론 곽가의 태도와는 별개로 광장에 설치되는 연설대. 또한 그곳과 이어지는 대로변을 비롯하여 이번 승전식에 필요한 모든 준비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허도의 총력을 실는 일이니만큼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됐다. 당장 여기에 들인 돈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인데, 만약 사소한 문제라도 생긴다고 하면 난 당장 도망갈 자신이 있었다.
“뭐, 이런 잡일은 별거 아니지.”
곽가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살짝 내게 다가왔다. 정말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몸까지 밀착할 거리까지 와서는 발꿈치를 들고 고개를 들어 작게 속삭인다.
“문제는 원소야.”
“알고 있어.”
아직 원소군 첩자의 잔당은 전부 청산되지 않았다. 소연 아씨가 그 뒤를 추격하고는 있다지만 한 번 깊이까지 파고든 놈들을 전부 일소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터.
게다가 동승의 행동에도 묘한 이질감이 있었다.
“오빠야가 한 말은 들었어. 동승이었지? 그 작자의 능력은 둘째로 하더라도 그 입지만은 얕볼 수 없어. 그런 남자까지 전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다시 말해 이번 승전식에서 사고가 안 날 수가 없다는 거야.”
“혹시 조공을 암살하려 들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 아니라고 보네요.”
내 질문에는 사마의가 답했다.
“너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커요. 당장 조조가 혼자 복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주변으로 호위병과 무장을 잔뜩 거느린 상태일 건데 무슨 수로요? 승전식에 섞인다고 해도 그 주변 경비는 삼엄할 게 뻔한데.”
“그건 나도 이 꼬맹이한테 동감.”
그 말에 사마의가 퍼뜩 고개를 들어 곽가를 노려봤지만, 곽가는 그 시선을 본 척도 안 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나 상서령은 조조 복귀 직전. 그러니까 승전식 준비가 거의 끝났을 때를 기준으로 해서 그 전후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해.”
“그것참.”
남 잔칫상 엎길 좋아하는 족속일세.
왜 다들 남 잘 되는 꼴을 못 봐서 이럴까. 물론 우리도 원소가 공손찬에게 대승을 거뒀다고 했을 때는 우려를 표했지만, 그건 또 별개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보내서 뒷공작에 연연하는 건 원소의 성향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랐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과 금빛 눈동자.
그것이 나와 소연 아씨를 응시하던 그 날의 기억을 어찌 잊을까. 어쩌면 그때를 기준으로 우리는 도적이라는 일개 군소집단에서 벗어나 당당히 천하에 발을 내민 순간이었다.
그때 보았던 원소는 고고한 황금과도 같았다.
더러움 한 점 없이 명예와 권력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움이 있었지만, 반대로 이런 뒷공작을 벌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물론 사람 속내야 까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라지만.
“일단 상서령과 나는 동승을 비롯한 황족과 고위 관료를 주시하고 있어. 그러니까 오빠야는 거리 일대의 주요 거점을 감시하며 병력을 수시로 파견해줬으면 좋겠다고.”
“아씨의 명이냐?”
“상서령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명령은 아니지만….”
“그럼 해두지.”
상서령이 내게 명령할 권한이 있을 리 없지. 허도에서 내 신분은 황제의 호위와도 같았고, 그렇기에 직접 명령권은 군부 수장인 조조를 제외한다면 오롯이 황제 폐하의 명령만을 받들 수 있었다.
“특히 이 광장 인근으로는 아무도 출입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람을 막으면 그만이지. 그 반발을 해결하는 건 또 상서령의 짐이 되겠지만, 행동 자체만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다.”
“쯧, 또 귀찮은 일을.”
여포는 대놓고 입을 삐죽였지만, 그래도 반대하지는 않았다. 나 개인으로도 껄끄러운 일이었다마는 받들지 못할 이유도 없는 일이니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비를 단단히 해두는 게 가장 상책이야. 군부에도 부담 끼치는 거 같아 달갑진 않지만, 오빠야도 어느 정도 협조해줬으면 좋겠어.”
“알고 있어. 이 일만 끝내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내 옆에 안 보이냐? 그 천하의 여포님과 자칭 천재인 사마의가 버티고 있잖냐.”
“자칭이요? 전 진짜거든요?”
하여간 자존심도.
곽가는 그런 우리의 말에 한바탕 웃어 재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경비와 관련된 부분은 내게 맡긴다고 하며 멀어져가는 그녀의 등을 잠시 바라보았다.
적의 움직임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어딜 노릴지 모를 이상 우리는 황실 경호는 물론이거니와 허도 내 경비와 주요 관료 및 황족의 경비까지 담당해야만 했다. 그건 확실히 전쟁에서 막 복귀한 아군 장병에게는 큰 부담으로 이어지겠지.
앞으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 기간만 버텨, 성공적으로 조조를 맞이한다면 이 일도 끝났다. 이 허도의 실질적 지배자인 조조가 복귀하고 난 뒤로도 수작질을 벌일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을 테니까.
답답한 기분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여포. 미안한데 지금 당장 장료를 불러줄 수 있을까? 아마 방삼이도 같이 있을 테니까 그놈까지 전부. 이제 기병 부대도 놀릴 수 없게 됐네.”
“물론이지. 애당초 이거 말이 안 됐거든? 누님은 이리 뼈 빠지게 일하는데 동생이라는 새끼가 말 관리나 하면서 탱자탱자 놀아? 그거 좀 아니꼬웠는데 잘됐네.”
말을 관리하는 게 논다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뭐, 아무렴 어떨까.
“사마의. 너는 운이가 돌아오는 대로 걔랑 같이 경비병들의 순회 경로에 대해서 생각해줘. 운이는 특히 우리가 자리 비운 허도에 줄곧 있었으니까 그간의 사정을 우리보다는 잘 알겠지.”
“그건 좋지만, 아저씨는요?”
“나는…….”
일단 황제 폐하와 만날까 했다.
복귀한 날의 어전회의 이후 단독으로 황궁에 입궐한 적이 없었으니까. 조만간 단독으로 독대하자던 그 소녀의 부탁을 저버린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다소 걱정되는 것도 있고.
“일단 황궁에 한 번 입궐해야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리의 폐하를. 그 어린 소녀를 의심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 만약 이 소란에 어린 폐하의 입김이 들어갔다면 대응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쪽으로 가실 거면 조심하세요.”
“알아.”
만약 폐하가 진심으로 조조 축출을 꿈꾼다면?
그러면 단독으로 입궐할 나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 허도에서 가장 많은 군사를 거느린 것은 나였지만, 군부에서 가장 고위급 관료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거기장군인 동승이라고 답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그때는 공백인 부대의 통솔을 맡겨야 하는데, 그러면 거기장군인 동승에게 군이 돌아가게 될 수도 있었다.
“일단 인사만 올릴 거니까.”
“저도 원소 관련된 일이니 황제 폐하가 그들에게 가담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요.”
“……쯧.”
일이 이렇게 되니 누구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심이 의심을 부르고, 하여 그것이 꼬리를 물고 거대한 원을 그린다.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점점 좀먹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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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주정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