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322화 (322/343)

32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이리들의 밤 허도로 많은 물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곧 조조가 복귀하면서 승전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를 열기 때문일까. 그나마 최근 딱딱하게 경직됐던 성내 분위기도 나름 풀어져 이제는 나름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런 거리를 아씨와 걸었다.

“무슨 일이래. 갑자기 나를 꼬시고는.”

“그냥. 너랑 있고 싶었는데, 싫어?”

너무 직설적인 말에 잠시 말문이 멎었다.

물론 싫을 리가 있나.

과거와 비교해 그녀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물론 여포나 운이, 사마의 등과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연 아씨와의 시간이 그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사람이었고 이해하기 힘든 인간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와는 제법 오랜 기간을 함께 있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

“좋긴 한데, 바쁘지 않으셨수?”

“일단 장내 사전점검도 포함한 거니까. 너는 내 호위라는 느낌으로. 생각해보니 출세했네. 중랑장이라면 황제 폐하와 황궁 수호를 담당하는 관직인데, 그런 사람이 내 전담 호위로 있으니까 말이야.”

“중랑장 이전에 나는 아씨 거였는데?”

픽 웃으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내가 언제부터 중랑장이었다고. 시작은 전부 그녀와 함께하면서부터였다. 지금은 조금 부끄럽지만 진소연의 검이 되겠노라고, 그런 식으로 떠들기 시작한 것이 내 근원이었다.

“내 거라고? 이건 좀 부끄럽네.”

“아니, 거기서 부끄러워하면 내가 뭐가 돼.”

제발 그냥 흘려넘겨주면 안 되나?

말한 나도 조금 부끄러운데. 아니 그것보다 평소에는 그냥 대충 넘겼으면서, 왜 이렇게 단둘이 손잡고 있을 때가 되니까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피하는가.

물론 그것도 귀엽긴 한데, 그래도 좀.

“내가 네 것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훨씬 전부터 난 아씨 거였어.”

“아닌데. 내가 더 빠를 건데?”

어허? 무슨 소리를.

아마 반하기는 내가 맨 처음 반했을 텐데. 아마 잘은 몰라도, 어쩌면 그 흰 눈송이가 펑펑 내리던 병주의 야산. 그 차갑게 식은 공기와 대지를 덮는 눈을 배경으로 하여 진소연이라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빠르다고?

“내가 훨씬 더 빨리 반했어.”

“…………이거, 좀 많이 부끄러워.”

그러니까 자꾸 시선 피하지 마라니까.

본인이 먼저 이런 화재 꺼내놓고 먼저 물러나면 받아친 사람이 뻘쭘하잖아. 물론 살짝 시선 내리깔고 얼굴 붉히는 그녀도 예뻤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잠시 우리가 말문이 멎은 사이에도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처음 허도를 보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더라. 고작 몇 년 만에 제법 큰 도시로 발전한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진심으로 사람들이 웃는 것 같아 그것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비록 칼잡이에 불과한 나였지만, 그런 나라도 무언가 이루어낸 것이 있구나 하면 어딘가 가슴 한편에서 뭉클한 것도 느꼈다.

“아씨.”

“응?”

여전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 칼 한 자루로 뭘 할 수 있을지 몰랐어. 기껏해야 사람 죽이고, 응? 그러다가 어느 전장에서 홀연히 칼에 맞아 죽지 않을까. 그게 내 미래였고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것이 일반 병사의 운명이기도 했다.

아가씨는 나와 처음으로 맺어진 날, 내가 그녀의 운명이었노라고 했다. 사실은 반대인데. 고작해야 일개 병사이자 도적. 잘 쳐줘도 인간 백정에 불과하던 한량의 운명을 바꾼 건 다름 아닌 진소연이라는 사람이었다.

“멍청하긴.”

그녀는 그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살짝 아릴 정도로. 예전부터 느꼈지만, 소연 아씨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힘이 셌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센 거 같은데.

진짜 꽤 아플 정도로 꽉.

“어디서 죽는다는 소리 하지 마. 넌 나를 가진 순간부터 죽을 수 없는 몸이 됐으니까. 나랑 만났던 그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앞으로도 넌 죽을 수 없어.”

“그건 좀 무섭네.”

그러니 소연 아씨가 살짝 시선을 돌렸다. 조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눈만은 또렷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서우라고 하는 말이야. 너 죽으면 따라 죽을 거니까.”

“미친 소리야! 하여간, 망측한 소리만 진짜.”

산 사람은 살아야지 무슨 소리냐. 장난이라도 이런 말을 흘려들을 수 있겠나. 게다가 나는 직업특성이 그러하듯 전장을 자주 돌아다니는 편인데, 그러다 잘못해서 나 죽으면 소연 아씨까지 죽는다고?

무서워서 전쟁터 나갈 수나 있겠나.

“내 목숨 하나에 뭐 그리 많은 게 걸렸나.”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예입.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이런 얘기는 하다 보면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고 괜히 분위기가 처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 저거 좀 보쇼. 슬슬 시장도 준비하는 것 같은데.”

좌판 비슷한 것이 쭉 늘어서기 시작한 게 보였다. 축제라고 하면 확실히 저런 길거리 음식 같은 것이 꽃이기는 하지. 비록 직접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저런 것도 나름의 풍류가 있는 법이었다.

“난 어렸을 적에 저런 게 진짜 너무 좋았단 말이지. 가격도 싼 편이고. 지금에야 몰라도 예전에는 돈에 허덕였을 때라서 저런 곳에서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도 감지덕지했지.”

“한 번 먹고 갈래?”

“글쎄.”

나는 상관없는데 아가씨가 저런 걸 좋아하려나 모르겠네. 아무래도 즉석에서 가볍게 내어주니 조금 조잡한 면이 없잖아 있으니까. 나는 아직도 저런 걸 좋아하긴 하는데, 그게 맛있냐고 하면 또 의문부호가 붙는다.

게다가 향이 강한 곳은 또 너무 강하게 내놓기도 하고.

“입맛에 안 맞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먹어보고 정하지 뭐.”

그녀는 맞잡은 손을 이끌고 좌판을 연 음식점으로 향했다. 여기는 국수인가. 보통 국수 아니면 적당히 나물을 볶거나 한 것. 그도 아니라면 가벼운 국에 밥을 말아놓은 등의 음식이 주를 이루기는 했다.

주변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특히 우리가 대로변 인근으로 나온 것도 있었고, 곧 대대적인 행사가 진행될 것이기에 이곳저곳에서 상권 관련된 움직임으로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잠시 그곳에서 각각 국수 한 그릇씩을 시켰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간이 탁자는 전부 자리가 꽉 차 서서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그나마도 나쁘지 않다고 어울려주었다.

내 알기로 소연 아씨는 생긴 거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보아도 고생 한 번 안 하고 자란 티가 났는데, 그런 사람이 내게 맞춰주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이거 참, 조금 묘한 기분이네.

“나름 괜찮네.”

그러면서 남은 국수 면발을 호로록 빨아들인다. 그 모습에 픽 웃으면서도 다 먹은 그릇을 주인장에게 건네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 먹었으니 하는 말인데, 나한테는 조금 짰어.”

“그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예전부터 조금 싱겁게 먹는 성향이 있었다. 자의건 타의건 가난한 삶에서 간이 센 음식을 먹기 힘드니까. 그런 면에서 이런 길거리 음식 하나로도 허도 경제가 나름 윤택하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일까.

그래도 난 역시 조금 심심한 게 딱 좋다.

“하긴. 예전에도 운이가 만든 음식에 트집 잡았던 적이 있었지. 그때 국이었나? 너무 짜다고 네가 하도 발광해서 운이도 거기에 열 받았었잖아.”

“아니, 그 계집애가 국을 무슨 쓰다 싶을 정도로 짜게 만들었잖아. 그건 솔직히 뭐라고 해도 됐어. 요즘은 좀 나아지긴 했는데, 그땐 진짜 아니었거든.”

벌써 그것도 4년인가 넘게 지난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앞으로 전쟁이 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당분간은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소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솔직히 최근에는 방삼이랑도 잘 못 만나고 그래서 조금 쓸쓸하던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놈 최근에는 복순이랑 계속 같이 있는지라 찾아가기도 다소 껄끄러운 게 있는데.

하여간 사내놈이 여자 하나에 빠져서는.

“자, 이쪽으로 조금 더 붙어.”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소연 아씨는 내 손을 붙잡고 살짝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슬슬 저녁 시간대가 되니 도로변에도 인파가 잔뜩 모였는데, 덕분에 혼잡하던 차에 아씨가 손을 이끌며 자신의 어깨를 내 팔뚝에 기대었다.

“사람 많네.”

“나름 이 제국의 수도 아니요.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는 조금 더 조용한 게 취향이라서.”

그러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까. 사실 말이 순찰이었지, 도중부터는 그냥 아가씨랑 거리를 둘러보기 바빴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이미 사람도 쫙 풀었고, 경비병의 숫자도 늘렸으니 걱정할 것도 없으려나.

“종종 이렇게 보내는 것도 괜찮겠네.”

“하도 바쁘신 몸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네.”

살짝 이죽거리니 아씨는 금세 눈에 쌍심지를 켜고 올려다본다. 놀린 건 미안하지만 사실이지 않은가. 특히 아가씨가 상서령에 오른 이후에는 제대로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던가.

기껏 만나도 업무 얘기만 했으면서.

“아가씨만 안 바쁘면 난 언제라도 이럴 수 있어.”

“운이는 어쩌려고. 게다가 여포라던가, 다른 사람도 많잖아? 응? 이 바람둥이.”

……아니, 그걸 말하면 내 말도 궁색해지는데.

“농담이야.”

이내 웃으며 그리 말한다지만, 내게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농담이라고 할지. 솔직히 말해 바람둥이라는 말을 들어도 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니까.

상황이 상황이었노라고 해도.

글쎄.

“아, 진짜. 농담이라고 했잖니?”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뺨을 꾹 당겼다.

“아으, 흐지 마소.”

“풉. 뭐야 그게.”

그걸 말하면 농담이라도 찔리는 게 있다니까는. 아가씨는 웃으며 말했지만, 이걸 다른 사람에게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릴 적 사리분별 못 하던 시절에 여자 문제로 고생했던 적이 있지만, 다 커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때도 좆을 좆대로 놀려서 죽을 뻔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죽지는 않으려나.

“……물론 조조에게도 손을 댄 건 좀 의외였어.”

……아. 이거 죽으려나?

“농담이야. 무슨 일인지는 얼추 운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는 조금 화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그걸 내가 참견하는 건 도의가 아니겠지.”

그 사람, 그러니까 조조도 진심인 것 같다며 아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 자신이 진심으로 날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만날 때마다 반쯤 이쪽을 골리듯 이죽거리는데 당최 속내를 알 수가 있겠냐고.

“이제 슬슬 갈까?”

“돌아가면 다시 일이요?”

그 말에 아씨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선 곽가랑 만나봐야지. 아마 대부분 정리됐겠지 싶긴 한데, 그래도 내 승인이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술주정뱅이 계집애는 잘하고 있수?”

“굉장히. 본인의 태도는 둘째치고 실력은 진짜니까.”

과거 복양성이 넘어갔을 때도 곽가의 도움을 제법 받았기에 그 부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문제라면 당최 진지하질 않다고 할지, 그놈의 술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그나마도 아씨가 괜찮다고 한다면 할 말 없었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도 잠시 이것저것 떠들며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누렸다. 이런 시간이 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앞으로 아가씨도 종종 이렇게 시간을 내겠다고는 했지만, 또 일이 바빠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난세라는 건 뭘까.

앞으로도 전쟁은 계속되겠지. 나도 무관인 몸으로 그것에 빠질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아가씨도 직접 전장에 설 일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그건 조금 착잡한데.

“이대로 평화로웠으면 소원이 없겠네.”

“그 소원 이루려고 싸우는 거잖니?”

그도 그랬다.

그래도 당분간은 평화로울 수 있겠지. 기껏 원술을 잡았는데 이 뒤로도 계속 전쟁이나 정치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조조나 아씨도 당분간은 평화로울 거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조금은 괜찮겠지.

조금만이라도 괜찮으니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휴일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누릴 수 있다면야 이보다 더할 나위 없겠지.

“아씨.”

“왜?”

“좋아해.”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맞잡은 손에는 조금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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