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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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히려 빨리 알아차려서 다행이라고 할 부분도 있었다. 머리는 복잡해졌지만, 아예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나는 그것을 즉시 소연 아씨에게 고했고, 아가씨는 어차피 예상했다면서 그래도 고생했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심배와 구 백파적의 수뇌부를 쳐냈지만, 기타 잔당을 전부 포박한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 분명 이번 기회에 한 번 허도를 크게 쥐고 흔들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그 과정에서 동승 정도의 인사 포섭까지는 당연한 수순이라던가?
소연 아씨, 진짜 점점 대단해지는구만.
이건 내가 콩깍지 낀 게 아니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 부분이었다. 한 수가 아니라 서너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며 미리 준비해두는 건 과거 아가씨에게서는 볼 수 없는 능력이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예전 아가씨는 어땠더라.
분명 미래를 읽는 듯한 식견에 예언가가 아니냐 싶기도 했지만, 적어도 행동 하나하나에 저런 치밀한 구석이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물론 나는 그런 그녀의 능력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이해할만한 식견도 없었고, 판단력도 부족했다.
단적으로 그만한 지혜가 없었다.
그나마 하나 꼽자면.
“사마의, 네가 보기엔 어떠냐?”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죠.”
그나마 내가 그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는 건 언제부터인가 내 옆에 꼭 붙어 다니는 이 꼬맹이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실제로 지금 막 물어봤을 뿐인데도 벌써 제 입술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일단 동승 따위가 뭘 하더라도 상서령의 시야에서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할 거에요. 실권도 없고, 그렇다고 별도로 운용 가능한 병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병력이라면 사병을 꽤 많이 꾸리고 있던데.”
그러니 꼬맹이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죠? 이 허도에서 고작 오백 겨우 웃도는 병력으로 뭘 할 수 있다고요? 어차피 곧 대장군이 돌아온다면 그걸로 모두 끝나요.”
“그렇겠지?”
그러면 내가 너무 신경과민이었을까.
조금 찝찝한 느낌이. 동승의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근래 들어 겨우 평화와 행복을 찾은 직후이기에 더욱 예민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네.
이제 원술 토벌이 끝났으니 자의건 타의건 조조는 수년 이상은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내실을 다져야 하는 일이고, 그러면 나도 이 허도에 붙어있어야 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얼마만의 평화 아닌가.
아가씨와의 일도 그렇고.
“단지, 그러네요.”
소녀는 그 시점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동승이 아저씨에게 했던 발언들. 전부 묘하게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지만, 실상 까보면 누가 뭐라고 해도 조조에게 반기 있음을 증명하는 말뿐이에요. 적어도 면전에서 당당히 내뱉을 종류는 아니었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동승이 능력 부족한 이라는 건 알지만, 그 인간도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햇수가 이십 년은 우습다고 들었어요. 그런 사람이 그런 간단한 실수를 할까요?”
사람은 나이를 들면 점점 노화한다.
그것은 분명 감성이 될 수도 있고, 지성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눈치가 될 수도 있지. 그렇게 사람은 점점 퇴화하고, 언젠가는 마모되어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동승이 아예 퇴화하여 실력이 녹슬었다고 보기만은 힘든 것이, 나에게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건 가장 기피할 일이었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동승은 이상했다. 정치판에서 선황제에게 붙었다가 동탁으로 자연스럽게 줄을 갈아탈 정도의 권모술수를 부리던 작자가 이리 홀라당 제 속내를 빤히 드러낸다고?
“그도 그러네.”
“믿는 뒷배가 있을까요. 아니면 정말 그냥 아저씨를 떠보려던 속셈일 수도 있겠죠. 어느 방향성이건 동승 자체는 이제 더 믿어선 안 될 인물로 격하됐어요.”
쯧, 어쩌다가 일이 이리도 꼬여서는.
앞으로는 조금 평화로울 거로 생각했는데 벌써 일이 꼬인다. 안 그래도 이제는 좀 쉬고 싶었기에 더더욱 골치 아팠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 양반을 믿은 적은 한 번도 없긴 해.”
어디 쉽게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인가. 당장 데인 것도 너무 많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솔직히 호감 가는 성격은 아니니까.
일단 놈을 감시하는 건 아가씨나 상서부에서 맡아줄 터. 그러면 나는 놈의 사병을 견제하고 주위 감시를 강화하는 게 정답일까? 혹여라도 황궁 인근에서 사변이 발생하면 일이 더 꼬일 테니까.
“그러면 병력을 추가로 배치할까 하는데.”
“나쁘지 않네요.”
사마의도 그 의견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선 대비하는 것뿐이니까요. 막 원정에서 돌아온 직후라 정보가 너무 적어요. 저도 일단 계속 상세한 것을 모으고는 있는데, 그마저도 아마 기존부터 대응하던 상서부의 정보에는 밀릴 테고요.”
“어이구, 이 꼬맹이.”
그 말이 우스워 사마의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하여간 어려서부터 왜 이렇게 똘똘해?”
“모시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니까.”
뭐야, 설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슬픈 부분일까. 애당초 요 녀석에게 실무적인 부분 대다수를 일임해버린 것도 나였고.
“심배와 양정 같은 이들이 상서령 암살을 시도했었으니까 그 부분을 주의하는 게 좋겠네요. 다행히 상서령과 달리 저희는 기본적으로 근위대의 성격을 띠고 있으니까 그쪽에서도 뭐라고 못할 거예요.”
“중랑장 자체가 그런 관직이니까.”
긴급한 국가 대사에서는 황제의 대리 장군이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황실을 비롯하여 근위대로 근무하는 게 중랑장이라는 관직이었다.
그것은 비단 황제 폐하만을 한정 짓는 게 아닌 황실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어, 이럴 때 요인경호의 목적으로 병력을 움직여도 누군가 책망할 수는 없을 터.
단지 조금 거슬리는 게 있었다.
“다 좋은데, 그러면 너무 수동적이지 않아?”
자칫 휘둘릴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미리 대비하고 대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동적이어도 어쩔 수 없죠. 내부적인 관리나 감시는 상서부에서 맡을 거예요. 저희에게는 군권이 있으니 그걸 최대한 활용하려면….”
“알겠다, 알겠어.”
정치에는 군인이 간섭하지 않는다.
일단 나는 그렇게만 움직여도 될까. 나머지는 소연 아씨에게 맡기는 꼴이 되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씩 서로 마음을 터고 얘기하게 되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까.
다소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 어떻게든 잘 풀리겠지.
* * *
허유는 허도 북문을 통해 들어오는 내부 공작원들을 기다렸다. 추가적인 인력 파견 요청을 보냈고, 원소 또한 그것에 동의하였다고 했으니 양동을 위한 준비물을 실은 사람들이 도착할 것.
그렇기에 그는 객잔 상층에 앉아 잠시 기다렸을까.
“또 헛바람이 들었나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딱 듣기만 해도 짜증을 느끼는, 허유 개인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목소리.
객관적으로는 제법 미성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허유와는 악연으로 이어져 그 자신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는데, 설마 그 여자가 직접 왔을까 해서 고개를 돌렸을 때.
“……순심.”
“하여간 사람 귀찮게 하시네요.”
그녀는 어깨를 툭툭 털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허유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지만, 순심은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는 그 앞에 놓인 찻잔을 대뜸 빼앗았다.
“아직 안 마신 거죠?”
“쯧, 가져가라.”
그는 이 여자가 껄끄러웠다.
능력으로는 허유 또한 어디서 밀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순심만큼은 예외였다. 자신보다 합류도 늦었으면서 원소에게 받는 신임은 자신을 뛰어넘는 인물. 하지만 그것에 불평하기에는 그녀와 자신의 격차가 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누군가는 순심을 가리켜 이리 평가했다.
패왕의 어깨에 앉는 독수리.
그녀는 그 평가에 밀리지 않는 무게감을 지녔다. 능력으로 그것을 증명했고, 어쩌면 원소가 제 부하 중에서 누구보다 신임하는 인물일 터.
그런 여자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원공의 지시인가?”
순심은 바로 답하기보다는 입가에 댄 찻잔을 살짝 들이켜 목을 축였다. 그렇게 허유가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을 무렵이 되어서야 픽 웃었다.
“그것도 있지만, 제가 지원했어요.”
“어째서?”
구태여 순심 정도나 되는 인물을 보낼 일이던가. 물론 허유 자신도 원소군 내에서는 꽤 중진이었지만, 그건 심배를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원소가 공손찬의 역경을 떨어뜨린 것은 좋으나, 그 이후의 공세에서 대패하였기에 공손찬 토벌은 아직 시간을 소요할 일이었다.
반대로 조조는 원술 공략을 성공리에 마쳤고, 하여 원소는 이번 기회에 조조군을 내부에서 갉아먹을 요령으로 심배와 허유를 파견한 것. 물론 심배는 그 과정에서 죽었다지만, 이 일이 순심까지 낄 일이던가.
“뭐, 귀여운 동생을 보러 온 것도 있지만.”
그녀는 살짝 고개를 들고는 턱으로 그를 가리켰다.
“당신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았으니까.”
“나를!!”
순간 허유는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딱히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무시당하는 것을 싫어했으니까. 물론 그간의 공적에서 순심이 자신을 웃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하여 그것이 자신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허유의 반응에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지금, 화냈어요?”
“……나는. 아니, 이 일은 나 혼자서도 가능하다. 이미 모든 사전준비를 마쳤고, 그에 필요한 물자 또한 네년이 옮겼겠지.”
“네년이라.”
순심은 작게 웃었다.
“간섭하지 마라. 이미 동승과 황족 여럿을 포섭했고, 여기서 황제를 암살하면 조조군의 근간은 뒤틀릴 터.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중진이 죽어버리면 조조가 이후 지금처럼 활개 칠 수 있을 것 같은가.”
“혼자서 가능하리라 생각하는지?”
“가능하다.”
그러니 입을 닫으라며 허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심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살짝 웃고 있었지만, 정작 눈이 전혀 웃질 않았다. 단지 객관적으로 무심하게 그를 관찰하며 평가한다. 허유는 그녀의 바로 그러한 점이 딱 질색이었다.
“일어난다. 물자는 예정됐던 지역으로 옮기도록.”
“명령인가요?”
“너는 내 보좌로 온 것일 터. 기존의 관직 여하를 떠나 이 자리에서는 네가 날 보좌할 입장이다. 그 입장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허유는 불쾌한 기색을 잔뜩 보이며 등을 돌렸다.
그녀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고는 이내 콧바람을 불며 찻잔을 손에 쥐었다. 어차피 그가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녀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조조 귀환까지 남은 일수는 6일일까.
“나쁘지 않네.”
허유가 획책한 일은 그가 부탁했던 물자만으로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성공한다면 대박이었지만, 그녀가 보기에 성공 가능성은 일 할도 채 안 돼 보였다.
황궁을 직접 불태우겠다고?
“미친 소리지.”
하지만 그게 저 남자의 매력이었다.
열등감과 명예욕에 몸서리치는 남자. 본인은 내색하지 않지만, 그는 어릴 적 원소와의 친분을 이용해 그와 자신이 비슷한 위치에 있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에게는 그게 우습기도 하고, 또 치기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아 재미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녀는 찻잔을 잠시 흔들었다.
찰랑거리며 찻잔 내에서 요동치는 것을 잠시 바라본다. 허유의 계책은 성공하건 실패하건 허도 내에 꽤 큰 혼란을 야기할 터.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후흐흥.”
묘한 웃음과 함께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유의 계책이 정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면 아마 허도 내 황제는 사망할 터. 솔직히 너무 막무가내인 데다가 운에 맡기는 책략이라 할 말도 없었지만, 그 또한 재미였다.
성공한다면 좋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하나 더 준비해놓는 게 진짜 책략가라는 게 아닐까. 순심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빙긋 웃었다가는 문득 고개를 떨궜다.
“동생한테는 미안하게 됐네.”
순욱, 이 멍청한 동생아.
그러게 내가 말할 때 그냥 얌전히 원공 밑에 있었어야지. 괜히 조조 같은 이에게 붙어 이게 무슨 꼬락서니야.
“에휴. 하여간 진짜.”
순심은 잠시 입을 삐죽 내밀고는 하늘을 응시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타들어 가는 듯한 건조한 날씨. 구름 또한 한 점 없어 가만히만 있어도 푹푹 찌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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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에는 설명했습니다만, 며칠 전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방에서 목을 매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조금 충격이라, 그것에 다소 멘탈이 흔들렸는지 연재가 늦어졌습니다.
허망함도 얼추 떨쳐냈으니, 이제 다시 연재 집중하겠습니다. 거듭 송구하며, 앞으로는 최대한 잘 준비하겠습니다.
여담으로 3월 19일에는 반반무 이벤트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