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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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 내가 뒹굴었기에 정리하지 않은 이부자리 위로 그녀를 살며시 눕혔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뺨만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시간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게 있어 진소연이라는 사람은 하늘 위 그 무언가 같았으니까. 나와 같은 곳에 살더라도 다른 세계의 존재를 보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단지 우연히도 같은 세계에서 비슷한 언어로 떠들 뿐, 존재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신기하네.”
“……뭐가?”
“그냥, 난 아가씨랑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 언감생심이라고 그런 생각도 안 하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러니 소연 아씨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뭐니, 그게. 난 뭐 외계인이라도 돼?”
“외계인은 또 뭐요?”
“……있어.”
하여간 이런 상황에도 가끔 이해 못 할 얘기만 꺼내는 건 변하질 않네. 하지만 이 또한 그녀의 매력이었다. 아마 나는 평생 그녀에 대해 이해할 수 없겠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치마를 끌어 내렸다.
그녀의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은 멈췄지만, 새빨갛게 부어 조금 웃겼다. 그래도 그 미모가 어디 안 간다고 그 또한 애처로워 사랑스러웠지만, 그렇게 운 직후 바로 이런 관계로 넘어간다는 건 어떨까.
“왜 웃어.”
“아니, 아씨 눈가 좀 보라고.”
“……치워. 오늘은 아닌 거 같아.”
“아아, 또 삐졌수? 아이, 거참!!”
순간 고개를 홱 돌리고 일어나려는 그녀를 다시 눕히느라 조금 투닥거렸다. 문제는 아씨 힘이 보통 힘은 아니라는 건데, 단지 몸을 일으키는 동작에도 뭐 이렇게 힘이 실리냐? 말이 돼?
“나 얼굴 좀 이상할 거 아냐.”
“예쁘기만 한데, 뭘 자꾸 그러시나.”
“난 싫어. 그래도 처음 맺어지는 건데…….”
그 뒷말은 점점 작아졌지만, 가장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며 고개를 살짝 돌리는 부분에서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도 있었던가.
물론 예전부터 툴툴거리거나 하는 부분에서 약간 그런 느낌도 받았지만, 최근 소연 아씨를 생각하면 영 찾기 힘든 모습이기도 했다. 여전히 살짝 볼 부풀려 삐졌다는 느낌을 주는데도 예뻐 보이는 것은 내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낀 탓일까.
“괜찮아. 지금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예쁘니까.”
“……지금만큼은?”
“아니, 왜 하필 거길 꼬투리 잡어?”
하여간, 여자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이상 말꼬리 잡히다간 끝도 없겠다 싶어 천천히 고개를 내려 누워있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입술과 입술을 겹치는 가벼운 느낌으로. 새가 모이를 쪼듯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빨았는데, 그녀는 눈을 꼭 감으면서도 그 모든 걸 받아주었다.
그리고서는 살짝 입술을 뗐을 때.
“……더, 안 해도 돼?”
그녀는 살짝 애달픈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아우! 이걸 어떻게 참으셨대?”
입으로는 놀리고 있었지만, 이 심장이 고장 나서 자꾸 두근거리는 게 멈추지 않았다. 봐, 지금도 미친 듯이 뛰고 있잖아. 너무 크게 뛰어 이것이 그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되려 짓궂은 말이 나갔다.
“자꾸 그럴 거야?”
“미안. 솔직히 좀 안 믿기는 것도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입술 삐쭉 내밀고 고개 돌리지 마.
잠시 그녀를 끌어안았다. 서로 알몸이었기에 피부가 맞닿았는데, 그 부드러운 살결이 내 몸에 꽉 눌릴 때마다 자꾸 아랫도리에 피가 돌아 미칠 지경이었다.
“뭐가 안 믿기는데?”
그녀는 내 품에 안겨 고개만 살짝 들었다.
그 검은 머리카락이 가슴팍을 간질였고 붉은 눈동자는 빼꼼 치떠 내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그게 사랑스러워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픽 웃었다.
“나는 아가씨가 나랑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겹칠 수 없는 세계에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이 다른 느낌도 들었다. 한때는 마음에 품었지만, 언감생심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접고자 했다. 아가씨의 불안과 내 어림짐작이 맞물려 우리 관계는 계속 평행선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가 말했잖아.”
그녀는 손을 들며 내 뺨을 쓰다듬었다.
“너는 여기에 살아있고, 나도 이 세상에 살아있다고.”
그러면 된 게 아니냐면서 그녀는 살짝 웃어주었다.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던 우리는 이렇게 교차했다. 서로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시간, 지금부터 이어질 시간이었다.
“자, 만져봐.”
소연 아씨는 내 손을 살짝 당겨 제 가슴팍에 올렸다. 말캉하고 부드럽게 짓눌리는 가슴 한편으로 크게 두근거리는 고동이 느껴진다.
“이래도 내가 다른 세상 사람으로 보여?”
“……뜨겁네. 부드럽고.”
“……마지막 말은 안 해도 됐는데.”
또 부끄러워하긴.
다 큰 남녀 둘이 서로 전라로 마주하고 있는데 부끄러울 게 뭐 있다고. 하지만 그 또한 그녀의 매력이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붙어있는 시간도 좋았지만, 이 이상을 바라는 욕심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럼, 아가씨.”
“……지금만은 소연이라고 불러줘도 되잖니?”
그녀는 내 품에서 살짝 움직이면서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이내 내 머리를 제 가슴팍으로 꼭 끌어안았다. 그 부드러운 가슴이 내 얼굴에 맞닿아 뭉개지는 감각과 달콤한 살 내음. 덧붙여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전해졌다.
“날 이 이상 부끄럽게 할 거야?”
“아가씨는 아가씨지.”
“소연이라고 불러. 빨리.”
거참, 그래도 5년 넘게 입에 밴 걸 어떻게 바로 바꿀까. 이런 건 보통 습관적인 문제였다. 쉽게 바꾸라고 해서 바뀐다면 얼마나 좋겠나. 게다가 아직 내게 아가씨는 조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말 안 하면 안 해줄 거야.”
“소연아.”
“……잘했어.”
아니, 이게 아닌데.
어이가 없어 웃었는데, 그녀도 그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렇게 소리 내어 쿡쿡 웃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조금 전 어색하고 조금 애잔했던 시간을 떨쳐내려는 듯,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그 체온을 나누며 웃었다.
“바보.”
“바보라고 하는 쪽이 바보랬수.”
“누가 그래.”
“그, 아무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끝이 없잖아.
“하여간, 진짜.”
“뭐요.”
“아니, 그냥. 나도 사실 너랑 이런 시간이 올 거로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행복하다고 하고 싶은데, 그보다는 조금 현실감이 안 느껴져. 아직 꿈속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꿈속이라.
그러면 아마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
눈을 뜨고 꾸는 꿈. 현실인지 가상인지도 모를 그런 현실을 영유한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그 꿈이 쭉 이어지면 그만인 일이 아닌가.
“아가씨.”
“왜?”
“사랑해.”
그러니 또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얼굴을 가렸다. 날 끌어안던 손까지 빼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나는 아직 그녀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손 치워봐.”
“싫어. 부끄럽다구.”
“그래도.”
난 조금 더 보고 싶은걸?
그런 느낌으로 한참을 서로 떠들었다.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차, 내 빳빳하게 선 아랫도리에 그녀의 허벅지가 닿아버렸다.
“아.”
“……그, 남자는 원래 이런 거요.”
“……그러네.”
그녀는 살짝 내게 물러났다.
순간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졌다. 이런 과정에서도 그녀의 알몸을 계속 보고 만졌으니 내 아랫도리가 빳빳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걸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키니까 그것도 좀 그러네.
“딱딱하네.”
“……그야 보통은 이렇지.”
“보통이라는 거, 나는 몰라.”
소연 아씨는 살짝 손을 뻗어 내 자지를 어루만졌다. 기둥 부분을 손으로 살짝 문지르는가 하면 껄떡이는 귀두 부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몸이 움찔거리며 괄약근에 힘이 확 들어가는 게.
“움찔거리네.”
“아니, 그렇게 만지면 좀.”
“……이게 내 안에.”
그녀는 자신의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그런 게 남자를 미치게 한다는 걸 아가씨가 알긴 알까? 지금도 멍한 표정으로 내 자지의 크기를 어렴풋이 재겠답시고 손가락으로 집는데,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꼴려서 참을 수 없었다.
제발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사실 아까 전부터 한계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저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고 그 안에 내 자지를 끼워 넣고 싶은 것을, 정신없이 저 젖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싶었던 걸 얼마나 참았는지 그녀가 알긴 알까?
나 자신도 이렇게 흥분한 건 처음이었다.
닿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닿았기 때문일까. 절벽 위의 꽃과도 같았던 그녀가 지금 눈을 내리깔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 상황이 흥분되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네가 원한다면.”
그녀는 빙긋 웃었다.
“날 너의 것으로 만들어.”
내 귀에 속삭여지는 그 목소리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내 가슴을 떨리게 하는,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는 그런 마력. 내게 그녀의 목소리란 모종의 주박과도 같았다.
“괜찮겠어?”
이런 질문은 이걸로 마지막.
만약 싫다고 하면, 정말 힘들겠지만 물러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 이상 자제심을 지킬 여유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너야말로.”
그런데 그녀는 되려 내게 질문했다.
“나, 생각보다 귀찮은 여자야. 네가 누군가를 만나면 속으로 질투할 거야.”
그녀의 손길은 내 가슴팍에 닿았다.
“네가 자꾸만 날 소홀하게 대하면 그 양다리를 부러뜨려 묶어놓고 싶어지고”
내 손은 그녀의 말캉한 젖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루라도 네 얼굴을 못 보면 불안해 미칠 것 같은 번거로운 여자야.”
그런데도 좋냐고 그녀는 내게 반문했다. 그야 뭐, 솔직히 말해 그녀를 제외하고도 운이나 여포, 진궁 선생도 있고 조조와의 관계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 한 명에게만 충실하겠노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알고 있었다.
진소연이라는 여자는 귀찮은 여자.
그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끌린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고작 그런 협박에 물러날 정도로 어리숙한 마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런 단점을 포함하더라도 그것을 훨씬 웃도는 장점도 잔뜩 있었다.
그러니 이런 나를 좋다고 해준다면.
“그래도 좋아.”
“……그러면 됐어. 난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그녀는 살짝 내게 물러나고는 정자세로 누웠다. 그리고는 몸을 가리던 팔을 활짝 벌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는다.
“그러면 와줘.”
함께 상처 입자고.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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