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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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말들이 바깥에서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고, 아가씨도 그걸 알았기에 나를 이끌고 아가씨가 머무르는 저택으로 향했다. 그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는데, 아씨는 내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따스하고 말랑한 손의 감촉.
원래라면 좋아했겠지. 오랜만에 아씨 손이나 잡고 걷는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런 한가한 말이나 떠들고 있을 상황도 아니었다.
잠깐의 정적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여 시간에 걸쳐 그녀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는데, 정작 말해야 할 때가 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호해졌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괜찮다고 했잖느냐고, 혹은 괜찮으냐고. 그게 아니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냐고. 그런 말들이 입안에 맴돌았는데 정작 소연 아씨의 앞에 서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좀, 그러네.”
“할 말이 있는 거 아니었니?”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붉은 눈동자는 정말 무미건조하게 나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시선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긴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이 사태를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
그러나 내가 아는 소연 아씨가 어디 이럴 종자였는가.
자신에게 대들면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해주는, 그러면서도 감정적으로 연약하고 여린 면이 있는 소녀와도 같은 여인.
내가 아는 진소연이라는 사람은 그랬다.
“할 말을 고르고 있어. 뭐라고 하고 싶은데, 솔직히 말하면 말할 게 너무 많은데. 그런데 말을 정리할 수가 없네. 내가 너무 멍청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만.”
“그게 뭐야.”
그녀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도 뒤따라서 앉았는데, 소연 아씨는 그런 나를 살짝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군 도착과 맞물려 어전회의까지 거쳤기에 슬슬 해가 떨어지려 하는 저녁 시간대였다. 선명한 주홍빛 황혼이 딱 하늘 전체에 드리우는 시간.
“하늘도 참 예쁘네.”
“말 돌리는 거요?”
“아니, 그냥 좀. 여자는 감상에 젖을 때가 있는 거야.”
매번 보던 하늘이 무에 그리 특별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것에 감동 느꼈는지 한참을 말없이 석양을 올려다보았다. 말이 없어져 나도 따라보긴 했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나는 말이야.”
그녀는 하늘로 손을 뻗었다.
“이런 세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닿을 리 없는 그것에 손을 뻗는다. 그녀의 행동은 오늘따라 어딘가 덧없이도 느껴졌는데, 그렇게 하늘만을 바라보며 손을 내미는 모습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와도 같은 감이 있었다.
오늘 일 때문에 그럴까.
확실히 황궁의 분위기는 소연 아씨에게 우호적이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돌발상황도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소연 아씨가 무언가 벌인 게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다소 기이했다.
“아씨,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야?”
“……저 하늘을 보렴.”
그녀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까 보았던 석양 드리운 하늘뿐인데, 그녀는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었다.
“진짜처럼 보이지 않니?”
“아니, 뭔 진짜 같을 게 있나.”
하늘이 하늘이지, 그럼 가짜 하늘도 있나.
어처구니없는 말이기도 했지만, 소연 아씨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진지하게 꺼냈다. 너무 진지하게 꺼내서, 순간 가짜 하늘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나 의심했을 정도.
“우리는 사실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도, 내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풍경도 전부. 가끔 그런 생각이 들면 치가 떨려 참을 수 없어져.”
“현실이라고, 전부.”
무의식적으로 말하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 만져도 가느다란 어깨였다. 어깨뿐만일까. 그녀의 몸은 전부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몸으로 상서령에 자리에 올라, 조금 전과 같은 정치 싸움에서 버텨온 걸까.
나는 전쟁을 주로 하였기에 그녀가 어떻게 일하는지 아는 바가 적었다. 그걸 생각하면 조금 가슴이 아렸지만, 그 이상으로 아씨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어쩌면 그래서 손을 뻗었을까.
마치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붙잡지 않으면 금방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덧없고 애달픈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짜로 보이쇼? 꿈이라도 꾸셨나 보네.”
애써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러나 소연 아씨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고, 하여 살짝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눈먼 이가 눈앞의 사물을 파악하려는 듯 조금씩 더듬어가며 내 얼굴의 윤곽을 잡는다. 눈가를 살짝, 콧대로 이어진 손길이 입술까지 닿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따듯하네.”
“살아있으니까.”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체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 말하는 아씨의 손 역시 따듯하기는 마찬가지. 생명을 가졌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괴리감일 거야. 지금도 상태창을 띄우면 이 홀로그램이 네 옆에 뜨는데. 그런데도 나는 살아있고, 너도 살아있어. 이 세계는 분명 가짜가 아니야.”
“뭐? 상태창?”
“가상이라는 건 뭘까. 이세계로 넘어왔다는 건. 이렇게 오늘까지는 너와 대화할 수 있다가도 문득 내일 아침이 되면 현대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고는 했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연거푸 이어갔다.
소연 아씨는 거기까지 말하고서는 내 얼굴에서 손을 뗐다. 꽤 오랫동안 얼굴을 만지작거렸기에 그것이 떠나간 상실감, 아니면 체온이 떠나간 듯한 느낌이 조금 어색할 즘.
“내일이라도 이 세계가 끝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아니? 예를 들자면 내일 당장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야. 코드만 뽑으면, 아니지. 이 비유도 조금 별로였을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몇 있었지만, 그녀는 이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질 것처럼 느껴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가 그리 느낀다면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개인마다 고민이란 다른 거니까.
전장에서 보았던 한 늙은 병사는 가끔 잠자는 도중 누군가가 자신을 암살할 것 같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당신 같은 가진 거 없는 늙은이를 누가 암살하겠느냐고 비웃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런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그는 결국 기마에 짓밟혀 죽고, 그 걱정은 결국 기우가 되었지만.
요컨대 소연 아씨도 그런 비슷한 걱정이 아닐까.
“세계라는 게 뭐 그리 허망하게 사라지겠냐고.”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걱정이었다. 그 늙은 병사야 배운 게 없고 아둔하였다지만, 소연 아씨는 아는 것도 많은 데다가 현명한 사람. 그런 사람도 이런 걱정을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렇겠지?”
“적어도 난 안 없어져.”
가느다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내 거친 손과는 달리 부드러운 손이, 하여 내 손바닥에 그녀의 손등이 맞닿았다. 그런 그녀의 손을 조금 세게 붙잡으며 고개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절대로.”
“가끔 자다가 눈을 떠. 그러면 밤이라서 어두운 건지, 아니면 이 세계가 사라져서 그런 건지. 그럴 때마다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잠깐잠깐, 아씨? 아씨!”
순간 그녀가 본인의 팔을 잡고는 손톱을 세워 긁기에 바로 손목을 붙잡았다. 새하얗던 팔에는 벌써 빨갛게 손톱자국이 났는데,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살짝 눈을 치켜뜨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씨, 왜 그래. 지금 좀 이상한 거 알아?”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참았을 수도 있겠네. 미안, 지금 건 잊어줘. 그냥 넋두리라고 생각해도 되니까.”
이런 모습을 보고 그럴 수 있겠냐고.
소연 아씨는 정신적으로 몰린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로는 정신적으로 지독하게 고립된 느낌이라 받아들이면 좋을까. 속내까지야 모를 일이고, 솔직히 그녀가 하는 말에 절반도 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으니.
“힘들면 좀 말을 해.”
저번에 업무로 무리할 때도 그러더니, 힘든 게 눈에 보이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 나도 중랑장이 된 이후로, 아니면 그전부터 그녀와 떨어져 보낸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니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존재할 터.
우리에게는 대화라는 것이 너무 부족했다.
처음에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애당초 숨기는 게 많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진심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노라 여겼다.
지독한 오만이었다.
우리가 조금씩 엇갈렸던 것도, 하여 그녀를 점점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 대화가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고백 비스름한 것을 거절당하고 난 뒤로부터 그녀를 여자가 아닌 따라야 할 대장으로만 생각하려 했다.
그것부터가 실책이었을까.
내가 사랑한다는 게 그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 당시 그녀는 내 말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글썽거렸으니까.
그게 단지 내 마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을 접으려 무진장 애를 썼더랬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행동원리와 나의 방침은 사뭇 다른 감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냥 그녀의 행동에 수긍했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막을 생각조차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감이 있다는 걸 지금까지 몰랐다. 진소연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궁지에 몰려있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게 아닐까.
어전회의에서 그녀를 향한 분위기가 그것을 대변했다.
나는 사실 그 자리에서 그녀를 향한 탄핵 요구에 강경한 대응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이런 단둘이 만나 서로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를 진즉에 가졌어야 했던 게 아닐까.
진소연이라는 사람을 어느 순간부터 그냥 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단지. 미안, 조금만 기대게 해줘.”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곤 살짝 내 품에 안겼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려던 것이 생각보다 복잡해졌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녀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진소연이라는 사람의 어둠에 대해, 아니면 그 두려움과 걱정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그녀 개인에 관한 얘기는 전혀 몰랐으니까.
“나 여기 있어.”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끌어안았다. 어느새 그녀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그 목소리가 점점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게 너무 무서워. 이 온기도, 네 팔도. 사실 전부 가짜가 아닐까. 전부 눈 깜빡하면 사라질 게 아닌가 생각하면. 홀연히 찾아왔으니 돌아갈 때도 그런 식이 아닐까 하면.”
“전부 괜찮아. 내가 어디 낯짝 거두고 내뺄 놈이요?”
최대한 태연한 척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없는 고민이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중대 사항으로 보였으니까. 진심으로 이해했느냐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말들. 그러나 그녀는 진심으로 구석에 몰린 사람처럼도 보였다.
이번 황실에서의 일이 그녀를 궁지에 몰리게 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마 원초적인 걱정이었고, 그녀의 근간에 있는 두려움이겠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나라도 곁에 있어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런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가능했다.
이게 과연 소연 아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냥 하염없이 괜찮다며 여기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이젠 내게 완전히 안겨 고개를 파묻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왜 이런 걸 이제야 말하느냐고.
걱정이나 고민은 털어놓아 달라고.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따지기에 그녀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지금도 몸을 떨며 내 옷깃을 부여잡은 모습에서는 너무 가녀리고 연약한 인상만 받을 따름이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냐고.
어째서 그런 걱정을 하는 거냐고.
그런 의문과 질문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은 그냥 잠시 그녀의 곁에 남아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눈물 없이도 사람이 울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 자리를 하염없이 지켰다.
밤이 될 때까지, 그녀가 잠들 때까지 줄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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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는 소연 아씨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고, 소연 아씨는 게임 세계에 떨어졌다는 얘기를 제정신으로는 토로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소연 아씨와 운이의 차례겠네요.
소연 아씨도 달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