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309화 (309/343)

3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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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규모 대비 그리 길어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집이 좋다고 허도가 보이기 시작하여 다소 설레는 느낌이 있었다. 운이랑 소연 아씨는 잘 지내고 있을는지.

“난 일단 돌아가면 바로 씻고 잘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황제 폐하와의 알현도 무시하고, 승전 행차도 전부 무시하고 그러실 수 있다면야 괜찮겠죠.”

염병.

나도 알고 있으니까 구태여 지적하지 마라.

일단 돌아가면 우선 소연 아씨겠지. 마중은 나와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밖에도 황제 폐하와 알현하는 일도 필요했는데, 가는 길목으로는 아마 백성들 사이로 손 흔들며 하하 호호 웃어줘야 하는 과정도 남아있었다.

귀찮네. 아니, 당연히 해야 하는 건 아는데, 아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라고 이해하면 좋을까. 솔직히 군인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지.

인간이라는 건 가끔 살면서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하고는 했다. 이것도 그 비슷한 일환이겠지만, 인간이 성공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공해서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편하게 살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점점 하기 싫은 일만 떠맡는데 좋을 리가 있나. 조조 이 양반도 그렇고, 솔직히 다들 날 너무 부려 먹는다.

생각해보면 근 4년 동안 몇 번이나 전쟁을 나간 거야?

“싫다, 싫어.”

“주인이는 어째 전장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힘이 빠지네.”

그야 그런 공식적인 자리, 혹은 전장에서는 힘 안 주면 죽으니까. 예전에야 좀 설렁설렁 잡스럽게 일 처리를 했다지만, 이제는 일군의 장군이 됐는데 어떻게 조잡하게 하고 다니겠느냐고.

그래도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겠지.

앞으로 전쟁보다는 내정에 치중한다 하였으니 나 또한 본래 역할로 돌아갈까. 황실 경호라던가, 뭐 그런 거. 솔직히 중랑장 달고 그런 역할보다는 외정을 더 많이 다닌 거 같아 본업의 의미를 헷갈릴 지경이었다.

“조금 더 착실하게 있으세요.”

사마의는 그런 내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우선 아직 행군하는 단계였으니 이 꼬맹이는 전차에 오르라 하였는데 말은 죽으라 안 듣고 또 내 앞자리에 올라서는 이러고 있었다.

여포가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는 건 어쩔 건데.

그렇게 보지 마라. 너까지 여기 올라타면 내가 불편하다 이전에 말이 먼저 지랄할 거야. 무겁다는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세 명이 올라타는 건 좀 선 넘었지.

아마 말도 이거 선 넘네, 하지 않을까.

“꼬맹아. 너 적토마 타볼래?”

“싫은데요.”

저 봐라.

“아니, 이거 진짜 미친 듯이 빠르거든? 머리카락 다 날아가도 모를 정도라고. 한 번 타봐. 아, 너 말 못 탔지. 그럼 내가 장료 시켜서 너 태워주라고 할게.”

“그럼 그쪽은 뭐 타려고요?”

힐끗힐끗 이쪽 보지 마라. 그런다고 안 태워줄 거다. 얘야 말을 못 타니까 억지로 태워준 거지, 너는 나보다 말도 잘 타면서 무슨.

“그, 가끔은 말이야.”

“됐거든요? 여긴 내 전용석이니까 관심 끄세요.”

“미안한데 누구 전용도 아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무슨 다 큰 인간을 앞자리에 태워. 솔직히 태우는 내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마의도 요즘 부쩍 키가 늘어 머리카락이 턱밑과 목덜미를 자꾸 간질거려서 태워주기 싫다고.

저번에 요 망측한 꼬맹이가 술주정 부리면서 가슴도 부풀고 키도 컸다고 했던가. 여자로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부쩍 자랐다는 것만은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좀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너도 앞에 태우면 간지럽다고.”

“싫어요.”

하여간 고집은.

대뜸 고개부터 홱 틀어버리는데, 목덜미에 머리카락이 스쳐 살짝 간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그 와중에도 여포는 계속 탐난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데, 하여간 전쟁 끝났다고 다들 벌써 풀어져서는.

아, 내가 가장 먼저 풀어졌구나.

그러면 이 또한 나쁠 거 없지.

어차피 곧 허도에 도착한다. 소연 아씨도, 운이도. 그리고 내 사랑스러운 집도 기다리고 있을 터. 돌아가면 당분간 복잡한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허도에 입성.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이었다. 분위기도 조금 이상한 것이, 승전을 환영하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 무언가 혼란스러웠던 일이라도 있는 걸까.

우선 아군은 이대로 진군하여 허도 내 연병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만의 군을 전부 도시로 들일 수는 없었기에 황실 친위대를 포함한 일천의 군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가는 길목마다 분위기가 영 별로인 것이.

“뭐야, 이 분위기는.”

여포도 그것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정작 내 품에 안긴 사마의만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그랬네요.”

“뭐가?”

내가 물으니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저희는 원정 도중에 원소가 승리했다는 걸 들었잖아요. 공손찬 최대의 거점이었던 역경루를 떨어뜨렸는데, 원소 정도나 되는 작자가 그것을 그저 승리로 받아들이고 취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승리를 단지 승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마 내부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겠죠. 아마 저라면 내부에서부터 조조의 신임을 깎아내리려 했을 텐데,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겠죠.”

“그럼 괜찮은 거 맞나?”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이건 아가씨를 만나보지 않고서야 모를 일인가.

지금까지는 그냥 승리했으니 돌아온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원소가 승전보를 올렸다는 걸 잊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군에게 원소의 승리는 그 이상의 큰 장애요소와도 같은 것이니.

“일단 길을 좀 서두르지.”

“괜찮겠어요?”

사마의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승전 이후에는 이런 식으로 군을 이끌며 도시의 시가지를 돌며 호응을 부추기는 것이 관례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우리가 돌아다닌다고 딱히 흥이 돋는다거나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지금에야 의미도 없는 일이지.”

호응이고 자시고 분위기가 너무 기이했다.

그러면 더 시간을 끌기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내부를 도는 것도 조조가 돌아온 이후에 정식 승전식을 올릴 터이니 그 부분에서는 걱정할 것도 없고.

“그건 그러네요.”

사마의가 끄덕거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군에 명하며 행군 속도를 올렸다. 지나가는 길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종종 들리고는 했는데, 주로 원소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보아 분명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았다.

하여 연병장에 병사들을 집결시키고 황궁으로 향하는 길.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꼬챙이에 꽂힌 목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수백에 가까운 수급이 걸렸는데, 그중에는 눈에 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양봉.”

“아저씨.”

서황은 군을 통솔하여 연병장에 대기시켰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양봉의 목이 걸린 것을 보아 백파적 무리가 전부 엮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까. 그러면 양정은? 살짝 고개를 돌려 목 하나하나 대충 확인했지만, 양정 같은 얼굴의 수급은 없었다.

그러나 대충 의심 가는 게 있다면.

“저 얼굴 다 박살 난 건 뭐야? 아예 골통을 부쉈네.”

여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그것을 지적했다.

가장 앞에 내걸렸으니 저게 양정의 목일까. 하지만 너무 손상이 심해 누구였는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나마 양봉 옆에 꽂혀있으니 양정이 아닐까 싶은 부분이지만.

그나저나 저 옆에 걸린 여자의 목은 누구지?

얼추 보기에 생전에는 미녀였을 듯하지만, 이미 혀를 쭉 내밀고 죽어있는 목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지 양봉, 양정과 함께 걸려있으니 어느 정도 직급은 있는 여자로 보이나 본 적은 없는 얼굴이었다.

“우선 상서부에 간다. 너희는 잠시 기다리고 있어. 그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입궐할 테니, 기왕이면 옷도 좀 깔끔하게 차려입고.”

“엉?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돼?”

“그만하고 가요, 좀.”

여포가 칭얼거리려던 것을 사마의가 손을 붙잡아 당겼다. 그런 꼬맹이의 조그마한 배려가 고마울 따름. 물어볼 것도 있었지만, 기왕이면 소연 아씨와 오랜만에 하는 재회는 단둘이서 보고 싶었으니까.

가는 길은 제법 북적였다.

확실히 무슨 소란이 있긴 했던 듯, 지나가는 길마다 병사들이 배치되어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사마의의 말마따나 내부적으로 원소의 개입이 있었던 걸까. 이런 모습만으로 내막 전부를 파악하기에는 내 머리가 부족했지만, 단편적인 정보를 조합하면 얼추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잠시 저, 중랑장님!!”

입구를 경계하던 병력에게 손을 흔들며 들어갔다.

제지는 없네. 하긴, 이 허도에서 중랑장의 발걸음을 막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 게다가 내가 뻔질나게 상서부에 들락날락한 것도 다소 있을 것이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상서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도착하고는 잠시 정지. 문을 앞에 두고 잠시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첫 마디는 뭐로 꺼내야 할까. 고생했다고? 아니면 허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

우선은 집무실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 왔수다.”

“내가 노크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그녀는 언제나 같은 자세로 날 맞이해주었다. 의자에 앉아 다소 권태로운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든다. 과거 병주에 있을 적, 그녀는 내게 항상 노크하라고 했던가.

노크가 무엇인가 하니 들어가기 전에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던 그때와 지금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것을 느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어깨를 으쓱이며 적당히 발걸음을 옮겨 앞쪽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씨는 반가운 투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자리에서도 일어나지 않고 시선만을 내게 향하고 있으니 조금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그나저나 나 반갑지 않아? 오랜만인데.”

평소처럼 대해주는 것은 고마웠다.

분명 전쟁에서 느꼈던 피로를 잊고 옛 향수를 떠올리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고작 수개월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고작 그 정도 못 봤는데도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안 반갑냐고?”

순간 그녀는 무표정을 벗어던지고 샐쭉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어.”

소연 아씨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붉은 눈동자를 빛내면서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데, 순간 몸이 굳어 제대로 대응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발걸음을 옮겨 내게 다가올 따름인데도.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

“아씨……?”

“너 없는 하루가 십 년 같았고, 그동안 네 얼굴을 떠올리면서 일했어. 노력했어. 그러니까 버틸 수 있었어. 너를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어.”

아니, 잠깐만.

분명 조금 서운하다고는 했지만,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것이. 무엇보다 너무 무겁잖아. 표정은 또 왜 그래.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부분이.

“……이런 반응이면 괜찮았을까?”

그녀는 순간 표정을 바꾸며 픽 웃었다.

………………또 놀아난 건가?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저게 진심이면 어떡할까부터 시작해서, 정신 차리니까 자녀 계획까지 생각하던 내 순정을 돌려줘라. 그 이전에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서웠던 것은 덤이고.

“푸훗, 그래도 말이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내 귓가에 입을 맞췄다.

“너무 반갑다는 것만은 진심이야.”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부분이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모습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향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모습 탓이 아닐까. 그래도 그 모습이 썩 마음에는 들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녀왔수다.”

“고생했어.”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 뒤에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어야 하겠지만, 그 잠시 남아있는 여유를 즐기고자. 아니면 서로의 빈자리에 대한 감각과 감정을 공유하고자. 사실 어떤 이유건 좋았다.

그냥 이런 시간이 좋았으니까.

소연 아씨는 내 머리를 한동안 쓰다듬기를 반복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길에 맞춰 몸을 축 늘어뜨리고 손길에서부터 느껴지는 감각을 느꼈다.

“다친 곳은 없지?”

“응? 아. 팔에 구멍 하나 나긴 했는데, 이젠 거의 아물….”

응? 뭐야. 갑자기 머리가 아픈.

잠깐, 아씨? 내 머리채를 쥐어뜯는 건 그만두면 고맙겠는데. 그러다 머리 빠지면, 아니 잠깐만. 그런데 이거 조금 진심으로 붙잡은 게 아닌지?

아아, 잠깐!! 머리, 머리카락 다 빠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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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검수가 조금 늦어서, 금방 다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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