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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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딱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채. 정말 이대로 물러났을지 의심될 정도로 허도 내에서의 움직임도 없었고, 눈을 밝히고는 있지만, 실마리다운 무언가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
“이대로 물러났을까.”
소연은 홀로 탁자를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발견한 원소 측 공작원만 하여도 서른 가까이. 게다가 그들이 돌린 재화는 또 얼마인가? 그동안 차근차근 준비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그걸 이번 기회에 전부 투자한 듯한데, 조금 막혔다고 바로 물러난다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도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모든 준비는 만전이었다.
황실의 경비는 최고 수준으로 강화했고, 여타 황족과 고위 관료, 호족들까지도 몇몇 장소에 모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니 요인 암살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될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원정 나간 군도 돌아온다.
듣기로는 가장 먼저 허도에 입성하는 건 호세의 친위대를 포함한 2군이라던가. 그가 돌아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었지만, 그 전에 이 사태를 종식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황제 암살은 당연히 무리고…….”
그밖에 다른 요인들도 전부 경호를 붙였다.
그러면 소수에 불과한 공작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부에서의 선동? 그것도 집합 금지명령을 내려 다수가 모이는 것을 원천봉쇄하였으니 무리가 있는 상황.
소연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저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미리 포섭한 이들이 있다고 한들, 이리 경호 겸 감비를 붙인 이상 그들을 이용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아니면 이대로 허도에 남아 계속 공작원으로 활동하려 할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러기에는 너무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당장 그들의 자금을 받은 관료와 호족, 심지어 황족까지 특정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자금줄을 따라 천천히 조사하면 결국 본체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그러니 저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이었다.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던가, 아니면 한 번 제대로 일을 벌일 생각으로 각오하여 도전하던가.
어느 쪽이건 상관은 없었다.
물러난다면 이대로 소란을 진정하면 그만. 도전한다 하더라도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단지 문제라고 한다면 무언가 큰 것을 놓치지 않았는가 하는 불안이었는데,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에 미흡했던 부분은 없었다.
아마 문제는 없겠지.
“나머지는……, 그러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옆자리에 둔 철봉을 손에 쥐었다.
전장을 돌며 잠시 들었던 그것이 이제는 손에 완전히 익은 무기가 되었다. 날붙이에 대한 조예가 없더라도 능히 다룰 수 있었고, 무력 100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신체능력으로 적의 머리를 부수기에도 적합했던 무기.
묵직하게 전해지는 무게감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 어디도 아니라면.”
소연은 그 깃대를 쥐고 씩 웃었다.
* * *
벌써 다섯 거점이 파괴당했다.
“심배 선생님. 저희는 어찌해야.”
“기다려 봐!!”
그녀는 짜증스럽게 답하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왔다면 진즉에 뭐라도 떠올랐을 것. 적은 지킬 게 많았고 자신들은 그들의 내부에서 움직이니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일반적으로는 그게 당연한 상황.
그런데 작금의 처지는? 점점 수족이 잘려나가, 이제는 그녀의 신변조차 걱정해야 할 정도로 구석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적의 포위는 점점 심배를 조여오고 있었으니, 이제 그녀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남지 않았다.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치려면 진소연밖에 없었다. 이미 각 요인에게는 다수의 병력이 붙어있었고,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의 숫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들키지 않게 움직이려면 고작 한 번의 기습밖에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나마 방비가 덜한 곳이 바로 상서령 진소연이 있는 상서부였다. 그러니 그곳을 공략하려면 지금 당장에라도 움직여야 했다.
“……어쩔 수 없네.”
그녀는 이를 빠득 갈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문에 사람을 보내렴. 병사를 최대한으로 끌어달라고 하고, 여차할 때의 도주로를 만들어야지. 원래 목적보다는 작겠지만, 상서령의 목을 칠 수 있다면 원공께서도 이해해주시겠지.”
“진소연이라면 조조군 내에서도 핵심입니다. 근래 들어 조조가 가장 신임하는 인사 중 하나이니 분명 큰 공적입니다!”
“크기는.”
원래 최종 목적은 황제의 목이었다.
조조가 가지고 원소에게는 없는 그것. 황실이라는 보증이 조조에게 붙어있는 한 명분에서는 언제나 원소가 한발 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조가 원소와 비등한 세력을 유지하게 된 지금에는 더더욱. 거대한 세력끼리의 경쟁에서 한발이라도 더 앞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심배가 아니었다.
그러니 황제를.
못해도 허도 내에서 내란을 일으키고 싶었던 것.
그게 불가능해진 지금, 진소연의 목은 체면치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허도에 있던 공작원들과 줄을 댄 관료, 병사까지 동원해야 하는 게 아쉬울 따름.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은 알았다.
“그쪽에서 병사를 움직여주는 대로 출발하자.”
효시는 이미 쏘아올려졌다.
남은 것은 행동. 고작 진소연의 목으로 조조를 크게 흔들 수 없을 것은 알았지만, 그녀에게는 남은 수단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실 내부에도 원소 측 간자를 넣을 수 있었다는 것뿐일까.
“후우…….”
숨을 내쉰다.
확인한 바로 상서부를 지키는 병력은 고작 수십에 불과하다 하였으니, 그 부분을 공략하기에 큰 지장은 없을 거로 판단되었다. 진소연 본인이 과거 군을 이끈 경력이 있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지휘관으로서의 활약.
그러니 병력으로 밀어붙이면 죽이긴 어렵지 않겠지.
심배는 간단히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력을 움직이려면 심야가 가장 좋았다. 내일 중으로 양주로 원정 나간 선봉이 돌아온다고 하니, 오늘 밤으로 모든 일을 끝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잠시 쉬어둬.”
곧 마지막 작전의 시작이었다.
* * *
그날 밤은 유독 어두웠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은 제대로 대지에 빛을 발하지 못했고, 하여 그 음산한 심야를 틈타 누군가가 암약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기도 하였다.
“음? 거기. 잠시만 멈춰보시오.”
“무슨 일인지?”
파수병은 한 무리의 병사를 제지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 시간에 어디 호출이 있었던가.”
“북문에서 출발하였소. 상서령의 분부로 그 일대의 경비 강화와 내일 양주로 떠난 우리의 전우들이 돌아오니, 동문 일대의 관리를 일임하신다고 하였네만.”
“전해들은 것이 없는데.”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마주한 이들을 살폈다.
확실히 조조군 제식의 복장이었다. 게다가 북문 소속이라고 하면 교위의 군일 테니, 직접적으로 명령을 하달받아 이상할 게 없기도 하였다.
“거, 고생이 많아. 요즘 내부에서 뭐 간자인지가 설친다고 해서 다들 바짝 긴장했다고. 그러니 횃불 하나만 들고 그러지 좀 마쇼. 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 부분은 조심하지.”
“빨리 평화로워져야 하는데 말이야.”
파수는 그리 말하고 그들의 앞을 비켜섰다.
심배에게는 공작원들만 있었지 병력이라고는 일절 지원받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병력을 이끌고자 하면 결국 조조군 내에서 포섭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조조에게 소외된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공한 지금은 어떠한가?
“이걸로 앞서 파수병은 없을 거요.”
“조력에 감사드리어요, 어르신.”
그녀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제 군을 포섭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겠지. 진소연은 분명 내부를 단속하며 틈을 주지 않았지만, 군부는 현재 공백인 대장군 조조의 영역이었기에 상서령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그 틈을 이용한다.
구름은 천천히 지나갔고, 그 틈새로 달빛이 조금 새어 나와 대지를 비춘다. 상서부 인근에 모인 병력은 전부 합치어 오백 언저리. 이 정도만 해도 진소연 하나의 목을 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양정 어르신의 도움은 분명 원공도 크게 헤아려주실 것이어요.”
“그러지 않으면 이런 미친 짓도 안 했겠지.”
심배와 나란히 선 양정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황제의 호송 이후 전호라는 이와 함께하여 그만한 대우를 약속받았던 백파적.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무엇인가?
백파적이라는 이유로 공을 세울 수 있는 양주 전쟁에 불려가지 못했다. 그들에게 맡겨진 일이라고는 간단한 치안 업무와 성문의 사수뿐.
이것이 황제를 보필한 대가인가?
그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하여 심배가 접근하여 원소에게 귀히 쓰일 것이라며 추천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게 심배와 양정은 군을 이끌고 상서부 인근까지 진군했다. 가로막는 이 하나 없이 신속하게 진군한 그들은 상서부 정문을 지키는 병력마저 몰살할 수 있었고, 그 뒤로는 소란이 크게 번지기 전에 빠르게 내부로 진입했다.
“상서령은 저 안이다!!”
양정은 크게 소리치며 병사들을 재촉했다.
여기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 심배는 그런 그를 따라 계속 안으로 진입하였는데, 정문에 병력이 있던 것과는 달리 상서부의 내부는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혹시 눈치를 챘는가?
하지만 진소연이 상서부 바깥으로 나갔다는 첩보는 받지 못했다. 그러니 분명 안에 있을 게 확실한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부에 사람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러는 사이 그들은 서둘러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늦었네.”
하늘하늘한 평복을 입고 그들을 기다리는 여인. 그 여인의 손에는 철봉 하나가 쥐어져 있었고, 그 붉은 눈동자는 심야에도 불구하고 시뻘건 빛을 발하며 그들을 주시했다.
“……알고 있었나.”
“설마 양정, 당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소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애당초 그것을 노려 획책한 것이 자신인데, 그걸 모를 리가 없지. 그렇지만 심배가 누굴 꼬드겨 수족으로 삼았을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몰랐었다.
“왜 배신했어?”
“너희가 그 말을 하느냐.”
양정은 이를 갈며 검을 겨누었다.
“우리는 황제 폐하를 보필했다. 너희에게 협조했고, 그 과정에서 자리를 약속받았지. 그런데 지금 상황은 무엇이냐? 우리를 대우해? 너희는 단지 우리를 이용했을 뿐이지 않은가?”
“아직 폐하를 보필하고 수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파격적인 관직 승계를 바란다고? 잠시 기다린다는 선택지는 없었니?”
소연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심배는 주변을 계속 살폈다. 본인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면 분명 모종의 준비가 있었을 텐데, 정작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 보이는 것은 진소연 단독.
상서부 내부 넓은 광장에 혼자 서서는 아군 오백의 장정과 마주하고 있었다. 대체 왜? 알고 있더라면 그만한 준비를 했을 게 아닌가.
한편 양정은 소연을 마주하며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라고. 너희는 매번 그랬지.”
백파적은 기다리라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과거 십상시라는 놈들이 그러했고, 동탁이라는 놈도 그러했다. 가진 자들은 결코 제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으니 확실하게 손에 넣기 전까지 구두로 한 약속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가진 놈들의 말은 믿지 않는다. 준다고 했으면 응당 주어져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고작 성문이나 지키자고 황제를 너희에게 내어준 줄 아느냐!!”
“황제 폐하가 언제부터 네 것이었다고?”
소연은 그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다 느꼈다.
입으로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감히 바라서 안 되는 것을 바랐고, 분에 넘치는 것을 탐하여 일국의 황제마저 마치 제 것처럼 논하는 게 어찌 우습지 않을까.
“양정 장군! 무시하고 그냥 치시지요!”
심배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재촉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와의 문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 이 인근으로 사람을 전부 물렸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차피 들킨 이상 빠르게 진소연을 처리하고 이 허도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어머. 조금만 더 얘기해도 좋았을 텐데.”
소연은 빙긋 웃으며 손에 쥔 철봉의 끝자락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고작 그 행동만으로 큰 소리와 함께 그녀 주변에 흙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너희에게 마지막 유언을.”
한 발짝.
“그것을 남길 기회를 주려 했던 건데 말이야.”
구태여 벌주를 들이키겠다면 그것도 좋았다.
“전군, 역도를 처벌하라.”
그와 동시에 상서부 건물 지붕에서 활로 무장한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오기 한참 전부터 미리 매복시켜두었던 병력. 이 모든 것은 허도에서 수작질을 부리던 심배를 처리하기 위한 미끼이자 함정이었다.
“이익!! 진소연, 저 여자를 죽이면 끝납니다!”
“알고 있소.”
양정 또한 검을 빼 들었고, 그를 따르던 백파적 또한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이 꼬인 이상 진소연의 목은 무조건 베어내야 했다.
소연은 그것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 양정 」
통솔력 - 61
무력 - 68
지력 - 52
정치력 - 36
매력 – 46
“내가 좀 얕보였나 보네.”
전장에 자주 나서지 않아 그럴까.
그러면 여기서 한 번 증명해 보이면 그만. 이미 그녀 뒤편에 있던 건물에서도 병력이 줄이어 나오기 시작한 지금, 정면에서 다가오는 양정의 모습을 바라보며 철봉을 치켜들었다.
“전원, 이곳을 너희의 처형장으로 알렴.”
오늘도 재차.
이 철봉 끝자락에 피를 묻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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