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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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배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세 군데나 당했다.
게다가 공작원 중 꼬리를 잡힌 것 같다고 보고한 이들만 해도 열이 넘는 숫자. 이미 열 명 이상을 잃었는데 여기서 추가 손실이 발생하면 이 이상 허도에서 움직이기 곤란해질 수 있었다.
여기가 물릴 때일까.
“다른 요원들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아마 남쪽 군영 인근으로 보냈던 이들은 전부 잡혔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들이 덜미를 잡혔다면…….”
“군부 쪽으로는 흔들 수 없겠지. 어차피 조조가 없는 군부를 흔든다고 큰 영향을 미칠 것도 아니니까 상관은 없어. 단지, 조금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만.”
“아직 중앙 연줄이 살아있습니다. 동승이라는 작자도 조금만 더 건드리면 아군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올 것 같고, 그밖에 다른 인사들도.”
심배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아니, 그건 이미 불가능해.”
예상 이상으로 혼란을 진압하는 속도가 빨랐다. 덧붙여 포섭한 이들을 통해 황제와의 알현을 꾀했지만, 그마저도 황제가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알현을 포함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버려 곤란해진 상황.
여기까지일까.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영 아쉬웠다. 조조의 공백과 아군의 승전이 맞물린 천재일우의 기회와도 같은 이 시기를 이대로 무력하게 흘려보내야 한다고? 기회가 아쉬울뿐더러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면 원소에게 비출 낯짝이 없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움직여볼까.”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큰 움직임으로 이어지기엔 요원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허도 내 병사들이 싹 깔려서 조금이라도 이상징후를 발견하면 우선 누구건 간에 체포하고 있어 난리입니다.”
진소연은 이 상황에서 강압적인 수단을 택했다.
누구건 간에 병사의 눈에 의심스러워 보이거든 우선 체포한다. 사정을 따져 허도에 오래 머물렀던 이거나 신원이 확인되면 석방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장기간 구금시키는 방향으로 허도 내 진압을 노렸다.
반발은 거셌지만, 그 이상으로 효과는 탁월. 실제로 이런 과정을 통해 원소 측 공작원 열 가량이 더 포박당해버렸다. 심야를 틈타 움직이자니 주요 관료와 호족에게는 감시가 붙어버린 상황.
동승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더는 협조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난색을 보였다. 빠르게 펼쳤던 연락망이 하나씩 제거당하는 상황에서 심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차후의 반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적의 움직임. 그것은 분명 그녀의 수족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있었다. 늪에 몸이 잠기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
제 평가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는가.
이런 수단으로 백성과 호족, 덧붙여 관료까지도 억죈다면 분명 역풍이 분다. 정치적으로 공격당해 어쩔 수 없는 사안인데, 이걸 이 짧은 시간에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긴 진소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서령이라는 자가 뭐 이리 괴팍하게 움직여.”
“지금 허도 내에 불만을 표하는 이가 팽배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표출할 방법도 제한시켜버렸다는 것인데, 이걸 잘 이용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조조가 돌아온 다음에? 그때가 되면 전부 늦어.”
허도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었다.
하여 조조가 돌아오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인사를 원소에게 포섭하려 했던 것인데, 그나마도 조조가 돌아온 이후라면 늦어버린다.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뚜렷한 방법도 떠올릴 수 없는 것이 답답할 따름.
무엇보다 상서령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배가 생각하기에 진소연의 움직임이 너무 성급했다. 효과적이라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이제 막 고위직에 오른 신출내기가 벌일 움직임은 아니었다. 이 일로 조정의 안팎으로 반감을 심기 충분하지 않은가.
아무리 문관의 정점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경력은 미천했고, 명가의 자손도 아니니 뒷배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책임을 물려 실각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닌지. 심배에게는 그것이 도통 해결할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았다.
뒤가 없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진소연.
“관직을 잃는 게 두렵지 않은가? 아무리 조조가 신임하더라도 공론화되어 문제시 삼아진다면 보호하기 껄끄러워질 수도 있을 텐데.”
정치라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권력자의 신임을 얻더라도 일을 그르치면 해임될 수 있다. 내부에서 반발이 거세진다면 조조라도 사사로이 그녀를 지킬 명분이 없어질 터.
그런 걸 전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인가?
“저희는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부하의 질문에 심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존에 포섭했던 이들과의 연결고리는 아직 이어져 있었다. 이대로만 움직인다면? 하지만 심배가 최초 생각했던 규모와는 거리가 있었다.
“북문은?”
“여전히 양봉과 양정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
쓸 수 있는 패가 적었다. 애초 계획했던 것은 조조가 돌아오기 전 허도에 한 번 큰 소란을 일으켜, 일이 잘 풀린다면 황제를 암살하고자 획책했던 것.
현 조조에게 가장 힘을 실어주는 것은 황제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분. 그러니 황제만을 제거할 수 있다면 조조는 한동안 내부적인 진통에 시달릴 것이고, 원소는 현 황제 유협을 부정했다는 주홍글씨가 사라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노리기에는 패가 너무 적었다.
“일단은…….”
그녀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동승은 특히 감시가 삼엄하여 이 이상 접촉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어중간한 이들이라면 아직 접근할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조무래기는 필요치 않았다.
작은 혼란의 불씨만 남기고 돌아가야 하는가.
“그냥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직 시간은 있어.”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선생께서도 탈출하실 수 없게 됩니다. 차라리 잠시 허도에서 몸을 피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러면 업으로 돌아가도 하북 관료와 곽도, 심지어는 봉기에게마저 밀려버린다.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그녀가 세차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이를 갈았다.
“내게 도망치라고? 이대로 실패한 개가 되라는 소리? 실패한 개가 되어 원공의 눈 밖에 날 바에는 죽고 말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없던 원소를 지지하고 그에게 모든 걸 걸었다. 이제야 그 결실을 보게 되었는데,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밀려 권력 구도 바깥으로 쫓겨나라고? 그럴 바에는 혀를 깨물고 죽는 편이 낫다 싶었다.
그러니 이대로 물러나는 것은 불가능.
아직 원소는 공손찬을 완전히 잡은 게 아니었고, 되려 역공에 큰 피해까지 보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 조조에게 최대한 유의미한 피해를 주어 이 이상의 약진을 멈춰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틀어막혔고, 여차할 때 외부에서 허도 주변을 흔들고자 준비하였던 부대도 전부 격파당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이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까. 심배는 이를 꽉 깨물면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사이에 어떻게든…….
“……잠깐만.”
황제를 암살하는 건 이미 요원해졌다.
여기서 심배는 발상을 전환했다. 이 사태를 수습한 것은 뒤 없이 움직이는 상서령의 탓이 컸다. 하면 그녀가 이리 대담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단지 진소연이라는 인물 자체가 대담해서?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게 많았다.
아마 자신의 입지가 흔들려도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일 텐데, 그러면 높은 확률로 조조의 두터운 신임이 그 이유일 확률이 높았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진소연이 조조군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아 무방한 것인데, 그러면 그 여자를 없앤다면 어떨까.
“……상서부에 배치된 병력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낼까요?”
부하의 말에 심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어차피 이 허도에 병력이 얼마나 있다고. 허도 내부에 경비병을 그리 많이 퍼뜨린 데다가 황실까지 지켜야 하니, 상서부를 지키는 병력이라고 해도 몇 없겠지.”
최선을 행할 수 없다면 차선이라도.
그녀는 움직일 수 있는 패를 고려하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 * *
우선 유비는 서주 방면으로 회군을 시작했고, 나와 친위대를 비롯한 군은 기본적으로 황제 폐하의 수호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조조보다 먼저 회군을 시작했다.
조조는 본대와 부상병을 추려 움직일 테니 아마 내가 먼저 황제 폐하에게 전황과 결과를 보고해야겠지?
어우, 생각만 해도 위가 떨린다.
게다가 원소가 북방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건 또 어떠한가. 덕분에 승전임에도 아군 지휘부의 분위기는 영 어두침침한 것이, 솔직히 말해 원술을 잡은 기쁨보다 원소의 움직임이 더 거슬린다는 느낌이었다.
“원소가 공손찬을 그리 빨리 잡을 수 있을까?”
“글쎄요. 저도 공손찬을 본 것이 아니라 뭐라 말하기 힘드네요. 설마 그 귀공자 원소가 흑산적과 손을 잡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그건 나도 의외였지.
그 황금색으로 번쩍이던 인간을 떠올리자니 죽으면 죽었지 도적과 손을 잡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물론 살려면 뭔들 못하겠느냐마는 원소가 그리 몰린 상황이었나?
“조조도 영 표정이 어둡던데.”
“아무래도 공손찬과 원소. 그 둘 중 하나가 하북을 지배할 것은 기정사실이니 조금 더 시간을 끌어주길 바랐겠죠.”
“우리도 예주와 연주가 있는데?”
그러니 사마의가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어도 서주까지는 있어야 비로소 대등하다고 할만하죠. 하북의 대표적인 네 개의 주를 지배한 상대라고요? 물론 공손찬을 잡더라도 하북 전역을 지배하려면 다소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우리도 적이 많다 이거잖아. 조조도 그러더라.”
아군은 정말 다급한 게 아닌 이상 원소를 선제공격할 수 없다던가. 얼추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뭔가 끌려다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서주라면 여전히 유비의 영지인데, 그녀를 포섭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곳은 언제나 불안요소로 다가올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건 남쪽의 원술을 배제했다는 건데, 이마저도 소요한 물자 탓에 당분간은 긴축운영해야 한다던가.
“뭐야, 뭐야. 또 뭘 그리 미리 걱정해?”
여포는 태평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사마의는 그런 여포가 고깝지 않았는지 날 선 태도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쪽은 너무 태평해서 탈이 아닌가요?”
“어차피 원소고 나발이고 한 번 이긴 거라며. 공손찬이라는 놈은 예전부터 북방을 지배하던 군벌인데 쉽게 당하려고?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맘 놓는 게 편하지 않아?”
“미리 생각해서 움직인다. 기본적인 운영 철칙이에요. 하여간 그쪽은 너무 무식, 아아! 머리, 머리!! 머리 잡아당기지 말라고요!!”
“하여간 우리 꼬맹이, 말 한 번 참 이쁘게 한다. 그치?”
순식간에 아웅다웅 하길레 잠시 물러났다. 누구 편을 들어주기도 좀 그렇잖아? 게다가 서로 진심으로 싸우거나 하진 않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겠고.
사실 여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당장 걱정한다고 원소가 대뜸 다음날 공손찬에게 패하는 것도 아니었다. 발만 동동 구른다고 사태가 해결될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마음 편히 내 할 일에 매진하는 게 낫지.
이건 내가 너무 무관답게 생각하는 건가?
그치만 나도 일단은 무관 나부랭이인걸.
게다가 원소의 문제는 내 소관이 아니잖아. 그건 조조나 소연 아씨, 진궁 선생 등이 고민할 문제였다. 그 사람들이 나보다야 훨씬 똑똑하니, 이런 부분에서 내가 고민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아, 진짜! 머리 헝클어진다니까요?”
“그럼 내가 빗겨줄게. 됐지?”
“아니, 그런 문제가…!!”
여포도 가만 보면 은근히 사마의 골리는 걸 좋아하네. 물론 꼬맹이가 쿡 찔러도 바로 반응하는 게 놀리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안 하면 나중에 쪼잔하게 복수하니까 조심해야 할 텐데.
“아저씨! 지켜보지만 말고 좀, 여포 좀 떼줘요!”
“어어? 주인이한테 이르는 건 반칙이지!!”
아웅다웅하는 게 보기 좋은데 왜. 그동안 전쟁 질만 한다고 어깨가 무거웠던 부분도 있어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환영이었다. 어차피 며칠 뒤면 허도에 도착하는데, 그동안 행군만 하면 너무 무미건조하잖아?
허도 하니까 소연 아씨나 운이는 어떻게 지내려나 몰라.
아씨는 보나 마나 또 원소가 어쩌고 하면서 괜히 무게 잡으면서 일이나 하고 있겠지. 운이는 아씨가 뭐 시킬 일이 있다고 남겼는데,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소연 아씨는 말이 너무 부족한 게 단점이었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어떡하나. 적어도 보는 사람이 걱정하거나 궁금하지 않게 어느 부분은 좀 알려주고 그런 게 있어야 할 텐데. 요즘 들어 성격이 둥글어졌다 싶으면서도 그런 부분에서는 칼 같아서 걱정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무리하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진짜, 자꾸 그러면 저도 생각이 있거든요?”
“뭐. 꼬맹아, 네가 나한테 뭘 할 수 있다고.”
“아저씨!! 저번에 여포가 아저씨 속옷 훔… 으읍!!”
자꾸 부르기에 고개를 돌렸는데, 여포가 사마의의 입을 꽉 누르면서 제압한 모습이. 그나저나 속옷? 속옷이 왜.
“뭔데. 내 속옷이 어쨌다고?”
“아하, 아하하. 아무것도. 진짜 아무것도 아냐.”
여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사마의를 너무 필사적으로 붙잡는 거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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