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302화 (302/343)

30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정리 군영 자체가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소가 역경루를 함락시켰다는 소식에 회군을 조금 더 앞당기겠다는 거 같은데, 정작 그렇다고 해서 수춘성 자체를 그냥 버리고 퇴각할 수도 없는 노릇.

유비군은 뭐, 어차피 역경루가 함락되건 말건 서주 입장에서야 당장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그냥저냥 평범한 분위기로 회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사령관인 나도 할 일 자체가 많지는 않아 그냥 멍하니 관사 옆 정원 툇마루에 앉아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나머지야 다른 애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거고, 이럴 때라도 잠시 권력을 누려야 하지 않겠어?

“이 계집애가 진짜!”

“제갈량임.”

애 보기가 쉬는 거냐는 건 또 별개지만.

“애들이 뛰어노는 게 보기 좋네요.”

유비는 내 옆에 앉아서 느긋한 분위기로 찻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당신은 할 일 없어? 왜 갑자기 애를 데리고 내 집에 오는 거냐고. 난 그냥 느긋하게 쉬고 싶었을, 아니 됐다.

“저게 뛰어노는 거로 보이쇼?”

내 눈에는 말다툼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데.

사람은 비슷한 것을 보아도 감성은 천차만별이라던가. 같은 것을 그저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사실 실제로 눈에 비치는 풍경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던가.

나야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유비의 감성과 내 감성은 뭔가 안 맞는다는 거다. 저 봐, 당장에라도 사마의가 발끈해서 달려들 것 같잖아.

“그러니까 이걸 왜 몰라?”

“모름. 모르는 건 모름.”

지금은 바둑인가.

아까까지는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뭔가 찾는 거 같더니, 이제는 바둑판을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네. 사마의도 언니니까 처음에는 어른스럽게 대하려는 거 같았지만, 정작 말 좀 섞으니 바로 저런다.

저러니까 아직 애라는 거지.

“여기서는 여길 끊고, 이렇게 수비적으로만 나가도 이기는 거 아냐? 복기라는 건 아니? 당연히 지키면서 천천히 대응하면 이기는 걸 왜 여기서 백돌을 여기다 둬?”

“수동적인 행동으로는 휘둘릴 뿐.”

흑돌과 백돌을 가지고 싸우는 건가?

“애들이 참 재미있게 노네요.”

그래? 아니, 나 때는 저렇게 안 놀았던 거 같은데. 예전 전풍의 집에 있을 적에는 애들처럼 놀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냥 나무칼이나 만들어서 칼싸움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거 말고는 뭐, 물수제비라던가?

“댁도 어릴 때 바둑 두고 놀았나?”

“아뇨, 저희는 그리 유복하지 않았으니까요. 대신 나무칼 같은 걸 가지고 골목놀이를 주로 했던 거 같은데요? 그거 말고는 정말 어릴 적에는 소꿉놀이라던가.”

“소꿉놀이라.”

그런 것도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기억에 남을 일도 아니고. 몇 번은 했던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금방 질려서 다른 거 하러 갔던 것 같았다.

“그쪽도 역할 두고 싸우고 그랬나?”

“그럼요! 저도 어린아이일 적이 있었다고요?”

유비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추억을 회상하려는 걸까. 나도 따라 고개를 드니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이 드리운 것이, 봄이 된 직후에 출발했던 기억이 있는데 벌써 여름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댁은 무슨 역할을 원했는데.”

“황제요.”

……어?

소꿉놀이에 황제?

“그때 아이들끼리 서로 황제를 하겠노라고 싸웠던 게 기억에 남네요. 마지막에는 전부 때려눕히고 제가 황제가 된 건 좋았는데, 정작 같이 역할을 맞출 애들이 울면서 도망갔으니 고독한 황제였죠.”

“아니, 어, 뭐…….”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런가.

아니지. 무슨 소꿉놀이에 황제야. 게다가 그거 내가 알기로는 중범죄에 속한다고 아는데. 사사로이 황제 폐하의 이름이나 그 직위를 사칭하는 건 곤란하지 않은지?

물론 애들 놀이에 누가 그것까지 따지겠느냐마는.

“생각해보니 비슷하네요.”

“뭐가?”

“권력자도 힘으로만 통치해선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요.”

아니 뭐, 그야 다 때려눕혔다면서. 그러면 아무도 안 따라오기야 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또한 현실에서의 정치 구도와 비슷한 점이…… 있을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여자가 잘못한 건데.

“이런 사사로운 것에서도 배움이라는 게 있었네요. 그러니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을 피력하며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서 화해하고. 전 저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소녀들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

“절대 아님. 내가 이김. 확신함.”

진짜 애들처럼 싸우고 있네.

정작 문제라면 그 말다툼 과정에서 들리는 단어들이 너무 복잡하다는 걸까. 생각해보면 예전 사마의를 처음 만났을 적부터 종종 바둑을 두곤 했는데, 정작 난 둘 때마다 사마의에게 탈탈 털렸었지.

그런데 제갈량이라는 꼬맹이가 우리 꼬맹이 상대로 호각으로 맞서는 듯하여 기분이 좀 싱숭생숭한 부분이 있었다.

요즘 애들이 바둑을 잘 두는 건지, 내가 허접한 건지 모르겠네. 개인적으로는 전자였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내 연약한 마음은 갈가리 찢겨 버틸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좋네요. 옛날 추억도 나고요.”

유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저희도 이렇게 앉아있기 뭣한데, 놀이라도 해볼까요?”

“엥? 놀이? 갑자기 뭔.”

이 나이 먹고 애들 놀이나 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 듣기로 유비가 나보다 연상이라고 아는데, 그런 우리가 애들이랑 껴서 놀기도 좀 그렇잖아.

“그러네요.”

하지만 유비는 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빙긋 웃었다.

“소꿉놀이라도 해볼까요?”

“무슨 소꿉놀이야. 애들 장난이잖아.”

“무읏. 그건 좀 그러네요.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어린이의 놀이 하나에도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고요. 저는 그 소꿉놀이를 통해 지도자는 폭력으로 사람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거든요?”

뭐, 그야 그렇기도 한데. 그래도 낯간지럽잖아. 애당초 이 나이 먹고 소꿉놀이나 하라고? 게다가 황제까지 있는? 내가 중랑장이라는 자각은 있는 거냐.

“황제라는 직책이 있는 시점에서 소꿉놀이가 아니거든?”

“알고 있어요. 저라고 설마 황제 폐하를 언급하면서 놀 정도로 어리지 않거든요. 아니면 뭔가요? 중랑장께서는 절 그리 어리게 봐주셨나요? 그러면 영광….”

“그건 아니고.”

아, 표정 썩었다.

그치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어딜 어떻게 봐야 저 폭발적인 젖가슴을 가진 여자가 어려 보이냐고. 게다가 저 엉덩이로 이어지는 선까지. 성인 여성이라고 해도 너무 선정적인 몸매라고 생각합니다. 네.

“크흠! 아무튼요. 해주실 거죠?”

“아, 싫은데.”

“할 것도 없으시잖아요.”

“그런 당신은 할 거 없수?”

그러니 유비가 입을 다물었다.

드물게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이런 누님이랑 소꿉놀이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부끄럽다를 운운하기 이전에 이 나이 먹고 무슨 소꿉놀이야.

난 어릴 적에도 소꿉놀이를 즐긴 기억이 없다.

“왜요! 딱 좋잖아요? 마침 의아나 량이를 포함해서 아이들도 있으니까 저희가 부모님의 역할을 맡는 거죠. 저는 과거 잠시나마 이런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게 꿈이었다고요?”

“아 좀! 무슨 소꿉놀이요. 그런 거 할 시간에 그냥 전쟁놀이나 하고 말지. 전쟁놀이에서도 충분히 배울 건 많았거든? 소꿉놀이에 비할 바가 아니거든?”

“숫자가 너무 적잖아요!”

전쟁놀이는 숫자가 적어도 할 수 있다고. 그냥 서로 장수라고 상상하고 주변 병사들에게 지휘하는 척하는 게 얼마나 재밌었는데.

“이건 단언컨대 소꿉놀이에요.”

“전쟁놀이가 소꿉놀이보다는 훨씬 재밌었거든?”

“그 말은 흘려들을 수 없네요.”

아니 흘려듣지 않으면 어쩔 건데. 당장 우리가 지금 하는 일도 전쟁인데, 어딜 봐도 전쟁놀이가 훨씬 배울 게 많았잖아. 나도 가끔 누군가에게 지휘할 때면 전쟁놀이에서 배운 명령을 활용,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소꿉놀이보다야 전쟁놀이가 우월한 건 확실하다. 이건 내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더 재밌잖아. 애들처럼 꺄꺄호호 거리면서 여보, 당신 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저한테 여보 소리 듣고 싶지는 않으세요?”

“싫어. 그것보다는 당연히 칼싸움이지.”

“진짜 꿈도 희망도 없으시네요.”

무슨 꿈이요, 무슨 희망이냐. 애당초 아직 가정을 꾸릴 생각도 없었다. 슬슬 혼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의가 오곤 했지만, 그걸 구태여 왜 거절하는데.

여자관계가 복잡하기도 하고, 그 이전에 나는 이 혼란이 끝나기 전엔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누구 슬프라고.

“아무튼, 돌고 돌아 가장 재밌었던 건 전쟁놀이야.”

“참. 중랑장께서도 고집쟁이시네요.”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왜 이렇게 소꿉놀이에 고집해? 그냥 전쟁놀이하고 노는 게 훨씬 재밌, 아니 잠깐만. 그런데 난 왜 어느 순간부터 이 여자랑 애들 놀이를 하고 논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

“뭐야.”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쟁반에 다과 등을 잔뜩 싸 들고 온 여포가 있었는데, 그녀는 우리 모습을 보자마자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유비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뭔 불여시 하나가 작업 치고 있었네?”

“아, 아뇨. 불여시라뇨. 전 그냥 추억을.”

“여보? 분명 내가 그렇게 들었는데도 이게 진짜.”

차마 쟁반까지 던지지는 않고 곱게 내려놓으며 여포는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와서는 바로 내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 날 사이에 두고 유비를 잔뜩 노려보는 게.

“주인아. 뭐 당한 거 없어? 자지 멀쩡해? 뭐 만져지거나 한 거 없지? 하여간 저런 노처녀 불여시들이 있으니까 방심을 못 하겠네.”

“……저기요?”

“하여간. 짝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야지, 왜 자꾸 못 비빌 언덕에 등을 맞대려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이래서 노처녀들은 문제야.”

“저기, 여포공?”

여기서 한 마디 발언할 수 있을까.

하지만 유비의 시선이 너무 섬뜩해서 차마 발언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여포는 그런 시선에도 픽 웃으며 고개를 까닥이고는 유비에게 손짓한다.

“뭐. 틀렸나?”

“노처녀라는 말에는 조금 어폐? 가 있지 않을까요. 제 어딜 봐서 노처녀라고 하시는 거죠? 이건 정말 심각한 비방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라고.”

조금 전까지 유치하긴 해도 훈훈했던 거 같은데, 순식간에 양옆에서 찌릿한 시선을 느껴 시선 둘 곳이 난감했다. 여포를 바라보면 유비가 뭐라고 할 것이고, 유비를 바라보면 여포가 내게 뭐라고 하겠지?

난감함에 저 앞으로 시선을 두었는데, 웬일로 소녀들은 말다툼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쓰잘머리 없는 말다툼을 구경하는 걸까.

“정말 아직 다들 애라니까.”

“동감.”

……………………애들한테 애 취급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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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풍 아조씨는 저기서 머리가 좀 회색으로 빛바랜 느낌 연상해주시면 딱 좋을 거 같아요.

소연 아씨도 곧 웃을 수 있을 거에요.

나머지 못다 한 말은 다음 편에 다시 하겠습니다. 오늘은 분주한 와중에 할 짓 없는 어른들이 모여 오랜만에 일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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