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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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은 자세가, 아니면 그냥 이 자리가. 어느 쪽이건 불편하다는 감상에 이론은 없었다.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서늘하게 느껴질 따름.
“조공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주시니 어찌 감사를 할지.”
“무얼. 그대의 덕분에 순조로이 중랑장이 수춘에 당도했는데 이런 자리가 대수일까. 그대가 원한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가능하다.”
왜 그래. 이 분위기 대체 뭔데.
분명 서로 웃고 있었다. 항상 싱글거리며 돌아다니는 유비야 뭐 놀라울 것도 아니지만,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일이 적은 조조마저 씩 웃으며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서주의 주인과 연주, 예주의 주인의 회동.
이 자리에서 서로 친밀해져 나쁠 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자꾸 이렇게 찌릿한 느낌이 들까. 뭔가 이상한데. 지금 당장에라도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감각이 경종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중랑장? 표정이 좋지 않군.”
“아닙니다.”
“단둘이 있을 적엔 편하게 대하라고 하였다.”
단둘이 아니잖아. 유비는 뭔데. 당장 유비도 지금의 대화로 살짝 묘한 시선을 내게 향하고 있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난 이런 분위기가 정말로, 진짜 정말로 싫었다.
제발 둘이서 떠들면 안 될까.
그것보다 이 자리에 나 필요 없는 거 아냐?
진궁 선생이라던가, 순유 선생이라던가. 정욱 선생님도 계시잖아. 물론 정욱 선생은 연세가 좀 있으신 편이니 이런 자리에 끌어들이기 좀 그렇지만, 일단 나는 아니잖아.
“그, 대장군.”
“서주목이 어디 남인가? 가벼운 분위기에서 술자리 겸 친목을 도모하려 불렀는데 그대가 이리 돕지 않으니 다소 슬프군.”
대놓고 사람 놀리는 표정이면서 뭐가 슬퍼.
하여간 진짜 말만. 유비도 그런 모습에 다소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낯부끄러운데. 아니 대외적으로는 이런 편한 관계 안 드러내겠다며. 왜 갑자기 그러는 거냐.
“미안하군. 우리 중랑장이 다소 낯가림이 심한 듯하다. 원래는 이런 남자가 아닌데, 가끔 이상한 구석에서 수줍음 많은 소년으로 변하는군.”
수줍음?
나랑 가장 연관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저랑 계실 적에는 그런 모습 안 보이셨는데.”
유비는 은근하게 내게 시선을 돌려며 씩 웃었다. 살짝 시선을 돌리니 조조가 눈썹을 움찔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냐, 그런 거 아니라고. 이 여자는 왜 또 오해할만한 말을 꺼내 가지고는.
“아니, 무슨 수줍음이야. 내가 그런 거 키웠던가?”
어쩔 수 없어 어깨에 힘을 풀었다.
하여간 진짜. 이게 음해가 아니면 뭐가 음해일까. 각 군의 군주라는 양반들이 모여 불쌍한 일반 무관 하나를 놓고 놀리고 웃는 거랑 뭐가 달라.
나 하나 희생해서 둘의 분위기가 좋다면야 뭐 못할 것도 없지만, 딱 보아하니 은근히 이상하게 찌릿한 것이 괜히 이런 쪽으로 얘기를 더 진행하면 본전도 못 찾겠네.
“아무튼, 나까지 부른 이유는 뭐요?”
“그대는 서주쪽 원정 최고사령관이었고, 서주목은 말 그대로 아군에게 지원해준 고마운 이. 그러니 그런 이들끼리 모여 조촐하게나마 자리를 만들어 회포를 풀고자 하였다.”
“저는 반가운데, 중랑장께선 그게 아닌가요?”
유비까지 합심하여 날 몰아붙인다.
솔직히 싫다고. 난 그냥 적당히 바깥에서 쉴 생각이었는데. 안 그래도 방삼이랑 장료랑 해서 남자끼리 좀 모이자고 얘기까지 했다가 이 자리가 생겨서 깨져버렸다. 가끔은 남자끼리 모여서 여자 있을 때는 못 하는 얘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니 뭐, 솔직히 내가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있어야 한다.”
단언하는 조조의 말에 바로 쪼그라들었다.
권력 가지면 좋다던 사람들은 대체 뭐냐. 나도 중랑장 정도면 어디서 꿀리는 관직 아닌데도 예전이랑 다를 게 없는데? 더 귀찮은 일만 잔뜩 생기잖아.
“저랑 같이 있는 건 싫으신가요?”
유비는 은은하게 내 팔을 붙잡는데.
아니, 하지 말라고. 지금 실시간으로 조조님 표정에 금이 갔다고. 저거 슬슬 짜증 느끼기 시작한 거다. 안다고. 딱 봐도 표정에서 훤히 보이잖아.
“크흠!! 아무튼, 그러면 이 자리는 친목 도모?”
“뭐,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만.”
조조는 그리 말하며 탁자 한가운데 지도를 펼쳤다. 술자리라고 해서 불렸는데 아무것도 없어 뭔가 했더니 바로 뭐 먹으면서 할 얘긴 아닌가 보네.
“아군은 수춘을 정복하였다. 그 결과 양주 북부를 중심으로 하여 사실상 아군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해도 문제는 아니겠지.”
“하지만 조공.”
그 말에 유비가 바로 말을 이었다.
“원술의 잔병은 여전히 남는 게 아닌가요? 이번 전쟁에서 적을 대파했지만 도망친 패잔병들이 각 지방의 관리관에게 모이고 있어요.”
“바로 그것이지.”
그나마 다행이네.
적어도 이렇게 업무 얘기를 하고 있을 때면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그 심장 쫄깃한 묘한 기류는 아니니까.
“그들을 토벌하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1년. 그들은 이제 양주 깊은 곳으로 도망쳐 기회를 노릴 것인데, 아군은 그렇게까지 투자할 여유가 없다. 서주는 어떤지?”
“저희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서주를 오래 비울 수도 없는 데다가, 물자 자체도 그렇게 풍족한 편이 아니니까요.”
뭐 사실 처음부터 아군의 전략목표는 원술의 사살이었지 양주의 평정이 아니었다. 서주 또한 황제 폐하의 조서를 받고 지원 나온 병력이고 영토의 확장을 꾀한 것이 아니니, 양주를 점령할 어떠한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
애당초 양주 땅은 포기할 생각인 거 아니었나.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속도 상하지. 우선 서주목에게는 그간 서주에 속해있으면서도 통치되지 않았던 광릉 일대의 편입을 돕겠다.”
“예?”
광릉은 서주 남부로 이어져 사실상 양주와 밀접하게 맞닿은 영역이었다. 백성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닌 것. 그래서 사실상 원술 생전에는 그의 영역이나 다를 바 없었는데.
그걸 수복하게 도와주겠다고?
이건 나도 조금 의외였다.
“그대도 이 전쟁에서 희생한 것이 많다. 물론 서주목과 겸직할 수 있는 관직을 추천하겠으나 당장 실용할 수 없는 무형적인 것이겠지.”
아무래도 허도의 관료가 아닌 이상 서주목 이상 가는 관직을 내릴 수는 없었다. 내린다고 하면 결국 황궁과 관련된 관직일 것인데, 애당초 허도에 있지 않은 사람이 그런 관직을 받아 어디에 쓸까.
“그대 또한 무언가 실질적으로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공.”
유비가 침착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상당히 의외인 부분도 있었다. 서주는 현 아군과는 잠재적인 적과 같음이 있었다. 이번 원정에서의 도움? 그도 사실상 황제 폐하의 이름을 빌린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결국은 아군이 되던가, 적이 되던가.
조조는 회유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서 적일지 아군일지 모를 유비의 세력을 넓혀주겠다고?
“그 영지는 서주목인 제가 직접 수복해야지요. 조공의 후의에는 감사하오나 제 영지를 직접 수복하지 못한다면 제가 서주목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유비는 순박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지금 조조가 말한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도 다소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은은하게 내민 손에 작게 거절의 표시를 한 셈인데.
그렇다고 싸울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겠고.
“아니, 부디 본인의 조력을 거절하지 말도록. 그대가 이 도움을 받고 난 이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러니 다음 말을 할 수 있게 이 손길을 뿌리치지 말라.”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본인은 그대에게 한순간의 동행 이상의 관계를 기대하고 있다. 그대가 본인에게 어떤 감상을 품고 무슨 생각하는지 본인은 모른다.”
조조는 그런데도 손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유비와 조조는 꽤 복잡한 관계라고 들었다. 과거 황건적의 난 당시에 함께 싸운 적 있는 전우이자 상하관계에 있었다고도 들었고, 반동탁 연합군에서도 합을 맞췄다.
그러나 서주에서는 적으로 돌아선 관계.
“그대는 영웅이었다.”
“네? 저 같은 게 영웅이라니요.”
유비는 고개를 가로젓고자 했지만, 그 전에 조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살짝 얼빠진 표정의 유비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조조.
“본인은 이 대륙을, 나아가 이 천하를 바로잡고자 한다. 아직 적은 많지. 그대와 내 사이에도 모종의 악연은 있었으나, 그것 또한 대화와 화합으로 치료될 것으로 안다.”
“저는…….”
“중랑장 또한 그대를 추천하더군.”
아니 왜 갑자기 잘 나가다가.
유비도 그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살짝 놀람과 의아함일까. 사실 추천이라고 해도 별거 없었는데. 난 그냥 유비랑 싸우는 건 버겁지 않겠느냐고 귀띔만 했을 뿐이다.
“아니, 그만큼 해줬으면 뭐 받는 것도 있어야지.”
물론 그게 회유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본인은 그대와 같은 영웅호걸을 언제나 원하고 있으니 진지하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군. 물론 대답 여하와 무관하게 광릉의 수복과 이번 전쟁으로 소모한 물자, 그리고 명예직에 불과하겠으나 관직 또한 수여할 것이니 그것은 받아두도록.”
“조공의 후의에 언제나 감사드려요.”
조조의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 내면에서는? 글쎄. 난 아직 잘 모르겠네. 그렇지만 유비와 한편이 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노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있었다. 내 경험상 무슨 생각인지 모를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일 얘기는 끝났고, 식사나 하지.”
그녀는 그리 자리를 정리하고는 사람을 불렀다.
뒤이어 시종들이 차림 상을 들고 왔는데,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과하게 조촐하네. 분명 조촐하게 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설마 유비를 데려다 놓고 그냥 길거리 음식 몇이랑 술 같은 거로 차릴 줄은 몰랐는데.
“상이 좀 그렇지만, 맛은 괜찮을 거다.”
본인이 보증한다며 그녀가 먼저 수저를 들었다.
술 자체야 원술이 모아두었던 것을 가져왔으니 분명 고급이겠지. 사실 이런 반주는 술만 괜찮으면 어지간해서는 전부 괜찮아지는 법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잔에 술을 따를 무렵이었을까.
“조공.”
저편에서 진궁 선생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날 보고는 살짝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진지한 표정이 되어 조조 근처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그러니 진궁 선생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중요한 일인가 싶었지만, 귓속말하는 탓에 유비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을까.
“쯧. 이럴 시간이 없겠군.”
조조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요, 또 뭐 문제 생겼어?”
“허도에서 급보다.”
그녀는 답지 않게 한숨부터 푹 내쉬었다. 진궁 선생도 썩 표정이 좋지 않으니 분명 무슨 일이 터진 건 맞는데, 지금 상황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나?
원술의 잔당이 벌써 결집했을 리도 없는데.
“조공. 혹시 무슨 일인지 들어도 괜찮을까요?”
“숨길 일도 아니지.”
조조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공손찬의 거성, 역경루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유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공손찬은 과거 유비와 동문이었노라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그녀가 공손찬 휘하의 무장이었던 것도 알고 있었고, 하여 고개를 돌렸는데 의외로 유비는 꽤 침착한 표정이었다.
“이후 원소의 추격을 반격하여 승전을 거두었다지만 공손찬이 모든 걸 투자해서 건설하던 거성의 함락은 좋은 징조가 아니지.”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고작 그 정도로 끝날 일인가?
“아니 거성이라며. 듣기로는 무슨 수도보다 더 방비가 잘 된 전략적 요새라고 들었는데 그게 뭐 벌써 함락당해? 말이 돼?”
“흑산적과 연합했다더군. 그 원소 놈이 설마 도적 무리와 손을 잡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어이도 없지. 고고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뒤로는 그런 수를 꾸몄는가.”
흑산적? 그 장연 무리 말하는 거 맞지?
원소가? 아니, 좀 이해가 안 가는데. 물론 사람을 한눈에 파악했다고 하긴 힘들지만, 먼발치에서나마 보았던 원소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도적과 손을 잡을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서주목. 미안하지만 먼저 일어나지.”
“사안은 알고 있어요. 괘념치마세요.”
“실례하지.”
조조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궁 선생도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에서 빠져나갔고, 결국 남은 건 유비와 나뿐인 자리.
“……저희라도 한잔할까요?”
“거참. 이게 무슨 일이래.”
원소는 공공연하게 현 황제를 부정한 인물 중 하나였다. 유비에게 원소가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아군에게는 언젠가 사생결단을 낼 적에 불과한 것.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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