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98화 (298/343)

29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전쟁이 끝난 날 손책은 제법 회복했는지 안색도 좋아 보였다. 물론 상처 자체는 하루 이틀로 나을 상처가 아니었기에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었지만, 적어도 처음에 봤던 것보다야 얼굴에 핏기도 도는 게 나름 쾌차하는 듯했다.

“좀 괜찮아 보이네.”

여포는 일부러 빼고 혼자 왔다.

괜히 만나봐야 긁어 부스럼인 데다가 그녀는 손견을 죽인 사람. 나라는 사람을 보는 것도 힘들어하는 손책의 앞에 여포까지 대동해서 같이 가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여포는 마지막까지 그 계집이 무슨 짓을 할 줄 아냐면서 붙어있으려고 했지만, 병상에서 골골거리는 환자에게 당할 나도 아니었다.

그러면 결국 내 위협이 될 것은 그녀의 곁에 붙어있는 태사자 정도인데, 놈이 미쳤다고 아군 진영에서 날 암살하겠나. 거동도 불편한 손책을 데리고 이 아군 진영을 빠져나가는 건 여포라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뭐, 그럭저럭.”

살짝 잡생각을 하는 사이 손책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전쟁은 끝났다. 원술의 목은 수춘 관청 가장 높은 곳에 매달렸고. 이걸로 우리의 계약도 전부 청산되었으니 슬슬 돌려보내 주려 하는데.”

“그래? 그냥 거기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에는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안타깝지만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병주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아직 할 일도 많았고, 무엇보다 손책의 말에는 다소 어폐가 있었다.

“네 손으로 죽이는 거 아니었나? 내가 원술이랑 푸닥거리다가 이름도 모를 잡부에게 죽는 게 바람이었나.”

“이익! 아, 그래. 당신은 무조건 내가 죽여.”

그래야지.

관계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리 발끈하는 모습을 보니 썩 우습기도 하네. 물론 이제 전쟁도 끝났겠다, 손책이 꼭 살아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기껏 살린 거 곱게 살아가면 나야 반갑지.

하지만 이 말만큼은 하고 싶은데.

“너희도 역적으로 엮일 수 있었다.”

사실 순유 선생을 필두로 아군에 억류된 손책을 죽이자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손견을 잃은 손가가 재차 수장을 잃으면 그걸로 끝 아니겠냐고.

글쎄. 나는 그 말에 오히려 반대를 던졌다.

내가 상대했던 주유라는 남자와 손가의 장병이 수장을 잃는 거로 쉬이 꺾일 것 같지 않았다. 구태여 불미스러운 일로 적을 여럿 만드는 것보다는 이런 기회에 은혜를 입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손책 본인이 은혜라고 생각할 리는 없겠지만.

“……청산이라더니? 죽일 거면 진작 죽이지 그랬어.”

“더 들어봐라.”

조조는 아예 손책에게 관직을 내리는 게 어떠냐고 했다.

양주 일대는 아직 황제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 이 지역 절대 강자 원술도 죽었고, 한동안은 양주 일대에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난립할 것이니 손책에게 관직을 내려 이 지역을 다스리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물론 그 의도는 양주자사가 된 손책을 인정하지 않는 여러 세력의 궐기를 노려 손가를 압박하여 억누를 장치라고 했다.

이제 막 원술이라는 강자가 사라진 양주. 그 땅에 새로운 자사랍시고 손책이 등장하여 제2의 원술이 되려 한다면 양주 땅의 호족들이 쉬이 그것에 납득할까? 근거지도 협소하고 지지기반도 약한 손책의 명에 그 억센 호족들이?

그럴 리 없지.

그렇기에 이것은 손책의 목에 채울 목줄이었다.

잘 되면 은혜를 입힐 수 있다. 안 풀려도 손책은 쉬이 세력을 일으킬 수 없다. 어떻게 굴러가도 당분간 양주에 간섭할 수 없는 아군이 보기에 나쁠 게 없는 일.

“조공께서는 연합군에서 손견과 합을 맞추었지. 그와 함께 싸우기도 했고, 여러모로 그가 한 황실에 충성했다는 걸 알아. 그러니 이번 일은 원가와의 상하관계로 인한 압력이 들어간 거라고 판단하셨다.”

“……바라는 게 뭐야.”

손책은 싸늘한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그야 그렇겠지. 전쟁에서 패한 장수, 그것도 적대적이었던 장수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면 누구나 의심하겠지. 나라도 당연히 좋은 생각은 안 들리라.

“아비였던 손견의 공.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올바름을 깨닫고 원술의 군에게서 돌아선 것을 참작했다. 그리고 장차 그대가 손견의 뒤를 이어 한에 충성하길 바라는 마음이지.”

조조가 임의로 적었던 공문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뭐야, 이거.”

“황실로 돌아가면 폐하에게 널 양주자사로 추천하겠다는 조서야. 요컨대 앞으로 넌 한 황실의 적법한 관직을 이어 이 양주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목줄이었다.

받을지 말지는 손책 개인의 몫.

그렇지만 안 받고 배길 수 있을까? 조조는 손책이 이걸 받아들일 거라고 귀띔해줬다. 나야 뭐, 손책의 원한을 알기에 반반이라고 생각했고.

“대체 무슨 꿍꿍인데.”

그녀의 질문에 뭐라 답할 말도 없었다.

무슨 꿍꿍이냐고 물어도 말이지. 진짜 꿍꿍이가 있으면 쉬이 답해줄 리가 없잖아? 게다가 이 명령서 자체가 아군의 이득을 위한 일이라지만 손책 본인에게도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원술이 죽은 지금 손책은 끈 떨어진 연과 같았다.

손책 본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굉장히 협소했고, 듣기로 원술 휘하에서 여러 전쟁을 치르며 이곳저곳에 원한 관계를 쌓았다던가.

“원술이 죽고 네게 남은 건 뭐지?”

영지도 없고 관직도 없다.

기껏해야 일만에서 이만 남짓한 군사력이 고작. 병사도 공짜가 아니었다. 봉급을 주며 식량을 보급해야 유지되는 게 병사였고, 지금의 그녀에겐 그 병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영지도 없다.

“놀리는 거야?”

“이건 단순한 선택이야. 네가 이걸 목줄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원수였던 내가 내미는 것이 석연찮다는 건 알겠지만, 그 목줄이 너의 유일한 동아줄이 될 수 있음이니까.”

거절해도 좋다.

어차피 이 이후로 아군이 양주 땅을 밟을 일도 없으니까. 손책군과의 계약도 그녀를 풀어주며 끝나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 그들이 뭘 하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여기까지 말하고 살짝 우스워졌다.

내가 이런 걸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게 영 어색했으니까. 어쩌다가 이런 정치적인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게 되었는지. 병주에 있을 적에는 상상이나 했던가?

게다가 상대가 그 손견의 딸내미.

그녀의 풍성하게 자란 푸른 머리칼은 손견을 떠올리게 했다. 여전히 그 무장은 내게 있어 여포와 함께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은 무언가를 연상케 한다.

그가 죽고 지금은 그의 딸내미와 얼굴을 마주하는 상황.

“이걸 받고 안 받고는 너의 자유야. 이대로 아군 진영에서 나와 네 방식대로 자유로이 천하를 영유하여도 좋지. 조공에겐 내가 잘 말해줄 수 있어.”

거기까지 말하고서 손책의 안색을 살폈다.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나와 조서를 번갈아 바라본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내가 성격 나쁜 인간이 된 것 같았지만, 이게 군의 일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뭐, 여기까지가 조조의 의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내 개인적인 견해다.”

픽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거 받는 게 좋을 거다.”

나를 향한, 혹은 여포를 향한. 아니면 조조를 향한 적의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는 손견 사후의 책임과 원한을 우리에게 향했고, 그렇기에 그녀가 이걸 달가워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네게 있는 건 뭐지? 손견이라는 남자가 남긴 것이 전부 아니냐? 그 남자는 확실히 대단했지. 다시 싸우라고 해도 이길 승산이 보이질 않아.”

원한이라는 게 쉬이 걷히지 않는 어둠이라는 걸 안다. 방삼이가 여전히 여포를 다소 어려워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겠지. 나 역시도 가끔 악몽을 꾸곤 했다. 내 부하들이 나와 왜 여포를 죽여주지 않느냐는.

그들의 진짜 의향 같은 건 모른다.

애초에 죽은 자에게 말은 없으니까. 그러니 그 악몽은 전부 내 개인에게서 나온 죄책감이었다. 여포 개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죽어 나간 이들을 향한 죄책감.

그것 씻으려 해도 쉬이 씻겨 내려가지 않을 질척한 감정의 발로였다. 여포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지금에도 남아 날 억죄는 쇠사슬과도 같을런가.

“그런데 너는 뭐냐?”

손견과 손책?

물론 손책 개인의 무용은 알겠다. 아비 사후에 이만한 세력을 다시 일궈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능력은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손견에 비할 바던가.

“원한을 잊으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손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면 양주의 주인이 돼라. 그 뒤에 숱한 도전을 꺾고 이겨나가면, 그때부터는 아버지의 뒤가 아닌 옆을 나란히 걸을 수 있겠지.”

“……아버지를.”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아군은 앞으로 일주일 뒤 수춘을 떠난다. 그때 너를 해방할 거니까 그때까지는 천천히 고민해보도록.”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였다.

그녀에게 조서를 건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손책은 말없이 그 조서를 바라보고 있었고, 막사에서 나가는 길에 태사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주군에게 걱정거리를 던지셨습니까.”

“그래. 불만이냐?”

그러니 그는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당신의 은혜라는 것을 압니다. 주군을 살려주신 것도, 그 뒤의 일도. 조공께서도 아무 연 없는 주군께 저리 호의를 베푸실 이유가 없겠지요.”

태사자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계속 고개를 조아렸다. 글쎄. 내가 보기에 조조는 손책을 본 순간부터 이런 정치적인 계산을 떠올렸던 것 같은데. 저 조서는 호의가 아닌 오직 아군만을 위한 계책에 불과했다.

“헛소리를. 네 주군 보필이나 잘해라.”

“예, 은공.”

재차 고개를 숙인 그에게 등을 돌렸다.

저게 은혜라고? 그럴 리가. 저것이 한때 손책의 동아줄이 될 수 있겠으나, 결국에 일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가정하여 손책이 양주자사의 관직을 기반으로 양주 땅을 평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반도 없는 손책이 양주 땅을 평정했다면 그건 적법한 양주자사의 관인을 손에 쥔 명분이 있기에 가능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조조와 한 황실이 내린 것.

그러니 언제 다시 거두어가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렇게 순식간에 양주 땅에 궐기할 명분을 잃은 손책은 재차 내분에 휩싸이게 될 터.

조조는 거기까지 말하며 빙긋 웃었더랬다.

“쯧.”

그러니 저건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악의로 점칠 된 무언가겠지. 그나마도 손책에게는 필요한 것이기에 나도 권했지만, 그녀가 이날 이후 복수를 울부짖을 날이 과연 찾아오기는 할까.

자유와 맞바꾼 안위를 호의라고 할 수 있는가.

난 아니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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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도 슬슬 끝나가고 주말이 다가오네요. 오늘까지는 설 준비에 한 편입니다만, 내일부터는 다시 편수를 늘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좋은 연휴셨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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