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전쟁이 끝난 날 내 아침은 비교적 이른 편이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근래 들어서는 일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사마의가 자꾸 바른 생활을 떠드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정작 그 꼬맹이가 술에 절어 끙끙거리는 게 우습다만.
“끄으, 으으응…….”
어제 그 이후로 사마의를 데리고 우선 배정받은 숙소로 들어왔다. 사마의가 하도 내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같이 잤는데, 여포도 그 광경을 보고 같이 눕겠다며 하도 칭얼거렸기에 우리는 세 사람이 뭉쳐 잠들었다.
여포도 아직 안 깼나.
“…아저씨?”
“깼냐. 머리는 안 아프고?”
보통 첫 숙취에는 머리가 깨질 듯 아플 텐데. 게다가 어제 좀 취했나? 돌아가는 길에는 내 옷에 시원하게 토사물을 끼얹어줬으니 어지간한 숙취가 아니겠지.
기억하려나 몰라.
“아으, 조금 아프네요. 대체 무슨…….”
사마의는 점차 말을 멈추고 몸을 떨었다.
와, 사람 얼굴이 저렇게 창백해지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니. 몸까지 살살 떨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과 자기 몸을 번갈아 보는 걸 보면 아마 기억이 난 거겠지.
“아, 아니에요.”
“뭐가?”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퍼졌다.
아니 이걸 어떻게 안 웃어. 본인에게는 안 좋은 기억이겠지만, 옆에서 지켜보자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그렇게 고생시켰으면 이 정도의 재미는 허락해줘도 되는 거잖아.
“아저씨, 그, 혹시…….”
사마의답지 않게 머뭇거린다.
창백했던 얼굴이 다시 새빨개지는데, 그 순식간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등락 폭이 커서 오히려 더 웃기는데. 아, 안 돼. 아직은 참아야 해.
“그, 기억… 해요?”
“뭐? 음. 네가 애 아니라고 가슴 들이밀던 거? 아니면 내 목을 물고 빨고 했던 거? 아니면 오는 길에 내 몸에 토했던 거? 아니면…….”
“그마아아아아안!!”
아, 안 돼. 못 참아.
“쿠, 쿠흑, 히윽!! 케, 케흑, 자, 잠깐. 무, 물!”
“뭐야! 무슨 일이…, 아. 꼬맹이 깼네.”
주변 소란에 여포가 번뜩 몸을 일으켰다가 사마의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너무 갑자기 웃어서 그런지, 무, 물이 필요한데.
“됐어요! 아니, 그것보다 토도 했다고요? 다른 건요. 아니, 싫어요. 듣기 싫으니까 제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 진짜. 아아아아! 왜, 내가 왜!!”
“어으, 죽는 줄 알았네.”
사레들려서 속이 쓰린데도 웃기네.
“걱정하지 마. 인생 다 그런 법이야. 가끔은 그런 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아니 뭐, 나야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 말고.”
“맞아, 맞아. 난 그런 적 없지만.”
여포가 쓸데없는 말을 덧붙인 탓에 사마의가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불을 덮어버렸다. 언어도 되지 못한 무언가를 빼애액 내지르는데, 여기서 더 놀리면 애가 깨질 거 같아.
“아무튼, 난 전혀 신경 안 쓰니까. 응?”
“아으, 아으아아아!! 저 아니거든요? 진짜라고요. 진짜 아니라니까요? 그게 아니고, 아니, 내가 진짜 왜!! 저 그런 애 아니거든요? 가슴 내밀고, 아으, 막 그런 애 아니라고요. 아시겠어요?”
……이불 속에서 그리 말해봤자.
얼씨구, 이젠 아예 이불을 뻥뻥 걷어차네.
“주인아, 그냥 조용히 비켜주자.”
“하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와중에도 이불이 위아래로 요동쳤다. 거참,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응? 예전에 술 마시고 사고를 얼마나 쳤는데. 내가 친 사고만 떠올려도 난 아직도 낯부끄러워서 그 거리를 갈 수가 없어요.
어릴 적의 치기라고 해도 좋았지만, 말이 좋다는 것이지 그 객잔에서 벌어졌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아려온다.
내가 왜 그랬을까.
“우리 간다. 적당히 정신 차리고. 밖에 따로 숙취에 좋은 거 준비해달라고 했으니까 속 좀 나아지면 먹고. 알겠어?”
그러니 사마의가 이불 밖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얼굴은 새빨개진 것이 저 또래 모습과도 흡사해 귀여운 맛이 있네.
“저 꼬맹이 저러니까 좀 신선하네.”
그건 여포도 같은 의견이었을까.
“가끔은 저리 애다운 맛도 있어야지.”
생긴 것과 다르게 너무 어른처럼 재서 요즘은 얘가 나랑 비슷한 또래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니 가끔은 저렇게 푼수 짓도 좀 하고 그래야 귀여운 맛도 있지.
“난 저러고 싶지 않네.”
“저런 건 어린 나이에 졸업해야지.”
커서도 그러면 아픈 기억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우리 오늘은 뭐해?”
여포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할 일이라고 해야 많지도 않았다. 병력의 재편과 부상자의 치료, 그리고 당장 수습해야 할 수춘성 내의 치안 문제뿐일까. 그나마도 조조가 내게 시간적 여유를 줬기에 내가 맡을 일도 없었다.
여포야 직위가 없으니 더더욱 그러하고.
물론 그 뒤로 슬쩍 밤에 찾아오지 않겠느냐며 유혹 비슷한 것을 하긴 했다만, 무미건조하게 밤이 외로울 것 같다고 해도 말이지. 게다가 아직 예주로 돌아간 것도 아니니까 그런 목적으로 들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단 손책을 만나야겠지.”
“그 계집애를? 왜?”
“슬슬 보내줘야지”
약속은 약속이니까. 물론 그 와중에 몇몇 의견도 있었지만, 서주에서의 진격하는 과정에서는 내가 전권을 잡고 있었다. 황제의 대리 장군이니 사실상 직급에서 차이는 날지언정 전장에서의 행사력은 조조와 동급이라던가.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어차피 아군도 손책을 비롯하여 손가의 군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으니 그냥 보내주자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손책 개인의 원한?
그런 게 있어서 어쩔 건데.
어차피 수춘 인근은 앞으로 여러 군벌이 노리는 전장이 될 것이고, 우리 또한 수춘성에 따로 관료를 파견할 테니 손책은 결국 본인들의 본거지인 장강 이남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결국 아군과의 거리는 한참 멀어진다.
우리도 양주를 공략할 처지가 아니니까.
그러니 여기서 좋게 보내주면 서로 나쁘지 않은 결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손책이 정말 멍청한 여자여서 이 이후에 예주를 공략한다면 얘기는 또 별개겠지만.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난 좀 찜찜한데.”
“조조도 동의했어. 적당한 관직 좀 던져주고 장강 이남에서 멋대로 살라고 하라던데. 우리도 양주 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손책을 아군 사람처럼 포장해서 그 주변에서 멋대로 싸우라고 말이야.”
“게다가 사실 조조도 잘 모르겠어.”
그건 걱정할 거 없다.
나도 아직 조조라는 여자를 전부 이해한 게 아니니까.
* * *
제갈량은 오늘도 멍하니 혼자 땅을 긋고 있었다.
손에 쥔 다섯 개의 조약돌. 소녀는 그 조약돌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돌을 얹는 식으로 항상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지면에 그려내고는 했다.
“량이, 여기 있었니?”
“응.”
슬쩍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유비에게 고개를 끄덕인 소녀는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지금 소녀가 그리고 있는 것은 연주, 예주와 서주, 양주, 그리고 기주.
연주와 예주는 조조의 것이니 크게 동그라미를 친다. 서주는 유비의 소유였기에 마찬가지로 동그라미. 그리고 수춘이 있는 회남과 장강 이남인 강남을 포함한 양주는 갈기갈기 선을 마구 그었다.
이쪽은 아직 하나로 뭉칠 기미가 없으니까.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그냥 상상임.”
중나라라는 거대 세력의 도전을 고작 두 달 만에 완벽히 깨부쉈다. 물론 조조군의 치중을 보아 장기적으로 양주까지 지배할 수도 없을뿐더러 북쪽으로는 여전히 원소와 공손찬이 버티고 있으니 이 이상 전선을 넓힐 수도 없을 터.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서주와 기주 일대를 포함한 하북, 그리고 서쪽의 낙양 일대와 관중이라는 적이 남는다.
조조는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유비는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이 이해하기 힘든 소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굉장한 재능을 가진 소녀.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로도 보였다.
“그러니? 어디 한 번 볼까.”
유비는 쪼그려 앉아 소녀가 그리는 작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근방을 포함하여 조조를 중심으로 한 지도가 그려진 것처럼도 보였다.
예전에는 당최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점점 제갈량이라는 소녀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살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제갈량은 오직 지면만 바라보며 조약돌로 땅을 긋고 있으니.
“그러면 이 언니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니?”
“당장은 할 게 없음.”
소녀는 담백하게 답했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제 양주에서의 전쟁도 끝났고, 조조는 이 전쟁 이후로 당분간 군사적인 움직임을 취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유비 또한 하북에서 벌어지는 두 강자의 대결을 지켜보며 내부를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 건 원소와 공손찬임.”
“사형이랑 원공? 그렇긴 하지만, 그 둘은 쉽게 결판낼 수 없을걸? 원공이 최근 천하에서 이름을 날린다고 해도 사형 또한 변경을 지키면서 육성한 군사력과 전략으로는 어디서 뒤질 사람이 아니니까.”
물론 원소는 주변 군벌을 포함하여 여러 세력과 관료, 명사를 비롯한 각 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력으로 들여다본다면 그렇게 해서 겨우 호각. 그만큼 공손찬이 쌓아온 것은 쉬이 꺾일 것이 아니었고, 그가 지금까지 돌았던 전쟁과 전공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언젠가는 결판이 날 것이고, 그 승자가 누가 됐건 결국 조조는 하북을 정복한 군주와 대립할 수밖에 없음.”
“원소와 조조는 죽마고우라고 들었는데.”
제갈량은 그 말에 무심히 돌을 얹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권력 앞에 친구란 없다고 배움.”
“……그도 그러네.”
잔인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어린아이 입에서도 나올 만큼 당연한 말일까. 이 천하가 난세인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도 권력을 눈앞에 두고 친구라는 단어만큼 무색하고 덧없는 것도 없었다.
알고 있지만, 입맛이 쓴 것도 사실.
“그렇게 되면 선택해야 함.”
소녀는 이윽고 땅바닥에 그린 큰 두 덩이의 원을 가리키며 고개를 들었다. 하북과 중원. 두 지역을 제패한 강자들을 의미하는 그것.
“하북의 원소임? 중원의 조조임?”
제갈량의 말에 유비는 살짝 멈칫했다.
아직 원소와 공손찬은 세기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근래에는 조금 잠잠해졌다지만 그 누가 모를까. 그것은 단지 폭풍 전에 찾아오는 고요함일 뿐.
이미 유주의 공손찬과 기주의 원소는 서로 군사력을 계속 비축하며 이어질 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전쟁의 승자는 아직 결판나지 않았지만, 제갈량은 그저 묵묵히 원소가 하북을 차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유비는 그 말에 공손찬의 이름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도 그렇게 될 것 같았으니까.
한 황실의 큰 어르신이자 유주의 권력자. 그러면서도 백성들과 이민족의 지지를 받던 유우를 하급자인 공손찬이 처형한 순간부터 그녀는 저 하북의 승자가 원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조를 지지한다면 이대로 조조에게 가면 그만임. 지금의 조조라면 받아줌. 확실. 관직도 크게 내릴 것임. 융숭히 대접할 듯.”
거기서 제갈량은 손을 뻗어 하북을 가리켰다.
“원소를 선택하면.”
거기까지 말한 소녀는 고개를 들어 유비와 시선을 마주했다. 소녀의 그 멍한 눈길에는 묘한 힘이 느껴졌고, 유비 또한 그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조조와 원소.
아직 미래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결국 하북과 중원이라는 대륙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두 땅을 점거한 군웅의 전쟁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였다.
공손찬은 이미 민심을 잃기 시작했으니 기세에 오른 원소를 이기려면 천명을, 모든 걸 찍어누를 정도의 압도적인 행운이 따라야만 가능할 터.
하여 유비에게 남은 길은 두 갈래밖에 없는 것처럼도 보였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는걸?”
“그럴 수 있음.”
아직 급한 건 아니니까.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었고, 당장 현시점에서 최강자라 하여도 미래란 아무도 예언할 수 없는 법. 당장 원소가 한복을 밀어내고 기주를 차지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으며, 그 공손찬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아직 서주는 힘이 부족했고 유비는 나약했다.
그러니 지금은 무엇 하나 선택하지 않겠다.
“언니는 조금만 더 지켜보려고. 우리 량이는 어떻게 생각하니? 언니가 우유부단해 보여? 아니면 조금 안일한 선택으로 보이려나.”
“나쁘지 않음.”
제갈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공손찬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 전쟁에서 조조에게 협력했기에 조조 또한 유비를 쉬이 건드릴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단지 한 가지.
“천하를 얻고 싶다면 원소를 선택하는 게 옮음. 무사와 안녕을 바란다면 조조를 선택하는 게 옮음. 그것만 이해하고 있으면 충분.”
유비는 그 말에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제갈량은 그 모습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유비는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정말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아이답지 않은 지혜와 통찰력이 있었다.
그런 아이를 상대하며 어찌 즐겁지 않을까.
“그렇겠네.”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의 회색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그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듯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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