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전쟁이 끝난 날 유비는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제법 직설적으로 말했다는 건데. 물론 유비가 대외적으로 한의 황족 출신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평소의 그녀라면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의를 드러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술에 취한 걸까. 아니면 분위기?
그것까진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러면 내 감사를 받아도 될 것 같은데.”
“네?”
“그야 난 한 황실이 오래 존속하길 바라니까.”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이라는 나라의 존속이었지 황족인 유씨들의 사정 따윈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비와 대립할 수 있을런가.
하지만 만약 그녀가 진정으로 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소속이 다르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한이라는 이름은 단지 이름에 그치지 않아. 난 그것을 거대한 규칙이자 체제라고 생각해. 한 번 혼란을 겪은 대륙에서 그 이름마저 지운다면 그 뒤에 벌어질 것은. 글쎄.”
아마 지금 날의 난세보다 더한 혼란이지 않을까.
나라의 이름을 바꿀 필요가 어디에 있지? 물론 조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는 조조가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리며 딱 거기에서 욕심을 멈춘다면 모든 게 좋아지리라 생각했다.
수백 년의 왕조였고, 통일 제국이었다.
그 이름은 이미 민초의 뿌리이자 그것이 드리우는 대지와도 같은 것. 저마다가 한이라는 이름에 소속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정말로 조조가 이후 원소를 꺾고 주변에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모두 굴복시킨 이후에 한이라는 이름을 바꿔 본인이 황제에 오르겠다고 하면 난 결사반대를 외칠 용의가 있었다.
개인의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기존의 토대 그대로 내부에서 새로이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리고 그 한이라는 대제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릴 수 있을 텐데, 그것에도 성이 차지 않아 황제까지 되겠노라고 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말을 제게 하셔도 괜찮으세요?”
“글쎄. 어차피 조조 본인이 이 자리에 있더라도 똑같이 말했을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본인 앞에서도 한을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나도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아. 당신뿐일까. 주변 모두가, 아마 조조군 내에서도 은연중에 말이 돌고는 있을 거야.”
황제의 권위마저 뛰어넘은 절대적인 권력자.
과거 동탁이 그러했고, 그 이전에 듣기로는 십상시가 그러했다고. 그러니 지금 조조의 입지와 상황을 봐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을 건 알고 있었다.
사실 나조차도 조조를 맹신하지 않는데, 다른 이에게 어찌 조조를 믿으라고 강요하겠나. 물론 개인적으로 조조가 황제의 자리까지 탐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모를 일이었다.
유비와 조조의 갈등이 비단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황족의 이름을 내건 유비이니만큼 그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었다.
“중랑장님.”
“만약 당신이 조조를 믿지 못한다면, ……뭐 그럴 수 있지. 서주에서의 일이 당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적어도 난 한 황실의 근절까지 바라지는 않아.”
그러니까 조조를 못 믿으면 날 믿어라.
나는 한이라는 제국의 멸망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만약 유비 또한 대륙의 지배자 자리에 탐내는 것이 아닌 한 황실의 유지를 바란다면 우리는 충분히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서도 살짝 의문이 들었다.
왜 이 여자한테 이런 걸 전부 말하고 있는 걸까. 왜 이 여자와 적대하고 싶지 않은 걸까. 개인적인 호감? 분명 감사함도 있었고 같은 전장을 헤쳐나오며 인간적인 호감이 들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매력적인 여인이지만 이성으로서의 호감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그러면 나는 왜 구구절절 그녀의 말에 항변하고 있는 걸까.
“그러니 난…….”
그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유비 또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그러나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 떠오르질 않았다. 분명 유비와 적대하고 싶지 않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왜일까. 잠시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는데.
“저는 조공을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잠시 말문을 닫으니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거였다. 이 미소. 나는 예전부터 왠지 이것을 볼 때마다 살짝 꺼림칙한 무언가를 느꼈다. 왜일까. 분명 아름다운 미인인데, 왜 이렇게 등골에 오싹한 감각이 느껴지는 걸까.
“한을 위해서. 그리고 백성을 위해서. 저는 그 정도로 충분해요. 그 과정에서 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래.”
아.
그런 거였구나.
“아무튼, 우리는 황제 폐하를 억압하거나 할 생각은 없어. 만약 조조를 믿지 못하겠으면 날 믿어. 내가 고작 무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이대로 평화가 찾아와주는 미래만을 바랄 따름이니까.”
그녀의 미소를 보며 드디어 깨달았다.
나는 유비와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려움. 나는 유비라는 사람에 대해 전부 파악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찾아온 미지의 공포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단언컨대 저 여자는 능력 있는 여성이었다.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어, 그저 불명확한 안개와도 비슷한 감각이 경각심이라는 형태로 느껴질 뿐.
지금의 유비는 바라는 것을 이룰 힘과 명분도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현 조조군에 비하면 태양과 반딧불과도 같이 작고 의미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건 충분히 제 능력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근거도 없는 내 개인적인 감상이었지만, 그래도 난 유비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될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중랑장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조금 안심이네요. 황제 폐하는 아직 어리시고, 주변에서는 여전히 대장군을 향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 테니까요.”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과거 악연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대장군께서. 조공께서 이 한나라를 위해 힘써주신다면 이 유비 또한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생긴 것과는 달리 살짝 굳은살이 박인 손. 그녀 또한 무장으로 전선을 돌았다고 했으니, 이 손의 굳은살은 지금까지 그녀가 전장을 돌며 무궁히도 노력했다는 증거겠지.
“그러면 저는 중랑장님만, 호세라는 사람만 믿을게요?”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해맑게 웃는 모습. 웃는 모습이 아름답기로는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그 다른 이들에 비해 이질적으로 긴 귀마저도 그녀의 개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
경직된 분위기가 돌연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제 그녀는 다시 서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당분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 유비라는 인간은 내게 꽤 많은 감상을 남겼다.
감사도 했다. 호감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믿으셔. 난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만 할 거니까.”
“그거면 충분해요.”
그녀는 맞잡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 전호라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도 제 개인의 생각이 있고, 감상이 있고, 바라는 것도 있어요. 그렇지만 대신 이뤄준다면 참아볼게요.”
참아본다.
그녀는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군은 잠재적으로 하북의 원소를 주적으로 삼았다. 언젠가는 분명 그 인간 같지 않은 남자와 대규모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러면 유비는 두 가지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조조에게 협조하던가, 죽던가.
서주는 연주, 예주와 아주 밀접한 거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규모 전쟁에서 아군인지 적인지 불명확한 이를 가만히 놔둘 순 없었고, 그 과정에서 조조는 아마 유비를 압박하려 할 것은 명백했다.
“난 당신이 우리 편이길 바라.”
유비, 당신과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 내면을 전부 파악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생각이 달라도 바라는 바가 비슷하다면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설령 아군이 될 수 없더라도.
그래도 나는 유비를 적으로 삼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들어가실까요? 바람이 춥네요.”
유비는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 * *
연회장에 돌아갔더니 한창 소란이 일고 있었다.
“아하하!! 이 꼬맹이 떠드는 것 좀 봐!”
“아우으, 머, 머가요. 작꾸 저햔테 애라구 하디 말랬자나오.”
아이고 두야.
애한테 적당히 마시게 하랬더니 아예 인사불성으로 만들었나. 그러면서 그걸 보고 웃으니 어이가 없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어, 주인이 왔어? 이거 봐.”
“술 적당히 마시게 하라니까.”
“몇 잔 안 먹였어. 진짜라니까?”
몇 잔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하여간 진짜. 괜히 변명하는 여포를 지나 사마의에게 다가갔는데, 이 인사불성의 꼬맹이는 날 보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양손을 뻗었다.
“아저씨이이….”
“그래, 그래. 네 아저씨 여깄다.”
그나저나 술에 취해서도 아저씨라고 부르네. 좀 오빠라고 불러주면 어디 덧나나? 이건 좀 씁쓸한데.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나, 나 잇자나효…….”
“알았다, 알았어.”
자리에 앉으니 대뜸 양팔을 내 목에 얽으며 엉겨 붙는 사마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여포가 그 모습을 보자마자 탄성을 내며 내 근처로 다가오는데.
“아, 주, 주인아. 그, 나도 좀 취한 거 같달까?”
“조용히 해.”
뭘 잘했다고.
그러니 또 금방 시무룩해져서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들이켠다. 그러게 애 술 작작 먹이랬더니 말이야. 사마의는 여전히 내 품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이 간질간질했다.
“나, 나 애 아닌데. 아저씨도 알죠오?”
“알어, 알어. 너 애 아냐.”
“거짓말쟁이.”
아니 뭐 어쩌라고.
애 아니라기에 아니라고 해줘도 뭐래. 이래서 술주정뱅이를 상대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진짜 애한테 술 작작 먹이라니까는 왜 이 사달을 내놔.
눈을 부릅뜨니 여포가 시선을 피했다.
하이고.
“매, 맨냘 나 애 취급하고. 예전에 내가 아니라구요. 알아여? 나, 가슴도 이러케 나왔고, 키도 이렇게 컸다구요. 알아요?”
“알아, 알아.”
“알긴 멀 알아여!”
아, 이런 제기랄.
이 술주정뱅이 꼬맹이는 내 목을 두르고 끌어안은 상태로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는데, 순간 소리를 대뜸 지르니 고막까지 저렸다.
“아무것두 몰라. 내가 먼 생각인지….”
“사마의? 야, 의아야? 자냐?”
슬쩍 시선을 내리니 내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새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아직 애는 애라서 그런지 잘 때만큼은 천사 같은 얼굴이긴 하네.
내 목덜미에 흐르는 침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 나는 진짜 몇 잔 안 먹였어? 진짜야. 한 세잔 먹였나. 애가 갑자기 상태 이상해지더니 막 연거푸 들이켤 줄 몰랐다고.”
“……어휴. 알았어.”
그래도 뭐, 이런 경험도 썩 나쁜 건 아니겠지.
한 가지 문제라면 깬 다음에 사마의가 이 일을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이 꼬맹이 평소 성격으로는 아마 이불을 미친 듯이 걷어차지 않을까 싶다만.
부디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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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는 흑역사를 1적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