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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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사망 이후 그의 병력을 뿔뿔이 흩어지다시피 했고, 저항할 병력을 잃은 수춘은 그대로 성문을 열고 항복. 조조는 정말 예고했던 대로 2개월 만에 수춘이라는 거성을 제압하고 역적 원술의 목을 쳤다.
“수고했다, 중랑장.”
“제 공이 아닙니다. 분투해준 이들이 있고, 그것을 진언한 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원술의 수급은 제 공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술의 목을 가져온 것은 전호의 수하. 거기에 서주의 관우까지 함께하였으니, 전호는 구태여 그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마의의 진언이었고, 행한 것은 여포와 장료, 관우로 한 세 사람이었으니까.
“그 문제는 다음에 논하지.”
조조는 그 말에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단둘이 있었더라면 왜 그리 미련하게 구느냐고 따졌겠지만, 지금은 이번 원정에 참전한 모든 제장이 함께한 자리.
하여 그녀는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을 향했다.
“그대들도 수고 많았다. 허도로 돌아가면 본격적인 논공행상의 자리를 열 것이지만, 그 전에 본인을 믿고 따라와 준 그대들의 노고와 열정, 무엇보다 그 헌신에 감사하고 싶다.”
하후돈은 안타깝게 이 자리에 끼지 못했다.
왼쪽 눈에 상처를 입은 이후로도 전선에서 분투하며 곳곳에 상처를 입어 의무실에 박혀있는 상황. 그렇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지휘관급 장수들이 모여있는 자리였다.
서주의 인사들 또한.
유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눈을 감았다.
이걸로 당분간 조조는 탄탄대로를 걸을 터. 이것이 진정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황제를 참칭한 원술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번 원정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사실. 그렇기에 유비는 살짝 눈을 감으며 양손을 포갰다.
그러는 사이에도 조조의 말을 계속 이어졌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감사한다. 한 황실과 본인을 위해 분투해준 그대들이 누구보다 자랑스럽다. 역적의 본거지를 떨구고 그 목을 쳐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그녀는 잔을 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 하루는 연회다. 허도로 돌아가는 것은 그 이후가 되겠지. 그러니 그대들은 오늘의 승리를 기뻐하며 이 하루 내내 마음껏 술을 들이켜도 좋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잔.
생전 원술이 사용했다던 잔을 든 조조는 그 안에 원술이 좋아했다던 꿀물을 한가득 따른 것인데, 그녀 바로 앞에 놓인 원술의 목을 바라보며 픽 웃었다.
“역적을 토벌한 경사스러운 자리다.”
제장들은 모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황실을 위하여.”
모두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잔을 들었고, 이후로는 잔치가 시작되었다. 하나둘 모여 술을 따르고 오늘의 승리를 축하한다. 그 자리에서 조조만이 상석에 앉아 눈앞에 놓인 원술의 목을 바라봤다.
“원술. 그대와 본인도 참 지겹게 엮이었지.”
차마 눈도 감지 못했던가.
그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오랜 악연이었다. 낙양에서부터 연주에 있었을 때,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와 자신 사이에 몇 번의 전투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장병이 희생했던가.
“미련한 남자.”
그녀는 그 목 앞에 꿀물 담긴 술잔을 놓았다.
호감이라고는 전혀 없던 사이였다. 그러나 황제를 자처했던 이라면 마지막에 저 좋아하는 것 정도 바쳐주는 것은 어렵지도 않은 일. 예전에 자신을 보고 꿀물이나 떠오라며 시종 취급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부디 가서는 그 좋아하는 꿀물 실컷 들이키길 바란다.”
지독한 악연.
그러나 그 과정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었다.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고 조조 생에 유일하게 열등감을 느꼈던 시절이었지만, 그 찰나의 시간을 향해 잔을 들지 못할 것도 없었으니.
그녀는 제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는 원술의 앞에 놓인 꿀물 담긴 잔과 부딪쳤다. 잔끼리 마주하여 청량한 소리가 울렸을 즘.
“건배.”
조조는 입이 찢어지라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 * *
어우, 이거 술이 왜 이렇게 떫어.
“어욱 씹. 이거 좋은 술 맞아?”
“주인이가 맛을 모르네.”
정작 여포는 시원하게 들이켜고 있는데, 정작 내 입맛에는 영 맞질 않았다. 원술의 창고에서 꺼내온 것들이라고 하니 분명 고급일 텐데 뭐 이렇게 쓰고 떫은지? 술이라는 건 원래 향이 돋궈져야 하는 거 아닌가?
“적당히 마셔요.”
“어어? 꼬맹이가 뭔 소리야. 당연히 이런 날에는 죽어라 푸는 게 예의 아니냐? 주인이도 더 마셔, 마셔! 이런 술 어디서 쉽게 못 마시는 거거든?”
상반된 의견.
그렇지만 이 술은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지 않았다. 장료나 다른 이들은 시원하게 들이켜는데, 이 떫고 맛대가리 없는 술을 어떻게 마시는 거지? 혹시 이 술만 이런 거 아냐?
“상처 덧나요. 무슨 술이야, 술은. 환자는 그냥 얌전히 차나 마시세요. 하여간, 여포랑 붙여놓으면 항상 이런다니까.”
“뭐래. 환자라고 좋은 거 안 먹고 끙끙거리면 오히려 탈 나거든? 네가 아직 애라서 이 맛을 모르는 거 같은데, 조금 더 커서 와라 꼬맹아.”
“……제가 꼬맹이라고 하지 말랬죠.”
사마의가 싸늘하게 반응하니 여포도 씩 웃었다.
“주인이도 그렇게 부르는데? 그리고 너 나이면 꼬맹이 맞지 뭘 그렇게 따져? 아니면 뭐야. 이거 한 잔 받아볼래?”
도발하는 듯한 시선으로 술잔을 내민다.
술 하나 마시지 못하면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다며 골리는 여포와 이를 벅벅 가는 사마의. 뭐, 이렇게라도 전쟁의 긴장감을 푼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으나….
“좋아요. 한 번 해보자 이거에요.”
“야야, 애 술 마시게 하지 마라.”
만류하려 했는데 오히려 사마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애 아니거든요.”
“아니 진짜 뭐라는 거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애 맞거든.
여포도 실실 웃으며 술잔을 내밀고, 또 사마의는 좋다고 그걸 받는다. 뭐, 나도 저 나이 때 술 안 마신 건 아닌데, 그래도 좀.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들 하라 그래.
“적당히만 먹여. 알겠어?”
“당연하지!”
좋다고 웃으면서 뭐가 당연해.
뭐, 사마의가 애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일단 이쪽은 당분간 여포와 사마의가 서로 얽히며 떠들 것 같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삼이는… 저쪽에서 장료, 이전이랑 따로 마시고 있네. 그러면 누구 사람 없나?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주변을 돌아봤다.
사실 조조군 내에서 친한 사람이 그리 많다고는 못 하겠는데, 그나마 아는 사람들도 저마다 무리를 짓고 있어 차마 끼어들지 못하겠다.
그냥 잠시 연회장을 빠져나와 바깥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와 저 멀리 보이는 수춘성 내부의 모습을 바라본다. 확실히 거성은 거성이라고 많은 건물과 시설, 그리고 여전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분주했다.
전쟁에서 함락당한 성이니 이주하려는 백성들도 있겠지. 어차피 아군은 수춘까지 영향권에 포함할 여유가 없어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을.
그러는 와중에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한가하세요?”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기에 고개를 돌렸는데 유비가 싱글거리며 술잔을 들고 서 있었다. 얼굴도 살짝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게 조금 마시긴 한 것 같은데.
“서주목은?”
“저는 잠시 바람이라도 쐬러 나왔죠.”
그런가.
사실 서주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도 있었는데, 그쪽은 그쪽끼리 알아서 즐기겠거니 하고 확인하지 않았었다. 내가 가봐야 솔직히 조조군 소속이 하나 끼어드는 것이기도 하고. 또 솔직히 소속이 다르다지만 상급자가 끼어들어 재미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여기서 유비를 만나 다행이기도 했다.
추후 논공행상을 진행한다지만 타 소속인 유비군에게 돌아가야 얼마나 돌아갈까. 이름뿐인 관직과 전쟁에서 소모한 물자의 반환 정도가 아니겠나.
“우연이네. 나도 마침 그랬거든.”
슬쩍 웃으며 고개를 드니 유비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둬 수춘성의 전경을 바라봤다. 연회장은 수춘성의 관사에서 치러졌는데, 관사 자체가 성내 고지대에 자리했기에 이렇게 서기만 해도 너른 수춘의 모습을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굉장히 넓고 비옥한 토지.
그러나 그 내막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주인이 바뀌었으니 응당 당연한 일이겠지. 이 이후에 조정에서 별도로 사람을 보내겠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이 수춘을 잘 다스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사령관님, 고생 많으셨어요.”
그녀의 말에 잠시 답하지 않았다.
고생이라면 했지. 손책을 비롯하여 손가의 군과 교전하는 건 제법 지독한 일이었다. 확실히 손견의 과거 부하인 것은 있는 걸까. 주인이 달라졌어도 그들은 손가의 병력이었고, 그 딸마저도 녹록한 상대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아직 아군 수중에 있다지만, 이 전쟁도 끝났으니 조만간 해방해야 할 일.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유비의 도움을 적잖게 받았다.
“서주목이야말로 고생 많았지. 노고에 대한 치하는 저번에 했으니까 제쳐놓더라도 제법 고마운 점이 많아.”
“다 한나라를 위해 한 일인걸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슬쩍 시선을 거뒀다.
“황건적의 난에 군사를 모았을 때부터. 아니면 유씨의 성을 받아 태어났을 때일까요. 어느 때라도 좋죠. 사실 저도 그 구분은 안가거든요.”
허공으로 손을 뻗는다.
유비는 무엇을 향해 손을 뻗었을까.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내막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한 황실의 자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품고 있어요. 그게 주어진 것이건, 아니면 제 개인적인 이상이건. 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이름이야말로 제 근간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한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그녀는 허공 너머 저 하늘로 손을 뻗으며 그리 말했다. 그러면 그 말의 뜻은 조조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한을 위해 싸웠노라고 이해하면 될까.
“그러니까.”
뻗었던 손을 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비취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였는데, 그것에 어떤 감정이 서려 있는지 차마 읽을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한을 위해 싸웠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 과정에서 중랑장과는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거기까지 말한 유비는 살짝 쓰게 웃었다.
“그러니 제게 감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역시 유비는 조조를 믿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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