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93화 (293/343)

29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수춘 공방전 한 번의 승부수.

조조의 기습적인 전면전이 점점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 점에 집중하여 나머지를 전부 버린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승리하기 위한 도박. 길게 늘어서서 대열을 정비하던 원술군에게는 그것이 효과적으로 먹히기 시작했다.

“폐, 폐하!!”

“이 얼간이들이! 무얼 하느냐!! 좌군과 우군에 바로 사람을 보내라! 중앙에 뚫리면 휘말리지 않겠느냐! 이, 죄다 쓸모없기 짝이 없구나!”

오래 버티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점점 힘을 주어 밀어내는 움직임에는 천천히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병력을 잔뜩 밀어 넣어 밀집대형으로 편재했음에도 그것을 천천히 밀고 나아가는 기병. 그 선두에는 악귀나찰로 화한 하후돈이 직접 군을 이끌고 있었다.

“궁수는 다 무엇을 하느냐!!”

“하오나 폐하.”

기병은 현재 아군 무리에 섞여 있었다. 노린다면야 어느 정도 기병의 머리 위로 날릴 수야 있겠지만, 아군 역시 상당한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대로 밀리자는 소리냐? 곧 있으면 장훈이 있는 곳으로 당도할 것이고, 그가 죽으면 다음은 나다! 이놈들, 황제를 죽일 셈이더냐!!”

“……하옵시면.”

“궁수로 저들의 발이라도 묶어라. 병력의 수는 아군이 우위에 섰으니 이번 한 번만 막아내면 아군의 승리임을 어찌 몰라!!”

기병을 막아 세울 수만 있다면 아군의 승리.

양훈 또한 그것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군까지 휩쓸릴 사격으로 얻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칫 이것이 자충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지만 원술은 한 번 정했으면 멈추는 법이 없었으니.

“궁수를 대동해라.”

“예, 폐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후방에 대기하던 궁수들이 전진했다. 목표는 아군 진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기병. 특히 그 중앙에 있을 적장 하후돈의 목.

여기서 원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인간은 도구가 아니었다.

화살이 빗발치며 날아든다. 기병은 물론이요, 그걸 가로막으려던 보병들의 머리 위에까지 날아든 그것은 피아의 구분 없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다.

“뭐, 뭐야!! 화살…!!”

“도, 도망쳐!!”

순식간에 전장 한복판에 지옥도가 펼쳐진다.

아군 진영에서부터 날아온 화살에 원술군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그 화살 세례를 온몸으로 맞아야 할 조조군의 기병 또한 무사하지 못했으니.

“자, 장군!!”

악진이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다가도 놀라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방패를 들며 버티던 하후돈. 그러나 가끔 바람을 잘 타고 각도 좋게 날아든 화살은 예리한 촉 그대로 방패를 꿰뚫기도 하였으니.

“뭣들 하느냐! 장군을 호위하라!!”

머리 부근에 정통으로 화살을 맞았다.

그가 그 충격에 몸을 젖히며 겨우 낙마만을 피했을 때, 악진은 방패를 치켜세우며 재차 말을 몰아 그의 주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원술은 쾌재를 불렀다.

“됐구나!”

적장이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광경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황제의 앞길을 가로막는 무뢰배에 저 정도의 벌이 당연한 것. 전장에서 개처럼 죽는 것이 딱 어울리노라고 생각하며 화살 세례를 멈췄다.

“자, 적장이 맞았다. 뭣들 하느냐?”

그는 지휘봉을 들어 포위할 것을 명하려던 찰나.

아군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화살에 의해 혼비백산하였다고 해도 재차 돌격 명령을 이행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점차 뒷걸음질을 치며 부상한 적장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전방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던 그때.

“이 하후돈!!”

저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우렁찬 외침이 원술의 귀에까지 닿았다. 분명 쓰러지기 직전으로 보이던 적장은 상체를 꼿꼿이 들고 주변을 호령한다.

* * *

하후돈 근처에 도착한 악진이 숨을 삼켰다.

다행히도 화살은 방패에 박혀, 신체에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그것은 불행 중 천만다행. 그렇지만 꽂힌 위치를 보고서도 그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군, 정신이 드십니까?”

“……눈가가 뜨겁구나.”

악진은 그 말에 답할 수 없었다.

방패를 꿰뚫은 화살은 정확히 하후돈의 왼쪽 눈에 박혔다. 만약 방패에서 조금 더 뚫고 들어갔더라면 죽은 목숨이었다. 그나마 정신이 있을 정도로 그친 것이 다행일까. 그렇지만 무장의 한쪽 눈이 뭉개진 것이 어찌 다행일까.

“자, 장군. 우선 화살을….”

하후돈은 손을 살짝 올려 화끈거리는 얼굴을 어루만졌다. 천천히. 그렇게 손을 뻗어 눈가에 닿은 시점이 되고 나서야 제 눈에 화살이 박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크, 흐으…. 그래도 죽진 않았군.”

“장군! 일단 물러나시지요.”

“불가하다.”

이 전장에서 누구 하나 뒷걸음질 칠 수 없었다.

조조의 명운을 건 전쟁이었다. 나의 소중한 여동생. 그리고 군주. 그런 이를 뒤로하고 어찌 이깟 상처로 물러날까. 눈이 뭉개졌다고? 그래도 아직 팔다리는 멀쩡했다. 창을 든 손이 잘린 것도, 대지를 내디딜 두 다리가 뭉개진 것도 아니었다.

싸울 수 있었다.

“악진, 긴말은 안 하겠다. 자리를 지켜라.”

“장군!! 진짜 죽습니다!”

“죽음 따위야 사소한 것.”

영광을. 하여 승리를.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내던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목숨보다 더 값진 것. 하후돈이라는 이름 하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조조의 발걸음이 멈출 일도 없겠으나, 이 전쟁이 패한다면 조조의 발걸음은 그걸로 끝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일목요연.

하후돈은 자신을 만류하는 악진을 물리고 상체를 들었다. 어느덧 적의 화살도 멈추었고, 주변에는 묘한 정적이 맴돌았다.

“이딴, 상처로오오오오오!!”

뿌직거리는 소리.

그는 손을 뻗어 화살대를 잡고 그대로 뽑아내려 하였다. 눈이 뭉개졌을 뿐 아직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었기에 그가 힘을 줄 때마다 살이 저며지는 소리와 무언가가 끊기는 감각이 동시에 느껴졌다.

“크, 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른다.

고통에 의한 신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이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묘한 쾌락을 느꼈다. 아무렴, 전장이란 본디 이런 것이었다. 귀천을 망라하여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 나가는 곳이 전장.

그 전장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조조의 이름 아래 다시금 창을 들 수 있으니 어찌 슬퍼할까.

하여 목소리를 높여 남은 오른쪽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적병 또한 갑작스러운 아군의 사격에 혼비백산하여 정신이 없는 상황.

그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이 하후돈!!”

손에 쥔 것은 제 눈알이 박힌 화살.

“부모에게 받은 정과 피륙을 어찌 땅에 버리겠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눈알이 박힌 화살촉을 입에 넣었고, 그대로 이로 긁어 이제는 살점이 된 그것을 입에 물었다. 씹으니 질겅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는데 그건 딱히 좋은 식감까진 아니었다.

이윽고 제 눈알을 씹어 삼킨 하후돈이 창을 든다.

“싸워라!!”

주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어안이 벙벙해진 와중에 홀로 소리쳤다. 누구 하나 감히 하후돈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입가에 피 칠갑을 하고는 남은 오른쪽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적의 화살은 내게 터럭만큼의 상처도 내지 못했다. 나는 죽지 않았고, 이런 남자가 너희의 장군이다.”

천천히 말을 몰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적.

“내 뒤만을 바라보거라. 물러서지 마라. 너희의 앞에는 언제나 하후 원양이 앞서고 있으니, 생각 따위는 불필요.”

창을 앞으로 내걸고는 이어 소리친다.

“전군, 돌겨어어어어억!!”

말에 박차를 가하라.

함성을 내질러라. 하여 가로막는 적을 모두 분쇄하라.

하후돈은 가장 선두에 서서 재차 말과 함께 내달리기 시작했다. 휘하 기마 또한 그 모습에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하는 것에 비해 원술군은 방금 그 모습으로 전의마저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원술의 실책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도구도 아니었고 기계도 아니었다.

아군에 의해 주변 동료가, 그리고 나 자신도 죽을 뻔했는데 다시 검과 창을 들고 내달릴 용사는 적었다. 안 그래도 위축되고 증오와 분노, 들끓는 생존 욕구로 몸이 굳어버린 상황.

그런 와중에 인간 같지 않은 적장의 모습까지.

모두가 전의를 상실하기에는 충분했다.

“시, 시발!! 난 못 싸워!!”

한 병사가 검을 내던지고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

한 명이 도망치기 시작하니 그 주변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이들마저 저마다 후방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설사 그 광경을 보지 못한 병사라도 전의를 상실한 와중에 도망치는 이들의 분위기에 휩쓸리기에는 충분.

하여 전쟁이란 바로 기세였다.

패전이라는 기류가, 도망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은 삽시간에 군대 전체에 감염된다. 한 번 꺾이기 시작한 사기와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화재와도 같으니.

대열은 무너졌고, 후방에서 버티고 있던 병력과 전방에서 도망쳐오는 병력이 섞이며 원술군의 중앙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열조차 갖추지 못한 보병은 기병을 당해낼 수 없는 것.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원술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을 이었다.

한순간에 대열이 무너지고 아군 병력은 패잔병만도 못한 몰골로 섞여 기병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 기병의 뒤를 잇는 조조군의 보병 또한 열을 지키며 빠르게 기병의 뒤를 따라 잔병을 제압한다.

그의 머릿속에 패전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아니!! 아니다! 아직 아군은 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뒤집힌 지 오래. 원술의 희망과는 별개로 기병은 압도적인 힘으로 혼란한 원술의 군영을 짓밟으며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폐하! 우선 퇴각하셔야 합니다!”

양홍은 그의 팔을 붙잡고 거듭 읍소했다.

“수춘은 거성입니다. 저희가 한 번 패했다고 해서 그 거성이 쉬이 떨어질 리가 없사옵니다! 그러니 우선 퇴각하시어 정비하시지요!”

“짐에게 물러나라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애써 고개를 가로젓고는 이를 꽉 깨물었다. 아직 패하지 않았다. 양 측면에 존재하는 군도 있었고, 한 번 적이 기세를 탔다 하여 뒤집을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원술은 바보는 아니었다. 그간 여러 전장을 돌아보았고, 그사이에 배운 것도 많았다. 원술이라고 어찌 모를까. 이미 전열 전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으니 설사 양 측면의 군이 회군한다고 해도 적이 짓쳐들어오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미 패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지만 원술은 계속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에 쥔 지휘봉을 휘두르며 벌벌 떨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쌓아 올렸는데.

저 병력 하나하나에 들인 돈이 얼마던가. 이 병력은 예주와 연주, 이윽고 하북에까지 당도하기 위해 가문의 사재까지 털어서 모은 병력이었다.

“우선은 사셔야 합니다!”

“이, 이렇게…?”

원술은 허망하게 전장을 바라보았다.

한 번 기세가 넘어간 전장은 그 이후 학살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말발굽에 짓밟히는 병력과 창에 꿰인 병사. 하물며 서로 도망치는 와중에 밟혀 죽는 병사의 모습까지.

아비규환.

이미 전세를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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