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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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전에서 밀렸어도 여전히 병력 자체는 원술에게 우위가 있었고, 그는 그 수적 우위를 십분 살리고자 군을 넓게 포진하여 천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는 조조는 중앙을 두껍게 하여 양 측면의 군단을 살짝 뒤로 물린 추행의 형태로 포진하여 대치.
각 군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 결판이 쉬이 날 일도 없었기에 우선 탐색전.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아군의 대열을 유지하는 선에서 움직이는 게 보편전인 대규모 전쟁에서의 공식이었다.
“전열은 장훈인가.”
“대장군의 기를 달고 있으니 그게 맞겠죠.”
한의 대장군 조조.
중의 대장군 장훈.
조조는 이 상황이 못내 우스웠다. 장훈이라는 이를 빠삭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세간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무관 하나가 대장군이라? 세상이 그걸 인정하겠는가.
결국, 원술의 참칭은 시작부터 잘못되어있었다.
“전선을 전진시킨다.”
적은 전방위적으로 대열을 넓게 펼치고 전진하고 있었다. 여기서 조조는 구태여 맞대응하는 대신 중앙을 돌출시키며 양 측면의 군으로 그것을 보좌하고자 했다.
“그러면 포위당할 수도 있어요.”
“한 번이다.”
“네?”
그녀는 애당초 이 전장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대회전을 빠르게 끝내려면 어차피 통념에서 멀어져야 했다. 기본적으로 병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쟁은 길어지기 마련. 그렇지만 현 조조군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병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보급과 물자. 이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았다. 그러니 기본적인 상식을 깨고 단번에 승리로 연결지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적이 안일하게 대처한 초전에 끝을 내야 했다.
“하후돈도 앞으로 전진시키도록.”
“예? 하지만 하후돈 장군은….”
“안다.”
하후돈을 필두로 하여 조조군에서 내로라하는 무장들을 배치하여 맡긴 기병의 총원이 오천. 그들을 전선에 잘못 내보냈다가 적과 아군 사이에 낀다면 그보다 더한 참사도 없었다.
“이대로 적 정면으로 꿰뚫을 생각이다.”
그 말에 진궁이 뭐라 하려던 찰나.
“좋을 것 같습니다.”
진궁 반대편에서 전장을 바라보던 노년의 책사, 정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조의 의견에 찬동했다.
“정 교위.”
“저는 찬성입니다. 어중간하게 깨부숴 적에게 틈을 주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저들이 한 번 수춘에 틀어박히면 아군의 필패. 그러면 한 번 시원하게 찢어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진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뜸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차피 이 전쟁은 도박을 걸 수밖에 없는 전장이었다. 완벽하고 깔끔한 승리 따위는 불필요. 처절하게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그 앞에 설령 피폐만이 남더라도 지금은 도전해야만 한다고.
조조의 상황도 넉넉하지 않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마침 적이 딱 아군을 포위하겠다고 군을 넓혔습니다. 수적 우위를 살리겠다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아군에게 딱 적절합니다.”
“본인 또한 그리 생각한다.”
정욱의 말을 받은 조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 어차피 이 전장은 오래 끌 수 없었다. 전초전에서 적의 성향은 보았고, 이 전장에서 적이 채택한 전술 또한 장기전을 염두에 둔 전술. 그렇다면 아군이 그것에 호응해야 할 필요도 없었으니.
이대로 정면돌파로 찢어발긴다.
적이 수춘으로 다시 회군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 이대로 적 중앙을 돌파할 수 있다면 양 측면에 배치된 군을 벌리면서 각 군을 고립시키겠다.
진궁은 그 말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저도 단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적의 상세를 아는 것도 아닌데, 이대로 기병부터 내세웠다가 자칫 전멸이라도 당한다면 끝장이에요.”
너무 일을 서두르다가는 그르칠 확률이 높다.
전면전으로는 아군이 패할 리가 없었다. 그건 진궁 또한 동의했지만, 반대로 시간에 쫓겨 급하게 군을 움직인다면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전장이라는 곳이었다.
혼란이 가중될수록 변수도 늘어난다.
아직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정석적으로 움직여 상대의 면면을 살피고, 또 그에 맞는 전술을 획책하여 가장 최적의 상황을 준비한 뒤에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진궁의 의문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의견 또한 옳다.”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드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넓게 포진된 원술의 군. 전진하고는 있지만, 당장에라도 전투에 돌입할 양상은 아니었다. 아마 그들 또한 갑작스레 총력전이 벌어질 것을 상정하지 않고 상식적인 방식에서의 포진을 준비했을 터.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건 적 또한 그리 생각하겠지.”
그렇다면 그 의표를 찌른다.
판단과 행동은 빠르게 가져간다. 그건 그동안 조조가 숱한 전장에서 익힌 필승법이었으며, 상대가 미처 대응하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그녀가 특기로 하는 전술이었다.
우선 군을 빠르게 몰아쳐 부딪힌다.
그 뒤의 양상은 상황을 보아가며 즉석에서 대응하면 그만이다. 대다수는 그것에 곤란을 겪지만,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전술도 없었다.
“본인은 오늘 승부를 보겠다.”
“……그것이 의향이시라면.”
진궁 또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면 하후돈에게도 신호를 보내라.”
후방에 돌렸던 기병 총력을 최전방에 세운다. 그리고 그 뒤를 중앙의 전열에서 보병을 이끌 조인이 받친다. 하후돈이라면 부대를 이끌며 그 기세를 잘 살릴 수 있을 것이고, 조인이 그 뒤를 받친다면 뒤가 불안할 일도 없겠지.
하여 조조는 거기에 한 가지 더.
“그리고 본인도 직접 나서지.”
“예?”
진궁은 의문을, 정욱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무얼 놀라지? 이 본대의 병력이라고 놀릴 여유는 없다.”
하후돈과 중앙의 본대를 쐐기로 하여 적 중앙을 꿰뚫고 양 측면에 배치된 하후연과 전호의 군은 넓게 벌리며 적을 헤집어야 했다.
“측면의 군을 쓸 수 없다면 중앙 본대의 모든 총력을 동원해야 하는 전장이다.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설마 이 대규모 전장에서 본인만이 손가락 빨고 있으라는 뜻은 아니겠지?”
무모하다.
그렇지만 이 본대, 더 나아가 조조군 내에서 조조 이상의 지휘관은 없다. 그걸 알고 있기에 진궁과 정욱 또한 별달리 반박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군의 쌍두마차라 불리었던 조인과 진소연이라고 감히 조조에게 비할 수 있을까. 그녀의 생애에 대체 몇 번의 전장이 있었으며 그 전장에서 그녀가 어떤 전공을 거두었던가.
“본인을 너무 무능하게 보지 말도록.”
그녀는 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봉을 쥐었다.
“기병이 최전방에 서는 즉시 전속력으로 진군한다. 양 측면의 군에게도 사람을 보내고, 그들은 본대와 열을 맞춰 진군토록 하라.”
조조군 전체를 거대한 쐐기로 삼는다.
단순하지만 정석에서 벗어난 움직임. 탐색전조차 없이 정면에서 바로 때려 박는 것을 원술군이 어찌 예측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조조는 원술 본인이 이 일을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진짜 행동 하나만큼은 재빠르시네요.”
“그게 저희 주군의 가장 큰 강점 아닙니까.”
진궁은 불평했지만, 노년의 정욱은 오히려 기꺼워하며 웃었다. 조조는 그런 둘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원술.
“여기서 끝을 내겠다.”
우리의 관계도 솔직히 너무 길었노라고.
어릴 적부터의 악연을 끊기에는 제법 적당한 무대였다. 여기서 원술을 끊는다면 이제 남은 원씨의 적자라고는 원소 하나. 그 대적을 상대하기 위한 전초전 정도라고 보아 무방하지 않은가.
“전군, 깃발을 높게 들도록.”
뿔나팔 소리가 드넓은 평야에 울린다.
* * *
원술은 한창 옷 단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만한 대전에 연설이 빠질 수 없는 노릇. 하여 군을 전진시켜 상대와 대치하고 그들에게 본인의 정당성과 긍지를 설파하겠노라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크흠! 아아, 아.”
목을 다듬는데 영 상태가 별로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연설전 또한 대전에 앞서 상대의 기를 죽일 백미. 하여 그는 목을 다듬으면서도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계속 고심하고 있었다.
그럴 무렵이었다.
뿔나팔의 소리가 울렸다.
“흠? 뭐냐?”
“역적 측에서 울린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건 짐도 알고 있다.”
문제는 왜 갑자기 뿔나팔을.
원술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 앞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대형을 갖추던 조조군의 정면에 수천의 기병 무리가 나열한 것이 보였다.
“저건 또 무슨 해괴한 짓인가?”
아직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기병을 최전선에 내보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러다가 집중포화에 애써 가꾼 기병만 잃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북이 함께 울렸다.
둥, 둥, 둥.
뿔나팔 또한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하며 적의 대열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선에 섰던 기병이 박차를 가해 원술군 진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조조군의 전 병력이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것.
“……허.”
그제야 상황파악이 끝난 원술이 코웃음을 쳤다.
“저 환관 딸년은 예의도 없나 보군. 이런 역사에 남을 대전을 앞두고 예의도 없이 바로 공격부터 시작한다고. 역시 저년에게서 긍지와 명예는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도 없구나!”
그렇지만 적이 돌격해오기 시작했다는 것도 사실. 연설전을 준비하던 원술은 이를 벅벅 갈고는 입을 열었다.
“아군도 깃발을 들어라!”
적이 공격해온다면 응당 대처할 따름.
하여 원술도 군을 전진시키며 적 기병에 맞서기 위해 군을 중앙으로 집결하고자 했는데, 그보다 기병의 진격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전선에 최대한 넓게 늘어선 대열이라 한 점만을 노린 공격에 대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
“양 측면의 군을 전진시켜라. 저놈들이 멍청하게 기세에 군을 맡겼다면 그대로 포위하여 섬멸하라! 뭐하느냐? 얼른 깃발을 올리거라!”
“예, 폐하!”
조조군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원술은 그에 대응해 적을 막아내며 양 측면에 늘어선 군으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하고자 태세를 갖췄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정면이 뚫리느냐, 혹은 버티느냐.
결국,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요소는 힘과 힘의 충돌. 그리고 그 충돌에서 이긴 자가 승자가 될 것이 명백해졌다.
“쯧, 하여간 우아하지 못한 것.”
그가 아는 조조는 언제나 저랬다.
명가의 자손으로서의 긍지라고는 터럭도 없는 천것. 쉬운 길을 선택하겠노라며 명예와는 동떨어진 선택만을 반복하는 머저리.
그곳에 영광이라고는 없을 걸 모르는 천치.
“짐이 한 번 보여줘야겠군.”
황제가 되고 벌이는 첫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면 장차 그 누가 중나라를 거부할 것이고 황제 원술을 의심할 텐가. 원술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금으로 수놓은 곤룡포가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그는 갑옷조차 두르지 않은 채로 그 금색 눈동자를 빛내며 소리쳤다.
“신생 중 제국에 승리를 바쳐라! 너희의 목숨은 짐과 함께한다. 그러니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망조가 든 한을 대신할 제국을 위해 분투하도록!!”
앞으로 있을 영광에 패배라는 오점은 불필요.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승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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