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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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양군의 기세 모두 훌륭하였다. 조인이 이끄는 조조 최정예의 선봉이야 당연하겠지만, 반대로 의외였던 것은 원술의 선봉.
“훈련 잘된 병력이네.”
“그야 그렇겠죠. 원술이 한 번 예주에서 패했다고는 해도 양주에 자리 잡은지 꽤 오래 됐으니까요. 그만한 물자와 인적 자원을 가지고 저것도 못하려고요.”
사마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간 조조군이 전쟁을 몇 차례 수행했던가. 그런 군에 비해도 크게 밀리지 않은 기세는 확실히 대단한 것이었다.
먼저 선수를 잡은 조인의 선봉을 에워싸듯 두르며 버텨내는 과정. 그 과정에서 대열의 흐트러짐 하나 없이 침착하게 그 공세를 받아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하여 부족함이 없었다.
“낙양에 있을 때는 그냥 입만 산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좀 하는 구석도 있네. 저렇게 단단히 방비부터 갖추면 먼저 들어간 쪽도 애매해지잖아?”
여포 또한 그 광경에는 약간의 감탄사를 표했다.
“낙양에서의 원술은 어땠는데?”
“뭐, 안하무인? 글쎄. 솔직히 말해 그놈이 동탁을 살살 피해 다녀서 자주 본 건 아닌데, 그냥 입만 산 도련님이라는 인상이었지.”
그 부분에서는 나와도 의견이 일치했다.
반동탁 연합군에서 보였던 원술의 추태. 손견을 견제하고 제 이득만 좇는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그런 그라도 한 가지 장점은 있는 걸까. 확실히 어지간한 장점이 있지 않고서야 저만한 규모의 대군을 모을 방법도 없었겠지.
하지만 적이 예상보다 잘 싸우면 싸울수록 곤란한 것은 아군이었다. 군의 규모는 확실히 원술 측에 우위가 있다는 건 안 봐도 뻔했다.
“그래도 전부 저렇게 강병이진 않겠지?”
“당연하죠.”
사마의는 단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저만한 군을 어떻게 삽시간에 조련하겠어요? 방법이 있다면 전쟁뿐인데 원술군은 기본적으로 예주에서 저희와 패전했던 적 이래로 항상 양주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잖아요? 경험이 있을 리도 만무하죠.”
“나도 이 꼬맹이 말에 동감. 저만한 군 기르기가 어디 쉬운 것도 아니고.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그렇겠지.
하면 우선 선봉의 양상부터 살필까. 전면전으로 들어서는 것은 저 선봉에서의 다툼의 승패가 갈린 이후가 될 것이고, 그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주인아, 참고로 말하는데.”
“안 나간다니까.”
내 팔에 구멍 하나 뚫리고 나서 여포가 예전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예 기병대장 같은 거 안 맡겠다고 떼쓰는 것을 달래주기까지 얼마나 진을 뺐는지.
“진짜야. 그 팔 가지고 괜히 칼 잡고 설치지 마. 알겠어? 하여간 약골이어서 맨날 다쳐오는데, 그러면 내가 주인이 곁에 있는 의미가 없잖아.”
“야. 아무리 그래도 약골까지는….”
그 말을 끊고 여포가 얼굴을 쓱 들이밀었다.
“그럼 나 이길 수 있어?”
아니 치사하다. 비겁하다.
세상에 천하무쌍 여포를 이길 수 있다 단언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렇게 따지면 천하에 약골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냐는 말인가. 이건 분명히 말해 반칙이었다.
“맞아요. 좀 몸 좀 사려요.”
“아니, 넌 그때 상황 알면서….”
“모르겠는데요?”
이 꼬맹이가 시치미떼기는. 진짜 열 받네. 그때 내가 안 나섰으면 그 혼란을 어떻게 수습했다고. 그리고 솔직한 말로 손책은 이겼거든? 그 뒤에 태사자가 갑자기 화살 쏴 재껴서 팔에 구멍 뚫린 것까지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잖아.
아, 생각해보니 열 받네.
“이봐, 다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면목 없습니다.”
“아니 면목만 없으면 되나?”
그러니 태사자의 표정이 대번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뭐 사실 장난삼아 갈구는 것뿐이지 진심으로 그를 책망할 생각도 없었다.
“농담이니까 얼굴 펴고. 손책은?”
“죽이라면 뜨실 정도로 낫고 계십니다.”
그때 여포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거 뭐 예쁘다고.”
“여포.”
“……알았어.”
손책이 예뻐서 살려두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말했는데도 참. 물론 다소 불만이 있을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태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확실히 사마의도 아니꼽다는 시선이었다. 정확히는 내 팔에 구멍을 낸 태사자 개인을 아니꼽게 보는 듯한데, 그 부분은 내가 뭐라고 할 바는 아니겠지. 난 괜찮다지만 꼬맹이 심정에는 또 그게 아닐 테니까.
“아무튼, 그 문제는 됐고. 우선 선봉이 이기든 지든 대장군의 군을 필두로 아군이 오른쪽 군을 맡기로 했잖냐. 유비도 곧 이리로 올 테니까, 얘기는 그 뒤에 하자.”
지금은 저 전장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었다.
확실히 조인 장군의 군 운용은 내가 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어느 것이 더 옳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내가 사마의에게 일임하며 추구하는 것은 안정적인 방어.
반면 조인은 빛보다 빠르게 진격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그대로 원술군을 뚫어낼 생각인가. 확실히 그만한 기세와 움직임이 있었지만, 반대로 막아내는 원술군의 저력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요점은 뚫느냐, 뚫리느냐.
“단순하네요.”
사마의는 전장을 바라보며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런가?”
“선봉의 다툼치고는 기세에 맡기는 전장. 그렇지만 실력에 자신만 있다면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기도 하죠. 상대도 제법이긴 한데, 조인 장군을 막을 인물이 원술에게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네요.”
“그럼 승리라는 거지?”
그 말에 사마의는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확답할 수는 없어요.”
그야 전쟁통에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한 게 아니니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가끔 전쟁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힘을 발휘하는 군대라는 것도 종종 존재하고는 했다.
하지만 조인이라면 아군 내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한 장군. 무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병사를 조련하고 이끌며 낸 전공마저 화려한 장군이었다.
원술 근처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조인을 막는다?
글쎄. 난 생각하기 힘든데.
* * *
조인은 돌파해 들어가는 병력의 중심에서 직접 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장을 살피고, 또 미흡한 부분에는 언제든 병력을 돌리며 전장 전체로 시야를 넓힌다.
“이 정도라면.”
적의 저항이 억세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군의 전력과 맞붙은 적의 전력을 놓고 저울질한다. 점차 전선이 적을 향해 밀리기 시작하는 모습으로 보아 회전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조금 더 강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맞을 터.
하여 조인이 직접 대장기를 올리려던 찰나.
“장군. 우측 편대가….”
“흠? 확인했다.”
부자연스럽게 무너지기 시작한 편재. 우측을 중심으로 하여 갑작스레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모습을 확인했다. 점차 밀리는 모습으로도 보이며, 그 탓에 아군 중앙으로까지의 대열 또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후방 부대를 돌려라. 고작 저런 흐트러짐 하나에 군을 멈출 수 없으니, 병사의 충원만 진행하며 계속 전진한다.”
“예, 장군.”
명령을 내린 조인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자고로 전쟁에는 흐름이란 것이 존재했다.
모든 만물의 이치에도 그렇듯, 전쟁에서도 한 번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면 그 전제 자체가 쉬이 깨지지 않는 법. 전부 밀리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한 지점을 중심으로 밀리기 시작한 건 분명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에 신경 쓸 여유도 없는 것.
조인은 그런 일정 부분에서의 흐트러짐을 무시하고 전진하고자 했으나 그 균열은 점차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것에 맞춰 원술군의 대열이 바뀌고 수세에서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첫 이변은 점점 조인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백인대 규모의 부대가 아군 진영을 휩쓸고 있었다.
특히 최전선의 중앙에 자리했던 조인이기에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정예를 투입한 것이라고 해도 너무 이질적인 움직임.
“장군! 우측면이 돌파당하고 있습니다!”
“보인다.”
저런 갑작스러운 이변은 정예로도 불가능. 그 선두에 서서 직접 진두지휘할 장수가 없고서야 저런 움직임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원술에게 그만한 맹장이 있던가?
그는 잠시 의문을 품었지만, 그것 또한 잠시. 조인은 평소 최전선 부근에서 지휘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렇기에 이런 돌발적인 위험에는 언제나 노출되는 위치이기도 했다.
후방에는 하후연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상황.
“장군. 우선 잠시 몸을 피하심이.”
“되었다.”
조인은 퇴각 대신 창을 꺼내 들었다.
기세를 올리는 상황에서 군을 물릴 이유는 없었다. 규모로 보아 적은 많이 쳐줘도 백인대 정도의 별동대라 생각하는 게 옳을 터. 그렇다면 그 사소한 변수 하나에 대국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맞선다. 근방으로 군을 정비하라.”
한편 그 백인대를 직접 이끄는 감녕은 두 자루의 곡도를 휘두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억세도 어찌 이리 억센지, 하나하나 베어내는 것에 힘이 쭉 빨리는 느낌이었다.
“염병, 내가 실수했어.”
그녀는 왼손의 곡도를 옆으로 내질렀다.
설마 고작 백인대 규모의 병력만을 주고 별동대로 운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필 적 대장은 저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움직일 것이 뭐람. 덕분에 그녀는 적 대장기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여 감녕은 재차 달려드는 병사를 연이어 베어내며 이를 갈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대로 나아가 적 선봉장을 사살하지 못하면 죽을 자리로 기어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것.
“누님, 점점 포위되는 거 같은데!!”
“나도 눈깔이 있거든?”
한 번 해볼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비도를 치켜들었다. 저 멀리 대장기 근처에 적장으로 보이는 이가 창을 견주며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거리는 대략 오백 보 정도일까.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그만큼 적 선봉장이 최전선에서 지휘한 것도 있지만, 감녕을 포함한 백인대가 빠르게 난입하여 진을 흐트러뜨렸기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젠 얼굴마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쯧.”
혀를 차고는 숨을 들이켠다.
아주 잠시. 찰나의 순간으로 족했다. 오른손에 든 비도를 치켜들며 왼쪽 눈을 감고는 정확히 조인을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후우…….”
“누님!?”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그녀 주변으로 부하들이 모였다. 적진 한복판에서 갑자기 멈추면 어쩌냐며 항의했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픽 웃고는 그중 가장 키 큰 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깨 좀 빌린다.”
“예, 에?”
그 어깨를 힘껏 누르며 땅을 박찬다. 그 뒤에 재차 발로 그의 어깨를 짓밟고는 다시 뛰어오르며 저 멀리 보이는 조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그는 이쪽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초점은 잡혔다. 다행히도 바람은 크게 불지 않았고, 감각 또한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녀는 팔을 젖히고는 그를 바라보며 손에 쥔 비도를 세게 내던졌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비도.
“흣!!”
“아.”
조인의 호흡과 감녕의 탄식이 겹쳤다.
시야의 사각을 뚫고 내던진 것을 창대로 막아내? 감녕은 자리에 다시 착지하고서도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야, 튀자.”
“예? 아니 누님, 뭐 했수?”
“됐으니까! 여기서 더 가면 죽겠다.”
물론 도망치는 길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적 선봉장을 중심으로 뭉치려 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후방으로 물러나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다소의 피해는 있겠지만, 적어도 저 두꺼운 방비를 뚫다 전멸하는 것보다야 나을 거라는 판단하에 감녕과 그녀의 백인대는 방향을 전환하여 퇴각하기 시작했다.
한편 조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장군!!”
“큰 상처가 아니다. 그보다는 퇴각하는 군을 쫓, ……아니지. 저리 날래니 구태여 군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다시 진군이다. 달려드는 원술군을 요격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멈춰서는 이는 용서치 않겠다.”
“하오나…….”
말을 덧붙이려던 부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여 군의 방향성을 돌린 조인은 어깨에 꽂힌 비도를 뽑았다.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튕긴 것이 왼쪽 어깨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방울 소리가 들렸지.”
그러면 저 여인이.
수춘에 대치하고 줄곧 아군을 괴롭혔던 야습을 떠올린 조인은 이내 고개를 돌려 전선으로 시선을 향했다. 어차피 단독으로 이뤄지는 무력으로 전선을 뒤집기엔 한계가 있을 터.
다만 돌아가면 조조에게 장교나 지휘관에 대한 신변 보호 강화에 대한 것을 진언할 필요성은 느꼈다.
적이 저렇게 날래고 용맹하니 암살로 이어진다면 그만큼 낭패가 없을 것. 이 자리에서 처리하지 못했으니 이젠 별동대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
“전군, 더 억세게 몰아쳐라!! 오늘 안으로 승패를 가른다. 물러서지 마라. 대장군께서는 오직 승리만을 요구하셨다!!”
물론 그것도 승리하여 돌아간 뒤의 이야기.
자신의 부상과는 별개로 축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적의 반격에 응수하며 군을 전진시킨다. 이 국면만을 뚫으면 그대로 적을 관통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보지 않아도 승리는 확실.
그렇기에 그는 한 손에 대장기를 움켜쥐었다.
“나아가라!!”
물러섬은 용서치 않으니.
그저 앞으로.
조인은 왼쪽 어깨에 적당한 천으로 묶어 간단한 지혈만을 마치고는 다시 전선을 향해 대장기를 계속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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