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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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에서 진출한 서주와의 연합군까지 합류한 직후, 그들은 수춘 인근의 현을 공략하고자 방향성을 틀어버린 것.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수춘 내부에 비축해둔 식량이 많아 상대해줄 필요는 없었다.
문제라면 원술이 막 황제를 자칭했다는 것.
막 황제라는 자리에 올랐기에 백성을 버렸다는 인식이 박힐 수는 없었다. 그게 얼마나 제 평판을 깎아내리며 황제 자리를 향한 명분에도 영향 주는지는 원술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출정하겠다.”
“예, 폐하.”
정석이라면 먼 원정길에 나온 조조와 정면에서 상대해줄 필요가 없었다. 수춘은 거성이었고 수성에 임하며 시간을 번다면 지쳐 나가떨어질 것은 분명 조조군.
그렇지만 백성을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기령은 마지막까지 수성을 주장했다.
수춘이라는 거성을 박차고 나갈 이유가 없다고. 조조군은 분명 강병이니 성을 방패로 지키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가 여남에서 한 차례 패한 것으로 인해 발언권이 떨어졌었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 기령을 아끼던 원술도 그의 의견에는 난색을 보였고, 하여 추가로 모병한 병력까지 대거 동원하여 합산 6만의 대군이 조조군을 상대하기 위해 출진했다.
“기령. 아직도 불만이더냐?”
“아닙니다. 전술적으로야 수성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굽힐 생각은 없으나, 그것이 폐하의 명성에 누를 끼친다면 응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하여간. 장훈아, 봐라. 저놈 아직도 저러는구나.”
그는 고개를 돌려 대장군으로 임명한 장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장훈의 관점에서야 그의 의견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미 출정하기로 한 문제를 계속 질질 끄는 것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기령 장군. 그대의 단점은 의견을 굽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폐하의 말에 제 의견을 피력하는군.”
“죄송합니다.”
“어허. 핀잔주라고 말한 것이 아니거늘.”
원술은 장훈과 기령을 제법 아꼈다.
그가 후장군일 적부터 그의 수족이 되어주었던 이들이었다. 그러니 전쟁 이전에 쌓일 것이 있다면 풀어주려 일부러 편하게 대하는 것인데, 정작 당사자들이 어깨에 힘을 빼지 못하니 그것이 답답할 뿐.
“하지만 기령, 너도 알고 있겠지. 짐은 이제 황제가 되었다. 예전처럼 편하게 행동할 수는 없는 게야. 백성을 위해 싸운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 누가 짐을 따르겠느냐?”
원술은 부드럽게 웃으며 지휘봉을 건넸다.
“짐이 황제가 된 것은 한의 쇠락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느니. 기령아. 너에게 선봉을 주마. 종전의 설욕과 함께 짐에게 승리를 가져오지 않겠느냐.”
“……폐하.”
그는 원술의 말에 잠시 눈을 껌뻑였다.
원래도 호탕하고 제 사람에게 자비로운 면이 있는 원술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종전의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장수를 선봉으로 다시 쓰겠다니.
잠시 고민하던 기령이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들겠나이다!!”
“음. 그 기개는 좋다.”
장훈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기령이라면 원술군 제일의 상장. 무력으로는 자신도 비할 바가 못 되니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조군의 역량은 막 몸집을 부풀린 자신들보다 근소 우위일 거라고도 판단하고 있었으니.
“폐하. 그러면 기령 장군에 더불어 인물을 하나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인물이라면?”
“감녕이라는 자이옵니다만.”
최근 장훈이 별동대로 운영하였던 여인의 이름을 꺼냈다. 그녀라면 아직 근속 기간이 길지 않아 신뢰라는 부분에서는 의문이 있었지만, 적어도 실력 하나라면 믿을 수 있다고 여겼다.
“감녕이라. 전에 네가 말했던 그?”
“예.”
“수적이라던 년이 아니냐. 그런 천것이 이 대전에서 합당한 역할을 차지할 수 있겠느냐? 천한 것들은 꼭 중요한 곳에서 실수하는 것이거늘.”
원술은 기본적으로 출신이 미천한 이들의 실력을 믿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자란 이들이라면 충분히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중대사를 맡기기에는 불안함이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실력이라면 충분할 듯 사료되옵니다.”
“흠…. 네 말이라면 허투루 듣기 뭣한데.”
하여 그는 기령을 바라보고는 살짝 손짓했다.
“기령.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장군께서 추천하신 인재라면 한 번 써보겠습니다. 만약 활약이 미진하다면 한직으로 돌리면 그만일 따름. 기회를 주어보는 것 정도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봉의 장이 그런다면 짐도 이견은 없노라.”
여기까지 의견을 정리한 원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저 멀리에는 조조군이 진을 치고 원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깥으로 빠지려던 움직임은 온데간데없이 전 병력이 원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을 위한 속임수.
“역시 환관 딸년의 생각은 그게 그것이겠지.”
애당초 꼬드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도전도 짓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황제가 되었다면 어떤 도전도 능히 받아내고 이겨낼 수 있어야 하는바.
하여 원술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기령! 네게 기병 삼천과 보병 일만을 내어주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전초전을 위한 준비를 한다.
예주에서 있었던 전쟁에서는 참패. 그렇지만 이번 전쟁은 원술이 그 뒤로 쭉 준비하였던 전쟁이었다.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며 이를 갈고 복수전에 임하니, 천지신명이 따른다면 분명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황제의 명이다. 승리를 가져오너라.”
“황명이라면 반드시.”
무릎을 꿇는 기령.
그런 그를 바라보던 원술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부터 눈앞에 알짱거리던 환관의 딸년과의 기나긴 악연은 여기에서 끝날 것으로 보였다.
이 전쟁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조조를 물리친다면 예주와 연주는 허허벌판.
그곳에 있는 황제의 목을 베고 한의 종말을 알리며 북상. 황제의 위용과 찬란함을 과시하며 북방의 공손찬과 겨루고 있을 원소의 턱밑에 칼을 드리운다면 그 재수 없는 면상은 어떤 표정으로 물들까.
그것이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 * *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건 원술의 군단.
“저 규모라면 전초전이겠네요.”
진궁이 그 장면을 슥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단 규모로 움직인 듯했지만, 숫자로 보아 약 일만을 넘는 수준일까. 기병 전력이 다수 포함된 것을 보아서는 딱 전초전을 위한 편재로 보였다.
“우습게 보였나 보군.”
“이렇게 될 걸 예상하셨잖아요?”
그 질문에 조조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술이라면 결코 이런 전쟁에 도망치지 않는다. 물론 황제에 막 즉위한 차에 민간의 피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정치적인 이해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원술은 해볼 만한 전쟁에서 도망치는 법이 없었다.
“저것이 놈의 한계지.”
꿇을 줄 모른다.
꺾일 줄을 모른다.
딱 그것이 전형적인 도련님인 원술의 한계였다. 제 몸이 오물이 묻는 것을 기피하고 명예가 떨어지는 것을 질색하는, 그러면서 승리의 영광만을 탐하는 짐승.
원소와도 비슷하나 아집이 강한 성격.
그렇기에 상대하기 쉬운 감이 있었다. 적어도 조조는 그간 원술에게 뒤처진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단지 그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잘난체하던 도련님이었으나 이제는 그 반짝이던 휘광도 드리우지 않을 전장.
패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아군에서는 누굴 보낼까.”
조조의 고민에 맞은편에 선 순유가 손을 들었다.
“서주군을 먼저 내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서주군을?”
“예. 이번 전쟁은 서주와 아군의 연합전선. 그렇다면 그들 또한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모습을 보여야겠지요.”
천연덕스레 말한 순유였지만, 그 속내가 유비를 먼저 내세워 방패로 삼는 겸 적의 전투력을 재어보자는 의도임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조는 그 제의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서주에게 불필요한 반발을 심을 우려도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공공연하게 관구 사령관인 전호의 휘하. 황제의 대리 장군의 직속으로 편입되어 대장군이라 하여 쉬이 명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전호가 직접 명령한다면 문제는 아니었지만.
“조공.”
진궁이 거기서 살짝 말을 걸었지만, 그 전에 조조가 먼저 손을 들며 발언을 끊었다. 진궁이 할 말을 알고 있었고, 그녀 또한 이 의견에 찬동할 수 없었다.
“벌써 서주를 버리는 말로 쓸 이유가 없다.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서주와는 어깨를 맞대어야 하는데 반발할 구실을 내줄 이유도 없지.”
“그러시다면….”
하여 조조는 그 의견에 부정하고 시선을 돌렸다.
“다른 의견은 있는가?”
“대장군.”
그 순간 조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제게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명만 하신다면 저들의 수급을 모조리 도륙을 내 대장군께 바쳐 그 영예와 한의 안녕을 위한 초석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녀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조조는 사람 머리통을 수집하는 등의 괴상한 취미를 가진 기억이 없었다. 물론 조인이라면 충분히 선봉으로 믿고 맡길 인물이었지만, 저 과장된 언행은 무엇인가.
충성심의 발로라고 해도 정도가 지나쳤다.
“……하아. 조인. 그대는 발언이 언제나 과하다. 본인 얼굴에 금칠하는 것은 좋다만, 그 금이 너무 덕지덕지 발려서야 본인도 곤란하지 않은가.”
“면목 없습니다.”
이미 잔소리라면 잔뜩 했지만, 당최 바뀌지 않는 모습에 조조도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부분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고쳐져야 할 부분이었고, 그걸 떠나 조인이라면 선봉으로 내세워 불만은 없었다.
“그럼 조인을 선봉으로 할까 하는데 이견은?”
“조인이라면 믿을만하지.”
무장 중 최고참 격인 하후돈이 먼저 수긍했다.
“중랑장은?”
“저도 이론은 없습니다.”
그간 입을 다물고 있던 전호도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선봉이 정해졌다. 애당초 그는 서주군을 내세우자는 의견에 언제 반대하면 좋을까 계속 각을 보고 있던 상황. 조인이 당당히 나서준다면 불만이 있을 턱도 없었다.
“좋다. 그러면 조인. 전공을 기대하지.”
“명하시는 대로.”
그 이후에는 일사천리.
조인을 대장으로 하여 마찬가지로 군 일만을 내어준다. 하여 대치하는 과정에서 조조 또한 본대를 움직여 그 뒤를 받쳤고, 관구 사령관의 직속인 친위대와 서주군 또한 그에 함께하여 원술군과 대치하였다.
이 전장에 나선 병력만 하여도 물경 11만에 달하는 대전.
그 선봉이 된 기령과 조인.
이윽고 전쟁의 효시가 당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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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다시 다잡고 두 편 목표로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