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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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댁들이 보내놓고 수고는 개뿔.”
그녀는 마중 나온 이들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 보니 원술에게 합류하게 되어 지금까지 종사하고 있었지만, 작금의 상황은 과연 그녀에게도 불안한 부분이 적잖게 있었다.
“폐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폐하, 말이지.”
그녀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조조군을 떠올렸다.
잘 훈련된 군대였다. 그것을 어떻게든 개인의 무력과 기존 부하들의 합격으로 뚫어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방비가 두터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한두 번이 한계일 터.
원술은 공공연히 황제임을 자칭했으니 앞으로 수많은 전쟁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 그 뒤에도 원술의 목이 붙어있다면 그제야 진정 황제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녀가 원술에게 합류했을 때는 아직 원술이 양주 내에서 강호로 자리 잡았을 때였다. 그렇기에 원술이 황제가 되려 했다는 건 하나도 몰랐다.
“아마 몇 번 못 할 거야.”
“장군?”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댁들이 잘 궁리하라고. 이런 전략으로 언제까지 휘두를 수 있을 놈들이 아니야. 그러니 이젠 전쟁으로 끝을 봐야 할 거고.”
그녀는 그 말만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표군에 있었을 적에는 언제까지 장교로 승진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떠났다. 그렇게 양주를 떠돌다가 대대적으로 모병하는 원술에게 왔는데, 이쪽도 그녀가 보기에는 썩 달가운 집단이 아니었다.
“하여간 진짜.”
“누님, 이제부터 저흰 어떡하죠?”
“진짜 역적이 되는 거요?”
원술의 관료가 떠나고 나서야 그들은 입을 열었다.
과거 장강 일대에서 수적 질을 할 때부터 그녀를 따랐던 부하들. 그것이 이렇게 유표와 원술을 거칠 때까지 함께했던 것인데, 그런 그들도 역적이라는 칭호까지는 떨떠름할 수밖에 없던 것.
“나도 모르지. 지면 역적이요, 이기면 황제 아니겠어?”
“수적까지는 그렇다 해도 역적은 좀.”
“같은 적자 돌림이어도 느낌이 확 다르네.”
그녀는 그들이 말에 순간 빵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기야 수적과 역적은 근본 자체가 달랐다. 물론 같은 범법자라고는 해도 그 규모가 다르니까.
“후우… 아무튼, 이길 것만 생각해.”
“이길 수 있을까요. 누님도 보셨잖수. 유표군도 그렇고 원술군도 그랬지만, 저놈들은 그런 어중이들이랑은 체급이 다르더만.”
확실히 어중간한 잡병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도 종종 일반병이 자신의 검을 막아 세우는 것에는 소름이 끼쳤을 정도. 물론 그마저도 베어내기는 했지만, 그런 병사들과 지금부터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면 원술의 승산을 어디까지 점칠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안 되면 튀지 뭐.”
수적으로 살면서 그랬던 적은 많았다.
원술이라는 남자가 그녀 개인적으로 충성을 바칠 정도로 어엿한 주군이라고 보기 힘들었고, 어차피 당장 있을 자리가 없어서 투신한 곳이었으니까.
그러니 여차하면 언제 떠나도 나쁠 것은 없었다.
“누님이 이번에는 제대로 살자고… 아, 미안하다니까!!”
“쌍놈이 말이야.”
그녀는 말대꾸하는 부하를 발로 걷어찼다.
* * *
손책이 병상에서 깨어났다.
그 말에 우선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손책에게 향했다. 군의 감독과 관리는 우선 조홍에게 맡기고, 그 외의 일은 사마의 혼자서도 충분하겠지.
그것보다는 우선 손책이었다.
주유가 군을 이끌고 물러난 것과 그 사이에 있었던 협약까지.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먼저 설명하고 그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오셨습니까.”
막사에 가니 태사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손책은.”
“조금 전 깨어나셨습니다.”
“들어서 알고 있고, 우선 만나고 싶은데.”
그러니 태사자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무언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순간 여인의 기침 소리도 함께 들렸다.
썩 달갑지는 않을런가.
그래도 어쩌겠나. 그 신병을 우리가 맡고 있는데.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태사자가 막사의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왔다. 표정이 썩 좋지는 않은데, 아마 내부에서 손책이 뭐라 한소리 했을까.
“드시지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알고 있다. 환자에게 무리한 말을 할 생각도 없고, 비몽사몽 하여 내뱉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어. 게다가 손책이라면 다소 거친 말을 쓸 자격도 된다.”
그걸 어디 밖에서만 안 하면 문제는 없다.
하여 태사자가 막사 입구서 물러났기에 천천히 다가가 천막을 걷었다. 슬쩍 보인 내부에는 불도 밝히지 않아 제법 어두운 편이었는데, 그 와중에 약재의 쓴 냄새가 가장 먼저 코를 통해 전해졌다.
“들어가지.”
답은 듣지 않았다.
내부에 들어가니 더더욱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사방에는 여전히 약재를 비롯하여 피에 절은 천 등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덕분인지 피비린내까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중랑, 장.”
“지금은 전호라 불러도 좋다. 특별히 허락하지.”
“헛소리를….”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격한 반응은 없네?
이건 예상외여서 좀 당황스러운데. 당장 뭐라도 던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맞는 걸 걱정했다기보다는 상처라도 터질까 봐. 당장 손책군이 물러난 것도 손책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인데, 정작 그 손책이 죽으면 큰일이잖아.
하여 침상 옆자리에 앉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선 창백한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 머리카락도 침상에 흐트러져 있었고, 내가 갈랐던 배에 두른 천에는 여전히 시뻘건 피에 절여진 것이 보였다.
“몸은 좀 어떻지?”
“보면 몰라…?”
이건 확실히 우문이었나.
“실례. 딱 봐도 썩 좋지는 않네. 이건 사과하지. 그러면 아군의 현 상황과 너희 군과 맺은 협정에 대해서 들은 바는?”
“……패배했으니까.”
그녀는 그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적대한다거나 하는 건 느껴지지 않는데, 그렇다고 딱히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지도 않아서 영 껄끄러웠다. 물론 그녀에게 있어 나는 여전히 원수였고, 그런 이에게 붙잡혀있다는 게 그렇게 달갑지는 않겠지.
“불만인가?”
“……당신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만큼은.”
“그건 안타깝네.”
픽 웃으며 챙겨온 것들을 옆에 놓았다.
죽이나 약재를 우린 차를 비롯하여 환자에게 좋다는 걸 조금. 사마의에게 직접 부탁해서 챙겨왔는데, 먹어줄지는 모르겠네.
“나중에 입맛이 돌거든 먹어라.”
“필요없어.”
“다른 건 몰라도 차는 입에 대도록. 저게 저래 보여도 몸에 좋은 것들만 우렸다고 하더라. 나도 마셔봤는데 효과가 있었으니 저것만은 꼭 마셔.”
쓰긴 뒤지게 써도 몸에는 좋더라.
몸이 후끈해지는 감각이 도는 게, 진짜 몸에 활력이 도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나보고 다시 마시라고 하면 죽어도 안 마시겠지만 이런 환자에게는 저만한 것도 없지.
“……놀리러 왔어?”
“응?”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초췌해진 얼굴은 확실히 전장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와중에 눈만큼은 선명하게 이쪽을 바라보니, 그것에 서린 감정은 원망일까. 눈만 보고서 감정을 판별하는 능력까지는 없어서 잘 모르겠네.
“패자를 놀리러 오면, 기분이 좋아?”
“이런,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는…!!”
순간 발끈해서 소리치려던 그녀가 몸을 움츠렸다. 배에 그렇게 크게 다쳤는데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어떡하나. 그렇지만 이건 내 잘못이기도 할까.
“진정해라. 지금 몸 다치면 너만 손해다. 얼른 나아서 다시 군에 돌아갈 생각을 해야지. 놀리는 것 같겠지만, 이건 진심이다.”
“크읏, 하아…….”
“천천히 숨을 골라. 호흡을 천천히 들이키고. 그래, 그거야. 그런 부상은 한 번 터지면 답도 없다. 안 그래도 부상 자체가 커서 덧나기라도 하면 진짜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알 텐데.”
여기서 죽으면 큰일 난다.
물론 그런 부가적인 이유 외에도 개인적인 이유로 그녀는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이냐고 묻는다면 그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와 비슷한 모종의 감정이 있었다.
“난, 당신을 잡을 수 있었어.”
“조금만 더 냉정했다면 충분히 가능했겠지.”
실제로 손책은 나보다 더 강했다.
아마 분노에 취해 냉정함을 잃고 행동이 단순해지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건 내가 되었을 수도 있을 일. 모든 일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없겠으나 객관적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살아남았다.
“아버지의 원수도, 갚을 수 있었어.”
“그랬겠지.”
“……내가, 내가 멍청해서, 그래서 진 거야. 우리는 당신에게 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어. 그냥 내가 모자라서, 내가 부족해서…….”
답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손책이 이끄는 군은 강했다. 한 차례인가 전황을 뒤집기도 하였고, 최후에 벌인 전쟁에서 아군의 배후를 습격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상황이 조금만 달랐어도 우리의 위치는 바뀌었겠지.
그러나 지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 나였다. 손견에 이어 손책과도 손을 섞었으나 손책은 지금 살아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
“우리에게 바라는 게 뭐야.”
“그냥 이 전쟁에서 물러나길 바랄 뿐이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군은 당장 원술을 상대하기에도 벅찼다. 게다가 원술을 고꾸라뜨린다고 해도 이 지역을 점령할 수 있는 여유도 없다. 당장 이 원정도 모든 걸 끌어모아 겨우 실행했는데, 병사를 남겨 지역을 점령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결국, 우리는 원술을 상대하는 것만을 바라보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손책이 이끄는 군을 잠시 물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조조, 아니지. 대장군과도 이미 말을 끝냈어. 이번 원정이 끝난다면 너를 풀어줄 생각이다. 그러니 너무 의심만 하지 말라고. 우리는 너 죽어서 좋을 게 하나 없다.”
“……끝나고 날 죽일 수 있는 거잖아.”
그 말에는 코웃음을.
손책을 죽인다고 해서 아군에게 무언가 뚜렷한 이점이 있는가? 글쎄. 근래 손책이 제법 날렸다고는 해도 대국적인 차원에서 보면 나비의 날갯짓에 지나지 않았다.
“널 죽이면 그 뒤에 남겨진 병사들은 어쩌고. 그들이 네 죽음에 얌전히 있을 종이냐? 손견까지 잃고, 그 뒤에 손책까지 잃으면 그 원한은 어찌 감당해.”
누누이 말하지만, 아군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주유가 이끄는 군의 규모는 여전히 이만 남짓이었다. 그 안에 포함된 원술의 군을 어찌 처리할지는 모르겠으나, 손책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들이 어찌 움직이겠는가.
아군은 이번 전쟁 이후로 당분간은 내정에만 착수해야 했고, 이 잦은 전쟁의 여독을 달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아서라. 지금 너한테 수작 부릴 정도의 여유는 없어. 이건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조조군의 상황이다. 그러니까 넌 그동안 이곳에서 몸을 잘 달래고 성히 돌아갈 생각만 하라고.”
“……조금 분하네.”
조금? 내가 보기엔 되게 많이 분한 거 같은데.
나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이를 벅벅 갈겠다. 물론 진짜 이를 벅벅 갈다가 어디 상해서 죽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살아라.”
손책의 손은 온기가 부족했다.
병자의 손이라 어쩔 수 없음인가. 날 그렇게 몰아붙이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손을 어루만지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복수? 날 죽이고 싶다면 살아야지.”
물론 이 뒤에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손책을 보자면 오래 살기 힘든 성격으로 보였다. 오래 보지 않아 단언하기도 힘들었지만, 손견도 그렇고 손책도 마찬가지. 우두머리라는 작자들이 저마다 전장을 누비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듯하여 그게 명을 재촉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일개 장수와 군주에게 쏠리는 집중은 차원이 다르다.
당장 그들은 아군 우두머리였던 날 잡으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여긴 만큼,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지.
“……당사자 입에서 할 말이 아닌데.”
“그래도 살아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기 싫으면 살아야지, 별수 있나? 이런 말이 억울하면 장차 내 입을 다물리기 위해서라도 나아야지. 죽도 잘 챙겨 먹고. 특히 저 쓴 물도 잘 마셔라. 알겠냐?”
크게 부상한 환자가 삶에 의욕을 잃어 죽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 이런 나라도 삶의 목적이 되어 살아준다면야.
어차피 이 전쟁 이후로 당분간은 양주 쪽에 손 뻗을 일도 없었다.
“……왜.”
“말했잖아. 너 죽으면 우리도 골때린다고.”
거기까지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처나 잘 돌봐라. 난 간다?”
일의 전말을 잘 알고 있다면 나로서는 부디 쾌차하라는 말밖에 전할 말이 없었다. 물론 그 방향성이 좀 어긋났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뭐, 이런 말로라도 쾌차에 도움이 된다면야.
“쾌차해라.”
너 죽으면 골때린 건 사실이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책의 막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내가 막사 바깥으로 나가기까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 표정을 보아 죽을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악에 받친 표정이, 어우.
당장 죽을 걱정은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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