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수춘 공방전 서주군의 동의를 얻어 수춘 인근까지 빠르게 진군했다. 여남에서 출발한 조조군의 본대는 아직 제대로 전투한 적은 없는 듯하여 다행이다 싶다가도, 정작 도착하고 난 다음 군영의 분위기가 다소 뒤숭숭해 보여 의문이.
“왔는가. 수고했다.”
조조는 상석에서 나를 맞이해주었다.
단 둘뿐인 막사. 그렇기에 어깨에 멘 망토를 풀고 자리에 걸터앉으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 쪽이야 뭐 어떻게든. 보고할 내용도 있긴 한데, 그보다 군중 분위기가 왜 이래?”
“분위기라 함은?”
“막 뒤숭숭한 느낌인데. 뭐 어디서 깨졌나?”
그 말에 그녀는 픽 웃었다.
뭐 틀린 말 했나? 하지만 지나오는 길에 보았던 병사들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어수선한 분위기. 병사 하나하나가 집중을 못 하는 것처럼도 보였는데.
“깨지진 않았다. 귀신 하나에 놀아났을 따름이지.”
“귀신?”
갑자기 이건 뭔 헛소리야.
세상에 귀신 같은 게 어딨다고. 적어도 조조라는 여인이 귀신 같은 걸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운데. 적어도 난 귀신 같은 괴력난신을 믿은 적이 없었다.
“당신이 그런 괴력난신을 믿었던가? 의외인데.”
“그대는 본인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라던가, 가끔은 무서운 것을 믿기도 하는 것이 본래 소녀의 행동 아닌가.”
“소녀라고 해도….”
당신 나보다 나이 많잖아.
그 말을 덧붙이지 못한 건 조조가 무서운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봤기 때문이겠지. 그 시뻘건 눈으로 사람 죽일 기세로 쏘아보는데, 진짜 그 이상 말하면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짜로.
“……뭐, 물론 본인도 그런 것에 흥미는 없다.”
조조는 그리 말하며 잠시 고개를 까닥였다.
가까이 다가오라는 뜻 같아서 다가갔는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이 앉았던 자리에 손짓했다. 앉으라는 뜻으로 알고 앉았더니 대뜸 내 무릎 위에 앉는 그녀.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군.”
최근에 너무 신경 쓸 것이 많았다며 칭얼댄다.
조조가 원래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닌데. 어쩌면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졌던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수춘 전선의 상황이 썩 좋은 것 같지 않았다.
“대체 뭔데 이러쇼?”
“종이다.”
“종?”
그 딸랑거리는 그거?
대체 종이 왜 나오는 거지. 그거잖아, 그거. 뭐 행사한다고 딸랑거리는 거. 나 봤어. 뭐 이상하게 차려입은 것들이 제사 지내고 할 때 쓰는 거잖아.
“진짜 귀신이라도 나왔나? 뭐 제사라도 지냈어?”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뭔데.
“밤만 되면 종소리가 울린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귀신을 부르는 종소리라고 하더군. 죽음을 몰고 오는 귀신이라던가. 우습지. 요컨대 결국에는 야습이다.”
“야습?”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한 장을 펼쳤다.
본대의 진영을 따 그린 것 같은데, 사방에 X자로 표시되어있었다. 북쪽으로 2지점, 서쪽으로 3지점, 동쪽으로 2지점, 남쪽으로도 2지점.
“지금까지 적이 야습한 지역이다. 소수로 이루어진 정예로 하여 야습으로 진영을 흔들더군. 경계를 강화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대가 느낀 불안감도 그 여파라고 생각하라.”
“종소리는?”
“그들이 다가오며 종을 울린다고 하더군.”
야습을 감행하면서 종까지 울린다고?
대담하다고 할지, 멍청하다고 할지. 하지만 조조의 표정으로 보아 대담하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그러나 역시 종을 울리며 야습해온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운 감도 있었다.
“대체 어떤 머저리가 그래?”
“하지만 그 머저리에게 아군이 당했다.”
“앗.”
이거 말실수한 건가.
“되었다. 그대가 도착했으니 이리 대치하고만 있을 일도 없지. 본격적인 전장에 들어선다면 어차피 그 정도의 피해는 축에도 못 낄 대전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수춘에 대기하고 있을 병력이 약 5만.
손책에게 지원받은 원술군까지 빠졌으니 얼추 그 정도가 그들의 한계 아닐까. 물론 아군 역시 손책군과의 연이은 교전으로 피해를 보았고, 이것저것 고려하면 여전히 아군이 다소 열세이지 않을까.
“준비는?”
“본대는 미리 끝냈다. 되려 그대들에게 미안하군. 연이은 전쟁에 수춘에 도착하고 바로 연전으로 이어질 터이니. 원한다면 서주에는 본인이 통보하겠다만.”
“됐수. 이쪽은 내가 사령관이잖아?”
순간 조조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무언가 놀란 듯. 그러더니 부드럽게, 그러나 조금 야릇한 느낌의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서는 내 얼굴과 가까이 접하며 픽 웃었다.
“그대도 어엿해졌군.”
“뭔데.”
숨결이 목덜미에 닿아 간지러웠다.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며 내 가슴팍을 매만진다. 이런 걸 나쁘다고 할 생각은 없지만, 혹시라도 이 자리에서 갑자기 벗으라고 하면 곤란하잖아. 여긴 막사라서 방음도 잘 안 되는데, 조조는 전과가 있다.
“나쁘지 않군. 그대는 점점 더 성장하고 있다. 예전의 그대였다면 이런 귀찮은 문제에는 손대려 하지 않았겠지.”
“……그야 뭐, 당연하지?”
그때는 책임질 위치가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부장, 혹은 대장.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시절이었으니까. 구태여 내 일에 책임질 필요도 없고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위에 서는 자는 응당 그러해야 한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얼굴을 들었다. 안 그래도 내 위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서 얼굴까지 드니 자연스레 내 목덜미 아주 가까이 그녀의 입술이 다가왔다.
쪽.
내 목에 살짝 입을 맞춘다.
“장군이라면, 그리고 만인의 위에 서는 자라면 책임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대는 점점 그렇게 발전하고 있으니 본인이 어찌 기쁘지 않을까.”
“난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없더라도 올라선 이상 의무라고 생각하라.”
위에 선다.
근래 들어 실감하고는 있지만, 반대로 정신적으로 피로해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런 책임에서 도망칠 생각도 없다지만 쌓이는 피로마저 어쩔 수는 없는 부분.
솔직히 말하자면 최근에는 좀 지쳤다.
무게를 잡는 것도,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것도. 특히 서주와 상대하면서 줄곧 어깨에 힘을 주는 건 고역이었다. 유비라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피로였고. 생각해보면 이번 임무는 정신적으로 피로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대는 잘하고 있다. 기대 이상이라고 하여도 좋겠지. 그러니 자부심을 품어라. 당당하도록. 적어도 본인은 그대의 활약을 높게 평가한다.”
그녀는 그 말이 끝내고 연이어 내 목에 입을 맞췄다. 말랑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렇지만 뜨거운 입술이 목덜미를 물고 살짝 빨아올리는 행동.
조조는 몇 번인가 그것을 반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상을 주고 싶으나 여기는 좀 그렇겠지.”
“당연한 걸 말하지 마쇼.”
“이 전쟁이 끝난다면 그대를 품겠다.”
아니, 품는다는 건 내가 할 말이 아닌가. 너무 당당하게 날 품겠다고 말하는데, 이걸 어디에서 딴지를 걸면 좋을지 모르겠네.
“그러니 죽지 마라.”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내 오른팔을 바라봤다. 여전히 붕대로 감아 부목을 댄 팔. 웬일로 아무 말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역시 주목하고는 있었나.
“별거 아냐.”
“사람은 사소한 일로 죽는다. 그러니 극상의 여체를 탐하고 싶거든 죽지 말도록. 그대가 죽으면 아무리 본인이라도 다소 적적할 것 같다. 슬플지도 모르지.”
그런 것치고는 제법 담담하게 말하는데.
물론 조조는 평소 표정 변화가 그리 많은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니 저 말에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몰라도 우선 고개를 끄덕일까.
“우선 할 말도 많겠지만, 하루 정도는 푹 쉬어줄 필요도 있겠지. 조홍을 따로 만나 손책을 잡았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 부분을 포함하여 내일 들을 터이니 오늘은 쉬어도 좋다.”
“예이, 알겠습니다요.”
장난스레 답하니 조조도 마주 보고 웃어주었다.
손책이라.
생각해보니 그 문제도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던가. 애당초 아직 깨어나지 못했으니 할 말도 없었다. 한 번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까.
* * *
연이은 연전과 강행군.
확실히 말해 서주군의 불만이 점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애당초 서주의 이익을 위한 전투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그나마 황제 폐하와 한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걸었기에 망정이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사기가 바닥을 칠 수 있었을 문제.
“저는 괜찮지만 병사들은….”
“그래?”
유비는 그런 말을 꺼내며 전호의 얼굴을 살폈다.
전에 보았던 진중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왜 웃느냐고.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는 것 같노라고 말했을 때의 표정은 유비의 심장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면 내가 가서… 서주목?”
“아, 죄송해요.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래?”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웃고 있지 않다고? 언제나 웃고 있는 얼굴을 보기는 한 걸까. 조금 심통이 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면 깊은 무언가를 자극당한 느낌에 웃을 수만은 없었다.
물론 겉으로는 언제나 웃고 있었지만.
“그래서 사령관님이 한 번 방문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조조군과 합을 자주 맞췄으니 과거 있던 반발은 좀 사라지긴 했으니까요.”
과거 서주는 조조와 정면에서 싸웠었다.
이번에 한 군이 되었다고 하여 적개심 자체가 어디로 갈 리는 없는 것. 몇 번인가 같은 전장에서 싸우며 조금 희석되었다 해도 완전히 사라질 것도 아니었다.
“……그건 내가 직접 군중을 방문하지 뭐.”
“그래 주시면 다행이죠. 중랑장께서 직접 오시면 병사들도 어느 정도 신뢰감이 쌓일 테니까요. 물론 연전에 관해서는 조금 조정이 필요할 것도 같지만요.”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유비는 그때까지 줄곧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버릇 중 하나였는데, 대화할 때 언제나 상대의 안색을 살피며 대응책을 생각하고는 했다.
“뭐요.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아뇨! 아무것도!”
“그럼 왜 그리 빤히 쳐다보쇼. 낯부끄럽게.”
그는 그녀를 상대로 하여 들이대는 일이 없었다. 남녀로서의 호감을 보이는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녀에게 어색한 태도로 움츠러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담백하게.
“아무튼, 그 문제는 내가 처리하면 되나? 그 외에 문제점은. 보급 관련해서는 우선 우리 쪽 꼬맹이한테 맡겨놓긴 했는데, 그쪽에서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제의해도 좋아.”
“그 부분이라면 괜찮아요.”
“그러면 우선 오늘은 쉬어두라고. 나도 이제부터 휴가야 휴가. 솔직히 댁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요즘 너무 많이 싸웠잖아. 좀 쉬는 날도 있어야지.”
내일부터는 다시 일이라며 장난스레 웃는 전호.
편하게 대해주는 건 좋았지만, 반대로 그녀가 지금까지 그런 편함을 느껴본 적이 드물어 어색하기도 했다. 관우나 장비 같은 의남매가 있긴 했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
웃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던가.
그녀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비 본인은 자신이 항상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미소. 그것을 싫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반대로 그렇게 웃는 동안은 패배한 기분이 들지 않았기에 선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그걸 웃음으로 보지 않았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서주목?”
“아, 네!”
“거 쉬자니까 갑자기 입을 다물고 그래.”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인다.
그는 결국 마지막까지 장난스러운 기색으로 편하게 그녀를 대해주었다. 떠날 때까지. 단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대해달라던 자신의 말을 존중하는 태도일까.
“하아…….”
그가 떠나고 난 뒤로 그녀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전호가 과거 했던 말은 그녀에게 있어 치부를 건드려진 것 같았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혹은 듣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가 들춰진 것만 같아 심경이 복잡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 나름 한을 존중하는 태도도 있었고 타인을 존중하는 남자였다. 거기에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살필 줄 아는 남자. 조조와는 아예 근본부터 다른 남자였기에 조조군에 있는 것이 어색해 보이는 사람.
“모르겠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탁자에 고개를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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