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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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군은 어쩌려나 몰라.”
주유라던 남자는 마지막까지 손책의 안전을 당부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사불란하게 물러나니 우리야 다행이지만, 정작 저쪽은 원술에게 군을 지원받았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은 잘 처리할 수 있을까?
당연히 원술도 지랄을 할 것인데.
하지만 그들은 손책이 아군에게 묶여있는 이상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아군을 적대할 수 없었다. 그러면 원술에게 받은 지원군의 거처 또한 불분명해지는 것인데.
나라면 어떻게 할까.
…………어우, 생각하기도 싫어.
“듣기로 아군 보병대와 직접 전투한 것은 원술의 군이라고 하니 그 부분은 알아서 하겠죠. 얼핏 군중을 살폈을 때 편성이 원술의 군과 손책의 군으로 나뉜 걸 보아서는….”
“보아서는?”
“뭐, 알아서 잘하겠죠.”
사마의는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떠올린 게 있는 듯하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으니 캐물을 생각도 없었다. 아군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말했겠지.
대신 사마의는 고개를 돌려 내 팔을 바라봤다.
“그것보다 아저씨 팔이 문제죠.”
“이 정도야 뭐.”
솔직히 말하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팔을 정확히 관통한 화살이 근육을 뒤틀어 당분간은 요양해야 한다던가. 그래서 지금도 천으로 감아 부목을 대고 있었다.
정작 태사자는 손책의 호위로 아군에 남았는데 말이지.
“동생. 고작 이 정도. 그런 말로 치료에 소홀하다가 죽은 전사가 몇인지 알아? 제대로 치료하는 게 좋을걸? 외팔 검사라는 칭호에 낭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을까. 안 그래도 약은 잘 바르고 있어.”
하여간 농담도.
아직 결혼도 못 갔는데 벌써 외팔이가 되면 어떡하나. 그런 결격사유가 생기면 좀 그렇잖아. 게다가 일단 장군이라는 놈이 팔 한 짝이 없으면? 어, 그러면 은퇴할 수 있나?
할 생각도 없지만.
“그나저나 보병대의 피해는?”
“크지는 않아. 정확한 숫자는 추산해봐야 알 수 있겠는데 그럴 시간은 없잖아? 일단 언니 쪽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
조금 추스르고 싶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은 없었다. 손책군을 예상보다 빠르게 물리쳤다고는 해도 시간에 쫓긴다는 건 전과 마찬가지니까.
“서주군은?”
“그쪽도 재정비에 한창이지.”
이 자리에서 오래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늦어도 모레. 그 이상은 투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번 전투는 두 달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귀에 못 박히게 들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군 전력에 큰 피해가 없다는 것인데.
하지만 서주군이 이 강행군에 고개를 끄덕일까?
기존 광릉에서의 전투에서 협조적이었던 그들의 모습으로 보아 아예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막 전쟁을 끝마쳤는데 바로 움직여야 한다고 하면 다소의 반발도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서주에 사람, 아니지. 이건 내가 갈게. 누님은 방삼이나 서황 데리고 보병을. 사마의는 보급품 관련해서 다시 점검해줘.”
“괜찮긴 한데, 그걸 동생이 직접 가게?”
“민감한 사항이니까.”
물론 내 말주변이 그리 좋다고 자부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총사령관이 직접 방문하여 말하는 게 성의라도 느껴지지 않겠나. 물론 유비를 상대하는 건 다소 피곤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를 보내는 것보다야 낫겠지.
“아저씨. 그러라면 저도.”
“괜찮아. 어차피 군의 행보를 앞당긴다는 통보니까. 그 통보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건데, 그런 쪽에서 말실수할 정도로 내가 못 미더우냐?”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지, 뭘.
구태여 사마의까지 대동할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라면 관우나 장비, 제갈근 같은 그녀의 측근. 유비야 내 예상보다 아군에 협조적이라 당황스러웠지만, 그들까지 그런 강행군에 고개를 끄덕일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나라도 타군의 전쟁에 끌려와서 이렇게 개처럼 구르라고 하면 반발하겠다. 그들이라고 전쟁 끝나자마자 바로 움직이고 싶겠나.
툭 까놓고 말해 나도 싫은데.
그래도 어떡하냐. 나라의 녹봉을 먹고 있으니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단지 안타까운 건 화살에 꿰인 팔이 계속 욱신거리고 있다는 걸까. 부상한 상황에서도 일은 멈출 수 없다는 게 조금 슬펐다.
* * *
종소리가 울린다.
해가 저물어 새까만 어둠이 내리깔린 심야. 횃불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한 어둠을 배경으로 종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밤.
“조, 종소리. 종소리가 계속 들린다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잖아. 이 시발, 자꾸 그렇게 겁줄래?”
횃불에 의지한 조조군의 진영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었다. 수춘의 거성 부근에 자리 잡고 난 이후로 줄곧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니.
짤랑거리는 종소리는 죽음의 선고.
그 소리를 들으면 끝.
밤의 어둠을 틈타 귀신이 다가오며 종소리를 울리노라는 소문은 이미 조조군 내에서도 팽배하게 퍼져있었다.
“아니, 진짜 들렸다고!”
“좀. 시발 진짜. 이래서 신병 새끼랑은 경비를 서면 안 되는데. 십인대를 바꿔 달라고 해야 하나. 무슨 종소리가 들렸다고. 봐! 아무 소리도….”
짤랑.
종소리가 한 번.
떠들던 보초들이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들은 숨소리도 멈추고는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돌렸다.
짤랑, 짤랑짤랑.
“……저, 적습이다!!”
어둠을 틈탄 암살자.
병사들이 채 외치기도 전에 어둠을 뚫고 수십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 빠르게 달려들어 소리치는 병사의 목을 가르고는 곧장 진영을 향해 달려든다.
“막아라!! 진영 안으로 헤집고 들어오게 두지…!!”
외치던 장교의 목에 비수가 꽂혔다.
전신에 검은 옷을 두른 이들은 그렇게 밤을 틈타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가로막는 모든 이들을 죽이고 조조군의 막사에 불을 지핀다.
큰 소란으로 번진다 싶으면 조용히 퇴각하길 반복.
얼마나 경계해도 소용이 없었다. 고작 수십의 무리로 구성된 이들은 항상 밤을 틈타 조조군 진영에 불쑥 난입하여 그 근방 보초들을 전부 살해한 뒤 막사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기를 반복할 뿐.
그들이 다가올 때마다 종소리가 들렸다.
하여 병사들 내에서는 죽음을 알리는 종이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의 소행이라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으니.
“또 야습인가?”
“예, 조공.”
진궁의 보고를 받은 조조가 머리를 감쌌다.
“경비 태세를 세 배로 늘렸다. 횃불 또한 사방으로 깔아두었는데 또 당했다고. 어이가 없군. 이 정도면 정녕 귀신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야간에 보초 설 병사도 없네요. 전부 죽을 거라며 야간 보초를 극도로 꺼리고 있는 데다가 군중에 소문으로 돌기 시작해서 사기에도 영향이 가고 있어요.”
많은 수도 아니었다.
목격담에 의하면 고작 수십. 많아도 백은 안 될 이들에게 조조군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잠입하여 막사를 비롯해 군영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기를 반복.
그것이 벌써 일주일이나 이어졌다.
“원술군은 맞겠지.”
“수춘성과 대치한 이래로 계속 이런 일이 생기니 그건 분명하겠죠. 문제는 너무 신출귀몰하여 감히 잡을 방법이 없다는 건데.”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방향을 가리지 않고 암습해온다는 것이었다. 한쪽의 경비를 강화한다고 해도 다른 쪽이 뚫린다. 사방으로 경계를 강화해도 보란 듯이 뚫어내고 유유자적 물러간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조공은 귀신을 믿으시나요?”
진궁의 질문에 조조가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있는가? 귀신 같은 건 전부 미신이다. ……그렇지만 상황이 이리되니 귀신을 찾게 되는군. 이건 본인의 약함일런가. 하지만 그만큼 적이 신출귀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막을 수 없는 야습.
소수로 이뤄졌기에 찾아내기 더욱 곤란한 감이 있었다. 조인과 하후돈, 하후연 등 조조군에서 내로라하는 장수들을 전부 동원하여 경비에 동원했으나 그들의 털끝 하나 확보할 수 없던 것이 현실.
“보초 말고도 순찰부대를 따로 운용하고는 있지만, 아직 큰 소득은 없네요. 이대로 경비를 강화한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야 아군의 피로가 누적되겠지.”
어떤 의미로건 당한 셈이었다.
게다가 대범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과시하기 위함인지 적의 수령은 종을 들고 다닌다고 하였다. 움직일 때마다 종소리가 들렸는데, 오히려 그런 행동으로 병사들에게 명확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 될 수 있었다.
종소리는 죽음의 소리다.
귀신이 방문할 때는 언제나 종소리를 수반한다.
그렇게 한 번 구체화한 괴담은 아군 진영 전체로 퍼져나가 사기에 악영향을 끼쳤다. 조조는 자리에 앉아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가 아프군.”
“우선 더 피해를 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야간 순찰부대를 늘리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계속 방치하다가는 자칫 큰 피해로 번질 수 있어요.”
“알고 있다. 그러나 입맛이 쓰다는 것도 사실이지.”
소수를 활용한 최대의 전과.
적이지만 감히 손뼉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줄 수도 있었다. 대범하게 종을 울리며 다가오는 것도, 그 뒤의 전공도. 하나같이 굉장한 전과였다.
하지만 당하는 처지이니 그럴 수만도 없는 일.
“순찰부대를 늘리는 것도 좋다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조금 진영이 번잡해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각 군을 최대한 밀집시키도록.”
“괜찮을까요?”
“적은 아군의 규모가 커 부대를 여럿 분산시킨 틈을 노리고 있다. 배치에서 다소 혼잡을 빚겠으나 그 정도도 못할 만큼 약한 군대였는가?”
진궁은 그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대의 대열과 구분은 전쟁 직전에도 바로 맞출 수 있었다. 적이 계속 소수로 아군을 흔든다면 하나로 뭉쳐 대비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어쩔 땐 가장 단순한 방법이 최고의 책략일 때가 있었다.
“소수에 휘둘리는 것이 달갑지는 않군.”
“소수의 정예를 뛰어난 장수가 지휘하여 습격한다. 무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전략을 자연스럽게 이행했네요.”
물론 군의 규모를 보아 큰 피해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 야습으로 인한 사상자라고 해도 백 남짓한 정도. 방화 또한 중요한 시설이 불탄 것이 아니었기에 피해가 크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기가 문제였다.
군에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그것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크기를 부풀려가며 병사들에게 각인되고 말았다. 이제는 자체적으로 그 움직임을 틀어막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오늘 오후에 한 편 더 올라오거나 내일 두 편으로 올라올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