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83화 (283/343)

28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내부 잠식 황실에서는 한바탕 파란이 일고 있었다.

역모 모의. 그것도 공판장이 발각되었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게다가 연루된 것이 어디 시정잡배가 아닌 황족 중에서도 어르신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을 포함된 것.

사실상 영향력 크던 황족이 엮여버렸다.

“상서령은 그리 말했지만.”

유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족을 비롯하여 조조의 반대세력이 많이 엮였다. 물론 정말 다수의 인물이 엮인 것은 아니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조조와 반목하던 이들뿐.

명분은 있었다.

조조가 비호하는 자신. 그런 조조와 반목하는 그들. 그들 역시 공공연히 황제의 친족 관계에서 꽤 가까운 사이였기에 자신만 없어도 차기 황제를 노릴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지만 시기가 너무 모호했다.

“상시.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들의 입장으로 보자면 대장군이 공백인 지금이 적기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겠사옵니다. 거기에 원소의 공판을 돌리고 있었으니 죄질은 명백합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소녀는 영 찝찝했다.

물론 유협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는 조조의 집권에 경계하는 이들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다. 현 황제인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조에게 권력이 쏠리는 걸 경계하던 이들도 분명 있던 것.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증거는 너무 명명백백했다. 아무리 무죄를 논하고자 하여도 증거가 현장에서 발각된 이상에야 반박할 근거도 없는 것.

“……일단 구금하는 걸로 해야겠네.”

“상서령은 처형을 상소하였습니다.”

“그야 상서령은 그렇겠지.”

그들은 전원 조조와 반목하던 이들이었으니까.

물론 의심에 지나지 않았다. 일 자체는 굉장히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으며, 구금당한 황족의 휘하 사병들이 무장하여 황도 인근까지 진격하였으니 구명할 길도 없었다.

모든 것이 황족의 과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어떤 의문점 하나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유협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사전에 짜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자연의 이치와도 같이 흠잡을 곳 하나 없게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

그걸 어디까지 진실로 받아들이면 좋을까.

조조와도 어차피 정치적인 동행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황제라는 이는 천하에 오직 한 명으로 올라서야만 하는 존재.

그때가 되면 조조는 그걸 용인할까.

지금까지는 썩 나쁘지 않은 동행이었다. 물론 모든 공무가 조조 위주로 돌아가기야 했지만, 당장 가진 것 없는 황제에게 발언권을 줄 제후가 더 희소할 것. 그렇지만 이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상서령이 주도하는 반란의 진압.

이것이 성공리에 마무리된다면 장차 허도에서 조조를 견제할 세력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유협은 마음 같아서는 그들을 용인하고 싶었지만, 하필 허도 내에서 무장한 이들을 이끌고 상서부로 쳐들어간 것이 문제였다.

공판이라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황도 내에서 무장한 사병이라니.

“하여간, 되는 일이 없구나.”

“폐하.”

물론 황족 또한 유협의 경쟁자였다.

소녀는 자신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음을 익히 알았다. 그것이 황족에게는 도전할 구실이 될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 위험이 현 조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만일을 대비해 조조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는 건 소녀의 머리를 아프게 하기 충분한 일. 게다가 조조가 없는 틈을 탔다고 하면 명분에서도 조조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쏠릴 일도 없었다.

지나치게 완벽했다.

“……상서령에게 명하라. 처형은 안 된다.”

“하옵시면.”

지금 그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할 수는 없었다.

황제가 직접 나서 황족을 처분했다는 오명이 씌워져서는 안 됐다. 그래서는 장차 어떤 황족이 안심하고 유협의 곁으로 모일까. 조조 세력의 팽창을 견제하려면 황족은 반드시 품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상한 것이어도.

“현재 제국은 미증유의 위기이노라. 황제의 말은 천하에 닿지 않고 무도한 반역자는 제국의 이름을 빙자하여 제 나라를 세우겠노라고 떠들지. 그런 상황에 자국 내에서까지 피를 흘린다면 장차 내부에도 혼란이 번질 터.”

우선 이렇게 말해두면 충분할까.

상서령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황제가 직접 말하는데 거역하지는 않을 터. 우선 그들의 생사여탈권은 조조에게 일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유협이 한숨을 내쉬며 상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리되는 대로 상서령에게 보내거라.”

“예, 폐하.”

이렇게 모든 걸 정리하고는 유협은 옥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는 옥좌의 감촉. 소녀는 그것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여전히 정세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북쪽의 원소는 여전히 기세가 좋았고, 남쪽으로는 반란을 일으킨 원술의 군이 도사리고 있었다. 게다가 서쪽으로는 구 동탁의 세력이 남았으니 황제가 의존할 곳은 오직 조조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

그녀가 진정 역사에 기록될 구국 충신이라면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역천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그때 자신의 목숨은 어찌 될까.

이 한의 명운은.

“상시. 그것이 끝나는 대로 나가보도록.”

“하오나 홀로 계시면….”

그의 말에 유협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짐을 알현할 이도 없노라. 기껏해야 동승이나 황족 정도인데, 만나봐야 오해를 풀고 황가의 어르신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떠들기밖에 더할까.”

황도에서 사병을 무장시켜 진군시켰기에 이미 끝난 일이었다. 공판장 하나라면 어떻게든 무마하고자 손을 썼겠지만, 대놓고 병사를 움직였는데 그들을 어찌 구원할까.

“……이야기는 이야기구나.”

소녀에게 낙양과 장안은 새장이었다.

자신은 갇혀있는 작은 새. 그렇기에 그 새장의 문을 열고 나오면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간 보지 못했던 세계에서 조금은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이곳 역시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조조는 그들처럼 자신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천하 그 누가 모를까.

조조는 황제의 이름을 등에 업고 군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실무를 그녀가 차지한 시점에서 황제는 이름뿐인 장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새장의 바깥이 또 다른 새장이었노라고.

그러하면 과연 이 세계는 진정 자유가 존재하는 곳은 맞는가. 사실 이 천하 전체가 커다란 우리였노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 * *

소연은 집무실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엮고자 했던 모든 이들을 엮어 감옥에 넣었고,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유재산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국고로 압류했다.

그녀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자금이었다.

역적을 토벌하고자 하여 움직일 때도 국고가 허덕였는데, 정작 황족이라는 이들이 그만한 재산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상서령, 폐하는 어떻게 하죠?”

“별수 있겠니. 구태여 죽여달라고 압박하면 반발이 생겨. 기왕이면 폐하께서 직접 역적을 처벌하는 게 나았을 텐데.”

조조의 손에 황족의 피를 묻히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황제에게 강압적으로 황족 처결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 안타깝지만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다가는 되려 체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이 정도로도 충분할 터.

“운이는?”

“잔당 토벌이죠. 허도 외곽에도 연을 맺은 무장세력이 있다고 하여 그 토벌에 나섰어요. 뭐, 사실 무장세력이라고 해도 거의 도적 떼지만요.”

“걔라면 잘해낼 거야. 그러면 우리는 내부의 일을 처리해야겠는데, 그동안 나와 만나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 않았니?”

곽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안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동안 간을 보던 이들이 하나씩 조조의 손을 들기 시작했다. 대장군이 자리를 비웠으니 다음 가는 실권자는 상서령인데, 마침 이 일을 처리한 것도 상서령이니 직접 연을 잇고자 하는 상황.

“말도 말아요. 내무가 잠시 마비되었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니까요. 게다가 상서령이 아직 미혼이니까 결혼 관련된 건 또 얼마나…….”

“결혼 문제는 다 거절해.”

“알고 있다니까요.”

순간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고, 곽가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어차피 그럴 것을 알았기에 혼담은 전부 물렸지만, 평소 감정표현을 극구 삼가던 그녀가 저리 도드라지게 반응하는 게 웃기기도 하였다.

그럴 거라면 그냥 자빠뜨리라니까는.

곽가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면 우선 쟁취하는 게 기본 아닌가? 중랑장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도 않은데 무얼 망설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사적인 일로, 그녀 개인의 문제.

“일단 명부는 작성했어요. 혼담이 아니어도 좋으니 한번 뵙고 싶다는 이들도 추렸으니까 그중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로 만나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실속있는 이들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런 지지도 모이고 쌓이면 이윽고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변하게 된다. 황제가 아직 어려 대외적인 활동에 제약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런 이들을 모아두어야만 했다.

“나중에 확인할게.”

“그런데 상서령은 이 한나라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곽가의 질문에 소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조공에게 여쭤봐야지.”

“상서령도 무언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리 필사적인 거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 내부적으로 너무 바쁘게 움직였어요. 필요에 의한 일이라고는 해도 너무…….”

필사적이었다.

곽가가 지금까지 바라본 소연은 마치 장작과도 같게 보였다. 제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앞으로 내달리는 모습에서는 약간의 광기도 엿볼 수 있는 부분.

“그러네.”

소연은 그 질문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바라는 건 있어. 그렇지만 그건 나라의 이름과는 무관한 것이니까. 통치만 올바르게 이행된다면 분명 쟁취할 수 있는 종류라고 생각하거든.”

“굉장히 두루뭉술하네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

애초에 목적 자체가 두루뭉술하였다.

천하의 평화.

구체적인 형태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의 평화를 바란다. 그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솔직한 말로 그녀 자신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해야만 했다.

그걸 누구보다 바라는 이가 있었으니까.

자신은 그런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니까.

이 모든 행동을 결국 한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 단지 한 사람만을 위해 흘리는 피. 그 모든 게 정리되면 세계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할까.

소연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끝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원래 역사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고는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역사가 틀어지고 있었다. 조조를 완전한 승리자로 내세우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

지금은 현실에 집중해야만 했다.

“황족들에게서 압류한 것들은 전부 물자로 바꿔.”

“수춘으로 보내시게요?”

“그쪽은 쌀 한 톨이라도 아쉬울 때니까.”

“하지만 전쟁과 관련된 모든 물자의 시세가 올랐어요. 저희가 급하게 매수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보낸다고 해도 많이는 못 보낼걸요?”

그걸로도 충분했다.

이번 전쟁은 조조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한 전쟁. 그러니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행하여 나쁠 게 없었다.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 전쟁이니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계속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상황.

“우선 진행해.”

“예이, 알겠습니다요.”

곽가는 장난스럽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떠났다.

홀로 남은 집무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팔이 떨리고 있는 걸 느꼈다. 팔 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조금씩 떨려온다. 그녀는 홀로 남을 때마다 가끔 몸을 떨고는 했다.

트라우마일까.

그나마 누군가 곁에 있으면 떨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안심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런 정신적인 장애를 안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한심하긴….”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소연은 잠시 눈을 감고서 숨을 골랐다. 이제부터 아군에 지지를 보낼 이들을 만나야 했고, 황족을 찾아가 이 사건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했다.

그러니 잠시만.

그녀는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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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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