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서곡양 전투 가로막은 태사자의 말을 코웃음과 함께 일축했다.
“농담도 적당히 하도록.”
“제가 원했다면 당신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말에 눈만을 치켜뜨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협박이더냐?”
“저는 단지 주군의 안위만을 생각할 따름입니다. 부디 그 부분을 잘 헤아려주십사 간절히 간청합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면 아군은 결코 중랑장께 적대하지 않을 것이니 부디.”
이 작자의 직위를 모른다.
군에서의 입지 또한. 여러 정보가 있었지만 태사자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미흡했다. 그러니 이 말을 순순히 믿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아군 역시 전쟁을 계속 치를 여유가 없었다.
주유라는 남자와 손책이 의형제로 이어졌다는 건 정보에도 있었던가. 물론 손책이라는 수장까지 잃은 저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는 모르겠으나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고 싶은 것도 분명 사실이었다.
태사자는 제 손에 들린 검을 바닥에 던졌다.
“……부디 자비를.”
“날 죽이고 도망친다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다고 하여 이 전장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습니다. 주군께선 너무나도 큰 부상에 처하셨으니, 설사 당신을 죽인다고 하여도 이 많은 병력을 뚫고 빠져나갈 방도가 없지요.”
논리적으로는 당연한 말이었다.
설사 내가 죽는다고 하여 전선에 큰 차질은 없다. 손책과 상대하는 동안의 지휘권은 전부 사마의에게 일임하였으니 내 공백이 있더라도 군은 무너지지 않겠지.
어차피 손책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쯧.”
앞으로의 전쟁과 손책의 목숨을 저울에 올린다.
손책을 잡는다면 앞으로의 전쟁이 한결 편해지겠지. 그렇지만 아군 역시 이 전쟁에서 너무 많은 걸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적이 물러나리라는 확신만 있다면 우리도 괜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으니.
“좋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옵시면.”
“대신 손책의 신병은 아군이 맡는다.”
그 말에 그의 표정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손책이라는 인질을 잡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한 번 물러났다가 수춘에서의 전투 도중에 갑자기 후방을 교란당해서야 참을 수 없으니까.
“아군에는 꽤 괜찮은 의원이 있다. 당장 죽기 일보 직전이니 이곳에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면 뭐냐. 너희 쪽에는 그럴듯한 의원이 있나?”
“……이건 제 독단으로는….”
“싫으면 마라. 손책은 이곳에서 죽는다.”
저들의 지휘는 분명 주유라는 남자가 맡는다고 들었다. 그러면 손책이 아군의 손에 떨어진 시점에서 쉬이 군을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걱정하지 마라. 실력 있는 의원이 있다는 말도 진실이니까. 아군에서 매번 다치는 인간이 있어서 의원만큼은 허도 내에서도 알아주는 이가 동반했다.”
그게 나라는 게 슬플 따름이지.
소연 아씨는 매번 다쳐서 돌아오니 아예 허도에서 이름난 의원을 내게 붙여줬다.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전과가 있어 거절하기도 힘들잖아.
“동의한다면 무릎을 꿇어라. 그걸로 전쟁은 끝이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좋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을 돌리면서도 고개만 살짝 돌려 뒤를 바라봤다. 혹시나 덤벼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끝까지 손책의 곁을 지킬 뿐. 하면 나도 약조는 지켜야겠지.
“전군, 전투 중지!! 전쟁은 끝났다!”
배에서 끌어내어 크게 외치며 이 전쟁의 끝을 알렸다.
* * *
사마의는 모든 게 마무리되자마자 곧장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저씨, 이게 무슨.”
“의원 나리는 어디 있냐.”
“의원은 갑자기 왜….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당황하여 외치는 소녀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문제가 아닌데, 정작 저기에 당장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이 있으니까.
“우선 의원을 불러오고 전방으로 사람을 보내라. 종전을 알린다. 태사자, 너의 역할은 알고 있겠지.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도 좋으니 상부에는 잘 말해두어라.”
“반드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손책이 우리 쪽에 있을 테니까.”
픽 웃었더니 놈의 표정이 와락 찡그려졌다.
그래서 어쩔 건데. 어차피 아군 내에 손책을 억류한 이상에야 놈들도 별 방법이 없을 터. 만약 손책이 죽더라도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면 좋다.
손책을 잡은 이상 아군에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태사자는 마지막까지 고개를 숙이고는 아군 나팔수와 기병을 데리고 전선으로 달려갔다. 이전도 함께 보냈으니 아군과 맞닥뜨려도 괜찮겠지.
“아저씨.”
“손책을 잡았다.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끝내자는 의견인데, 놈이 돌아오는 걸 보고 상황을 판단해야겠지.”
우선 전쟁이 멈춘다는 것만으로도 나쁠 것은 없었다. 물론 저 앞 본대 간의 전투에서는 아군이 우위에 섰을 테니 아쉽기도 하겠지만, 이걸로 손책이 이끌던 군이 전선에서 이탈한다면 아군으로써는 호재였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믿을 수 있나요?”
“저항한다면 수장 잃은 손책군을 그대로 짓밟는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지. 역으로 손책을 사로잡은 이상 뭘 해도 손해는 아니지 않나?”
“일단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네요.”
우선 오늘은 양군이 물러나는 거로 정리될 터. 어떻게든 막아냈다지만 아군 사령부의 병력도 크게 상해버렸다. 오늘은 우선 손책을 살려두면서 아군의 피해를 수습하는 것으로 일단락하는 게 좋겠지.
“그러니까 손책은 반드시 살려.”
“알고 있어요.”
손책은 앞으로 꽤 중요한 요소가 될 터.
그녀를 포로로 하여 적어도 원술 토벌이 끝날 때까지는 붙잡고 있어야 놈들의 움직임도 억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총력전을 피해 수춘으로 갈 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가 아닌가.
“후우….”
“아저씨도 상처를 살펴야죠.”
“먼저 손책이다. 나까지 신경 쓰게 할 순 없지. 어차피 크게 베이지도 않았으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팔뚝에 화살이 꽂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원을 내게 돌릴 수만도 없는 일. 이건 적당히 붕대로 감아두면 그만이겠거니 싶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도 사마의는 고개를 돌려 이전에게 의원을 호출하여 손책에게 붙여달라 부탁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옷부터 벗기려는 게, 아니 그런데 거기까지?
바깥에서 바지까지 벗기려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야야, 바깥! 아니 왜 자꾸 옷을.”
“저도 의학에 다소 조예가 있어요. 의원분들과 비교하자면 분명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아저씨의 상처 하나 못 볼 정도로 얕게 배운 건 아니라서요.”
“아니, 여기는 바깥이잖아.”
적어도 그런 건 안에서….
…라고 할 것도 없나.
안이라고 할 것이 없어져 버렸다. 내 지휘부였을 막사는 전투의 여파로 무너져버린 걸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염병할.
그러는 사이 사마의가 내 팔을 붙잡고야 말았다.
“……이건 뭔데요.”
“별거 아니라니까는.”
일부러 감춰두려고 한 걸 벌써 들켰네.
사실 안 들키는 게 더 이상하지. 억지로 화살을 뽑아 여전히 팔에서는 핏물이 울컥거리며 흐르고 있었으니까. 팔을 등 뒤로 감춘 게 부자연스럽게도 하고.
“……누구예요.”
“아서라. 여기서 괜히 불화 일으킬 필요 없다.”
당분간 오른팔을 쓰기에 불편이 있겠지만, 손책에게 입힌 상처에 비한다면 약과. 게다가 이번이 특수한 경우로 평소에는 전선에 나설 일도 없으니까. 물론 처치는 해야겠지만 당장 급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가 별거 아니에요? 팔에 구멍 하나 내놓고서는. 됐으니까 이리 와요! 자꾸 별거 아니라고 사람 속이기만 하고. 소연 아가씨 말이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게 괜히 열 받잖아요.”
“뭐냐. 소연 아씨가 또 뭐라고 했어?”
사마의는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상처를 바라볼 뿐. 지금 보니까 좀 흉하기는 하네. 동그랗게 뚫린 상처에서 핏물이 자꾸 왈칵이며 쏟아지는 게 좀 징그럽기도 하고.
“……약을 받아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요.”
반박할 말도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저 꼬맹이가 저럴 때마다 잔소리꾼을 하나 옆에 둔 것 같았다. 그치만 나 잘되라고 하는 말에 토를 달기도 뭣하니까.
단지 가슴 한편에 근질거리는 감각이 영 껄끄러웠다.
* * *
전장에서 양군은 잠시 물러났다.
“……그런가.”
“송구합니다.”
태사자는 지면에 머리를 박으며 조아렸다. 어찌 되었건 부관이 되어 군주의 안위를 돌보지 못한 것은 분명한 패착. 불충도 이러한 불충이 없노라고 저 자신을 자책했다.
주유는 그런 그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걸 장군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애초에 무리한 작전이었다. 장군의 말도 알겠으니 우선 돌아가 푹 쉬도록.”
“허나 주군께서….”
“놈들도 손책의 가치는 잘 안다.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우선 오늘은 군을 재편한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함께 갈 것이니 오늘은 푹 쉬도록.”
주유는 그리 말하며 태사자를 물리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 작전은 상당히 위태로우나 성공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전세를 이쪽으로 가져올 수 있던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도박이기도 했으니, 결국 도박에서 패한 것은 손책과 자신이 되었다.
“……후회해도 부질없는 짓이겠지.”
그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책이 크게 다쳤다고. 분명 저들도 생각이 있다면 그녀를 살리고자 필사의 노력을 다할 것이고 지금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정말 문제는 앞으로 있을 일.
그녀가 붙잡혔으니 아군도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다.
“원술에게 받은 군을 따로 배치해야겠군.”
저들이 바랄 것은 이 전장에서 손책의 군이 물러나는 것. 그렇다면 원술에게 지원받은 군이 되려 방해가 될 터. 그러니 그들은 협정이 끝나는 즉시 죽여야만 했다.
머리가 아파 왔다.
이미 손가의 군은 한 번 수장을 잃었다. 그걸 손책의 무력 하나만으로 재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수장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손가도 더는 일어날 힘이 없을 터.
“……손책.”
차라리 반대할 것을.
그러나 지금까지 손책군은 그녀의 무력을 근간으로 버텨왔고, 또한 그 무력에 기대어 승승장구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유 또한 그녀의 무력에 절대적으로 기대왔던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기형적인 형태라는 걸 주유도 알고 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도 알고 있었겠지.
군주가 되어 최전방에 선다는 게 어떤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손견 때부터 이어진 손가의 전통이라고 하나, 곰곰이 생각하면 이보다 더 기형적인 형태의 군도 없었다.
그걸 수긍하고 만 것이 패착.
손견 또한 최전방에 직접 선 대가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손책마저 그런 형태로 잃을 뻔했다. 은연중에 여포를 제외하고 손책을 이길 자는 없을 거라고 판단했고, 그렇게 믿고 싶었기에 손책의 자신감에 기대고 말았다.
주유는 제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건 그녀의 참모를 자처하던 자신의 패착. 설령 손책 본인이 원했다고 해도 참모라면 절대 안 된다고 말려야만 했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
부디 살아남아라.
목숨만 있다면 다음 기회는 있었다. 손가의 부흥과 군의 존속. 그 모든 것은 손책이 살아남은 다음에야 논할 수 있는 것들.
주유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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