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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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기병을 아무리 억제한다 하여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빠르고 신속하게 중랑장의 목을 거둔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빠른 퇴각으로 전열을 다질 수밖에 없는 전장.
중랑장이 도망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으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검을 아무리 빠르게 휘둘러보아도, 자세를 비틀어가며 빈틈을 찾으려 해도 도무지 벨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익, 이, 좀!!”
분명 상처는 냈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상처가 없었다. 그의 팔뚝, 허벅지, 옆구리. 제법 많은 곳에 얇은 자상을 입혔으나 그게 사망으로 이어질 상처들은 아니었다.
묵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과도한 움직임에는 오히려 반격을. 하여 손책 역시도 복부를 얕게 베였고, 결과적으로는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손책의 기병은 보병에게 묶여 쉬이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런데 적 사령관의 목도 쉽게 벨 수 없는 상황.
손책과 주유의 예상 이상으로 적의 반격이 거셌다. 특히 중랑장 개인의 무력 역시 손책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것.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지만, 저렇게 수비에 집중하며 철저히 견디고자 한다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게 자꾸!!”
그녀는 마치 늪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검과 검을 맞대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럽게 힘을 흘린다. 강으로 접근한 공세도 물론이거니와 유하게 돌리면서 베어낸 것도 전부 흘려넘기니, 마치 상대의 공격을 흘리면서 빈틈을 계속 주시당하는 기분.
물을 베는 감각이 이럴까.
오직 이것만을 단련한 사람처럼 너무나도 쉽게 방어 일변도를 구사하는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말뿐인가. 아비를 위한 복수가 고작 이거냐.”
“아직, 시작도 안 했어!!”
크게 뛰어올라 그대로 체중까지 실어 내리쳤다.
재차 철이 맞붙는 소리가 전장에 울린다. 분명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휘청일 법도 하건만 이 남자는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빠르게 검을 틀어 바로 그 방어를 벗기려고 해도.
“칫!”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나는 손책.
치켜든 검과 맞대는 와중에 살짝 틀어 몸통을 찔렀다.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몇이나 되는 무장을 죽이고, 또 몇이나 되는 이들에게 큰 부상을 안겼던가.
변칙 중에서도 변칙.
그러나 그마저도 살짝 몸을 틀어 피해버리는 전호를 바라보며 손책은 이를 빠득 갈며 재차 앞으로 나섰다.
“날 이길 생각이 없어? 적을 죽이겠다는 마음은!”
“왜 구태여?”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아군 진영을 헤집으며 균열을 일으키던 손책을 막는다. 몸소 직접 나서 병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였지 이 자리에서 직접 손책을 죽일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방어에만 집중한다.
과거 실력이 미진하던 시절에도 여포를 상대로 조금이나마 버텨냈던 전적이 있었다. 그 본능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하는 실력만큼은 여포라는 지고의 무인에게도 인정받은 능력.
전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손책을 향해 조소했다.
“손견은 이렇지 않았다.”
“당신이… 아버지를 논하지 마!!”
이것이야말로 부녀의 차이.
손견은 노련미가 있었다. 전호가 방어로 임하고자 한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격해왔다. 몸을 비틀어 통상적으로 경험할 리 없는 경로로 검을 휘둘러 그의 직감을 흐트러뜨린 것.
손책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녀의 강점은 속도와 역동적인 움직임. 그러나 속도만이라면 전호 또한 어디서 쉬이 밀리는 인물이 아니었고, 역동적이라고 해도 검의 경로는 정직하여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손책은 쉽게 흥분했다.
지금도.
“윽!!”
정직하게 종으로 베어오는 것을 칼집으로 흘려버리며 검을 휘두른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녀는 옆구리를 살짝 베이고 두 발짝 물러났다.
저만한 속도에 현란한 몸놀림. 거기에 힘까지 겸비했으니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런 식으로 단순한 공격을 이어나가선 안 됐다.
처음에는 빠른 몸놀림을 기반으로 공중에 뛰어오르며 마치 묘기와 같은 몸놀림을 선보였으나 이제는 그저 단순하게 앞으로 달려들며 검을 휘두를 뿐. 그는 손견의 이름을 언급하며 살살 그녀를 자극했을 뿐이었다.
고작 그것.
그 하나로 손책이라는 무장이 이리 쉬운 상대가 되었다.
“머리에 피가 끓었냐.”
그는 거기서 공세로 나아갔다.
한 발짝 앞으로. 호흡을 짧게 끊어치며 숨을 내쉴 때마다 검을 휘두른다. 사선으로 내리긋는 공격 이후, 바로 팔을 비틀어 다시 반대편으로 이어가는 공격.
변칙적인 검술의 끝.
이것은 과거 손견이 그에게 행했던 방식이었다.
“크, 이, 으윽!!”
갑작스러운 공세에 밀린 그녀가 배를 크게 베였다. 배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날 틈도 없이 연거푸 공세를 이어나간다.
“그렇게 원망스러웠냐. 그래서?”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손견의 복수를 부르짖으나 지금의 그녀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이성의 끈을 놓으면 행동이 단조로워진다. 분노를 힘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
그녀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캬흑!!”
목을 노리고 내질러진 검을 피하려던 그녀는 전호의 발길질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배에 치명상을 입어 행동이 둔해지고 힘이 떨어진 그녀에게는 그것조차 피할 길이 없는 것.
그런데도 그녀는 재차 검을 부여잡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도 눈은 또렷하게 그를 응시한다. 입가에서는 침과 피가 뒤섞인 것을 흘리면서도 힘겨운 발자국을 내디딘다.
“멍청하긴.”
과거의 자신이 저랬노라고.
그는 힘겹게 일어나는 손책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더 보고 있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똑바로 응시했다.
동족을 보는 기분이었다.
전호도 과거 여포를 바라보던 마음이 딱 저랬다. 내 부하들. 그러면서 가족이라 생각했던 이들을 개처럼 죽인 여포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여 원수라고 생각했다.
사실 전부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그게 당연하다는 것쯤 어찌 모를까. 전호 본인도 그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데. 자신도 그녀의 부하를 죽였고, 하여 그녀도 그의 부하를 죽였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본인이 죽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어찌 쉬이 납득하겠는가.
“마음은 이해한다.”
“……닥쳐.”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한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손으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의 출혈이 계속 흘러나왔다.
“너의 분노는 정당하다.”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야.”
비틀거리면서 한 발짝. 그러나 복부에 난 자상이 너무 커서 걷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향해 올곧게 다가오는 그 정신력만큼은 인정해야 할까. 그는 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들었다.
정당한 복수도 힘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
세상의 논리가 그러하였다. 아비의 죽음을 초래한 적에게 도전하였으나 결국 패배했고 이 자리에서 스러진다. 이제는 자꾸 닫히는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손책을 향해 그는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런 거….”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이 슬픔과 울분을 누군가에게 되갚아주고 싶었다.
자신을 짓누르는 감정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서. 손견을 떠나보낸 이후로도 자꾸만 자신을 좀먹는 짜증과 분노를 누군가에게 풀고 싶었을 뿐.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너희만.
슬픔과 절망, 그리고 그리움이 전부 뒤섞여 이름도 없는 질척한 감정으로 변했다. 손가는 손견의 죽음 이후 과거의 이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몰락했다.
그러나 아비의 죽음을 초래한 이들은?
조조는 한의 대장군이 되었고 전호라는 이는 중랑장이 되었다. 그 소식은 무럭무럭 크기만을 키워가던 새까만 감정에 방점을 찍어버렸다.
아버지가 죽고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신과 승승장구하는 원수. 그걸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렇기에 무리해서라도 그 복수를 직접 끝내고 싶었다.
그러면 이 감정도 끊어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억지를 부렸다.
주유는 이 책략을 긍정하지 않았다. 성공한다면 확실히 이길 수 있겠으나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잃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하여 여기서는 차라리 시간을 끌며 지구전으로 준비하자던 그에게 부탁한 것은 그녀 본인이었다.
최고의 전장을 마련해주었다.
그런 의남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 없으니까.
“……아직.”
하여 끝나지 않았다고.
그녀는 억지로 한 발짝 떼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 행동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고, 자꾸 흐려지는 시야로 그의 모습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도 없었다.
전호는 그 광경에 눈을 감았다.
아비를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그 딸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쳐야 한다는 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도 없었지만, 손견의 목을 떠올리자면 냉정하게 판단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목만 덩그러니 남았던 손견.
그 딸을 직접 쳐야 한다는 것이 영 거북했다.
“남길 말은?”
“……엿이나 먹어.”
그녀는 마지막까지 검을 들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무너진다면 손가의 재건은 영영 수포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비의 복수도 아직이었는데 자신까지 무너질 수는 없다.
하여 그녀는 검을 들었다.
“그런가.”
그는 그 말에 눈을 감고 검을 치켜들었다.
“전장의 숙명.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마는 적어도 육신이라도 고이 돌려 보내주지. 손견은 불가능했지만, 너라면 어떻게든 고이 가족의 품에 안겨주마.”
손책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답할 기운도 없었다. 자꾸 흐려지는 시야. 다리는 이미 서 있는 것도 고작이었다. 안 그래도 크게 베였던 상처를 걷어차이면서 피를 너무 흘려버렸을까.
“……아버지….”
죄송해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 * *
“거기까지요.”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앞으로 한 번.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손책의 목을 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검을 놓치고 말았고, 정신을 차리니 검은 갑주로 무장한 남자가 손책의 앞을 가리고 있었다.
팔뚝에 꽂힌 화살 한 대.
“이 화살은 너냐.”
“그렇소.”
반쯤 꿰여있던 화살을 억지로 뽑아냈다. 그는 그동안 움직이지 않고 손책의 앞을 가리고 있을 뿐. 아무리 봐도 일반 병사는 아니니 아마 군의 장수가 아닐까.
“이름은?”
“태사자.”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내 팔을 꿴 화살의 궤적으로 보아 쉬운 상대는 아닐 터. 게다가 오른팔의 팔뚝에 제대로 박힌 탓에 당분간 오른팔 자체는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검을 내렸다.
“무슨 의도지?”
“살려주시오.”
본인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러면 손책의 목숨을 말하는 것이리라. 굳건한 자세로 손책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모습은 짐짓 평범한 무장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검을 움직일 수는 있는가.
땅에 떨어진 검을 줍고자 한다면 즉각 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가 그 빈틈을 놓칠 것 같지도 않으니.
“이대로 주군을 살려주신다면 군을 물리겠습니다.”
“네가 뭔데.”
“이미 주군께서는 크게 부상하였습니다. 주유 공자께서 주군의 안위를 제일로 생각하시는 인물. 그걸로 부족하다면 소장의 목숨을 내걸고라도 반드시 퇴각할 것을 진언하겠습니다.”
목숨을 건다고?
하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말이야 언제든 뒤집으면 그만.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손책을 죽여두어야 안심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 몸으로는 그럴 방법도 없었다.
“주유 공자와 주군께서는 의형제의 연을 맺었나이다. 여기서 주군을 죽인다면 그는 분명 당신과 죽기로 싸울 터. 그러니 자비를 베푸신다면 피차 피를 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역적의 손을 든 것은 너희다.”
“그건 주군의 부친 때부터 이어진 계약과도 같은 것. 주군께서도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옵니다. 위력에 의해 강제로 따르게 되었노라면 그 죄를 사하여주는 것도 군자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궤변이었다.
원술이 중나라를 세운 것은 누가 보아도 반역. 게다가 손책 역시 의욕적으로 내 목을 치려 했는데 뭘 어쩔 수가 없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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