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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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넘어 팔까지 저릿한 느낌이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연거푸 이어지는 공방에서 손책의 검은 정말 무서운 기세로 내 목을 노렸는데, 그 와중에 연이어 반대편 손에 들린 창으로 내 빈틈을 찾는다.
“흡!”
한 손으로 이만한 힘.
확실히 손견이라는 호랑이가 개를 낳아 기른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힘에 저만한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던가. 여포와 같이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쉬이 이길 상대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입만 살았어? 조금 더 힘을 써봐!!”
겨우 떨쳐냈으나 다시 달려든다.
상단으로 이어붙이는 검격을 쳐내면 바로 내 배를 향해 창을 내지른다. 몸을 틀어 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검을 맞대어 겨루던 자세에서 힘이 확 풀린다.
그녀는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창을 들었다.
공방 일체.
창으로 사거리를 잡으며 여차하면 검으로 달려든다. 각각의 손에 쥔 그 무기들을 이용해서 압박하는데, 그 공세가 매서워 역공으로 나아가기 곤란한 감이.
“크윽!!”
잠시 상대를 살피려던 사이에 들어온 공격.
창을 내지름과 동시에 본인은 땅을 박차고 도약. 바로 내 머리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거리를 둔다.
짐승이냐.
저걸 인간의 움직임으로 보아야 하는가.
손견 또한 움직임에서 매서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는 잘 숙련된 전사라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손책의 움직임은 종잡을 수 없는 짐승과도 같은 본능적이고 역동적인 것.
그간 속도에서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그간 만났던 이들 중 속도로 날 완벽하게 이길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여포와 운이가 전부. 그 여포도 이렇게 속도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 단순 속도로만 놓고 본다면 운이의 속도와도 비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변칙적인 공격까지.
“다시 말해봐.”
그녀는 내게 창을 겨누며 픽 웃었다.
“뭐더라. 천치던가?”
“벌써 이긴 척 재느냐.”
“누가 봐도 당신은 나한테 안 돼.”
이제 고작 십여 합의 겨루기였다. 자신만만하게 웃기에는 이를 것이, 손책은 마치 본인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복수를 완수하였다는 성취감일까.
“천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대로 주도권을 계속 내어준다면 언젠가 빈틈을 보인다. 양수로 하여 창과 검을 든 그녀의 움직임은 확실히 따라가기 버거운 감이 있었다. 몸이 본능적으로 변칙에 대비하고자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지금은.
“한번 해보자고.”
허리춤에 맨 칼집까지 풀었다.
상대가 양수라고? 그러면 이쪽도 양수로 대응할 수밖에. 그러고 보니 손견과의 전투를 뒤집고자 썼던 것도 칼집이었던가. 다 망가진 칼집을 내밀었을 때 조조가 짓던 얼빠진 표정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단단한 것으로 주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실험해봐야지.
“흡!!”
공세를 전환한다.
순간적으로 발을 구르듯 땅을 박차고 나아간다. 오른손에 쥔 검을 크게 휘두르며 왼손에 들린 칼집으로 상대 창을 견준다. 지금이야 높으신 분이 된 듯싶으나, 기본적으로 나란 인간이 그리 고상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니 개처럼 물어뜯어라.
발끝으로 땅을 긁으며 크게 차올린다. 딱히 체술로 덤비고자 한 게 아니었다. 흙을 퍼올려 적의 시야를 가린다. 그게 눈에 흩뿌려지면 더 좋겠지만 저리 기민한 상대로 그런 요행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찰나.
아주 잠시만이라도 시야를 막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흙먼지가 순간 우리의 사이를 갈랐다. 손책이 급하게 눈을 감으며 가로로 크게 검을 휘둘러 떨쳐내려 하는 것을 막아내고는 그 품 안으로 파고든다.
이어 칼집으로 한 번.
“큿!!”
그녀는 손에 쥔 창을 내던지고는 팔뚝으로 그걸 막아내면서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이걸 이렇게 쉽게 대응하나도 싶었지만, 손에 감각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부러뜨리진 못했어도 분명.
“중랑장이라는 분이 말이야.”
왼팔을 들어 손목을 돌리며 미간을 찌푸린다.
“조금 품위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가장 품위라는 것과 거리가 먼 전장에서 할 말은 아니군. 품위와 품격, 명예 역시 살아남은 뒤에야 떠들 수 있지. 게다가 사실 나 자신도 썩 품위가 있던 인간은 아니었고.”
언제부터 중랑장이었다고? 우습지.
병주의 도적이요, 오원의 개새끼.
지금에야 황실의 고관이 되었다고 해서 그 근본을 잊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생애의 전반이 이런 근본 없는 도적과도 같았는데, 고작 몇 년 장군 소리 좀 들었다고 출신을 잊어서야 쓰겠나.
“……웃기네.”
그녀는 고개를 까닥이며 손을 풀었다.
창은 이미 내 칼집으로 이어진 공격을 막고자 버렸고, 이제 손에 검 하나를 쥔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검과 칼집을 양손에 나누어 쥐며 대치.
“아버지는 그런 사람에게 진 게 아니야. 당신이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했다면, 적어도 그만한 품격과 위세를 가지고 있어야 해.”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손견이 그런 사람이었노라고?
그 양반이야말로 전장에서 뭐든 할 인간으로 보였다마는. 반동탁 연합군에서 잠시. 그리고 내가 직접 맞상대를 했던 손견은 전장에서 깔끔 떨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니 그녀의 말은 우습기 그지없는 것.
“손견도 고상이나 떨 인물은 아니었거늘 그 상대에게 품위를 바라느냐?”
“우리의 아버지는 고결한 무장이었으니까. 적어도 당신처럼 적을 상대로 비웃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으셨던 분인데, 그게 헛소리라고?”
내가 기억하던 손견의 모습과 일치하는 게 단 하나도 없는데. 그는 전장에서도 내 농담을 자연스럽게 받아치거나, 전선에 서서 아군을 상대로 개처럼 물어뜯는 등 강한 용장의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전장을 앞두고 고상 떠는 인간은 아니었으니.
“환상을 너무 품고 있다. 잘못된 집착으로 고인의 모습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충분히 대죄. 있는 그대로를….”
“네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끊겼다.
“그 입으로 아버지를 논하지 마!!!”
손책은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말과 나의 인상. 둘 중 무엇이 손견의 진짜 모습이었는지는 이제 알 길이 없었다. 내가 부상시켜 여포의 손에 목이 떨어졌으니까.
이미 죽은 자의 본모습 따위, 알 길도 없어진 것.
“뭐, 원한다면야.”
전장에서 말이 너무 많았다. 무장끼리의 전투였기에 병사들이 개입하지 않았으나, 이대로 시간을 소모한다면 우리 역시도 전장의 여파에 쓸려나간다. 어차피 싸울 적이라면 나눌 건 말 말고도 많았다.
청강을 치켜들었다.
“긴말은 필요치 않겠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다시 땅을 박차고 내게 달려들었다. 세로로 크게 휘둘러지는 검을 칼집을 들어 막아내며 오른손에 쥔 검을 크게 휘둘렀지만, 그녀는 그걸 자연스럽게 물러나며 피하고는 다시 돌격해온다.
쩌어어어엉!!
……손목이 시큰거렸다. 이게 병기가 맞붙어 날 수 있는 소리는 맞던가. 아마 청강이 어지간한 명검보다 훨씬 나은 기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몇 번인가 마주한 시점에서 진즉에 부러졌을 터.
그런 감상을 잇기도 전에 연거푸 공격이 이어졌다.
대각선으로 하여 상단에서 하단으로 잇는 공격. 그것을 몸을 틀어 피하면 재차 횡으로 긋는 검의 경로. 이제부터는 생각할 시간도 아까웠다.
본능에 몸을 맡기며 그녀의 움직임에 대응한다.
몸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며 다음 공격을 유추한다. 그런 걸 생각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그녀의 검을 받아내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읽기는 쉬우나 그 검에 실린 힘과 속도가 심상치는 않았다.
“고작 이거냐, 고자아아악!!”
그녀는 악을 쓰듯 연거푸 내게 달려들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손견은 이렇지 않았다. 그의 공격은 본능적인 움직임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상대가 가장 막기 버거울 위치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 남자의 싸움법은 이리 조잡하지 않았다.
하여 이 국면에서는 웃음이.
손책과 나는 손견이라는 공통적인 분모로 묶여있었다. 손책은 손견으로 하여 시작했고, 나는 그 손견의 마지막을 가져온 인물.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상황이 웃기지 않나?”
“죽어.”
매정하기는.
* * *
사마의는 흐트러진 아군 대열을 최대한 정비하고 있었다. 손책을 전호 직접 나서서 묶었으니 다음 상대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저 멀리서 싸우고 있는 장수는 손책과 비등할 정도의 기세로 아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쯧.”
더 버텨야만 했다.
기병에게 복귀하라는 명령은 내렸다. 전장에서 이쪽으로 바로 내달린다면 좋겠으나, 아마 상대가 그걸 잠자코 지켜보지는 않을 터.
그래도 여포가 이끄는 기병이라면 그 방해마저도 떨쳐내고 달려올 게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 버틸 수 있다면 아군의 완벽한 승리.
“통제가 가능한 2번 부대의 분대, 아니면 일반 병사라도 좋아요. 우선 저 검은 갑주를 두른 남자를 피해 돌아가라고 명하세요.”
강한 무장이라면 구태여 싸워줄 필요도 없었다.
제아무리 본연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어차피 개인. 군 전체가 포위된 전장에서 개인의 무력으로 병사를 죽인다고 하여도 몇이나 죽일 수 있을까. 어차피 개인이 집단을 상대로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러니 주의해야 할 것은 흐름이었다.
소녀가 아는 강인한 무장은 사람을 죽이고 죽여나가며 전장을 주도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제 위력을 한껏 끌어올려 적 자체에 위압감을 주며 아군이 좀 더 움직이기 편하게 유도하고는 했다.
여포는 존재만으로도 그게 가능했고, 조운 역시도 여차하면 직접 선두에 서서 최대한 적에게 압도적인 모습을 피력하며 그걸 노렸다.
그리고 그건 전호도 마찬가지.
한 명의 인간이 수천, 수만이 대립하는 전장에서 죽여야 몇 명을 죽이겠는가. 여포라고 하여도 백 단위가 고작일 터.
그렇지만 그 무력으로 하여 적에게는 이길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시키며 아군의 사기를 고취하는 게 용장들의 방식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렇게 포위당한 전쟁에서 그 힘을 전부 발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소리.
사마의는 책사였다.
용장이 용장의 방식으로 전장에 임한다면, 소녀 역시도 전장 전체를 조율하는 관리자의 입장으로 전장에 나선다.
“1군은 그대로 계속 압박을. 사령관 주위에서 절대 물러서지 말 것을. 통제 가능한 2군은 적 장수를 피해 돌아가면서 포위만 하고.”
여기서 사마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호와 손책이 맞붙고 있는 장소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우열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전투.
“……이전 부장님.”
“예.”
“부장님이라면 손책을 상대로 얼마나 가능한가요.”
이에 이전은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본래 문관으로서 학문에 매진하던 인물이었다. 그것이 장막이 난을 일으키며 연주 전체에 힘을 퍼뜨릴 때 아비가 말려들어 죽고, 그 뒤로 조조의 부름을 받아 가담하여 경력을 쌓고 있을 뿐.
본인이 가진 무력은 결코 저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긴급하다면 나서겠으나 단칼에 목이 달아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우선 이대로 진행을.”
사마의는 그 말을 마치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직 전방으로 보냈던 아군이 돌아올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군 보병이 생각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여 적 기병의 발목을 잘 붙잡고 있다는 것 정도.
문제는 손책을 틀어막은 전호였다.
소녀의 눈으로는 채 파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방이 이어진다. 검과 검이 마주하는 소리가 저렇게 컸던가. 섬뜩할 정도로 울려 퍼지는 소리에 사마의는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도울 수가 없었다.
사마의는 이 순간에 가장 무력함을 느꼈다.
자신에게 힘이 있었더라면 그와 함께 싸울 수 있었을까. 평소 재능이라는 것에 부족함을 느낀 적 없는 소녀였지만, 지금만큼은 무의 재능이 없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이전 부장님은 그게 끝나는 대로 1군으로 합류해주세요. 어차피 이 이후의 전장은 유기적인 움직임보다는 힘이 더 중시될 거에요.”
소녀는 말을 마치며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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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정에 올려두었으니 한 번 확인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개미인간님이 너무 예쁘게 작업해주셔서 그저 감격입니다!
작품은 오늘 내로 한 편 더 올라갈 것 같은데, 그게 안 될 경우 내일 자정에 2편 올라갈 것 같습니다.
요즘 날이 다시 부쩍 추워졌습니다.
다들 건강에는 꼭 유념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