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서곡양 전투 봄철의 따스한 계절에도 바람만이 유독 서늘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을 정리하지 않으며 전방을 주시한다. 전장에 서면 고양되는 감각.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는 이 감각을 그녀는 싫어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염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호가 올 때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말라던 제 의남매의 말을 떠올린다. 가장 최적의 상황에서 불을 지필 터이니 자신에게는 때를 기다리라던 그 한 마디.
찰나의 시간도 한참과 같이 느껴졌다.
아직일까.
손책은 몇 번씩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봉화가 피어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애가 달 정도로 긴 시간이 그저 흘러가고만 있었다.
“장군. 조금 진정하시지요.”
“그러고 싶은데.”
그녀는 부장으로 데려온 태사자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주유를 믿었지만, 그저 신뢰하는 것만으로 모든 걱정을 떨쳐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손책 본인의 성격도 문제였다.
어떤 일이건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게 손책의 강점이자 단점이기도 하였다.
그건 손견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손가의 방식이기도 했으며, 손견 사후 그녀가 세력을 일구는 동안에도 언제나 선두에 서서 반드시 승리했던 필승의 공식이었다.
태사자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무는 손책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적과 아군의 격차가 절망적일 정도로 크지 않았고, 그가 지금까지 보았던 주유라면 쉬이 패할 것 같지도 않았다.
“주유 공자라면 분명 괜찮을 겁니다.”
“그건 내가 더 잘 알거든?”
그 남자가 쉬이 패배할 남자인가.
손견이 죽고 모두 불안정하던 시기에 그녀의 곁에 남아 이렇게까지 세력을 일궈준 자신의 남동생. 입으로는 남동생이라고 하였지만, 그녀는 내심 그를 오라비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 같은 것보다 훨씬 똑똑하니까.
싸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신과 달리 전장을 살피고 대계를 고안할 수 있는 사람. 현 손책군에 없어선 안 될 인물이며, 실제로 지금까지 주유가 손을 본 전장에서 패배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조바심은 그저 안달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에라도 저 전장을 내달리고 싶은 욕망과 충동. 그리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승리를 쟁취했던 것과 다른 방식에서 찾아오는 괴리감이 있을 뿐.
“봉화를 기다린다. 태사자, 너도 안달하지 말고 기다려.”
“죄송한데 지금 안달하시는 건 장군이십니다.”
“자꾸 군주한테 말대꾸할래?”
그렇지만 다소 김도 빠졌다.
아군에 가담하고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그 무력이나 충성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는 존재. 손책은 그런 태사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이번 전쟁에서 지면 우린 망할 수도 있어.”
“알고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고.”
태사자는 그 말에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아직 손가를 섬기고 오랜 기간이 지나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그녀가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있었다.
충성하려면 목숨을 걸어라.
그는 이미 예전부터 그럴 준비를 마쳤다.
“장군, 말씀하시는 와중에 외람되오나.”
태사자는 손을 뻗어 저 멀리 가리켰다.
“봉화가 피어올랐습니다.”
그 말에 손책이 눈을 빛냈다. 그간 주유가 이끄는 본대가 연합군과 대치하는 동안 줄곧 기다릴 수밖에 없어 답답하던 차. 드디어 봉화가 올라왔기에 손책은 손에 쥔 창을 높이 들어 올렸다.
드디어 선두에 설 수 있게 됐다.
손책은 손견 사후 무너져가는 손가의 기반을 받고 여기까지 이끌며 언제나 선두에 섰다. 저 자신의 무력으로 모든 걸 꺾어왔고, 그 대담함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군을 몰아치며 몰락하던 손가를 이 자리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힘을 믿었다.
주유가 적을 끌어안으며 살려준 기회. 이것을 놓친다면 두 번 다시 조조군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녀는 기마에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달렸다.
“전군, 전지이이이이인!!”
이제 뒤는 없었다.
저 자신의 무력과 담력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손책은 이번에도 자신의 무예를 믿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주유를 믿었고, 그와 동등할 정도로 아군 병사들을 믿었다.
합산 이천의 기마가 들판을 내달린다.
목표는 오직 중랑장의 목.
그녀는 입꼬리가 찢어지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
* * *
꼬맹이는 아군이 적 보병을 쥐잡듯이 밀어내는 와중에도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모든 준비는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착오라도 있는 걸까.
“이상하네요.”
“뭐가?”
사마의는 손을 뻗어 저 멀리에 있는 손책의 기마를 가리켰다.
“슬슬 움직여야 정상인데도 움직일 기미가 없어요. 아군이 기병을 그 인근으로 배치하였다고는 해도, 그들이 이 전장을 뒤집고자 한다면 분명 지금쯤 군을 움직여야 할 건데….”
그건 확실히 기이했다.
저 멀리 손책의 대장기는 아직 요지부동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 그 주변을 둘러싼 병력 또한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정작 저들의 보병은 아군 보병에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아니면 아군 보병을 치려고 대기하는 건가?”
“그럴 거라면 구태여 자신들의 대열을 무너뜨릴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정면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나은데 뭐하러 굳이 퇴각하면서까지 아군을 끌어냈겠어요?”
그도 그렇긴 한데.
하지만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질 않았다.
일단 아군 본대는 적을 삽시간에 밀어내며 승기를 쥐고 있는 상황. 그런 가운데 손책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대체 뭘 노리는 전략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이대로 전선을 유지하지.”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래야겠지만….”
사마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적 진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 또한 이번 움직임에 대해서는 의문밖에 없었는데, 자고로 전장에서 기이한 일이 생기거든 그 일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가?
“드러난 적의 전력은 아군의 추산 병력과 거의 흡사한데. 게다가 적 전력 대다수는 수춘의 원술에게 집중된 것인데, 그 외에 추가로 이 전장에 개입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고는 못 들었다.”
“이 주변에서 전장에 난입할 세력은 우선 없어요.”
그러면 대체 뭘 노리고?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전부 의미도 없는 가정. 어떤 노림수가 있건 간에 적이 보병을 물린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단지 퇴각하려고 했을 뿐일까?
하지만 광릉 전투에서 보았던 손책군의 기민함을 고려했을 때 적이 그리 안일한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전장의 장애물로만 생각했던 함선을 육상전에 도입하여 새로운 공격로를 개척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러니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아군 사령부와 보병대의 거리는 제법 멀어진 상황. 노린다면 분명 이렇게 보병이 적을 향해 달려나간 시점을 노릴 거로 생각했는데, 정작 적의 움직임 자체는 미진하기 그지없었다.
“보급로를 노린다는 건 어때.”
“의미가 없네요. 구태여 보병대에 저리 큰 피해를 야기하면서까지 아군 보급을 끊어 의미가 있나요?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는 계책이니, 정말 그런 걸 노렸다면 머저리겠죠.”
“아니, 나도 그냥 대충 생각한 거다.”
머저리라니.
나도 가능성은 거의 없겠거니 싶었다고.
하지만 이런 가정을 제외하고 이 전장에서 순수히 일어날 일로만 생각하자면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전장의 좌측에는 큰 산봉우리가 가로막고 있었고, 이 평야에 그밖에 병력을 숨길 수 있는 곳도 없는데.
그럼 대체 뭘 노리고?
“생각나는 건?”
“당장 이 전장에 국한해서는 없죠. 게다가 뭘 준비하려고 해도 아군은 이 전장에 들어오고 바로 태세를 갖췄어요. 이틀 만에 바로 전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다른 군을 끌어들였을 리도 없고요.”
사실상 기존에 확인했던 손책의 군과 아군이 이 전장의 전부라는 소린데. 아, 머리를 너무 굴렸더니 슬슬 과부하가 올 것 같아.
아직 손책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아군 기병대를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일단은 보병의 전투가 어떻게 끝나는지, 그리고 저 멀리 대기하고 있는 손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며 천천히 기다릴까.
전장의 우위는 아군이 쥐고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만약 끝까지 움직이지 않겠노라면 보병을 잃겠지.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어찌 되었건 조만간 손책도 분명 움직일 거로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일단……?
“음?”
“왜요?”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보병 간의 전투와는 별개로 또 다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도 드는데, 이걸 뭐라고 특정 지어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소리가 들리는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
아직 흐려서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건 분명….
“사마의. 저 산이 제법 큰 산이지?”
“당연하죠. 게다가 산세도 험준하여 군을 운용하기엔 최악이었고, 그러니까 저희가 저 산을 끼고 포진한 거잖아요. 만일의 여지도 주지 않으려고.”
물론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무엇인가.
점점 커지고 있는 잡음. 내 예상이 옳다면 이건 분명 말발굽이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방향까지는 읽을 수 없었지만, 이 전장에서 기마를 움직인 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병이다.”
“네? 아니, 그게 무슨.”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그 위치도 특정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아군 후방을 기점으로 하여 점차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들리지?”
“……아니, 말도 안 돼요.”
사마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것을 우회하려면 못해도 수일은 걸릴 것이고, 무엇보다 여길 전장으로 선택한 건 저희였어요. 사전에 준비할 수도 없었을 텐데.”
살짝 시선을 돌려 후방을 바라보았다.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 기마. 점점 산을 돌아 모습을 드러낸 기병은 그 숫자를 더했고, 이내 완전히 우회한 병력은 척 보기에도 천은 우습게 넘길 병력이었다.
사실상 아군이 파악했던 손책군 기병의 총력이 저것과 맞먹을 터. 그렇다면 적진에 버티고 있는 저 기병들은 대체 무엇인가.
아니, 생각할 시간도 아깝다.
“후방에 적 기병 출현! 전열에 있는 녹각을 빠르게 후방으로 옮기고, 각자 대열에 맞춰 정비한다! 다 죽기 싫으면 서둘러!!”
입맛이 썼다.
한 방 먹었다고밖에 말할 길이 없었다.
대체 어떤 수를 썼기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들은 꽤 빠른 시기에 이곳으로 다가오며 전투를 준비했다.
아군과 대치하자마자 바로 공격 태세를 갖추기에 조급함에 사로잡혔다고만 생각해버린 것이 실책일까.
“기병을 불러들인다. 우선 북을 크게 울리며 기병만을 회군시키고, 그때까지는 저들을 막아볼 수밖에 없겠네.”
당연히 전방으로 몰려올 것이라 예상하여 모든 방비를 전열에 갖추었다. 그렇기에 녹각을 옮긴다고 하여 얼마나 옮겨질지, 또 그런다고 하여 적의 기마 전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그럼 아저씨. 본진의 부대를 반으로 나누죠.”
“반으로?”
사마의는 빠르게 다가오는 기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전부 받아내기에는 무리에요. 버틸 수 있으면 좋겠다만, 밀집대형을 갖춘다고 해도 이 병력으로 기마 돌격을 막아내긴 힘드니까요.”
“반으로 나누자는 건.”
사마의는 왼손을 펼치고 오른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만을 세워 손바닥을 쿡 찌르며 말을 이어갔다.
“적은 분명 아군 전체를 쓸어버릴 기세로 달려들 테니까요. 그러니 적이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 그 병력을 반으로 나눠 진영 내부로 끌어들이는 거죠.”
“확실히 그러면 정면으로 충돌할 일은 없겠지만….”
너무 도박이기도 했다.
물론 이 사령부에 남은 병력은 친위대를 포함하여 모두 정예. 그런 긴밀한 기동도 하려면 못 할 것은 없겠으나, 반대로 적 기병을 포위하려다가 되려 반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하면 적과 대등해져요.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여차하면 아저씨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에도 충분할 거니까.”
“도망치라고?”
내 질문에 사마의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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