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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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게 싫었다. 내가 그곳에서 굴러봤으니까. 인명이라는 것이 개똥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그곳이 너무 싫었다. 언젠가는 그것이 없어지길 바라면서도 그럴 능력이 없어 언제나 그곳을 굴렀다.
누군가를 죽였다.
죽이고 죽여, 계속 죽였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바꿀 수 없는 세계의 섭리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도 바꿀 의지를 보이지 않으니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전군, 창을 들어라!!”
아가씨가 말했다.
언젠가 세계는 바뀔 수 있다고. 조금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바꾸자고. 비록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를 초석으로 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바꿔나가자고.
“대열을 유지해라. 숨을 가다듬어라!”
그래 봐야 어차피 같은 전쟁이었다.
아가씨와 내가 벌이고 있는 것도 전쟁이었고, 그건 그간 있던 것과 큰 차이는 없겠지. 어차피 누군가는 죽을 것이며 우리는 그 시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전과 다를 것이 없는 일.
그렇지만 지향하는 미래가 달랐다.
“서로의 생명을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어깨를 맞대고 등을 쭉 펴고 적을 두려워하지 말 것. 내 휘하 모든 이들에게 명하니, 패배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라!”
우리는 분명 나은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시체를 밟고 그 희생을 통해 전진하게 될 터.
그건 아마 이 대륙의 혼란을 평정하기 전까지는 쭉 이어질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연설대에 서서 그들에게 명한다.
“싸워라!!”
과거의 내가 저런 병사였을까.
그렇다면 저들은 과거의 나였다.
“승리를, 오직 승리와 삶을 위해 싸워라!!”
마지막으로 크게 팔을 들어 올렸다.
손책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군의 움직임을 살피려는 듯 기병 중심으로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곧 본대를 움직이리라 관측했다.
이미 아군도 전쟁의 준비를 마친 상황.
“수고하셨어요.”
사마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가왔다.
솔직히 연설이라는 것에 큰 조예는 없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을 뿐이었다. 이걸 수고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 앞으로 할 일이 더 수고스러울 것인데.
“유비는?”
“이미 준비했다고 하네요.”
저번 만남 이례로 유비가 나와 대면하는 것을 조금 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저번에 그녀를 너무 들추려 했던 탓일까. 이건 나중에라도 사과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도 이 전쟁이 끝난 이후에나 가능한 일.
“출정이다. 조홍 누님도 준비하쇼.”
“예입!”
조조군과 서주군의 보병 총괄은 조홍. 그리고 세부적인 움직임은 방삼이와 서황을 두 장으로 하여 움직이고, 서주 쪽은 그들대로 대장을 세워 내부적인 통솔을 맡는다.
본대는 내가 맡을 것이나 세부적으로 하여 각 제장에게 큰 부분을 일임하였다. 아군에는 뛰어난 지휘관이 많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놀릴 이유가 없었다.
“이전. 너는 사마의와 함께 움직여라.”
“예, 사령관님.”
여차할 때 나를 대리할 지휘관으로 사마의를 낙점했다. 물론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까 완전히 대리로 세울 생각은 없었지만, 만일의 상황에서 나까지 움직인다면 그 뒤를 맡아줄 이가 필요했다.
“궁수의 준비는?”
“그거라면 보병 후방에 배치하였어요. 적은 아마 저번처럼 보병을 중심으로 먼저 교전을 걸어올 건데, 그 대비로 돌리는 게 훨씬 낫겠죠.”
“좋아. 그러면 궁수의 조율은 사마의, 네가 관리해라.”
나 혼자서는 모든 걸 돌볼 수 없었다.
사실 내 부관은 방삼이와 이전이었지만, 방삼이는 기본적으로 아군의 조율과 내 명을 전달. 혹은 군을 함께 이끌고 싸우는 역할을 맡겼고 이전은 사마의에게 붙여주며 돌발상황에서 즉각 군을 이끌 수 있도록 편재하였다.
하여 실질적인 내 부관은 사마의인 상황.
이 전쟁이 끝난다면 본격으로 사마의의 임관을 추천해야 할까. 이대로 무급으로 부려 먹는 것도 너무한 일이고. 여포는 사정상 무리여도 사마의라면 임관해도 딱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후우….”
준비를 마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서 끄집어져 나오는 깊은 한숨. 손책의 병력은 여전히 이쪽을 향해 천천히 진군하고 있었다. 거의 전 병력을 대동한 것으로 보아 시간 끌 필요 없이 바로 전면전에 임하겠다는 뜻인데.
시간에 쫓기는 아군이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지. 이미 아군도 모든 준비를 끝냈고, 이제 효시를 쏘아 올릴 일만이 남았으니.
“북을 울리고 깃발을 들어라!!”
이윽고 그것은 전쟁을 알리는 한 발의 효시가 되었다.
* * *
조조가 군을 나누어 양주의 현을 공략하자마자 원술의 군은 수춘을 박차고 달려 나왔다. 아예 전면전으로 들어가자는 것이 아닌 각 현을 사수하기 위한 병력이었는데, 그나마도 두 현으로 일만씩 보내어 합산 이만의 군을 한 번에 움직인 셈이었다.
“확실히 원술의 군사력은 얕볼 것이 아니군.”
“북으로는 조인 장군과 순유 행군사마께서 임하고 계시고, 남으로는 하후돈 장군과 하후연 장군, 거기에 정욱 행군사마께서 임전하고 계시니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들이 이끄는 병력이 저 부풀기만 뜬구름에 패할 리가 없지. 통상적으로는 당연히 승리가 점쳐지나 그대는 한 곳에선 패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조조의 질문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전부 패배를 위장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위장이라고 해도 다소의 피해는 나오는 것. 그러니 한 곳에서만 적당한 패배를 연기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아예 틀어박히도록 둘 수는 없으니까요.”
“옳다. 이번에는 조인에게 적당히 후퇴하라고 말하였으나, 이대로 언제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은가?”
“길어봐야 보름. 그렇지만 아군의 군량을 고려하자면 열흘 안으로 이 지루한 대치를 끝내야겠죠.”
촉박한 시일. 조조는 그런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으나, 원술의 준동을 내버려 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더 완벽하게 준비했다면 이런 전초전을 생략하고 바로 수춘을 공략할 수도 있었던 것.
어쩌면 원술은 아군이 가장 껄끄러운 시기에 잘 봉기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황제를 참칭한 것은 그의 패착이었으나, 이 전쟁에서 원술이 승리한다면 또 모르는 일.
“중랑장에게서 연락은?”
“최근에 전령이 도착했어요. 서곡양에서 손책과 원술의 군 이만과 대치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곳을 이른 시일 내로 뚫을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믿는다.”
그녀는 전호를,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을 신용했다. 손책이 제아무리 급격하게 세를 불린 호랑이의 딸이라 해도 그는 만만한 이가 아니었다.
손책이 신흥강호라면 전호 또한 단기간에 천하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 그 손으로 이뤄낸 전장이 몇이며, 또 그 가운데 세운 군공은 몇이던가. 게다가 그는 정체를 모르고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본인은 신뢰하지 않는 이에게 군의 전권을 넘기지 않는다. 서주군 역시 과거 서주에서 질리도록 상대하며 그 강함을 안다. 제아무리 새끼 호랑이라 하여도 새끼는 새끼. 그들을 넘기에는 역부족이겠지.”
“신뢰하시네요.”
“아무렴.”
그렇지 않으면 탐내지도 않았다. 그는 장차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탐나는 보물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그 얄미움 또한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
게다가 그 남자의 가장 큰 장점은 주변을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특히 서주군과 연합군을 형성해야 하는 양주의 동쪽 전선에서 빛을 발하게 될 터.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 아군은 원술을 붙잡고 교란한다.”
“만약 중랑장께서 늦으신다면요?”
그녀는 진궁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을 뿐. 그것이 무슨 의도를 대변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답하지 않겠다는 것만은 명확하여 진궁도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문제는 수춘이군. 설령 원술을 밖으로 끌어내어 대파한다 하여도 수춘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거성이다.”
수춘 인근으로는 하천이 많으니 둑을 쌓는다는 방법도 떠올렸지만, 겨울에서 막 봄이 된 시기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겨우내 내린 비라고 하여도 둑을 쌓는다고 넘쳐흐를 정도가 아니었으니 수공은 어불성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지금으로써는 딱히 방법이 없겠네요. 우선 원술의 본대를 끌어내어 격파하시는 것에 주력하는 게 낫겠어요.”
그렇게 아군 병력이 대파당한다면 내부에서도 움직임이 있을 터. 여차하면 내부의 반란자를 만든다든가 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뚫어낼 수 있었다.
“이럴 때 조바심을 내는 건 좋지 않겠지.”
시간이 급하다고 하여 군을 다급히 움직이다가는 불의의 일격에 당할 수 있었다. 조조군의 보급 사정으로는 한 달에서 길어야 두 달. 그 정도밖에 유지할 수 없는 전선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급하게 움직여선 안 됐다.
우선은 천천히 때를 기다린다.
조조는 살면서 언제나 유리했던 전장을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훨씬 불리하던 상황도 많았고, 좌절스러운 상황에서의 지휘 경험도 있었다. 그런 것과 비교한다면 이 정도의 난관에 발을 구를 수도 없는 것.
“진궁. 그대에게도 따로 병력을 내어주지. 그대는 이대로 후방으로 돌아 안풍현을 공략하도록. 그쪽에서 물자를 따온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민심이….”
“그대도 알지 않는가. 이 지역은 어차피 아군이 다스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야. 아군의 최종목표는 원술의 타파. 당장 지배할 수 없는 곳의 민심까지 고려할 정도로 사정이 좋은 것이 아니다.”
안풍현은 여강 북부에 위치해 제법 규모가 큰 현이었다. 그곳을 공략한다면 군량을 다소 수혈할 수 있겠으나, 진궁은 그 이후의 피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조조의 말마따나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요.”
진궁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그녀를 향해 조조가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렇게 홀로 남은 조조는 언덕 위에서 한동안 계속 수춘을 내려다보았다.
“몇몇 구간은 기병을 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언젠가는 저 하천을 넘어 수춘의 땅을 밟을 터.
그러니 그녀는 계속 그 지형을 관찰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전호가 손책에게 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그들이 도착한 뒤에 이어나갈 그림을 차분하게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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