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73화 (273/343)

2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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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를 초동진압하겠다는 원술의 전략은 결국 실패했고, 양주 내부로 들어선 조조의 본대는 빠른 속도로 회수 이북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반면 광릉에서의 전투를 이겨낸 중랑장과 서주의 연합군 역시 빠르게 서진하기 시작.

양주 내 구강군까지의 빠른 진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에 원술의 기존 군도 재차 재편하며 양쪽에서 진격해오는 군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손책. 네년에게는 실망이 크다.”

옥좌에 오른 원술이 무릎 꿇은 손책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이에 손책은 묵묵부답. 본래 지원군을 더 얹어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이 원술이었고, 하여 손책군은 1만에 겨우 달하는 군만으로 서주발 연합군을 상대하게 되었다.

이번 상대가 조조군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원술과는 결별했을 그녀였지만, 공공의 적이 있었기에 이번 한 번만 원술의 횡포를 견뎌내고자 하였다.

“변명은 없느냐?”

“전력으로 밀렸으니, 무슨 변명이 있겠습니까.”

“쯧,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술은 슬쩍 고개를 흔들면서도 눈만은 손책을 응시하고 있었다. 잘만 다룰 수 있다면 제 아비인 손견과 비슷할 정도로 훌륭한 패. 게다가 손견과 달리 노련한 면이 없어 장차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인재도 아니었다.

지금은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시점.

“너의 실책은 안타까우나, 그 이상으로 짐은 자비롭다. 패배는 승리로 갚음이 옳을 터. 병력을 일만 하고도 오천 가량을 더 얹어주지. 그러면 해볼 만하겠느냐?”

손책은 원술의 제의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병력의 증원은 좋지만, 원술이 보낸 군의 규모가 자신들보다 많아진다면 지휘권에 혼선이 찾아온다. 기존 손책군의 강함은 명령체계의 빠른 이행과 신속한 기동력을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움직임에 있던 것.

그러니 지휘권을 재차 원술군에게 빼앗길 바에는 안 받느니만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무어냐? 왜 대답이 없는 것이지.”

“지휘권에 흔들림이 온다면 전투력은 더욱 약해집니다.”

“……허.”

원술은 그 시점에서 코웃음을 쳤다.

당돌하다고 논하기 이전에 무례했다. 고작 1만 남짓한 군을 가지고 무에 그리 큰소리를. 그렇지만 기존 손견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저들의 강함은 원술도 익히 알고 있었다.

본래라면 쳐내었을 말이겠으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 일만으로 하여 지휘권은 네년에게 맡기지.”

원술이 먼저 의견을 꺾었다.

당연히 쌍욕이라도 퍼부을 것이라 예상했던 손책이 살짝 고개를 들었는데, 원술은 짐짓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도 제 손에 들린 인을 던진다.

“짐이 이렇게까지 배려한 것이다. 황국의 병력을 너에게 맡긴 것이니, 두 번의 실패는 용납하지 않겠다.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겠지.”

“예, 폐하.”

손책은 고개를 숙였다.

바라지도 않았던 지원.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지휘권을 전부 자신에게 일임한 상황에서 군을 일만이나 더 지원해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조조의 본대와 서주와의 연합군. 이 둘을 뭉치게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이쯤 하면 짐이 무얼 바라는지도 얼추 알고 있겠지.”

“예.”

손책은 그에 화답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서주에서 온 이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손가락을 펼쳤다.

“고개를 쳐든다면 먼저 그것을. 땅에 발을 디디고 서겠노라면 다리 하나하나 친절하게 살을 저미지요. 손가락 하나부터 포함하여 생살이 남는 곳이 없도록 전무 썰어 혈흔이 낭자하더라도 그 목숨만은 부지시킬 것입니다.”

손가락을 하나, 또 하나.

그녀는 천천히 접었다. 저번 전장에서 끝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녀는 이제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총 전투병의 숫자만 하여도 10만이 넘게 모인 대전쟁.

“쉬이 죽일 수는 없지요.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하겠습니다. 생살을 씹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아니, 아무도 거기까지 하라고는 안 했다. 뭐냐 너는? 그냥 적당히 물리치는 선에서 그치거라. 짐의 휘하로 그렇게 하면 본인의 평판에 누가 가지 않겠느냐!”

“……그리 말씀하신다면.”

살짝 시무룩이 답하는 손책을 보며 원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견보다 제어하기 쉬운가 하였더니 다른 의미로는 손견보다 더한 미친개였는가. 하여 원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전력 하나도 쉬이 평가할 수 없었다.

서쪽에서 다가온 조조의 본대가 약 3만. 예주와 서주의 연합군은 손책과의 전투에서 상한 병력도 있어 2만 언저리로 추정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손책의 군 역시 그 전투의 피해로 약 7천 정도의 병력만을 추스르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수춘의 병력이 6만.

병력으로는 근소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방심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원술은 손견에게 1만의 병력을 더하는 한이 있더라도 손책에게 서진해오는 연합군의 상대를 맡겼다.

예주 방면에 조조군 본대 3만과 원술의 본대 5만이 맞붙고, 구강 부근에서 손책에게 군을 재편시킨 군이 서주와 예주 연합군과 상대한다.

“나머지 군권에 관한 것은 기령에게 상의하도록. 원한다면 병력의 재편 구조까지 일정 부분 협의할 수 있도록 말을 전해두었다. 그러니 반드시 승리하도록.”

“예, 폐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어전에서 물러났다.

원술은 그 뒷모습을 보며 쓰린 입맛을 애써 다실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손견이 살아있었더라면 마음이 놓였을 것을. 안타깝지만 저런 애송이라도 전투에 특출난 면이 있으니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게 과거의 원술과의 차이.

그리고 한계.

“쯧, 예전이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을.”

후장군 시절일 당시의 원술. 그리하여 예주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절의 원술이었더라면 이리 사람이 모자라지 않았을 터.

이것들 전부 과거 조조와의 전투에서 패했기 때문이었다.

그 전장에서 손견을 잃었다. 그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으나 그 전쟁의 패배로 인해 예주에서의 지배권을 상실하였으며, 그 결과 자신을 지지하던 여러 호족을 잃어 인적 손실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한 번.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상, 구시대의 황권의 상징인 조조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당분간 원술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이 주변에 없게 된다.

그러면 누가 이 신제국을 막겠는가.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북쪽의 원소와 마주하기 전까지는. 원술 본인은 천한 종놈이라 하여 그를 폄하하였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원술은 그 누구보다 원소를 경계하고 그를 적대하였다.

조조는 시작이었다.

제국을 세운 황제가 되어 원씨 씨족을 당당히 황제의 가문으로 올린다. 그리고 조조, 더 나아가 원소까지 물리친다면 이 천하는 명실상부 원씨 가문의 지배에 들어온다.

그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손에 잔을 들었다.

아름다운 금빛으로 빛나는 꿀물.

“원가를 위하여.”

그는 아무도 없는 어전에서 홀로 잔을 들었다. 원소가 동탁과 대립, 그리하여 동탁의 손에 의하여 이제는 전부 죽어버린 원가의 사람들을 위하여 건배.

* * *

서주군과 다시 합류하여 진격, 아군은 구강군의 서곡이라는 거점에 진을 쳤다. 앞으로 조금만 더 전진한다면 수춘까지 당도할 수 있을 터.

“주인아, 왜 그리 표정이 별로야?”

“그냥.”

이 근방으로는 제법 평지였으나, 반대로 수춘을 넘으려면 하천을 건너야만 했다. 원술이 괜히 수춘을 거성으로 하여 참칭한 것이 아닌 것이, 당장 주변으로 하천과 강을 끼고 있어 직접 밀고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거, 웃어. 웃으면 복이 온다잖아?”

“누가 그러디.”

“……그러게. 누가 그랬지?”

여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이내 고개를 홱홱 저었다.

“하여간 주인이는 예전부터 그게 문제야. 응? 전부터 느꼈는데 잘 웃지를 않아. 그냥 좀 웃어주면 덧나? 덧나냐고.”

“아니, 뭔 웃으라고 협박까지 하냐.”

“안 했는데.”

표정을 봐라. 안 웃으면 죽일 기세로 말하는 것이 어찌 협박이 아니냐. 마음은 알겠는데, 강제로 웃는다고 하여 그게 진짜 웃음일 턱이 있겠느냐고.

“어휴, 그건 됐고. 아무튼, 서주군과는 잘 준비하고 있어? 서주의 기병 대장은 관우인데, 너랑 성격이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데.”

“어. 걔 좀 싸가지가 부족하더라.”

관우라는 사람은 기본 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대하는 면도 있는데, 그게 아니고서야 딱딱한 태도를 고수하기는 하더라.

나야 반동탁 토벌전에서도 몇 번 보았으니. 그녀가 화웅의 목을 쳤을 때는 찬사를 보내었고, 그러면서 몇 번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에 망정이지.

“진짜 언제 한 번 작살을 내야 하는데.”

여포는 그런 성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특히 장비보다 관우를 극도로 싫어했다. 그나마 장비와는 종종 말도 섞으면서 잘 지내는 듯한데 정작 저쪽 기병 대장은 장비가 아니라 관우니까.

“그래도 잘 지내봐.”

“주인이 명령이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래도 영 띠껍단 말이야. 매번 말 짧게 찍찍 내뱉고. 게다가 은근히 어려운 말로 막 따박따박 말 쏘아붙이는데.”

“……그건 사마의를 붙여줄게. 같이 가봐.”

일단 그런 문제는 임시로나마 처리한다고 해도, 아군 전력 중에서 기병 전력이 가장 정예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기병대의 수장인 여포와 관우가 계속 반목하게 되는 건 달가운 일은 아닌데. 여포 개인에게도 문제는 있겠지만, 분명 관우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중에 따로 유비에게도 말을 해둘게. 그러니까 일단은 조금 참고, 여타 복잡한 문제에는 사마의를 내 대리로 보낼 테니까 그 꼬맹이를 잘 써먹어 봐.”

“그 꼬맹이라면야 뭐….”

여포는 살짝 떨떠름한 반응으로나마 수긍했다.

기본적으로 여포와 사마의는 티격태격하는 관계였지만, 그래도 여포는 사마의의 지략을 포함한 업무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사마의도 그녀가 아군 최강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으니 둘은 그래도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우선 기병의 문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하여도 아직 골치 아픈 일은 많았다. 이제 곧 수춘인데, 저들이 이리도 쉬이 당도하게 둘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치중이 너무 늘어져 유비가 제안했던 수로를 통한 보급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보급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군량을 비롯한 물자가 모자랐던 원정이기에 이건 뼈아픈 부분.

“그 외의 문제는?”

“일단 나머지는 장료한테 전부 맡기긴 했는데, 걔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병마를 관리하는 걸 일반 병사들에게 맡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그건, 방삼이에게 좀 도와달라고. 아니, 놈은 지금…. 하아, 그러네. 일단은 사람을 조율해서 보낼게. 그밖에는?”

“우리 쪽은 그걸로 끝일걸.”

그녀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 병력의 조율과 배분. 안 그래도 연합군의 성질을 띠는 아군이었기에 더욱 복잡한 감이 있었다. 이걸 다른 사람들은 그리 쉬이 척척 해냈던 걸까. 솔직히 말해 당장에라도 파업하고 싶은 게 속내였다.

아니, 진짜로.

“근데 주인아.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일단 좀 쉬어도 되는 거 아냐? 아랫것들이 잘 해주고 있을 건데 말이야.”

적어도 자기가 군을 이끌 땐 그랬다는 여포의 말. 물론 그럴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당장 서주군과 아군과의 조율에서는 내 이름을 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당장 보급이 점점 늦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난 괜찮으니까, 넌 일단 관우랑 좀 어떻게 해봐.”

“그냥 한 번 꺾어버리면 말 잘 듣지 않을까?”

그 여자가? 글쎄올시다.

내가 보기에 관우는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굽힐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 관우가 유비 말에 껌뻑 죽는 현 상황이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일단 말로 잘 해보고, 안 되면 사마의를 불러. 그 꼬맹이라면 관우를 논리적으로 잘 구워삶건, 말로 안 되겠다 싶으면 대책을 마련해줄 거야.”

그러면 일단 이 문제는 유비와 만난다고 하고.

곧 수춘에 당도할 것인데, 어디에 진을 꾸리느냐도 관건이었다. 유비를 필두로 한 서주의 지휘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주둔하길 원했고, 반대로 조홍과 사마의는 회수를 끼고 수춘과 밀접한 곳에 주둔하길 원했다.

양쪽 모두 이론적으로 옳은 말.

“어휴 진짜.”

그때 여포가 내 옆에 비집고 들어와 앉더니, 그대로 팔을 들어 머리를 끌어안았다.

말캉하게 뺨에 닿는 가슴의 감촉. 그와 동시에 두근, 또 두근거리며 살짝 빠르게 뛰는 심박동의 소리가 들렸다. 슬쩍 눈만 굴려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자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그녀는 반대편 손으로 내 눈을 가린다.

“…부끄러우니까 너무 보지 말고.”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픽 웃었다.

“조금만 쉬어. 한 십분? 그 정도도 못 쉬는 일이라면 때려치우자고. 내가 가진 게 없어도 주인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으니까.”

먹고살기 어려워서 하는 일은 아닌데 말이지.

그래도 그녀 나름대로 내 걱정을 한 모양인데, 이런 것까지 거절하면 아마 잔뜩 표정을 찡그리며 칭얼거릴 게 뻔하여 그냥 몸을 맡겼다.

아직 할 일은 많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10분 정도 쉰다고 하여 망할 일도 아니었다. 진짜 그거 쉬었다고 망한다면 이딴 일 때려치우는 게 낫겠지.

“사령관님! 서주목께서 찾아왔습니다!”

“……아, 진짜 눈치 없는 귀 큰 년.”

아니, 그러니까 귀 큰 년이라고 하지 말라니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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