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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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본진으로 복귀해 투구를 벗을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는 속에 찬 열기를 빼내며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고개를 돌리면 부상 당한 병사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피아 구분할 것 없이 바닥에 나자빠져 죽은 이들을 치워 정리하는 상황. 한 발짝 내디뎠을 때 질척거리는 감각이. 발을 들어보니 땅에 고인 핏물이 진득하게 신발에 들러붙은 것을 보였다.
“동생, 수고했어.”
조홍은 손을 들며 나를 반겼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그쳤다. 웃을 수 없었다. 사람의 죽음을, 전쟁의 마무리를 앞두고 웃는 것은 그 죽음을 모욕하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는 선에서 답했다.
“이야, 그 손책이라는 계집. 확실히 강하더라.”
그녀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군 전선에서 교전하고 있는 와중에 급히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기마와 용병. 하여 이곳까지 당도하여 바로 전투를 이행할 수 있는 전투력에서는 가히 놀라운 부분이 있었다.
유비가 제대로 움직여줄지 알 수 없는 상황.
내일도 재전이 있을까.
“동생도 고생 많았을 건데, 일단 오늘은 푹 쉬어둬.”
“총사령관이라는 자가 그럴 수야 있나.”
어깨를 으쓱이며 어깨에 두른 망토를 풀었다.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아군을 독려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외에도 여럿. 솔직히 말하자면 과한 긴장으로 몸에 힘도 많이 들어가 지치기야 하였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전장에 직접 나서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자리가 자리여서 그런지 정신적인 피로가 더했다. 죽음을 그저 지켜보며 명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표정은 그게 아닌데?”
“거참. 그런 건 그냥 못 본 척하는 게 예의 아니요?”
“그런 예의는 배운 적이 없어서 말이야.”
이죽거리며 짓궂게 있었지만, 반대로 긴장이 풀리는 느낌도 있었다. 너무 어깨에 힘을 주었을까. 계속 전세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면서 해답을 찾는 과정은 내게 필요 이상의 피로로 다가왔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편히 대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일단 수습이 완료되는 대로 군의를 열 예정이니, 방삼이도 붙여줄 테니까 군의 전까지 사상자의 조사를 우선시해줘.”
“대열의 조정은?”
“그건 서황이랑… 사마의는?”
“그 아이? 걔라면 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전차. 거기에는 제 몸에 맞춘 갑옷을 두른 사마의가 있었다. 필요하다기에 맞춰줬는데, 진짜로 저걸 두르고 전선을 돌았을 것을 생각하니 참갑갑하네.
“아저씨!”
사마의를 실은 전차가 바로 지척까지 다가왔고, 그 뒤에 바로 그 위에서 폴짝 내린 소녀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뭘 그리 걱정스럽다고.
“어디 다친 곳은요?”
“전선에 나서지는 않았으니까.”
“어디 화살에 맞은 곳은 없고요? 뭐 숨기는 건 아니죠? 아니지, 옷 까봐요. 아저씨는 살살 속이려고 하니까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게?
아니 내가 뭐 맨날 속이는 줄 알겠네. 끽해야 가끔 사마의가 가르치는 것이 귀찮아서 일이 많다고 핑계 대긴 했지만, 그게 자주 있던 일도 아닌데 말이야.
“없다, 없다니까는.”
“아빠 걱정하는 딸 같네.”
옆에서는 조홍이 픽 웃었다.
“아저씨는 맨날 어디 다쳐오는 게 다반사잖아요. 손책이 그쪽으로 갔다는 건 들었어요. 맞상대하거나 하진 않았겠죠?”
“그럴 깜냥이냐. 내가 나서면 지휘는 누가 하고.”
“다행이네요.”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을 살짝 치켜떴다.
“그래도 항상 주의하세요. 아저씨는 이제 병사나 돌격대장의 역할에서 벗어날 때가 됐으니,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는 거. 전쟁은 뭐라고 했죠?”
“머리를 잃으면 끝. 안다고, 알아.”
하여간 잔소리는.
그만큼 걱정해준다는 거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들으면 묘하게 반발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손책이 앞으로 나섰을 때, 아주 찰나였지만 몸이 움찔거렸다는 걸 생각하면 아예 안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까.
사실은 전선에 나서고 싶었으니까.
손책의 울부짖음에서 손견을 겹쳐보았다. 손책과 마주하면 조금은 그 남자의 모습이 지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붉은 두건을 두른 모습에서 손책과 손견을 겹쳐보는 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조홍 부사령관님.”
사마의는 그 시점에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빠라고 하기에는 나잇대가 가깝고, 공무를 나누어 짊어지는 관계에서 그런 사사로운 빗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그런 식으로 덧붙이지 말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이, 예이.”
정색하는 사마의와 설렁설렁 대답하는 조홍.
아니 뭐, 나도 솔직히 사마의 나이 또래의 자녀를 가질 정도로 늙은 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질색할 정도인가. 조금 상처받네. 물론 아빠와 딸 정도로 깊은 관계는 아니어도 저리 싫어할 정도까진 또 아니잖아.
솔직히 싫어해도 늙다리 취급당한 내가 싫어해야지.
“하여간, 그러면 동생? 난 방삼 진사를 데리고 사상자 파악에 들어갈 테니까, 군의 재정비 등은 맡길게.”
“기병대는 아마 장료가 직접 조사하고 있을 거니까 우선 본대 위주로 알아보셔도 될 거요. 끝나는 대로 지휘부로 와주고.”
“예이.”
그녀는 마지막까지 건성건성 답하며 자리를 떠났다.
말은 저렇게 해도 일에는 진지하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돌려 사마의를 바라봤다. 이 꼬맹이는 아직도 조홍의 저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매사에 진지하질 못한 사람이네요.”
“원래 저런 사람이야. 그리고 군의 업무는 확실하게 이행하니 그 부분은 의심하지 않아도 돼. 저렇게 긴장 풀어주는 사람도 한 명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전 잘 모르겠네요.”
그런 것도 있는 거다.
모두가 진지함을 지키며 딱딱하게 굴어서야 위가 쓰릴 뿐. 인간은 모두 같은 모습을 할 수 없었고, 저런 성격인 사람이 분위기를 띄워주는 사람도 있어야 둥글게 돌아가는 법이었다.
모임이라는 것은 응당 그리 흘러야 옳다.
그걸 원칙적으로 행동하는 꼬맹이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릴까. 천천히 알아가겠지. 모두가 효율적으로, 원칙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그렇게 이해해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아무튼, 본진의 전황은 어땠어?”
“손책의 진격이 꽤 매서웠어도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나머지는 적의 본대인데, 그쪽은 여포와 장료 장군이 직접 나서서 무너뜨렸는데 말이 필요할까요.”
여포는 아군 전력 중에서는 최상위의 전력.
거기에 장료까지 받치는 기병대의 위력이라면 천하에서도 능히 한 손에 꼽을 전력이었다. 전면전에서 적의 기민함에 휘둘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적에게 완전히 밀린다고 말하기에도 힘든 전력.
“내일까지는 전선이 유지될까?”
“유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적이 어떻게 이 전장을 바라봤는지에 따라 다르지요. 이번에 쉬이 결판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오늘이라도 물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마의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다소 희망적인 관측이지만요.”
“그랬으면 좋겠네.”
아군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여기서 손책과 다투며 전력을 소진하는 것도 아쉬운 상황. 예주에서 출발했을 조조의 본대도 양주를 향해 진격할 시기가 되었다. 그러니 아군도 이 국면을 빠르게 밀고 나아갈 필요성이 있는데.
“어떻게 될 것 같아?”
“저라고 해도 정보가 부족해요. 우선 사람을 보내어 서주군의 동태를 살폈는데, 적어도 인근에서 주둔한 흔적은 없었으니….”
그러면 예정대로 진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솔직히 서주군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유비를 여전히 속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유비에게 군권을 쥐여준 것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탓이지 유비를 신뢰했다는 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으니까.
“일단 군을 정리하자. 꼬맹아, 미안하지만.”
“알아요. 일단 중군을 필두로 해서 이전 부장을 불러 손에 닿는 대로 대열부터 갖추도록 할게요. 아저씨는 본대와 전열을 살피실 생각이죠?”
딱히 말한 게 아닌데도 척척 생각을 알아맞히네. 이러면 그냥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눈치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 생각을 빠르게 읽은 건지.
“총사령관이 사상자가 많이 난 곳을 아우르는 게 낫겠지.”
벌써 한숨부터 나왔다.
내일 이어질 전장은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최대한 사상자 없는 전쟁이길 바랐으나, 오늘 같은 전면전이 또 벌어진다면 그것 또한 요원한 일이겠지.
손책은 눈에 핏발을 세우면 내게 소리쳤다.
그 모습을 떠올리자면 분명 내일도 격한 공세가 예상되는바. 그런 표정을 짓는 이를 전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이들은 보통 전장에서 살고 전장에서 죽는 그런 이들이었더랬다.
쉬이 물러나지는 않겠지.
전장에 물든 이는 그곳을 쉬이 벗어나는 법이 없으니까.
* * *
조조의 본대가 준동하기 시작했다.
“조인, 고생했다.”
“명받은 바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녀의 말에 조인은 묵묵히 답했다. 그러나 어찌 그런 말로 전부 공적을 치환할 수 있을까. 조조는 그런 조인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삼천의 기마로 일만을 격파한 공을 낮추는군. 네가 그러면 앞으로 다른 장수들은 얼마나 공을 세워야 그 공적을 자랑하겠는가?”
“……실언하였습니다.”
“책망하고자 부른 것이 아니다.”
그의 공적은 훌륭했다.
아군이 진격할 요지를 일만의 군으로 사수하며 도리어 원술의 선봉대를 물리쳤다. 그렇게 요지를 충분히 지켜준 덕에 조조는 무난하게 양주를 밟을 수 있었고, 적의 저지선을 물리는데 가장 큰 공을 일조한 것.
조인은 진소연, 전호와 함께 조조군 내에서 조조 다음으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니 조금은 저 자신을 자랑스레 여겨도 좋은 것을, 그는 항상 묵묵히 시킨 일만을 처리했다.
조조는 그게 다소 불만이었다.
“쯧, 너는 어째서 어릴 적의 모습이 남질 않았나. 본인은 네가 조금은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명하신다면.”
“……됐다. 아무튼, 공적은 공적. 차후에 치하하겠으나 지금은 전장이다. 그러니 우선은 아군에 편재되어 선봉의 임무를 맡기고자 하는데, 그에 이의는?”
“있을 리가 없습니다. 대장군께서 명하신다면 그곳이 불구덩이라도 웃는 얼굴로 뛰어들 것을. 그저 명만 내리시지요.”
조조는 그 말에 미간을 와락 찡그렸다.
그러니까 자신의 말에 절대복종하려는 그 자세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그런데도 조인은 그 태도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절대 고치지 않았다.
“그릇을 깨려면 장차 본인의 말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향상심 없는 이에게 발전은 없음을 알아야 하는 법.”
“향상심이라면 언제나. 주군의 명을 더 완벽히 수행하기 위한 준비라면 만전입니다. 대장군께서는 사사로이 제 사촌 누이 되시오나, 그 이전에 한의 대장군이며 장차 큰일을 하실 분. 그러니 그것을….”
“되었다.”
조조는 조인의 말을 끊으며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수고했다. 하여간 너와 대화하면 제대로 된 말이 안 나오는구나. 우선 물러나도록. 그리고 휘하를 재편하여 선봉에 설 준비를 하도록.”
“예, 대장군.”
물러나는 조인을 바라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인은 항상 저것이 문제였다. 저 그릇을 깨야 진정 장군으로 대성할 것 같았는데, 당장은 저런 딱딱한 면모를 고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재능 자체라면 조조 자신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일 것인데.
그녀는 그것이 유독 아쉬웠다.
물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고, 이번 요지를 차지함으로써 단번에 수춘으로 나아갈 발판이 마련된 것도 사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지도에 X자를 칠했다.
이걸로 모든 조건은 완료.
조조는 지도에서 점거한 지역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만 나아간다면 수춘까지는 일직선으로 바로 당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만 된다면 우선 본대의 역할은 전부 끝난다.
그녀는 그 시점에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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