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67화 (267/343)

2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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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몇 황족 저택의 압수수색은 한바탕 난리로 이어졌다. 허도의 혼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 황족들의 저택에서 현 황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황제를 황족 중에서 올리자는 판서가 돌아다녔다는 증거가 나왔다는 것.

그들은 당연히 부정하였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증거가 나왔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구금되어버리니 허도 내에서도 진한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

조운은 상서부 정문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싸늘한 긴장감은 적막이 되어 자리에 내리 앉는다. 그녀는 손에 쥔 은색 창을 갈무리하며 숨을 살짝 내쉬었다. 부담감은 없었다. 단지 명받았기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그녀는 이러한 고요함을 좋아했다.

전투 직전의 긴장감이라고도 할까. 살에 스며드는 듯한 적의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자리에 선다. 그녀는 전투를 그리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인으로서의 투쟁심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아십니까?”

“그곳을 비켜라!!”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조운은 살짝 고개를 들어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 했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누구의 말이건 아무 상관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명령은 단 하나.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상서령의 명이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황족을 구금하여 탄압하니, 상서령의 진의는 대체 무엇이더냐. 폐하께서 어리다고 하여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황제의 머리 위에 노는 권신을 방치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그런 자세한 내막은 잘 몰랐다.

사실 관심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아가씨 말하기를 이번 모의에 관여된 황족은 허도 내에서도 사병을 보유한 이들이라 하여 이런 군사적인 반발이 있을 거라고 들었을 뿐.

그리하여 조운을 자신의 곁에 두었다고 말했다.

전호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개인적으로 아가씨를 향한 죄책감이 있었다. 빚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으로 진소연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기회는 멀지 않아 바로 찾아왔다.

수백의 무리가 준동하여 상서부로 몰려왔다. 황도에서 허가 없이 무기를 쥐고 준동하는 것은 어엿한 반역행위.

대장군이 없는 지금을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조운은 잠시 그런 고민을 했지만, 이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뒤로 아무도 들이지 않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들 전부를 일소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

“마지막 기회입니다.”

“폐하의 권위 위에서 노는 권신들을 끌어내기 전까지 어찌 물러설까. 어르신을 구해내고 황도의 법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음이다!”

허도에는 분명 순찰군을 포함한 방위군이 남아있었다. 그런 이들이 이리 무장하여 몰려오는 세력을 왜 제압하지 못했을까. 황제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별도로 다른 연줄이 있는지는 모를 일.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 창을 치켜들었다.

조운의 뒤로는 백여 명의 병력이 나열하고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대치하고 있는 이들의 머릿수를 얼핏 헤아려도 오백이 넘는 숫자.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기회는 끝입니다.”

창을 들고 한 발짝.

무인의 발걸음에는 무게감이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그녀는 고작 발걸음 한 번으로 마주하던 이들을 한걸음 물러나게 하였으니 충분한 위세를 거느리고 있었다.

“전원.”

호흡을 가다듬는다.

소연의 생각은 그녀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시국에 황족을 건드린 연유도, 그리고 이렇게 군사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소연은 당연한 게 왔다는 것처럼 웃었다.

조운은 그런 소연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여겼다. 전호는 양주로 원정을 떠나 자리를 비웠으니, 지금은 공백이 된 제 오라비를 대신하여 자신이 그녀의 검이 되고자 하였다.

검에 생각은 불필요.

그저 가로막는 적을 베어내는 철이 되겠다.

“역도를 처벌하라.”

명령은 순간이었고 행동은 빨랐다.

조운을 필두로 하여 대치하던 병력이 적을 향해 달려나간다. 이에 응당 황족 휘하 사병도 맞섰지만, 선두에 선 조운의 창 한 번에 가장 선두에 섰던 이의 목에 구멍이 뚫렸다.

은빛이 한 번, 재차 연거푸 이어지는 빛.

시선으로 채 인지하기도 전에 그들의 신체를 꿰뚫는다. 빠르게, 더 빠르게. 그녀는 잡다한 생각을 비우고 오로지 창과 일체가 되어 적을 베어내고 꿰뚫는 일에만 집중했다.

은빛 창이 번쩍일 때마다 적 하나가 쓰러진다.

누군가가 그런 그녀에게 겁을 먹어 채 돌아서기도 전에 한 번. 그렇게 그녀는 앞으로 한 발짝. 다시 한 발짝 내디뎠고, 그럴 때마다 적 서넛이 동시에 쓰러져나간다.

그간 전호나 여포에게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무.

조운이라는 이름이 그들에 비해 빛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녀의 약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황족들이 몰랐을 진소연의 무기. 그것이 지금 이 전투를 통해 만천하에 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다.

다리는 무겁게.

한걸음, 또 한걸음에 무게감을 담는다.

달려드는 적을 일소하며 거리가 났을 때 또 한걸음. 그와 별개로 손은 신속하게 적의 허점을 포착하여 꿰뚫으니, 그저 정면을 향해 걷고 있을 뿐인 그녀를 아무도 잡아내지 못하였다.

이것이 무력이었고, 신속함으로 무장한 힘이었다.

“물러나지 마라. 그저 앞으로, 계속 앞으로.”

그녀는 무표정하게 적을 계속 꿰뚫으며 나아갔다. 제 오라비의 곁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 냉정함으로 무장하여 무표정하게 적을 베어 넘기며 아군을 이끈다.

어쩌면 그것이 조운이라는 여인의 참모습일까.

그저 몰아지경으로 창을 휘두르고 내지른다. 전투를 선호하지 않고 사람의 죽음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마음은 그녀의 오라비와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다른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녀는 적의 죽음에 결코 감정을 이입하지 않았다.

“뭐, 뭐냐. 이런 자가 있다고는…!!”

저 멀리서 누군가가 허둥대는 모습을 발견한다.

비단으로 된 옷이 유독 눈에 띄었다. 눈부실 정도로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몸에 두른 여인. 누가 보아도 이곳에 있는 뭇 범인들과는 다른 차림새.

“찾았다.”

거기서 그녀는 몸을 한 차례 수그렸다.

적을 가장 빠르게 제압하는 방법은 적의 수장을 잡는 것. 제 오라비가 특히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피해를 줄이며 효과적으로 적의 기세와 투쟁심을 짓밟을 수 있는 전술.

금적금왕.

적을 치려면 그 우두머리를 잡아라.

“히익!? 마, 막아라. 저년에 다가오지 못하게….”

말은 거기까지.

조운은 순식간에 한 번 크게 날아오르듯 자리를 박차 허공으로 도약했다. 잠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높이까지 도약했다고는 해도 인간이라면 응당 다시 지면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디딤대로는 숱하게 많은 적의 머리가 있는 것.

가볍게 적의 머리를 딛고 다시 도약한다.

단 두 번.

그 정도면 고작 수백 언저리가 섞여 싸우고 있을 전장을 빠져나오기엔 충분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적 수장의 앞에 당도한 그녀는 창을 들었다.

“항복하세요.”

“이, 이 천것이! 본녀가 누구인 줄 아느냐?”

“역도에게 자비는 한 번뿐.”

그리고 그 한 번의 기회는 방금 사라져버렸다.

그대로 창을 내질러 그녀의 목을 꿴 조운이 잠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상서령의 무사들과 적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전투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적의…… 이름이 뭐였더라.”

잠시 고개를 갸웃한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꿰어낸 창을 뽑고 크게 휘둘러 적 수장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창에 꿰고는 하늘 높이 치켜든다.

“너희의 장은 죽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이름 모를 수장의 목을 내건 그녀.

수백의 무장세력을 이끌고 준동으로 이어질 뻔한 것이 그녀의 손에 의해 너무 맥없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전장을 조율하던 조운.

그리고 상서부의 층간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소연.

“끝났네요.”

곽가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여 허도 내에서도 영향력이 강하고 조조에게 반발이 심하던 황족을 엮은 것이었다. 당연히 군사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조운을 남겨 이 사태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상서부가 뚫렸다면 허도 각지에서 간을 보고 있던 유지들도 들고일어났을지 모를 일. 특히 대장군의 부재를 틈타 세력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여기가 정리되었다면 문제는 없지.”

“와, 저 여자 뭐예요? 강하다, 강하다 하는 건 들었는데, 와….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네요. 사람 몸놀림으로 저게 가능해요?”

「 조운 자룡 」

통솔력 - 91

무력 - 96

지력 - 75

정치력 - 64

매력 – 81

소연은 조운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씩 웃었다.

“만개한 꽃이니까.”

다소 어린 나이에 합류했던 조운은 자신과 전호의 곁에서 만개하고 있었다. 조자룡이라는 이름은 현대에도 여전히 명성을 떨치는 것이었고, 특히 게임이었을 당시에는 어지간한 무장과 비교를 불허하는 강력함을 자랑한다.

잘 빠진 능력치의 밸런스가 그것을 증명했다.

“곽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알겠지?”

“알죠. 일단 황제 폐하께는 상서령이 직접 가시는 거겠고, 그러면 남은 잔당의 처리나 이 사태로 엮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엮으면 되는 거죠?”

“황족은 자제해. 이 이상 황족들을 들쑤셨다가는 사태가 악화할 수 있으니, 영향력이 조금 떨어지는 선에서 조공에게 반발하던 이들로만.”

“알고 있어요.”

곽가의 말에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서의 소란은 정리되어가는 수순이었다. 여전히 반발하는 몇 적의 목을 베어내며 조운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리를 정리했는데, 이 자리를 정리하고 사태를 황제 폐하에게 보고하면 모든 게 끝날 일.

예정보다 더욱 빠르게 일이 처리되고 있었다.

오백이 넘는 사병을 이끌고 황도를 범하였다. 이것은 중대한 사안으로, 역적으로도 몰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이들이 상서부에 흙발로 진입하려 들었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중죄.

하여 소연은 그들의 움직임이 있자마자 그 주변을 순회하던 허도 병력을 전부 다른 곳으로 보내어 그들이 쉬이 상서부로 진격할 수 있게 일부러 길을 터주었다.

“그런데 상서령. 한 가지 문제가 있거든요?”

“문제?”

“그, 순욱 선생님 있잖아요.”

어렵게 말을 꺼내는 곽가.

청류파의 수장인 순욱에게 있어 이 사태는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청류파라는 것이 역사에서나 게임에서도 그러했듯, 한이라는 국가의 존망과 청렴함에 근간을 두는 것이었으니.

“위증이라는 것이 새어나가지 않았다면 괜찮아.”

“역모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군사적으로 마찰을 일으키게 된 것에 대해서 성급한 게 아니었느냐고 말할걸요? 분명히.”

“일단 순욱의 불만이 한계점을 넘어간다 싶으면 나한테 보내.”

어차피 행했어야 했을 일이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황족 자체의 영향력을 허도 내에서 지워버림으로 차후 조조에게 반항할 계파의 구심점 자체를 쳐낸다.

그들의 역모 판서가 위증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어차피 저들이 성급한 군사행동을 초래하여 허도에 혼란을 가중한 이상 순욱이 아무리 뭐라고 하여도 명분은 전부 그녀가 쥐고 있었다.

“우선 조운이 돌아오는 대로 넌 조운과 함께 연루된 이들을 모두 엮어. 나는 폐하에게 이 일을 정리해서 올릴 테니까.”

소연은 곽가에게 명하고는 등을 돌렸다.

허도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터였지만, 반대로 이 모든 국면을 제압하고 난다면 장차 다른 혼란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것 또한 소연의 공적.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면 쌓아갈수록 조조는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그렇게 점차 무게감을 키워나가며 내부에서도 지지세력을 키워낸다면 분명 모든 게 끝난 이후에는 제 뜻을 천하에 피력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호세라는 이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더욱. 게임에서 항시 나오던 등용 문구에 그 남자가 진심이 되었을 때부터 그녀 또한 이 일에 진심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남은 건 양주에서의 전란에서 승리하는 것뿐.

원술의 움직임이 역사를 아득히 뛰어넘어 빠른 준동이었고, 그렇기에 조조군은 채 대비하지도 못한 채 갑작스럽게 군을 움직이게 되었다. 총력으로는 부족하나 그 면면에서는 결코 원술에게 패할 수 없는 전장.

그녀는 그의 얼굴을 뇌리에 그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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