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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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절정에 달해 따사로운 계절의 온기가 스며드는 계절에 때아닌 비명이 들판을 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도, 말이 울부짖는 비명도, 사람들의 고성과 북을 두드리는 음색도 전부.
그 모두가 이 전장에 짙게 드리우는 소음이었다.
“군을 움직여! 전열은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서황!! 녹각으로 달려드는 적이 너무 많다. 직접 나서!”
“예, 조홍 장군.”
조홍은 전열의 지휘부에서 전장을 살폈다.
적의 기세가 확실히 대단했다. 양주에서 한 끗발 날리는 이들이라고 듣기야 했다지만, 설마 조조의 정예군이었던 자신들에게까지 이 정도로 선전하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다.
과거 손견이 이끌던 군이라고는 들었다.
물론 경력이야 인정했지만, 그 전투력이 아직도 건재하여 자신들을 휘두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녹각을 베어내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병사들을 저지할 방어선을 구축하려는데, 저 멀리서 이쪽을 견주는 기병대의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든 전열이 흔들리면 돌격할 태세를 갖춘 기병.
아군 또한 여포와 장료를 위시한 기병대가 버티고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전열이 뒤로 물리면서 적을 끌어들였을 때, 그 측면을 크게 휘젓기 위해 버티고 있는 병력. 그러니 이 국면은 전열 보병대가 스스로 견뎌내야 할 상황이었다.
“이놈들, 여기서 죽을 생각으로 달려드네.”
그녀는 이런 전장을 극도로 싫어했다.
살기 위해서 싸우는 전장이 아닌,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필사의 전장. 이런 전쟁의 광기는 한 번 말려들면 아군까지 휘둘리게 하는 위험한 독기와도 같은 면이 있었다.
말려들면 안 된다.
그러나 상대는 여기서 완전히 끝을 볼 기세로 진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군 보병대로 잘 버텨주고 있다지만, 심심하면 날아드는 화살의 세례를 막아내면서 적의 돌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꽤 버거운 상황.
반면 그 전쟁을 진두지휘하던 주유도 미간을 찌푸리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적의 방비가 두텁다.”
그의 주변에선 계속 북소리가 일정한 음률을 타고 전장에 나선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건장한 근육질의 남성들이 계속 꾸준히 북을 치는 와중에도 주유는 꾸준히 지휘부의 상석에서 전장을 내려다본다.
“정보 장군에게 신호다. 녹기를 두 번 들어 군을 물리게 하여라. 황개 장군에게도 청기를 들어 군을 전부 투입해 전진케 하라.”
상대의 방비를 꾸준히 뒤흔든다.
한 곳을 두드리다가도 순식간에 반전하여 다른 곳으로 힘을 싣는다. 이렇게 반복하여 계속 꾸준하게 적을 교란하고 뒤흔들어 그 빈틈을 잡아내기 위해 계속 일사불란한 지휘를 이어나갔지만, 적 방어선은 금세 혼란을 잠재웠다.
균열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팽팽한 전선.
“쯧, 손책을….”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책과 태사자를 중심으로 한 기병대는 아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적 방어선을 꿰뚫을 최후의 공성 추. 거기에 아직 적의 기병대는 전장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벌써 손책을 꺼내면 적에게 한 수 밀린다.
“이대로 계속 군을 교란한다. 북을 계속 쳐라. 뿔나팔을 불어 신호를 주고, 준비된 궁수부터 다시 중군으로 배치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적 진영이 딱히 고지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 기본적으로 이 근방은 고지라고 부를 곳 없어, 적 궁수의 사격이나 아군 궁수의 사격이나 일정한 간격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적은 확실히 그간 연전에 연전을 이어나간 조조군의 정예. 과거 손견이 이끌던 정예에 이민족 용병부대까지 포함된 아군을 상대로도 팽팽하게 맞붙는 노련한 모습에 주유는 혀를 내둘렀다.
여기서는 한 번 도전을.
그렇지만 그것이 이 팽팽한 균형추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고려하자면, 지금은 우선 이리 상대의 방어선에 혼선을 주는 전술로 밀어붙여도 될 것 같았다.
“한당 장군에게 명을. 이대로 진군하여 적 전방과 교전하고 있는 정보 장군과 황개 장군의 뒤를 받치게 하고, 여차하면 바로 교대할 수 있게 미리 포진하도록.”
이대로 차륜의 형태로 뒤흔들겠다.
주유는 지휘봉을 잡고 끊임없이 병사들에게 주문했다.
반면 조조군 지휘부에서는 전호와 사마의가 전장의 양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이 교차하여 계속 아군 전열을 두드리는 상황.
“꽤 생각했네요.”
“저렇게 용병하기도 쉬운 게 아닐 텐데.”
전호는 순수하게 적의 기량에 감탄했다.
전시의 혼란에도 재빠르게 군의 교대가 가능하다는 건 어지간한 숙련병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기예였다. 그런데도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물러섬을 모르고 죽음을 각오하며 아군의 방어선을 두드린다.
전선에서 직접 고전분투를 함께하며 지휘하는 장군들의 역량일까. 손견도 그렇지만, 그의 제장 역시 선두에서 직접 진두지휘하며 아군을 고무시키는 방식의 지휘관이었다.
“우선 방삼 아저씨를 전열 녹각을 세운 방어선으로 보내죠.”
“그쪽?”
전호는 사마의의 말에 의문을 표출했다.
적은 현재 아군 방어선을 계속 두드리며 양면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나마 여유로운 곳이 있다면 서황이 직접 나서 적을 몰아내기 시작한 녹각이었는데, 그쪽은 방비도 탄탄히 해두어 아직 여력이 있었다.
오히려 손이 부족한 곳은 조홍의 본대가 아닌가.
“예. 녹각을 세운 방어선에 적 공세가 헐거워졌잖아요.”
소녀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공세가 약해졌다면 당연히 계속 맹공을 퍼부어 밀리기 시작한 곳을 지원하는 게 낫지 않은가.
“그게 왜?”
“그야 적의 노림수가 딱 보아도 녹각이니까. 아마 기병을 들이박을 생각일까요. 그러니까 녹각을 세운 방어선에만 공세를 조금씩 줄여 아군 병력을 전열 본대로 몰아넣고 있잖아요.”
사마의는 거기까지 답하고는 다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전선을 주시했다. 아직 손책이 이끌 것으로 보이는 기병대에 뚜렷한 움직임은 없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돌격할 수 있는 거리에 주둔하며 전황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
소녀는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군이 여기서 갑자기 돌출한다면? 그건 안 된다. 그래서야 방어선 자체가 무너진다. 그렇다면 기병대를 앞세워? 그러기에는 상대 기병대의 움직임에 노출될 우려가 있었다.
계속 새로운 발상을 꺼내고 폐기, 다시 생각하고 고심하기를 반복. 어느새 소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하나둘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아저씨도 전선에 나가야 할 수 있어요.”
“준비는 됐다.”
중랑장 휘하 친위대는 언제든 출격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군이 싸우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니 몸이 쑤시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사마의의 말은 반가운 면도 존재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상대 전력이 아군의 예상을 웃돌게 강하니까. 움직임도 그렇고 전투력도 그렇고, 생각보다 강적이에요.”
“그러냐?”
그 말엔 전호가 오히려 반문했다.
그는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견이 이끌던 것에 비해서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 아무리 손견의 딸이라고는 해도 아직 완숙한 호랑이를 따라잡기에는 버거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적이 강병이라는 것에는 틀림도 없어 고개를 끄덕인다.
전선은 계속 고착되어간다.
정보와 황개, 한당으로 구성된 3군은 계속 교대와 전진, 물러섬을 반복하며 조조군의 방어선을 두드리고 있었다. 게다가 전호가 중군에서 전황을 지켜보며 군을 갈무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 중군에는 주유가 대기하며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가다듬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조홍은 생각보다 잘 버텨주고 있었다.
녹각을 지키는 서황의 전투력도 훌륭하였고, 방삼도 중군과 전열 사이에서 병사를 배분하고 다시 모으며 조율해주는 상황.
적의 거친 공세와 아군의 단단한 수비.
사마의는 이것을 깨뜨릴 단 하나의 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전호 본인의 움직임이 될 터. 그렇지만 아직 적도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불안한 느낌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이 움직여 아군에게 최악일 상황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고뇌하여 판단한다.
계속 머리를 써 전황을 살피고 혹여 놓친 게 있나 고심했다. 상대의 움직임은 기민하기 그지없었고, 거기에 휘둘리기만 해서는 언젠가 전열의 방어선도 깨지기 마련.
그 전에 수를 써야 했다.
“아군 방어선을. 그렇다면….”
사마의는 홀로 중얼거리며 전선을 살핀다. 아직 아군에게 일어난 균열은 없었고, 이어 명한 대로 방삼이 데리고 있던 군까지 전부 녹각에 합류하여 적의 공습에 대비하기 시작한 상황.
적은 세밀하게 군을 조정하여 아군 진영을 뒤흔들고자 하였다. 지휘할 수 있는 장수를 여럿 두어 오밀조밀하게 부대의 위치까지 조정하는 역량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
그렇지만 아군 역시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저씨. 슬슬 준비해주세요.”
“오냐.”
전호는 덤덤하게 답하며 허리춤에 찬 청강을 뽑았다.
전선을 계속 뒤흔들고자 한다면, 단 한 번의 공세 전환으로 활기를 넣겠다. 손책의 움직임은 여포와 장료로 충분히 틀어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사마의는 중앙에 대비하던 군까지 전부 전선에 투입하기로 정했다.
여전히 비명과 함성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인간의 끝을 볼 수 있다는 전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열기를 더했고,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인체에서 내뿜어지는 열기로 후덥지근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친위대는 무기를 들어라.”
전호는 직접 청강을 뽑아 저 너머의 적을 가리켰다.
“전군, 전진.”
한 발짝.
전장의 광기는 그 끝을 모르고 인간을 좀먹는다. 전호 또한 병사를 거느리고 폭력과 살육의 현장에 발을 내디디니, 전장은 인간의 생명을 집어삼키며 그 혼란을 더욱 가중하고 있었다.
* * *
유비는 탁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손책이 보낸 사신의 말을 떠올렸다. 잠시 진격을 늦추는 정도로도 좋다. 조조의 강제에 놀아날 필요도 없지 않으냐면서 살살 이쪽의 의중을 살피던 그 모습이 눈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나쁘지 않습니다.”
제갈근이 그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이 전장은 어차피 조조와 원술의 전장. 저희는 조조의 의향에 황제 폐하의 이름을 덧대었을 뿐인 강제적인 조약에 엮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의견은….”
“진격을 수일 미루지요. 그 정도라면 설령 조조군이라 하여도 저희를 책잡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발짝 물러서 관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제갈근이 보기에 이 전장에서 서주군의 피를 흘릴 필요성이 없다고 느꼈다. 여기서 만일 중랑장의 군이 손책에게 패한다면, 그 이후에 전장에 돌입하여 군의 수습을 도우면 그만.
어차피 현 국면에서 급한 것은 조조였다.
“수일의 오차 정도로 책잡을 수는 없을 겁니다.”
변명이야 이것저것 들면 그만이었다. 적의 매복에 주의하며 진군하였다 해도 그만이었고, 진로가 예상보다 거칠어 치중을 옮기기 위해 우회하였노라고 해도 그만.
어차피 조조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는 이상 언젠가는 서주도 조조와 대립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구태여 조조를 위해 피를 흘릴 필요도, 물심양면으로 그 지원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잠시 시간을 지체하는 정도라면 상정 범위 내.
“그렇지만 나중에 말이 나오지 않겠나?”
침묵하는 유비 대신 장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조가 차후 서주 방면의 연합군 진격이 지체, 혹은 중랑장의 군이 패한다면 그 책임을 자신들에게 물릴 확률이 없지도 않았다.
“그건 말씀드린 대로 수일의 지체였을 뿐이라고 밀고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그들도 저희에게 힘을 빌린 상황이니까. 아군에게도 사정이 있었다는데, 필요 이상으로 격하게 짚고 넘어가지는 못할 거고요.”
어차피 원술을 잡아야 하고, 거기에 나아가 이 전쟁의 여파로 당분간 내실을 다질 수밖에 없을 조조는 향후 섣부르게 서주를 건드릴 수 없었다.
유비와 조조는 언젠가 검을 마주하게 되리란 것이 제갈근의 생각이었고, 하여 그녀는 손책이 보낸 사자의 말을 제법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만약 조조가 패하면요?”
관우는 그런 제갈근에게 의문을 던졌다.
이 전장은 조조도 필사적으로 임하는 전장. 그만큼 원술의 세력은 녹록한 것이 아니었고, 이 전장에서 중랑장이 고전하거나 패하면 자칫 이 원정 자체가 일그러질 우려도 존재했다.
“그러면 더 낫지요. 원술도 바로 공세로 전환할 수는 없을 것이고, 반대로 조조는 그간 쌓아온 입지가 흔들릴 겁니다.”
거기까지 말을 이은 제갈근은 유비에게 시선을 건넸다.
“원술이 득세한 중원과 조조가 득세한 중원. 어느 것이 유공에게 도움이 될지, 이건 잘 생각해보셔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원술과 조조….”
그녀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마음을 비웠다.
시간은 촉박했다. 생각은 짧게, 그리고 판단은 빠르게 내려야 하는 상황. 유비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상으로 하여, 현재 상황과 대입하여 원하는 결말을 짜 맞췄다.
쭉 생각을 이어나간다.
“저는….”
이윽고 그녀는 입을 연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