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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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모은 회의장에서 입을 열었다.
“이번 전장에서의 2군은 서주군으로 하여 이 시간부로의 모든 작전권을 유비에게 일임한다. 불만이 있는 자, 있는가?”
순간 장내가 얼어붙은 듯 조용한 침묵이 감돌았다.
조홍을 비롯하여 아군 제장들은 전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바가 있는 듯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시선을 돌려 유비를 바라본다.
“서주군은 지금부터 전장 북측 산맥을 돌아 우회하라. 그 과정에서 있을 모든 작전권을 일임하니, 목적은 요새에 당도하거나 요격하러 나온 손가의 군을 물리치는 것. 이의는?”
“……없어요.”
유비는 제법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아군은 서주군의 통솔권을 인정했을 뿐, 모든 작전권은 아군 수뇌부의 명령에 따르는 방향성으로 일을 진행했다.
그런 그들의 고삐를 놓는다.
여기서 통제에 벗어난 유비군이 그대로 틀어막혀 전쟁을 관망하는 태도로 임한다면 분명 낭패였지만, 반대로 제대로 수행해준다면 썩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사령관.”
조홍이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장난스럽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진중한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
“그러나 손책의 군은 강합니다. 양분한다면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우려했던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저 속내로 정말 유비의 고삐를 놓아버릴 거냐고 묻는 거겠지. 조조도 유비를 단단히 통제하라고 명받았는데, 전쟁 초입부터 이래도 되겠느냐고.
문제 될 건 없었다.
“조홍 부사령관. 그러면 그대는 아군이 비슷한 전력으로는 손책 그 애송이를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구태여 압도적인 전력을 양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군을 합산하여 우회하던가, 아군도 방패병을 내세워 적 함선의 지원사격을 막아내며 진격하는 것이.”
“가도가 협소하다. 아군 총 전력을 내세울 수 없는 전장에 구태여 힘을 싣는 건 피해만 초래할 따름. 유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유비는 내 질문에 제법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군은 문제없어요. 적이 요격하러 요새에서 나와준다면 오히려 감사하죠. 진격하는 경로는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주의를 들이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면 그리하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의를 폐한다.
기존에 편재되었던 군은 서주군만 제외하여 재편하면 되니 어려울 것은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선 이후로 물러나는 서주 인사들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동생.”
“아니, 왜 그리 표정이 어둡나?”
“농담하는 거 아냐.”
조홍은 의외로 진지한 어투로 다가왔다.
“군을 양분한다고? 혹시 이번 패배 때문에?”
그녀는 답지 않게 미간을 찌푸리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조홍을 알고 나서 이렇게까지 까칠한 그녀는 처음인 것 같은데.
“동생, 이런 초전의 패배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대로 군을 나누었다가 유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유비가 손책에게 패하면 그때는 진짜 일이 커져.”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유비 자신은 물론이요, 그 휘하의 장수들도 저마다 전쟁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대로 전군을 물리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보니까.
전장을 주도한다.
지금까지는 적이 준비한 판 위에서 놀아난 꼴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까. 적도 아마 아군이 이렇게 나설 것을 예상했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감행할만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사마의, 너는 어떻게 생각해.”
고개를 돌려 사마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간 내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 것은 언제나 사마의였다. 이번 패배 직전에도 유일하게 불안감을 표출했던 것이 이 꼬맹이였으니, 우선 소녀의 감상을 듣고 싶었다.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이 이후 적의 대응에 대해 생각하신 건 있으세요?”
“아마 양분된 군 중 하나를 요격하려 들겠지. 적어도 이대로 수수방관하며 포위당하는 머저리 같은 짓은 안 하리라 생각하는데.”
내 생각이 맞았는지 사마의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양분된 군은 각각이 적군과 비슷한 규모이니, 그들도 분명 그것을 노려 각개격파를 생각하겠죠.”
그러면 아마 서주군을 노리지 않을까 싶었다.
아군은 진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선회하여 행군하고 있을 서주군에게 비교적 빈틈이 많을 테니까. 그래서 나도 서주군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 시선을 양분할 생각이었다.
“노린다면, 흠. 그러네요.”
사마의는 잠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임시로 그려둔 전장의 지도를 쭉 바라보며 한동안 관찰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아군이겠네요. 그러니 일단 저희는 방비를 강화하던, 아니면 아예 적을 격파하건. 둘 중 하나만 택하면 그만이겠고요.”
“우리를 노린다고? 유비가 아니라?”
소녀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군의 규모는 서주군이 조금 더 많겠으나, 반대로 아군은 서주군보다 강했다. 거기에 진을 구축하며 방비에도 능할 것인데 구태여 아군을 노린다고? 차라리 행군하고 있는 서주가 더 잡기에는 쉬운 상대가 아닐까.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이 원정의 주축이 조조니까.”
사마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이야말로 서주에서 출병한 군의 핵심이니까요. 저희가 패해 병력 구성원이 서주 위주로 이뤄진다면 유비가 제대로 움직이려 들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를 친다고?”
“한 번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순식간에 이만이 넘는 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잖아요. 저라면 당연히 전력을 동원해서 이쪽을 공략하겠어요.”
확실히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는 사마의가 나보다 훨씬 나은 게, 나라면 그냥 공략하기 쉬운 쪽으로 말머리를 틀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사마의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적이 서주군을 노린다면?”
“그럼 당연히 저희도 진군하면 그만이죠. 저쪽의 군 규모로 서주군을 도모하려 든다면 총력을 다해야 해요. 아군의 강점은 적보다 많은 숫자. 그러면 적이 서주에게 신경이 쏠린 사이에 전장을 돌파하면 끝.”
사마의는 지도에 놓인 아군 깃발을 움직였다.
아군이 지금 이곳에서 발이 묶인 이유는 장강을 이용한 적의 지원사격 탓이었다. 고지를 점하고 방비를 갖춰 적의 발을 묶는 사이 함선을 이용한 지원사격으로 적을 패퇴시키는 것이 상대 전략의 요점.
그렇지만 적이 서주에게 시선을 돌리면 충분히 아군만으로도 이 전장을 돌파할 수 있었다.
“단지 문제는 유비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인데.”
사마의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대를 믿을 수만 있다면 구태여 수적 우위가 통하지 않는 전장에서 발이 묶일 이유가 없었다.
이건 오롯이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나는 그 양자택일에서 유비를 믿고 수적 우위를 살리는 방향성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서 만약 유비가 제때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소 고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 할 문제.
“유비를 믿으니까 이렇게 행동했지. 그러면 우회하기까지 걸릴 시간은 약 사흘 정도로 생각하고, 그 시간만 버티면 되나?”
“아마 이틀. 그 안에 결판이 안 나면 적은 이 전장에서 퇴각할 거에요. 저들도 구태여 여기서 포위되어 죽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사마의의 답변에 미간을 붙잡고 고민했다.
지금까지의 전략은 유비만 제대로 움직인다면 수적 우위를 살려 제대로 적을 주도할 수 있는 전장으로 돌변한다.
하지만 적을 이대로 퇴각시킨다는 것이 좀 걸리는데.
“이대로 적을 궤멸시킬 수는 없나?”
“그러면 아군이 공격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건 일단 초전을 치르고 나서 생각하셔도 늦지 않을걸요? 우선은 적 공격에 대비하며 상황을 지켜보죠.”
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도 지금까지의 문답에 대체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비의 건으로 반발했던 조홍도 그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들었으니, 아군의 전략은 대충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지.
관건은 적의 움직임과 유비의 움직임.
유비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난 여전히 애매하다고밖에 답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 여자의 진면목은 아리송했고, 그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으니까.
“주인아, 진짜 그 귀 큰 년을 믿을 수 있겠어?”
귀 큰 년?
그 부분에서 살짝 고민했지만, 이내 그것이 유비를 가리킨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뭐, 사람 귀가 뾰족할 수도 있지 구태여 그걸 귀 큰 여자라고 하나.
비유도 참.
“난 걔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던데.”
“걱정하지 마라. 나도 모르니까.”
알 수 없는 여자였다.
항상 웃는 얼굴로 모두에게 친절히 대하는 여인. 생김새도 아름답고 행동에도 기품이 있으며, 무엇보다 매력적인 여자이니 분명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호감을 품어 이상하지 않을 터.
영 껄끄러운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그래도 믿겠노라고 한 이상, 이런저런 잡설을 덧붙일 생각도 없었다. 내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완전히 그녀를 혐오하거나 의심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같은 편이니까 귀 큰 년이라고 하지 마라.”
여포에게 그것만을 주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적이 움직인다.
녹색 군기를 내건 군이 적 본진에서 떠나는 것을 보며 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저렇게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고, 애초에 이 전장 자체를 구상할 때부터 적이 군을 나누거나 퇴각할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정말 네 말대로 군을 나누었네?”
“이 협소한 전장을 뚫을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러면 이 전장을 피해 퇴각하던가, 혹은 군을 나누던가.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주유는 손책의 말에 담담히 답하였다.
이걸로 첫 구상은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다. 남은 것은 어디를 노려, 적의 중추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 주유는 이 부분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저들 중 하나를 각개격파하는 거지?”
“그래야지.”
주유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중 어디를 칠 거야? 내 개인적인 소망이라면 당연히 조조군이긴 한데, 그래도 저쪽은 좀 그렇고. 일단 서주 촌뜨기들부터 부수는 건가?”
“아니. 네 의견을 따라 조조군을 친다.”
“……어? 진짜?”
되묻는 손책에게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싫으면 서주를 치겠다만.”
“아니, 아니아니!! 완전 좋지! 원수를 갚을 기회가 목전인데 그걸 마다할 리가 없잖아! 그치만 진을 꾸린 놈들보다야 서주쪽이 좀 더 쉬운 상대 아냐?”
주유도 그것을 쭉 고민하고 있었다.
상대한다면 당연히 진 바깥으로 나온 서주군을 상대하는 게 더 쉽기야 했다. 그렇지만 서주군에게 피해를 준다고 하여 적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주는 들러리.
애당초 양주 공략 자체를 선언한 것은 조조를 위시한 황실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서주는 단지 그것에 차출된 용병 같은 느낌.
그렇다면 저 조조군을 무너뜨린다면.
“서주는 어차피 징발되었을 뿐인 병력. 주체인 조조군이 큰 타격을 입는다면 그들이 어찌 움직일지 생각해봐.”
“……나쁘지 않네.”
손책도 그 부분에서 그의 말을 전부 이해했다.
서주는 조조가 부족한 군을 확충하기 위해 황제의 이름을 빌려 차출했을 뿐인 병력. 게다가 서주 자체도 조조와는 깊은 악연이 있었다.
강제력만 없다면 나설 리 없는 전장.
“척후를 보내어 서주군의 진로를 파악하는 중이다. 만약 저들이 제대로 아군 요새로 진격해온다면 기한은 이틀이겠지만, 만약 저들이 늑장 부린다면….”
“제한 없이 조조군을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지?”
주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 북쪽에는 높은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우회하기까지 걸릴 시간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사흘은 걸릴 거리.
만약 유비의 서주군이 제대로 움직인다면 고작 이틀 사이에 조조군을 공략해야만 했고, 그것에 실패하면 아군은 퇴각해야 하는 촉박한 전장이었다.
하지만 서주군은 구태여 싸울 이유가 없는 전장이기도 하니, 만약에라도 그들이 저 멀리서 이 사태를 관망한다면.
“미리 서주군에도 사람을 보내었다.”
구태여 싸울 이유도 없는 전쟁에 힘을 빼지 말라고. 어차피 서주도 조조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니, 이 설득만 잘 통한다면 서주군을 이 전장에서 배제할 수도 있었다.
“이런 군 외적인 부분은 전부 내가 조율하지. 그러니 네가 할 것은 단 하나, 손견 장군이 조련하였던 군이 얼마나 강한지 적에게 보여줘라.”
“……고마워.”
“뭘, 여동생한테 이 정도야 어렵지 않지.”
어깨를 으쓱이는 주유에게 손책은 미소를 지었다.
손견의 사후 오랜만에, 그가 알기에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손책.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최근 그녀는 오직 전장을 앞두고서만 웃었다.
예전에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유소년기부터 함께하여 누구보다 손책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주유에게 있어 그녀의 웃음은 당연하고 흔한 것이었다.
손견이 죽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주유는 어릴 적의 그녀를 떠올리며 착잡한 심정을 달랬다. 원수를 갚으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쓴 입맛을 억지로 다진다.
“가자, 주유. 너도 와야지.”
“……간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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