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63화 (263/343)

26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광릉 전투 무슨 자신감이었느냐, 멍청한 것.

인간은 가끔 자기 자신을 잊고는 했는데, 내가 딱 그 경우였다. 과거 만인을 다스리는 장군이라는 자리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것이 근래 들어서 자주 그런 일을 접하니까 내가 정말 그 자리에 당연하게 녹아든 듯한 느낌이었다.

빗발치는 화살이 아군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단 한 번의 실책.

무슨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정면 대결을 논했던가, 멍청하기는. 저 죽음에 대해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아저씨, 괜찮아요?”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피해는 크지 않아요. 적 함선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아군 장군들이 충분히 앞에서 시간을 끌어주어 경상자를 포함하더라도 피해 자체는 그리….”

사마의가 말하는 도중이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었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 사마의는 나와 본질이 다른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이번 전투의 사상자는 2천 남짓.

실질적으로 파악된 사망자는 천을 조금 넘긴 수준이라 아군 전체의 규모에 비하자면 크지 않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전장의 특수성을 경시한 탓에 불필요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었다.

몸이 무거웠다.

사령관이란 누군가의 죽음을 동반하는 것이라던가. 하여 그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난 이 한 번의 전쟁으로 어깨에 천에 달하는 이들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꼬락서니지 않은가.

상대를 경시했나? 그건 아니었다. 단지 아군의 전력을 너무 과신했다.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그 와중에 아군의 전력으로 짓밟을 수 있다면 승리이노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버렸다.

“일단 물러가.”

“아저씨.”

“괜찮으니까.”

억지로 사마의를 자리에서 물렸다.

고요한 분위기.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바깥에서 비추는 햇살에 비쳐 작은 먼지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생각하자.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 사마의의 불안감을 무시하고 움직인 내 실책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 이것에 눈을 돌릴 생각은 없었지만, 여기서 그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무너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수단을 생각하자.

적은 아직 건재했다. 아마 이 진로로 진군한다면 재차 함선을 활용하여 아군을 요격하려 들겠지. 같은 방법에 두 번이나 걸려드는 건 그저 병신이었다.

우회해야 한다.

이번 패배가 군 규모로 보아 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경시할 수는 없었다. 양주 원정의 초반부터 패배의 낙인이 찍혔다는 것은 다소 입맛이 썼다.

하면 군을 돌린다.

그렇지만 상대가 그것을 예측하지 못할까?

“그럴 리 없지.”

애당초 쉬이 진입할 수 없게 철벽과 같은 태세로 아군을 맞이한 것. 그러니 분명 아군이 이걸 피해 우회하리라는 것도 예상에 두었겠지.

그렇다면 분명 지나가는 길목에는.

지도를 꺼냈다.

광릉에서 북진하는 길에는 크게 우거진 숲이 하나 있었다. 그것마저 돌아들어 가면 수일이라는 시간을 더 허비하게 되니 일반적으로 생각하여 분명 그곳을 거쳐 지나가야겠지.

이미 아군이 우회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면?

분명 나라면 그곳에 함정을 깐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함선을 이용하여 아군의 측면을 공략하리라는 건 완전히 예상 밖의 일. 그렇다면 더 버티면서 아군 본대도 그 가도로 끌어들인 이후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는 게 더 효율적일 터.

그런데도 적은 그러지 않았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렇다면 그건 대체 무슨 의도일까. 어떤 판단을 근거로 무슨 의도를 품어 그런 선제대응에 나섰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으니, 적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 벌이.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적 전력으로 아군을 패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조금씩 전력을 깎아 먹으면서 시간을 번다. 아군이 북진할 기미를 보이는 순간 그들은 바로 움직이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사실 이런 문제는 사마의와 의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사마의의 불안감을 무시하고 행동한 탓에 그 아이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조금만 홀로 고민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주변 병사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봄철의 따스한 햇볕도 별로 기분 좋게 와 닿지는 않았다. 미적지근한 온도가 몸을 감싸는 것만 같아 영 찝찝하게 느껴진다.

“하아….”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정말 폐부에서부터 공기를 전부 끌어낸 것처럼 깊은 한숨에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깊은 한숨. 입맛은 여전히 썼고, 하여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잠시 길가를 거닐었다.

그때 저 멀리에 한 소녀가 보였다.

회색 머리카락의 멍한 인상. 저번에 사마의와 함께 보았던 소녀. 그 아이는 오늘도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조약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말을 걸어야 할까.

그렇지만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솔직히 그럴 기분도 아니라 그냥 둘 생각으로 지나치려던 찰나.

“……중랑장.”

소녀는 그새 고개를 들었다.

비취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또렷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눈동자와는 사뭇 다른 여전히 멍한 표정. 제갈량은 이쪽을 빤히 바라보며 손짓했다.

“표정 안 좋음.”

“그러니?”

좋을 수는 없겠지.

아직 완패한 것은 아니었다. 전초전에서 한 번 미끄러졌을 뿐, 여전히 아군의 전력은 적을 크게 웃도는 부분이 있었다. 그저 이렇게 침울한 기분이 드는 건 전적으로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이기 때문이겠지.

누구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몰랐다고, 설마 해로를 타고 협공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당연히 이 일을 책망해야 하는 유비조차도.

그것이 더 싫었다.

차라리 이 건을 책망이라도 했다면 달게 받았을 것인데.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들에게 단독 작전권을 내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입을 모아 당신의 죄가 없다고 한다면 이 실수의 책임은 대체 누가 짊어지는가.

“패전 탓?”

“그렇겠지.”

소녀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진할까, 혹은 돌아설까.

어떻게 하던 결국 아군은 이들을 넘어 수춘으로 향해야만 했다. 시간을 지체하더라도 빙 돌아갈까. 하지만 그사이에 조조의 본대가 홀로 원술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니 그것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군을 물려 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우거진 숲을 정면으로 돌파할 필요도 없고, 그곳에서 또 쓸데없이 적에게 발목 잡힐 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나아가기에는 장강을 이용한 적의 방비가 너무나도 두터운 것.

“고민?”

“나아갈지, 돌아갈지. 조금 생각하게 되네.”

“들었음. 함선 이용 전략, 효과적.”

쓰게 웃으며 꼬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나는 살면서 여러 전장을 굴렀다고 자신했지만, 수전을 치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강은 그저 건너야 하는 것이었고 가로막는 장해물에 불과했다.

그것을 이용하여 적을 공략한다는 방법을 잊고 있었다.

“아군 전력 여전히 우위. 고민? 왜?”

제갈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모르겠다는 것처럼 눈을 깜빡거린다. 물론 전력으로는 아군이 압도적 우위였다. 그런데도 막힌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상대가 전장과 전술을 잘 준비한 탓이겠지.

“막힌 듯한 느낌이라서 그런다, 꼬맹아.”

픽 웃으며 소녀의 머리를 한차례 헝클어뜨렸다.

“의문.”

제갈량은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유비와 중랑장. 조조군과 유비군. 전력을 양분하여도 능히 대치 가능. 하지 않는 건 어째서? 중랑장, 유비 안 믿는 것 같음.”

“……그렇게 보이니?”

소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믿지 않는다, 라.

솔직히 말하면 그게 맞았다. 아예 안 믿는다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들에게 작전권을 넘겨주는 것이 껄끄러웠다. 이 전쟁은 온전히 황실과 조조의 이득을 위해 벌이는 전쟁이었고, 서주는 어쩔 수 없이 찬동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니 저들에게 작전권을 넘기기 힘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것과 느낌은 달랐지만, 그렇다고 해도 순순히 고삐를 놓아줄 이유가 없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유비, 저번에 시무룩했음.”

이 소녀는 언제나 말이 부족했다.

대충 맥락상으로 유추하면 신뢰를 느끼지 못해 기운이 빠졌다고 생각해도 될까. 그렇지만 한 번 고삐를 푼 유비의 서주군을 다시 다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여전했다.

출정 전 부사령관인 조홍은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사마의도 그 부분에서는 회의적.

아군은 이들의 고삐를 계속 쥐고 있어야지만 효과적인 전투 수행능력을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런 상황에도 그걸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손책이 이끄는 군은 조조군과 유비군, 각각의 군이 갈라졌을 경우 단독으로 상대할만한 전력이었다.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하지 말자고 생각하여 이 안건을 폐지하였는데, 이렇게 막힌 상황이라면 어떠한가.

“서주, 강함. 조조군의 강함과 흡사. 신뢰, 안 감?”

유비와 관우, 장비가 이끄는 서주군.

그들을 북상시킨다면 어떨까.

생각한다면 서주군을 북상시키고 아군이 대치하는 사이, 돌아 나온 유비를 필두로 하여 적의 요새를 공략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여 군을 분산시키고 뚫는 것도 가능했다.

모든 건 내가 유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서주는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이 전장에 나섰다. 그러니 내 통제가 없어지면 전쟁을 수행하기보다는 군을 물려 사태를 관망할 우려도 있었다.

그러니 이건 내 신뢰의 문제였다.

“군을 나눈다면 양군 모두가 적과 능히 대치 가능. 구태여 한 점을 노림? 의아. 휘둘리기보다는 휘두르는 것이 유익. 모든 일은 주도하는 자가 유리.”

제갈량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조그마한 손에는 반들반들한 조약돌 몇 개가 쥐어져 있었는데, 소녀는 이제 내게 관심이 사라진 듯, 다시 그것을 바닥에 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을 다물었다.

휘둘리지 말고 주도하라.

물론 아직 수단은 많았다. 정면으로의 공격은 이번 일전으로 깨달았듯, 여포와 관우까지 보냈음에도 쉬이 뚫리지 않는 가운데 함선을 이용한 지원사격을 퍼부으니 우선 무리였다.

그렇다면 우회하던가… 혹은 군을 나눈다.

“생각이 정리됐어.”

“그러면 다행.”

소녀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그 바닥에 놓인 조약돌을 가지고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어가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혹은 그저 장난일지도 모를 행위를 이어나갔다.

제갈량이라고 했던가.

사마의랑 비슷한 느낌으로 참 신기한 꼬마네. 생각해보면 근래 만났던 어린아이 중에서 평범한 아이가 있기는 했던가.

사마의야 당연하다지만, 폐하라던가 제갈량은.

원래 요즘 아이들은 사실 전부 이런 느낌인가? 그러면 좀 서글플 것 같은데. 아이는 아이다운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라 이렇게 어려운 말만 연거푸 이어나가는 꼬맹이들은 조금.

그렇지만 소녀와의 짧은 문답으로 결론이 섰다.

군을 나눈다.

적은 분명 아군이 군을 나눈다면 모종의 행동을 펼치겠지. 군을 우회하여 포위하려 드는 군을 요격하려 들거나, 아니면 매복하거나. 어쩌면 본진을 향해 공세에 들어설 수도 있으려나.

우위였던 숫자를 쪼개는 것이니 부담도 있었다.

가령 손책의 군에게 양분된 군 중 어느 군이라도 대패한다면 그만한 낭패도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기에는 이 방안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니까.

정해졌으면 움직인다.

“꼬마야, 오빠 간다?”

“잘 가 아저씨.”

하여간 요즘 꼬맹이들은 귀여운 맛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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