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61화 (261/343)

261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광릉 전투 숨을 고르게 내쉰다.

호흡 한 번이 전신에 도는 감각을 느낀다. 손책은 가슴에 손을 얻은 채 바람에 나부끼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정리조차 하지 않으며 그저 저 너머를 바라본다.

검은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칠흑의 깃발은 조조의 상징.

손가에게 있어 불행과 재액, 원수가 되어버린 그 깃발을 응시한다. 저주스럽다. 하여 증오스럽다. 그러니 이 기회가 너무나도 반갑고 사랑스럽다.

“손책, 진정해라.”

“알고 있어.”

그녀는 벌렁거리며 뛰는 심장을 억눌렀다.

분명 그들은 저기에 있었다.

아비의 원수들. 반드시 죽여야만 할 원수들이 마침 딱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 당장 움직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그녀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달려나갔을 테니까.

온몸이 찌릿 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솜털 하나까지도 곧추선 감각. 손책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애써 정리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저곳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의 아버지.

내 유일한 영웅.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의 대장.

손견의 죽음은 저곳에 있었다. 허망하게 가버린 아비의 원수는 저곳에 있었는데, 정작 마음 내키는 대로 달려들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뭘 알아. 지금 네 표정이 어떤지는 아나?”

“거울이, 없어서 말이야.”

겨우 끊어지려던 말을 잇는다.

주유가 보기에 손책의 표정은 말 그대로 악귀의 표정. 당장에라도 군을 이끌고 달려나가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아내는 게 훤히 보였다.

그렇지만 전략상 그래서는 안 됐다.

“우리는 여기서 저들과 대치, 저들의 움직임을 일차적으로 틀어막는 게 목표다. 강남에서와는 상황이 달라. 저들은 조조의 정예에 서주의 정규군이다. 얕봤다가는 죽어.”

“알아.”

손책은 조조군에게 이를 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승산도 없는 전장에 무턱대고 군을 이끌고 진격시킬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비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마라. 아빠가 자주 하던 말이야. 내가 그걸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불효녀로 보였어?”

“거울이라도 주고 싶군.”

그 표정 어디에 냉정함이 있는가.

주유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혈연관계가 아닌 본인조차도 손견의 복수전에 갈망하여 애타게 그리는 감정이 있는데, 실제 딸인 데다가 누구보다 아버지를 따르던 손책은 어떠할까.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저들이 수춘으로 합류할 수 없게 발을 묶는 거다. 저들의 목은 원술이 수춘에서 승리를 거머쥔 이후에 해도….”

“요즘 너 잔소리가 너무 심해.”

“일이 그만큼 중하니까 하는 소리다. 도발에 넘어가지 말고 언제나 침착하게 대응해라. 열세일 때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주유의 진언에도 손책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답답했다.

심장은 대지를 내달려 적과 교전을 바라는데, 머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을 숙이고 있어야 한다며 침착을 강요했다. 주유의 말을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납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감정의 요동이 너무나도 거셌다.

“알아.”

하늘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졌다.

그녀의 시선은 오롯이 검은 군기를 향해 쏠렸고, 주유는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손책이 제 감정이 앞서는 용장의 풍모를 띄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리분간 못 할 정도로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문제는 없겠지.

하여 주유는 군의 편재를 위해 자리를 비켰고, 손책은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저 멀리 주둔하는 조조군을 응시했다.

꿈에서라도 잊지 않기 위해 그것을 눈동자에 새겼다.

또렷한 시선으로 줄곧.

* * *

원술은 옥좌에 앉아 문무백관을 내려보았다.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광릉에서 양주로 진입하는 가도를 선점한 손책이 서주와 조조의 연합군을 저지하는 사이, 원술의 본대는 여남에서 진군할 조조의 본대를 저지한다.

“장훈, 어떻게 생각하느냐.”

“손책에게 원군을 보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사옵니다. 일만 정도만 붙여준다면 서주에서 남하한 군과도 능히 대치할 수 있겠지요.”

원술은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도 이번 전쟁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다. 비록 옥새를 손에 넣었다고는 하나 자신 또한 정통성 부족한 황제였다. 세간의 시선이 자신을 반역자로 볼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겨야만 했다.

상대도 정통성 부족에 시달리는 황제.

사실상 조조에게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기에 여기서 원술이 조조를 격파한다면 제대로 된 한 황실이라 부를 구심점을 없앨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누가 원술을 폄하할까.

“하지만 상대는 조조다. 그 계집년이 천한 것은 둘째로 치거니와 그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도 없지.”

실제로 원술은 한 차례 패배를 겪었었다.

여포의 난입이 있었다기로서니 그 패배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이 전쟁을 통하여 향후 대륙을 차지할 주권국이 바뀌리라고 믿는 원술에게 있어 신중함을 기해 부족함은 없었다.

“여남에서 진군하는 군의 규모는 약 3만 언저리라지. 수춘에 있는 중나라 군이 6만하고도 5천. 얼추 잡아도 두 배를 능가하나, 손책 그 애송이에게 군을 내주었다가 수춘에 빈틈이 생길 우려는?”

“적은 원정길에 오른 이들입니다. 이대로 수춘을 지키고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수춘은 거성, 수성에 있어서는….”

장훈이 말이 채 이어지기 전에 원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중나라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는 더욱 압도적으로, 그리고 완벽한 승리를 점해야만 한다.”

그것이 세간 시선을 바꿀 기회였다.

게다가 이제 막 중의 건국을 선포했는데, 적에게 다짜고짜 수도까지 밀려 막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만으로 국가의 격이 떨어지고 주변의 인정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나가야 한다. 황제가 되어 저 천한 것들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세간에서 이 짐을 무어라 부르겠느냐.”

원술은 손에 쥔 지휘봉으로 장훈을 가리켰다.

“하여 묻는 것이다. 손책 그 애송이에게 일만의 군을 넘긴다? 그래, 여유가 없지는 않지. 그러면 그 계집애가 서주에서 내려온 군을 틀어막고, 더 나아가 승리할 보장은 있다더냐?”

“그것이….”

“답하지 못한다면 되었다. 놈도 손견의 딸내미라면 제 군으로라도 지켜내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겠지. 우리는 여남에서 내려올 환관 여식의 상대를 하면 그만이다.”

원술의 말에 장훈도 고개를 숙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손책에게 힘을 몰아주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반대로 자칫 여남에서 내려올 조조군이 양주 일대를 휩쓸고 다녔을 때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생 국가이기에 더더욱.

양주 회남 땅을 기반으로 중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정작 조조군에게 백성들부터 휩쓸린다면 그 누가 중나라와 원술의 이름을 믿고 기댈까.

하여 장훈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면 기령. 너에게 명하마.”

“예, 폐하.”

“준비된 아군 중 3만을 네게 쥐여주마. 참군으로 양홍을 붙여줄 것이니, 먼저 달려나가 여남에서 올 환관 여식을 막아라.”

원술은 기령에게 명하며 지도를 살폈다.

여남에서 양주 회남에 당도하기까지 회수를 끼고 진군한다 하여도 산세가 높은 협소한 가도가 있었다. 그곳을 미리 선점하여 틀어막는다면 제아무리 조조라 하여도 그것을 뚫기에는 곤란할 것.

조조가 황제를 포섭하여 그 기반이 안정될 것 같아 바로 제국을 선포하였다지만 준비가 미흡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원술은 백성들에게 전쟁 물자를 세금으로 하여 잔뜩 거둬 비축해두었고, 바깥으로는 주변 명사들을 포섭하기 위해 움직이며 이번 참칭에 대해 만전의 준비를 다한 상황.

황실이 자리 잡기 전에 흔들어야만 했던 원술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최적, 그리고 최상의 준비였다. 옥새 또한 자신의 손에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자신에게 점지해준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각 문무백관의 제장들은 들어라.”

원술은 그 옥새에서 일어났다.

“중의 명예를 위하여 싸워라. 낡은 것들이 가로막는다면 치워라. 한의 이름은 이미 땅에 떨어졌고 그 기운에 쇠하였으니, 응당 앞으로 나서 적의 진군을 격퇴하라.”

하여 고하였다.

“온 천지에 이 신생 제국의 이름과 짐, 원술의 이름이 천하를 진동시키게 하라. 열과 성을 다하여 그 임무에 힘쓰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입을 모아 화답한다. 그 광경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원술이 조정회의를 폐하며 자리에서 물러섰고, 그렇게 중나라와 수춘의 준동이 시작되었다.

3만의 대군.

먼저 여남 부근으로 진격할 기령의 군은 선행하였고, 그것을 받칠 양홍이 군사를 독려하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목적지.

“오는가.”

조인은 조조의 명으로 여남에서 양주로 향할 가도에 진을 치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조조군 역시 그곳을 먼저 선점당했을 때의 피해를 잘 알았기에 미리 여남의 사령관이던 조인을 그곳으로 선행시켜둔 것.

총원 1만의 병력.

많은 준비를 할 수는 없었지만, 두텁게 진을 꾸릴 수는 있었다. 저 멀리서 진격해오는 원술군의 규모를 보며 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잡아도 아군의 수배는 되어 보이는군.”

“장군, 어찌하시겠습니까.”

부장이던 악진의 말에 조인은 잠시 고민했다.

병력의 숫자는 많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압도적인 숫자는 아니었다. 물론 진을 꾸려 지키는 것이 우선적이었지만, 척후의 말을 조합하여 생각하면 그들은 선발과 중군, 후군으로 군은 셋으로 나누었을 터.

조인은 손에 쥔 창을 만지작거렸다.

“기병들을 꾸려라. 출정 준비다.”

“예?”

악진의 반문에도 조인은 단호했다.

이때를 대비하여 그는 1만의 병력 와중에 기병만 3천을 이끌고 왔다. 사실상 기존 여남군의 기병 전부를 이끌고 온 것인데, 상대 선발대의 규모나 기세로 보아 충분히 휘저을 수 있을 거로 판단했다.

“전쟁은 기세지. 적이 아군 진영을 두드리며 기세를 타기 시작한다면 이 진으로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허도에서 진군해오는 조조 본대에게 서두를 것을 요청한다면 오래 버티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조인은 지금 가지고 있는 선에서 사수를 이뤄내고자 했다.

조조는 진영을 사수하라고 하였다.

하면 그는 그 역할에 충실할 뿐.

“악진. 준비하여라.”

“예, 장군.”

조인은 악진이 물러간 사이에도 저 너머에 희끗희끗 보이는 적의 군을 살폈다. 규모는 약 1만 언저리. 이제 막 진을 꾸리기 위해 준비하는 적을 노려보는 조인의 눈매가 매섭게 변하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군의 규모와는 별개인 기세와 사기. 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든 병사들의 위치가 불규칙적이었고, 또한 군을 부대 형식으로 나누었는지 군데군데 대열이 흐트러진 것이 보였다.

전형적으로 급조한 군에서 드러나는 현상.

하여 조인은 그것을 감각으로 받아들였다.

할 수 있다는 고양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심장박동이 거칠게 몸을 두드렸고,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조차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가능하다.

“장군, 미리 준비하였던 기병을 모았습니다.”

“그러한가.”

출정의 시간이었다.

조인은 망설이지 않고 기병을 모은 곳으로 향했고, 이윽고 제 말에 올라타고는 말에 막차를 가하며 외쳤다.

“대장군을 위하여, 승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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