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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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에 주둔하였던 우리 조조군과 유비의 서주군이 광릉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여남에도 조조가 본대를 이끌고 도착하였다 하였으니 이 정도가 딱 좋겠지.
가는 길에는 별 저항도 문제도 없었다.
광릉은 서주 남부이나 양주와 더 밀접한 지역이었고, 하여 사실상 원술이 실효지배하고 있어서 다소 경계하였으나, 아무리 원술이라고 해도 조조 본대의 군사가 여남에서 견주고 있는데 군을 나누진 못했을까.
“여기까지는 순조롭네요.”
유비도 같은 의견이었던 모양.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아군은 광릉현에 도착한 이후 서진을 해야 했는데, 남쪽에서 벼르고 있을 손가의 군과 원술의 본대.
그 둘의 움직임에 잘못 엮이면 매우 곤란했다.
장강을 넘은 손책의 군이 약 1만에 육박한다는 정보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원술이 부리고 있는 군의 규모만 6만에서 7만 언저리. 그에 비해 아군의 규모는 고작 2만하고 5천에 불과하니까.
“우선 여남의 진격과 합을 맞출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별도로 다른 안건인 있다면 듣겠다마는.”
“저도 이견은 없어요.”
유비는 시원하게 긍정했다.
“어차피 저희끼리 원술을 타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자칫 양군 사이에 끼기라도 하면 그만한 재앙도 없으니까요.”
“불안한 건 장강을 넘은 손책의 움직임이 멈췄다는 건데. 그 방면으로는 척후를 보냈으니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반영하여 움직이는 게 낫겠지.”
섣부른 움직임은 극히 삼가야 했다.
특히 아군은 서주를 통해 보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당장 양주 중앙까지 진격할 경우 보급선이 너무 늘어져 버리는 문제도 있었다.
여남의 군이 움직인다면 같이 수춘으로 진격할 수 있겠으나, 그전까지는 적의 시선을 끄는 선에서 일정 이상으로는 진군할 수 없다는 제약이 문제였다.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너무 들어가서도 안 된다.
기존 구강 수춘에 거성을 짓고 버티는 원술이 아군에게 대응할 정도 선에서 여남의 군이 진격할 수 있을 시간을 벌어주는 게 현 아군의 최우선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찌하시겠어요?”
유비의 질문에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끌고 온 조조군이 1만. 유비가 이끄는 서주군이 1만 5천. 기왕이면 양주 상부에 흐르는 회수와 남부에 흐르는 장강 사이인 회남 지역 인근까지는 진입하고 싶은 게 속내였다.
그렇지만 부담도 컸다.
유비가 순수히 응할지는 모를 일.
“우선 회남 중앙까지는 진출하고 싶다만….”
가장 최상의 결과는 수춘 인근까지 진출하는 것이었지만, 그래서야 아군의 보급로가 너무 늘어진다. 그것을 습격당한다면 아군은 다시 물릴 수밖에 없을 노릇.
하지만 회남 중심부로 이동하는 것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장강을 타고 넘어온 손가의 군과 원술의 군에게 포위당할 우려가 존재했다.
유비가 이것에 동의할지 의문이었다.
이 군은 관구사령관인 내 지휘하에 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연합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 하시지요?”
“괜찮은가?”
예상외로 유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 폐하의 대리 장군이신 사령관께서 명하신다면 응당 따라야지요. 게다가 기왕 나선 전장이라면 이기는 게 최상이잖아요?”
그녀는 살며시 웃으면서 저 전방을 가리켰다.
“적이 대응하기 전에 미리 진출해두는 것은 나쁘지 않아요. 단지 문제가 있다면 보급로인데, 제 생각에는 회수를 통한 수로 보급을 선택하시는 게 어떤가요?”
“수로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직 선박의 발주를 끝마친 것이 아니라 많은 양을 보급할 수 없겠다고 판단, 하여 기본 골자는 광릉 일대에 주둔하며 보급을 마치는 대로 진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선박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렇지만 소량이더라도 꾸준히, 안전하게 보급하는 게 최선 아닐까요? 많은 양의 비축은 어렵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낫다 보는데요.”
“의논해보지.”
나쁘지는 않은 의견이었다.
원래는 추가 보급병을 이송할 수단으로 생각이었지만, 여차하면 육로의 보급량을 줄이고 수로를 통한 보급을 주력으로 삼는 대안도 있었다.
유비가 협조적인 부분이 다소 의아하기는 했지만, 이제 아군인 입장에서 협력하겠다는데 그걸 의심할 수만도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안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수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회수 인근에 진을 치는 걸 건의했는데, 그 부분은 아군 지휘부와도 협상을 해보아야만 했다.
“우선은 광릉에서 서진하는 거로 하고, 수로 보급은 따로 내부적인 조정을 거쳐야겠지. 이번 원정길은 서주를 거쳐야만 하니, 그 부분은 잘 부탁하지.”
“물론이죠!”
유비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웃음. 성숙한 겉모습과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느꼈지만, 저 표정 외에 다른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영 떨떠름하기도 했다.
이 여자의 진면목은 무엇인지 의심할 수밖에.
애당초 누군가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웃는 것밖에 보질 못했다.
같은 편으로 삼기에는 영 껄끄럽지 않나?
“사령관님?”
“아니, 잠시 생각을.”
애써 얼버무리며 시선을 돌렸다.
곧 광릉군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한 차례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서진할 계획이었지만, 수로를 통한 보급을 고려한다면 며칠 정도 주둔하게 될 수도 있었다.
미리 군에 공지를 돌려야 할까.
딱 그렇게 생각했던 무렵이었다.
저 앞에서 방삼이가 말을 끌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선행하는 여포, 장료의 기병대와 본대와의 연결고리를 방삼이에게 맡겼는데, 놈이 불쑥 본영으로 찾아왔다는 건.
“대장, 전방에 적군이 있다는 정보요.”
“쯧.”
역시나.
“…벌써요?”
유비는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조차도 이 부분에서는 의문이었는데, 여기는 아직 서주였다. 전장이 열린다면 분명 양주에서 벌어질 거로 생각했었는데, 이 시기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최근 근황으로 원술은 아직 수춘에서 군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인데. 그러면 장강 이남에 있던 손가의 군세일까.
“우선 장료가 대치 중이라고 연락했수.”
“쯧, 알겠다. 우선 본대 진군속도를 높일 테니까, 사람을 보내어 장료에게도 우선 적의 정황만 파악하라고 전해. 특히 여포 간수 잘하라고 전하고.”
그 말에 방삼이가 수긍하며 물러났다.
근방의 방어군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아마 손가의 여식일까. 움직임이 있으리라고는 판단했지만, 원술과도 연계하지 않고 곧바로 서주에서부터 아군을 차단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유비, 서주군은 맡기지.”
“예, 사령관님.”
우선은 진격한다.
아군 추산하기를 손가의 병력은 약 1만. 수적으로는 아군이 우위에 섰다지만, 그렇다고 아예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규모도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그 손견의 딸, 손책이라고 하니.
순간 손견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붉은 두건을 두른 맹장.
혹은 명장.
그가 이끌던 군을 상정하자면 1만이라 하여도 결코 얕볼 수 없었다. 녹각을 세워 방비하는 곳에 다짜고짜 기병으로 돌격, 가장 선두에 서서 녹각을 제압하고 후발 기병대의 진로를 열던 남자.
내가 이길 수 없었던 남자의 모습.
선두에 서서 아군을 이끄는 손견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대장의 형태였다. 여포와 비교하자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난 적어도 사령관으로는 손견이 더 낫다 생각했다.
야전사령관으로서 손견의 세운 공이 몇이던가.
반동탁 연합군에서 파죽지세로 동탁을 밀어붙이던 모습과 정면에서 상대한 그 남자의 모습. 여포가 폭력의 화신이라면, 그 남자는 군과 하나 되어 제 몸처럼 군을 다루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보았던 이들 중 야전사령관으로는 단연 손견이 우위라고 점칠 수 있었는데, 그렇기에 그 남자의 딸은 어떨지 궁금했다.
“손책이라.”
유비까지 떠난 자리에서 홀로 그 이름을 불렀다.
손견과의 짤막한 대화에서 딸을 가르쳤다는 말을 들었던가. 아비와도 적대하고 딸과도 적대하니, 손가와 나는 무슨 악연이 있는 게 아닐까.
“동생, 준비 끝났어!”
저 멀리서 다가온 조홍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만 덩그러니 남은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여포가 당도하지 않았다면 그 손에 죽은 건 나였겠지.
“누님.”
“왜?”
“손책은 어떨 것 같으오?”
그 질문에 조홍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소문은 무성한데, 실제로 붙어보지 않고서야 뭐라고 말할 수 있나. 그래도 호랑이의 딸이니 그 값은 하지 않겠어?”
그도 그런가.
붙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상대였다.
경험이 많은 상대이진 않겠으나, 반대로 양주의 장강 이남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무용담은 화려함 그 자체였으니까. 하여 대면하지 않고서야 상대의 강약의 유무를 파악할 길도 없었다.
손책이라는 상대의 정보가 부족했다.
“뭐야, 동생. 혹시 겁먹었니?”
“그야 먹었지.”
내 대답에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의외일 것도 없었다. 당장 이번 원정에서 실수한다면 원술의 기세를 막을 길이 없었다. 게다가 내 어깨에 달린 것은 비단 내 목뿐이 아닌 2만하고도 5천이나 되는 병사들의 생명까지 함께 달려 있었다.
“책임져야 하는 목숨이 너무 많아.”
“…프, 프흐흐!!”
“이걸 웃어?”
그녀는 제 금발을 흐트러뜨릴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끌끌 웃었다. 그래도 내 딴에는 나름의 진심으로 말한 건데, 이 반응은 너무하지 않나?
“정작 하는 짓은 상남자면서, 이럴 때는 천상 문관이네. 응? 우리 동생이 이렇게 시무룩한데 이 누님이 젖이라도 물려줘야 하나?”
“미쳤수?”
“농담이야. 누나 젖 안 나와.”
아니, 진짜.
물어보기에 나름 진중하게 답했는데 그렇게 놀리는 건 너무하지 않나? 진짜로 확 그냥 갑옷 벗기고서 젖가슴이라도 물어버릴까 보다.
“농담이야, 농담. 동생도 참, 누구 잡아먹을 표정이네? 긴장 좀 풀라고 한 농담이니까, 진심으로 가슴 뚫어지라 보는 건 그만두지 않으련?”
“……사신 줄 아쇼.”
“어머, 진심이었니?”
배시시 웃는 꼴이 짜증 나서 고개를 돌렸다.
“화내지 마. 그냥 누나의 농담이라니까는? 너무 긴장하다가는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일 수 없으니까. 동생도 그건 알지 않니?”
“알아. 걱정하되 멈출 생각은 없어.”
“그거면 됐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손책? 그게 뭐. 요즘 중원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동생한테 비할 게 되겠어? 걱정하는 건 좋지만, 당연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지.”
무려 언니가 택한 남자라며 그녀는 픽 웃었다.
얄밉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녀와 떠드는 동안 머리에 떠오르던 손견의 얼굴이 지워졌다. 어쩌면 나는 손책을 경계한 것이 아닌 손견의 그림자에 지레 위축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만큼 내게 있어 손견의 인상은 강했으니까.
잠시 싸운 것에 불과했지만, 여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술적인 역량과 개인의 무력에서도 철저하게 밀렸던 것을 떠올렸다.
주마등이 스칠 정도로 죽음 문턱까지 갔던 것도, 그렇게 강한 남자가 그리 허망히 죽어 여포의 손에 목만 남았다는 것도. 그 한 차례의 맞대결로 손견은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고맙수다.”
“응, 응. 동생은 자신감 넘칠 때가 제일 매력적이더라. 그러니까 얼굴 펴고, 응? 손책 그 애송이가 아무리 강해도 이 전력인데 질 리가 없잖아?”
그녀는 눈웃음을 치며 날 바라봤다.
손견의 딸, 손책.
그녀는 우리를 원수로 여기고 있을까? 그 대단한 아비가 우리와의 전투로, 그리하여 여포의 손에 목이 달아났으니 증오하여 원망하고 있을까.
“그럼 누님에게는 중군 통솔을 부탁할게. 유비군과의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내줘.”
“물론이지.”
군을 정비하며 전쟁에 대비한다.
만약 손견의 여식이 우리를 원수로 여기고 있다면, 좋다. 그 원망과 원한 모두를 받아들이겠다. 받아들인 이후에 그것을 포함하여 전부 짓밟고 으깨며 나아가겠다.
슬픔은 전쟁사에 수반되는 당연한 현상.
안타깝지만 그것에 사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인기 투표 결과는
조조가 역전승으로 1위. 사마의가 2위에 여포가 3위, 소연 아씨는 4위에 조운까지 해서 5위네요. 당연한 듯싶으면서도 다소 의외인 결과도 있었네요.
오늘은 제가 생일인 관계로 나 홀로 홈파티를 하게 되어 한 편...
내일부터는 다시 2편 연재를 잡고 빡세게 연재하겠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