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와 나-257화 (257/343)

25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서주 여포를 다시 장료에게 인계했다.

조금 전까지 좋은 분위기였기에 여포는 나름 기대했던 모양인데, 그런 거 없지. 안타깝지만 장료에게 넘겨주었고, 배신자라며 비난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에 고맙다며 인사하는 장료의 표정을 보아, 이 판단은 옳은 결정이었겠지? 물론 여포가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뭐, 그건 일에서 도망친 벌이라고 하자.

하여 군중을 걷고 있었다.

오늘은 우선 휴식. 정식으로 합동훈련하는 건 내일부터 시작할 듯싶었고, 우선 아군이 잘 정착하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뭐야.”

저 멀리서 어린아이 특유의 고음이 들렸다.

보라색은 사마의겠고, 나머지는 누구지. 사마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회색 머리칼의 소녀. 군중에 아이가 있는 것이 영 어색한데, 생각해보니 사마의도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리 어색한 건 아닐지도.

“이 꼬맹이가 진짜.”

“거울 바라보기 추천. 하루 세 번. 거르기 없음.”

사마의가 뭔가 분에 겨워 씩씩거리는 건 착각일까.

“뭐냐?”

“아저씨.”

슬쩍 다가가니 사마의가 쪼르르 내게 달려왔다. 아니, 아직 상황을 다 파악한 게 아니거든? 정작 사마의와 마주하고 있던 소녀는 멍한 시선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뭔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아니, 군중에 꼬마가 있어서 주의 주려고 했을 뿐이에요.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진짜 괜찮은 거 맞냐?

아니 얼마나 분에 겨웠으면 얼굴이 새빨개져. 정작 저 회색 꼬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라기보다는 그냥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누구 자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마의보다 어린아이가 이런 군중에 있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병사들 특유의 욕설이나 천박한 단어는 물론이요, 이래저래 아이의 정서교육을 위해서라도 좋은 곳은 아니니까.

“꼬마야, 이름이 뭐니?”

“제갈량.”

제 씨? 아니지. 제갈 씨인가.

그렇다면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분명 서주목의 참모가 제갈근이라는 여인이었지. 생각해보니 그녀도 회색 머리카락이었으니, 그녀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일단 제갈근이라는 분과의 사이는?”

“언니임.”

“그렇구나.”

단조롭게, 혹은 맥빠지는 어투.

소녀는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초록색 눈동자가 유비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지만, 분위기가 달라도 워낙 달라서 같은 초록색 눈동자임에도 전혀 다른 감상을 느꼈다.

“일단 언니한테 돌아가지 않으련? 이쪽은 아이가 있기에는 조금 좋지 않은 곳이니까. 언니도 아마 걱정하고 있을걸?”

거기까지 말하니 소녀는 손을 들었다.

그 소녀의 검지가 사마의를 가리키고 있었다. 제갈량이라는 꼬마는 맹랑하게도 사마의를 가리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쪽도 꼬마. 나도 꼬마. 같은 것.”

“내, 내가 꼬마라고? 이게 진짜!”

발끈해서 나서려는 사마의의 어깨를 살포시 붙잡았다.

“아서라, 너도 꼬마는 맞으니까.”

“아저씨!”

나이 차이는 조금 있겠으나, 그래도 내 눈에는 모두 비슷한 꼬마로 보였다. 물론 군정을 비롯하여 여러 부분에서 그 꼬마에게 의존하고 있는 내가 할 말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꼬맹이인 것을 어쩌나.

“사마의는 조금 특별하단다.”

“특별?”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언니는 하는 일이 있어서 그렇단다. 아직 량이는 언니랑 같이 있어야 할 나이인데, 돌아가지 않으면 제갈근 선생이 걱정하실 것 같은데?”

“특별함의 기준, 모호. 정의 불가.”

말하는 어투가 참 특이하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어린아이를 접하는 게 어려웠다. 특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꼬마의 경우에는 더더욱.

제갈량이라는 소녀는 좀 특이해 보였다.

예전에 사마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던가. 뭔가 어린아이인데도 다른 느낌이 들어서. 어쩌면 그때의 감상을 제갈량이라는 소녀에게 다시 느끼는 걸 수도 있겠네.

“야, 꼬맹아. 너랑 처음 만났을 때랑 비슷하네.”

“저랑 비슷하긴 무슨! 제가 저렇게 멍청해 보였다고요!?”

아니, 그렇다고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그런데 정작 제갈량은 아무 반응도 없이 멍한 시선으로 사마의에게 고개를 돌렸다.

“반사.”

“그거 하지 말랬지.”

사마의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근거.”

“뭐?”

“하지 말아야 할 근거. 있음?”

와, 저거 생각보다 얄밉네.

만약 나한테 했으면 대번에 꿀밤을 놓았을 정도로 얄미운데, 정작 그렇게 몸으로 응징하는 성격이 아닌 사마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거 사람 약 올리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니?”

“않음. 개성 존중 바람.”

어린 소녀 사이에 낀 남자가 하나.

꺄꺄 떠드는 것 같은데, 정작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를 몰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사마의는 분통이 터지는 듯 말을 따박따박 이었고, 그걸 제갈량이 멍하니 받아내는 모습.

진짜 이거 수습이 가능하긴 한가?

“너 몇 살이야.”

“나이는 숫자. 연장자 대우 바람?”

“……진짜 말이 안 통하네.”

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다른 선상에 놓인 듯한 두 소녀였다. 뭘 이렇게 말로 다투나 싶다가도, 또 이걸 어떻게 끝내야 할지 생각하면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나도 이 뒤로는 휴일이긴 한데….

“아저씨, 가죠. 이 꼬맹이가 뭘 하건 그냥 멋대로 하게 둬요. 하여간, 괜히 시간만 날렸네요. 진짜, 서주 사람들은 뭘 하기에 이런 애가 군영에 돌아다니게 두는 건지.”

아, 결국 도망치나?

사마의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내 옷깃을 잡아당겼는데, 그 둘의 말다툼에 난감 반과 구경 반 느낌으로 지켜보던 입장에서는 패배 선언 같았다.

“……잠깐.”

그런데 제갈량도 내 옷깃을 잡았다.

“중랑장으로 보임. 맞음?”

“…음, 그러네. 이 오빠가 중랑장이란다.”

아이에게 거칠게 말하기도 뭣하여 친절하게 웃어주었다. 여전히 아이를 대하는 건 어려웠지만, 그래도 서주 관료의 아이라는데 냉정하게 내칠 이유는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에게는 친절해야지.

“당신, 기괴.”

그런데 기괴하다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아니, 나 그래도 나름 얼굴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웃는 얼굴로 소싯적에는 마을 처녀들을 얼마나 후리고 다녔는데. 물론 저마다 미적 감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괴하다고 들을 정도인가?

“너, 무슨.”

“중랑장은 목적이 무엇?”

사마의가 뭐라고 하려던 것이 묻혔다.

제갈량이라는 소녀의 표정은 여전히 멍했지만, 그 말만큼은 예리하게 내 내면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유비의 말. 조조군의 행보. 당신의 소문. 모든 게 일치하지 않음. 하나의 모습으로 모을 수 없음.”

소녀는 자리에 주저앉아 조약돌을 쥐었다.

그리고는 땅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무언가 꼬물꼬물한 미로와 같은 것이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면을 긁는 소리만이 자리에 남았을 무렵.

“조조군의 행보, 명백히 패도. 방해되는 것 짓밟고 나아가는 패왕. 소문은 중랑장이 황실과 밀접하다 들음. 유비는 당신을 선인이라 평가.”

제갈량은 동그라미 셋을 그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하나로 뭉치기 어려운 것들뿐.”

그런가.

솔직히 나는 그렇게까지 하나로 합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조조의 길은 분명 효율적으로 확실하게, 필요하다면 힘으로 짓누르겠다는 태도지만 그것이 난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실에 관련된 소문은 중랑장을 달고 자연스럽게 외부로 뻗어 나간 것. 유비가 날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 건 의외지만, 그거야 그 사람 개인의 견해니까.

단지 말을 머뭇거리게 되는 건 상대의 나이 탓일까.

아직 사마의보다 어려 보이는 소녀였기에 뭐라 답하기도 애매했다. 처음 사마의를 보았을 때가 딱 저렇게 왜소한 인상이었는데 말이지.

“태도가 일정하지 않음. 보는 사람에 따라 이해가 달라짐.”

“원래 사람이라는 게 다 그런 거란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둔갑한다.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당장 조조만 보아도 아군에서는 지도자이나, 서주에게 있어서는 전쟁을 일으킨 원수에 불과한 것처럼.

모든 일이 다 그랬다.

“존재는 하나.”

“하나도 보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현상이 되지 않겠니?”

소녀는 내 말에 멍하니 이쪽을 올려다봤다.

“시선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면, 그 모습에 진실은 있음? 진짜라는 것은 무엇임. 나, 아직 어림. 잘 모르겠음.”

이 말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걸 떠올린다면 진짜란 무엇이냐는 질문. 솔직히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이리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할 말이 궁색하기도 했다.

이게 어린아이의 시선일까.

“하, 뭘 또 쓸데없는 거로 고민하고 있니? 그런 건 당연히 자기가 믿는 게 진짜 아니겠어? 무슨 말을 장황하게 하나 했더니.”

정작 사마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어중간하게 머리 좋은 꼬마들이 그런 거로 고민하고는 하지. 쓸데없어. 결국에 화자는 본인인데, 그렇다면 그 화자가 느끼는 것이 진실인 게 당연하잖아?”

소녀는 사마의의 말에 눈을 꼭 감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 솔직히 이런 복잡한 주제에서의 대화는 내게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꼬맹이들이 이런 주제로 떠든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인데.

“하지만 타인의 시선도 부정할 수 없음. 내 시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음. 정보의 부족에 따라 처리해야 할 관점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임.”

“그건 자기 자신의 이해력 부족이잖아? 웃겨. 이해력이 부족하면 결단하지 말고 더 오래, 더 진득하게 생각하고 관찰해서 완전히 이해하면 그만이잖아.”

“그건 오만. 폭력적인 이론임.”

……진궁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

아니 진짜, 무슨 소리냐고. 대충 이해는 가는데, 정작 말하는 내용에 대해 뭐라고 말참견하기가 상당히 모호할 정도로 이상한 주제로 떠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이들의 대화?

뭐야 이거, 무서운데.

잠시 멍하니 꼬맹이들을 바라봤다. 서로의 주제에 대해 열을 토하며 떠드는데, 정작 그걸 반 정도밖에 이해하질 못하니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 대장. 여기 있었… 뭐야.”

저 멀리서 방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다가오다가 멈칫하는 발걸음. 놈은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쪽으로 머뭇거리면서도 못내 어쩔 수 없이 다가왔다.

분명 방삼이가 왔음에도 꼬맹이들은 자기들끼리의 주제에 혈안이 되어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떠들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요?”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사실 붙잡혀 온 거라 잘 몰라.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걸. 사마의가 처음 보는 꼬마애랑 있기에 궁금해서. 그리고 혹시 친구라도 만들었나 싶어 호다닥 달려왔더니 이렇게 붙잡힌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넌 무슨 일이냐.”

“아니 그냥. 뭐하나 하고….”

요컨대 이놈도 할 짓 없어서 왔다는 소리네.

그러는 사이에도 꼬맹이들은 계속 떠들었다. 이제는 뭐? 갑자기 현 천하의 정세에 대해 떠드는데 이게 진짜 꼬맹이들의 대화가 맞는지? 슬슬? 의문이 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아, 진짜 말 안 통하는 꼬맹이네.”

“동감.”

“네가 그걸 동감하면…, 어? 방삼 삼촌. 왔어요?”

사마의는 그제야 방삼이를 보고 인사했고, 그것에 따라 제갈량도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서 갑자기 애가 몸을 벌벌 떨기 시작한다.

“…괴, 괴물! 괴물이 있음!!”

“……아니, 일단은 사람인데.”

아, 방삼이 상처받았다.

아니 나도 솔직히 가끔 놈 얼굴 보고 놀라긴 하는데, 특히 밤에 우연히 모서리 돌다가 이놈 얼굴 보기라도 하면 비명을 지르긴 했는데, 그래도 괴물이라니.

물론 진짜 험상궂게 생기긴 했지.

“진정하렴, 꼬맹아. 이래 봬도 사람이야.”

“이래 봬도? 대장 말하는 게 좀 그러네? 나도 어디 가서 안 꿀린다고. 복순이도 내 얼굴이 얼마나 잘생겼다고 칭찬해주는데.”

거기서 사마의가 어깨를 으쓱였다.

“봤지? 이게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진다는 거야.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니까, 결국에 믿을 건 자기 자신밖에 없는 거고.”

“……다소 이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조차도 이해한 상황에서 방삼이만 혼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싸우던 두 꼬맹이가 이 얼굴 하나로 진정된다니. 어떤 의미로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아닌가.

그나저나 복순이도 대단하긴 대단하네.

난 방삼이를 아무리 봐도 잘생김의 터럭도 못 느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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