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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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각자는 대련이었노라고 하지만, 정작 장비 옆구리에서 진하게 묻어나오는 혈흔을 보고 어떻게 웃어넘길까.
각자 무기를 들고 임한 걸 대련이라고?
“죄송해요!”
유비가 대뜸 고개를 푹 숙였다.
전후 사정은 들었다.
먼저 도발에 가까운 대련을 신청한 건 장비였다고. 우선 양자가 잘 합의했다면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혈사태로 번질 정도의 대련을 빙자한 전투가 벌어진 건 썩 달갑지 않았다.
여포는 시무룩하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평소 자신감 넘치던 그녀의 모습과도 대조되는 부분. 양자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이건 일이 너무 커지지 않았나.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하던가.
“여포.”
“……응, 주인아….”
뭐라고 하기도 모호한 안건이었다.
둘이 대련이라고 인지했다면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겠는가. 동맹이니 이런 유혈사태를 말미암은 사건이 참 끔찍하게 머리가 아픈 일이었지만, 정작 저쪽 수장인 유비가 먼저 고개 숙여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지금은 됐어.”
슬쩍 고개를 돌려 장비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여 그 표정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반성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이해가 가는 전개라면 구태여 뭐라고 할 필요도 없겠지만.
“장비.”
“…예, 사령관님.”
그는 평소와 달리 존대로 대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의 총괄 사령관은 나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그 성격에 이리 쉽게 숙이고 들어올 줄도 몰랐기에 살짝 당황한 감도 있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왜 그랬지?”
“무의 단련을. 여포와 단둘이서 승부 볼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부 제 독단이니, 서주목과 여포 장군을 너무 책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분명 먼저 대련을 요청한 것은 장비.
그 와중에 살짝 도발이 있었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응한 여포의 책임도 있었다. 쌍방의 잘못이 있으니 누구 하나를 콕 집어 말하기도 모호한 감이 있었다.
게다가 둘 다 잘못을 인정하니까.
“모두 들으라. 이번 건은 불문으로 부치겠으나, 앞으로는 병사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 알겠나?”
“예, 사령관.”
“……응….”
하아.
“특히 장비. 이렇게 일을 키운 건 당신의 개인적인 욕구에 의한 일. 지금은 양자 인정하는 일이기에 그냥 넘어가겠으나, 한 번만 더 사령관의 권위에 도전해봐.”
그때는 이렇게 쉬이 넘기지 않을 거다.
여포도 흥에 겨워 싸운 부분이 있으니 넘어가는 것이다. 막 합류하여 아직 화합하지도 않은 군의 병사들이 지켜보는 과정인데, 그런 상황에서 이런 공개된 자리에서 대련이라고? 무기를 들고 싸운 사실상의 전투였다.
게다가 여포가 저리 시무룩해진 원인도 그것 아닌가.
물론 여포 개인의 잘못도 있기에 탓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외적으로 이 사달의 계기는 장비였다.
“한 번은 한 번이다. 알겠나?”
“예, 사령관.”
“좋다. 물러나라. 서주목,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하겠다. 일단 군중을 수습하고, 이번 일은 각 군의 장수끼리 친목 도모를 위한 대련이었노라고 둘러대는 수밖에. 그쪽 군중은 맡기겠다.”
“예, 사령관님.”
하여 여포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가는 길 내내 축 처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분명 여포는 다소 단순하고 즉흥적인 면이 있어 그 부분에서 관리해주지 못한 내 잘못도 있었다.
하지만 여포 본인도 한 번 거절했다고 하고.
……쯧.
“그래서.”
“…응?”
시무룩하게 답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겼냐?”
사람들의 시선이 떨어진 으슥한 곳까지 왔다 싶었기에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두드렸다. 잘잘못을 떠나서 이번 일은 분명 문제로 삼자면 삼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릴 기세로 쓰다듬었다.
“……당연히 이겼지!”
“그럼 됐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밝게 웃기에 같이 웃어주었다.
이걸로 됐다.
장비에게도 그 정도로 말했으면 좋은 약이 되었겠지.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군영에서 군정을 보는 와중에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건 지양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서주군에서 가장 제어하기 힘들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번 찍어누를 수 있었으니 나름 나쁘지는 않았다.
“장비는 어땠냐. 강하던?”
“꽤 하는데, 나한텐 안 되지.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에서는 가장 세긴 한데, 딱 그 정도?”
여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강하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여포 자신의 무력이 너무 강한 면도 있었기에 그녀의 기준은 다소 애매한 면이 있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이들 중 가장 강하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 강하다는 소리겠지.
“앞으로는 뭐 하기 전에 물어보고. 알겠어?”
“…미안.”
“기죽으라고 말하는 거 아냐. 그냥 이번에는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니까 문제였지, 이겼으면 됐어. 만약 어디 하나 다쳤으면 장비도 가만 놔둘 생각 없었으니까.”
아무리 공과 사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여포가 누군가에게 다친 상황을 묵과할 생각도 없었다. 물론 죽인다거나 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찍어누를 수는 있으니까.
“어, 나 걱정해주는 거야?”
“하지.”
그녀에게는 다소의 죄책감이 있었다.
싫었던 적도 있고, 여전히 그걸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두가 전쟁에서 죽음을 감당하고 나선다지만, 또 감정은 별개니까.
하지만 분명 나도 그녀에게 죄를 지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죄인이었다.
죄라는 사슬로 엮인 죄인들. 하여 서로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게 지금의 여포와 내 관계성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를 향한 감정은 언제나 애잔한 무언가로 남았다.
“…걱정…… 해?”
“한다니까는.”
내가 품은 여인이었다.
그걸 걱정하지 않으면 무얼 걱정할까.
하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지금은 아직 천하가 평화롭지 않아 이렇게 전장에 나서지만, 언젠가 평화가 온다면. 우리가 그리 그리던 봄이 온다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천하를 유람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이거, 좀. 응. 조금 많이 기쁘네.”
“조금이냐, 많이냐.”
어이가 없어서.
그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 길을 걸었다. 장비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이후에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때는 이번의 경고를 포함하여 중징계를 내린다 해도 유비도 반발할 수 없을 터.
“주인아. 내가 주인이를 많이 좋아해.”
“알아.”
사고 쳐놓고서 그렇게 헤실거리기는.
기죽지 말라고 좀 풀어줬더니 바로 웃는 꼬락서니가 우습기도 했지만, 그게 썩 나쁘지는 않아서 그냥 가만 놔뒀다.
“이거, 오늘 자.”
“하얀 거네.”
그녀는 품 안에 있던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이건 무슨 꽃일까. 아직 겨울인데도 피어오른 새하얀 꽃망울을 잠시 응시했지만, 안타깝게도 꽃에 대한 조예가 없어 그걸 알아채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사고는 적당히. 알겠냐?”
“알겠어!”
해맑게 웃으며 답하는 여포가 문득 평범한 또래 처녀로 보였다. 그녀가 한때 그리도 바라던 그것이 이뤄진다면 이런 모양새일까.
복양에서의 여포는 이런 삶을 동경했던 걸까.
내가 그것을 전부 주었노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비슷하게나마 제공할 수 있었다면 기쁠 것 같았다. 아직 머릿속에는 비통하게 울부짖는 여포의 모습에 깊게 새겨져 있었으니까.
날 위해 죽어간 멍청한 놈들.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여포.
그건 아직 전부 소화되지 않은 무언가였다.
“주인아, 저거 봐.”
저 멀리에서 먹구름을 뚫고 빛무리가 내리고 있었다. 크게 한 줄기 선명하게 내리는 빛은 제법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여포는 그걸 바라보며 아이처럼 웃었다.
“저런 거 좋더라고.”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오늘부터 서주의 지휘부와 합동 작전을 위한 준비를 하려 했지만, 이런 일이 터지고 곧바로 훈련에 돌입하기엔 영 그렇겠지.
하루만 쉴까.
딱 하루만.
* * *
사마의는 군중을 살피며 진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랑 여기. 이건 좀 수정해야겠네.”
기존에 보급한 물자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다. 이번 원정에 앞서 양주로 넘어가는 일이기에 그 지역에 맞춰 보급한 물자를 점검하며 관리한다.
소녀는 경험이 적었다.
하여 그들의 습성을 파악하고, 실제로 지급했던 군수물자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알고자 했다. 재능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하니, 그것을 전부 노력으로 채우고자 한 것.
사마의는 전형적인 노력하는 천재였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소녀는 예주 방어선에서의 작전 당시 적 기마병을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후방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 실책은 두 번 다시 없게 하겠노라고.
하여 소녀는 오늘도 군영을 걸었다.
“……응?”
그러던 찰나.
저 멀리에 한 소녀가 보였다.
살짝 백색에 가까운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소녀의 모습은 확실히 군영에서 보기엔 이질적인 무언가였다.
이 근방은 서주군도 주둔하고 있으니 그쪽 아이일까.
확실히 입은 옷을 보아하니 일개 병사의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저런 소녀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적도 없어, 사마의는 살짝 그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너는 누구니?”
사마의의 질문에도 소녀는 멍하니 고개 숙인 채 조약돌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림 같기도 하면서, 정작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없는 무언가.
“얘. 내 말은 들려? 여기 애들이 있을 곳은 아닌데.”
이젠 미간까지 살짝 찌푸리려던 찰나.
“……누구임?”
소녀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표정과 그 흐릿한 눈빛. 사마의는 그 표정을 지켜보며 뭐 이런 덜떨어진 아이가 군중에 있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애들이 있을 곳이 아니거든?”
“……그쪽도 애. 논리 파탄. 이상함.”
여기서 한 번 빠직.
사마의는 이를 꽉 깨물고 애써 웃었다.
“나는 애가 아니거든. 누군지는 몰라도, 서주 관리나 명가의 아이라면 그만한 품격을 지킬 필요가 있지 않니?”
실제로 소녀는 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있던 탓에 흙먼지가 치마에 잔뜩 묻어있었다. 그걸 지적하니 소녀는 슬쩍 시선을 내렸다.
“……아. 언니, 혼냄.”
“언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가. 여기가 무슨 장난하는 곳도 아니고. 대체 네 언니라는 사람은 무얼 하기에 군중에 아이 혼자 돌아다니게 놔두는 거니?”
앞으로 사마의는 각 군의 백인장을 만나야 했다.
사실 이런 꼬마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었지만, 그런데도 못내 눈에 밟혀 참견하고만 셈. 지금까지의 사마의라면 이런 꼬마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겠으나 묘한 이끌림을 느껴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그쪽은?”
제갈량은 그런 사마의를 가리켰다.
“보라색 꼬마, 돌아다님. 제지 없음. 비슷?”
“이, 이게 진짜….”
소녀는 꼬마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꼬마가 자신을 가리켜 말하는 꼬락서니는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
“이 꼬맹이가 자꾸 말이 이상하네?”
“반사.”
제갈량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코멘트를 읽고 질문에 답 드립니다.
장비는 안타깝지만 남자입니닷...!! 슬픕니닷...!!
아가의 기준은...
아가라고 생각되면 아가입니다!! :)
조조군 내에 정치적인 이해에 관해서는 이번 원술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고위직인 것에 비해 애매한 스텐스입니다만, 그때 스테이터스 갱신을 포함하여 보여드릴 수 있을 듯싶습니다.
내일은 다시 2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닷 :)